2. 신선이 됐다는 5세 신동 매월당
梅月堂金公時習 五歲以神童名滿一國 世宗召見 使賦三角山 卽應聲對曰 速聳三峰貫太淸 登臨可摘斗牛星 不徒聖代興雲雨 能使王都萬歲寧 世宗嫌其英慧太早 欲老其才而大用 未幾上賓 端宗遜于寧月 光廟登極 公
時讀書北山寺 聞此報 痛哭落淚而逃 至公州東鶴寺 遙祭殉節諸臣 與 南秋江作東鶴寺招魂記 傳于世 自此絶意功名 遍遊名山 入雪嶽 遇異人 講丹學 居久之 一書生願從遊 公每夜開戶而出 夜深始還 書生隨其後
潛伺之公登萬景臺 與一羽士 對坐而語 書生卽還伴睡 公大責曰 君欲學道 而先自欺心 道不可成也 仍謝而遺之 平日與四佳亭徐公最親 入都相訪 申相國叔舟 欲因四佳亭一見公 公拒不從 叔註寄一幛子 求詩 乃太
公渭濱釣魚圖也 公援筆卽書曰 風雨蕭蕭拂釣磯 渭川魚鳥渾忘幾 如何老作薦揚將空使夷齊餓採薇 遂拂衣而去 光廟因讓寧大君 欲致之 終不屈退居慶州金烏山下 晩年至鴻山無量寺 無疾而죄坐化 經屢日 顔色如常
居 僧異之 遂茶毗 世謂尸解仙去 遊嘗遊雪嶽 登五歲庵 拜公畵像 一縱一俗 宛帶山澤烟霞氣 百世之下 猶想其淸風高節也
매월당김공시습 오세이신동명만일국 세종소견 사부삼각산 즉응성대왈 속용삼봉관태청 등림가적두우성 불도성대흥운우 능사왕도만세녕 세종혐기영혜태조 욕노기재이대용 미기상빈 단종손우녕월 광묘등극 공시독서북산사 문차보 통곡낙루이도 지공주동학사 요제순절제신 與 남추강작동학사초혼기 전우세 자차절의공명 편유명산 入雪嶽 우이인 강단학 거구지 일서생원종유 공매야개호이출 야심시환 서생수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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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
매월당 김시습공은 5세 때 이미 신동으로 그 이름이 온 나라에 다 알려졌다. 세종께서 친히 불러 삼각산이란 제목으로 글을 지으라고 하니, 말이 떨어지자마자 곧 대답하여 말하기를,
“세 산봉우리를 묶어 올려 높은 하늘을 꿰뚫었고
그 봉우리에 올라가면 두우성을 딸 수 있겠구나.
다만 태평성대에 구름과 비를 일으킬 뿐 아니라
능히 서울을 천세만세 편안하게 하겠구나.“
라고 하였다 세종은 매월당이 영특하고 지혜롭고 너무 조숙함을 꺼려서 그의 재주가 익숙하게 된 뒤에 크게 쓰려고 했으나 얼마 안되어 돌아가셨다.
단종이 영월에 물러나게 되고 세조가 등극을 할 때 김공은 북산사에서 책을 읽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
통곡을 하다가 뒷간으로 해서 도망을 쳤다. 공주 동학사에 이르러서 절개를 지키다가 죽음을 당하 여러 신하들을 제사지내고, 남추강과 함께 동학사 초혼기 라는 글을 지어 세상에 전했다.
이로부터 그는 공명의 뜻을 끊어버리고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설악산으로 들어가서 이상한 사람을 만나 단학을 강습하여 그곳에서 오래 살았다.
