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의 런던 상공에 긴박한 공습경보가 내리고,
귀대를 앞두고 우연히 워터루 다리를 지나가던 영국군 대위,
로이 (Roy Cronin/Robert Taylor, 1911-1969, 네브라스카 )는
마이라가 혼란스러운 인파 속에서 떨어뜨린 핸드백을 주어 주면서,
지하 대피소까지 동행을 하게 되는데, 그만 급속도로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발레리나인 마이라의 야간 공연에도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가는
그는 급기야 청혼까지 하기에 이르고, 그 사랑의 약속을 간직한 채 다시
프랑스 전선을 향해 떠난다.
그러나 외간 남자와의 교제를 절대로 허락하지 않는 까다로운 발레단에서
마이라는 로이와의 사랑 때문에 쫓겨나게 되고, 새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전쟁 통에서 온갖 어려움을 다 겪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 로이의 소식을 알기위해 로이의 어머니를 찾아갔다 그만
그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마이라는 깊은 절망에 빠져들게 되는데,
하지만 슬픔을 느낄 겨를조차 없이 힘든 생활고에 시달리는 그녀는
마침내 자포자기하는 괴로운 심정으로 어느새 거리의 여인이 되고,
또 다시 세월은 흘러만 간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죽었다던 로이가 어느 날 갑자기 기차역에 나타나면서 두 사람은 극적으로
재회를 하게 되지만, 몸을 더럽힌 죄책감은 끝내 그녀로 하여금 로이를
황급히 떠나게 만든다.
(그리고, 잠시 후 들리는 날카로운 자동차의 급브레이크 소리......)
1939년, 독일이 영국에 선전 포고를 한 그해,
이젠, 대령 계급장을 단 나이가 든 로이 크로닌은 2차 세계 대전의 전쟁터로
향하는 도중에, 마이라와의 추억이 남아있는 그 워터루 브리지에 다시 나타나고,
안개가 자욱한 그 다리 위에서 (그녀가 지녔었던) 조그만 행운의 마스코트를
손에 들고서 또 다시 그날을 회상한다. (아래 동영상 모음 참조).
전형적인 신파조의 이 작품은 이 영화 이전에 이미 영국의 무대에서
2차 세계대전 전부터 무척이나 인기를 끌었던 연극 작품이었다.
그런데, 그 때서부터 이 작품은 크게 두 가지의 화두를 대중들에게
(오늘날에도 여전히) 제공하고 있는데,
첫째는 우리나라의 옛날 변사들도 즐겨 사용하던 문구인
"이 무슨 기구한 운명의 장난 이란 말인고? "라고 할 수 있는 운명론이고,
또 하나는 반세기가 훨씬 지난 21세기의 오늘 날에, 이 영화의 후반부에서처럼
여 주인공 마이라 와 같이 자신의 비밀에 대하여 양심선언을 할 순진한
현대 여성이 과연 있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99%는 없을 것이라는 의견들이 지배적 이라고 하지만, 여하튼,
그 운명적인 만남이 없었다면 오히려 평범한 발레리나로 그냥 평범한 삶을
잘 살지 않았을까 하는 결론만은 다들 공통적 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느 작가가 말한 “그이를 사랑하면서 얻은 불행은 결코 불행이 아니다”라는
말도 역설적인 의미로는 상당한 의의가 있는 듯도 한데........
1931년에 이어 9년 만에 두 번째로 다시 영화화된 이 리메이크 작을 연출한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머빈 르로이 (Mervyn Leroy, 1900-1987 S F) 로서는
생전에 연출한 77편중에서 ‘쿼바디스(Quo Vadis.1951)’ 와 함께 그의 대표작 이라할
만큼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또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켰는데 그 자신도 이 영화로
인해서 얻게 된 ‘멜로 드라마 의 대가’라는 칭호에는 매우 만족을 하였다고 한다.