이때 한 서생이 매월당과 함께 공부하기를 원해서 함께 있었는데 김공은 밤마다 문을 열고 나가서는 밤이 깊어서야 돌아왔다. 서생이 매얼당의 뒤를 따라가 몰래 엿보니, 공은 만경대에 올라 한 신선과 마주 앉아 얘기를 하고 있었다. 서생이 즉시 돌아와 거짓으로 자는 체 하니 김공은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너는 진리를 배우고자 하면서 먼저 자신의 마음을 속이니, 도는 이룰 수 없다.”라고 하며 곧 인연을 끊고 돌려보냈다. 그는 평소 사가정 서공과 가장 가까워서 서울에 들어오면 서로 찾았다. 신숙주는 사가정을 인연으로 한 번 매월당을 만나보고자 하였으나 김공이 거절하고 만나주지 않으니, 신숙주는 액자 하나를 붙여서 시 한 수를 적어달라고 청하였다. 그 액자는 강태공이 위수강가에서 고기를 낚는 그림이었다.
김공은 즉시 붓을 잡고 쓰기를,
“비바람은 쓸쓸한데 고적한 낚시터에
위천의 고기떼들이 어쩔 줄 몰라 헤매는구나.
어찌하여 늙어서 응양장이 돼 가지고
공연히 백이숙제가 고사리를 뜯다가 죽게 했나?“
하고는 옷자락을 걷어 올리고 가버렸다.
세조는 양녕대군을 인연으로 그를 불러보려고 하였으나 끝내 굴복하지 않고 물러나, 경주 금오산 밑에서 살다가 그 만년에 홍산의 무량사에 이르러 아무 병 없이 앉은 채 세상을 떠났는데, 여러 날이 지나도록
낯빛이 평상시와 같았다. 중들은 이를 이상히 여기며 드디어는 화장을 했다. 세상에서는 매월당이 신선이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일찍이 설악산에서 놀 때 오세암에 올라가서 매월당의 화상에 절을 했는데 한편으로는 중, 한편으로는 속세 사람으로 완연히 청산과 연못의 안개기운을 디고 잇어 백대가 지난 후엗도 오히려 그 깨끗한 풍채와 높은 절개를 생각할 것 같았다.
註
* 김시습 - 조선초기의 학자 생육신의 한 사람. 자는 열경. 호는 매월당. 동봉 강릉 사람 김일성의 아들. 세조가 단종을 물러나게 하고 즉위하여 사육신의 참화를 일으키자 속세를 떠나 숨어 살며 기구한 일생을 보냄. 저서로(매월당집)(금오신화)등이 있다.
* 세종 - 조선 제 4대 임금. 이름은 도, 자는 원정 시호는 잡헌, 태종의 아들. 태종 때 세자로 책봉되고, 그 뒤를 이어 즉위하여 32년 재위함.
* 삼각산 - 서울 북쪽 경기도 고양군에 있는 산.
* 두우성 - 북두성과 견우성.
* 북산사 - 절 이름
* 공주 - 지금의 충남 공주
* 남추강 - 조선 초기의 학자인 남효온. 추강의 그의 호
* 초혼기 - 영혼을 부른 기록. 여기에선 사육신의 충혼을 부른 기록
* 사가정 서공 - 조선 초기의 학자. 서거정. 자는 강중, 호는 사가정. 시호는 뭍충. 대구 사람으로 옥사를 지낸 서미성의 아들.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하여 좌찬성을 지냄. 성종 때 공신호를 받고 달성군으로 피봉됨. 저서로 사가집. 동국통감. 동문선 등을 남김
* 신숙주 - 조선 초기의 학자. 자는 범옹. 호는 보한재. 고령사람으로 공조판서를 지낸 신장의 아들.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하여 세조 때 영의정을 지냈음. 저서로 해동제국기. 보한재집이 있다.
* 강태공 - 중국 주나라 때 학자 무왕의 스승인 태공망.
* 음양장 - 무용이나 여명을 떨치는 장수.
* 오세암 - 강원도 설악산 백담사에 속한 유명한 암자. 김시습이 속세를 등지고 와서 숨어 살던 암자. 오세암에는 박달나무를 사용하여 2층 대장각을 짓고 팔만대장경을 보관하였으나 6.25동란 때 소실됨.
明文堂 宋淨民 譯 錦溪筆談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