1939년의 대 서사극,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의 스칼렛 오하라
역으로 전 세계에 매우 강력한 이미지를 남겼던 26세의 유부녀,
비비안 리 (Vivien Leigh, 1913-1967, 인도) 가
일 년간의 휴식 끝에 이번에는 자기 나라의 런던으로 무대를 옮기고
전작과는 분위기가 매우 다른 연약한 발레리나 역을 맡았는데
그 카리스마가 넘쳐나는 미모에서 풍기는 묘한 매력은 여전히 강렬하였다.
그리고 로이 크로닌대위(대령) 역을 맡은
로버트 테일러 (Robert Taylor, 1911-1969, 네브라스카) 역시 1934년의 데뷔이후
가장 성공적인 역할로 자신을 스타덤에 올려놓게 된다.
음악은 1929년부터 영화음악을 만들어온 미국의 중견 작곡가,
허버트 스톳하트(Herbert Stothart. 1885-1949, 위스콘신)가
전형적인 멜로드라마 형식의 음악으로 무난한 연출을 하였지만
오히려 적절히 잘 활용을 한, 두곡의 유명한 고전 명곡(삽입곡)이 눈길을 끈다.
이중에서 특히 차이코프스키(Tchaikovsky)의 명곡,
‘백조의 호수 중 제2막 제10곡 정경-모데라토’(1876년 작곡)는
역시 마이라가 발레 무용수이기에 무대 공연을 비롯한 몇몇 장면에 의도적으로
삽입을 한듯하고, 또 한곡은 영화 속 촛불 카페(Candlelight Cafe)의 악단장이
직접 ‘이별의 월츠(Farewell Waltz. Candlelight Waltz)’ 라고 소개한 그 유명한
‘올 랭 자인’ (Auld Lang Syne)이다.
마이라 와 로이는 사랑의 테마곡(Love Theme)같이 사용이 된 이 ‘올 랭 자인’에
맞춰 영화 전반부와 후반부에 두 번, 같이 춤을 추게 되는데 (아래 동영상 – 카페의
촛불 조명아래 춤을 추는 장면은 역시 이 영화의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을 암시 하는 듯 상당히 우울하고 슬픈 분위기의 연주이다.
Waterloo Bridge
‘올 랭 자인’ 은 전통적으로 한해를 보내는 년말 송년파티나 졸업식 때, 그리고
개인들 간의 작별이 아쉬울 때 등등, 전 세계적으로 가사는 약간씩 다르게 하여
불려지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곡으로서, 18세기 때부터 줄 곧 ‘이별의 노래’ 로만
알려졌었는데, 그러나 내용적으로 가사를 잘 살펴보면 오히려 재회의 기쁨을
노래한 곡이다. 영어로 직역하면 ‘오래된 그리운 옛날(Old Long Since)’ 이고
전반적인 가사를 참고해 의역한다면 ‘옛정을 생각하며’ 정도로 번역하여야만 할 것
인데, 로버트 번스(Robert Burns) 라는 시인이 1788년에 발표한 시를 가사로 인용한
스코틀랜드의 대표적인 민요로 알려져 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라는 제목의 찬송가,
338장에 의하면 작곡은 1741년, C. Wesley 라고 명기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안 익태 님의 애국가’가 정식 국가로 지정되기 전에는
이곡의 멜로디로 대한제국과 상해임시정부의 애국가로 한동안 부른 적도 있는,
한국인들과는 무척이나 인연이 깊은 곡인데,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되는
그 가사가 이 멜로디의 음절과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한편 성가대로 출발을 하였던 미국의 5인조 보컬그룹, 지 클립스(The G Clefs)는
1960년에 이 ‘올 랭 자인’을 인용한 ‘I Understand’ 라는 팝송(아래 노래)을
발표하여 큰 인기를 얻기도 하였다.
* ‘올 랭 자인’을 인용한 The G Clefs 의 ‘I Understand’:
I understand - G-Clefs
Auld Lang Syne - Waterloo Bridge (1940)
Sing Along, Auld Lang Syne Lyrics Finally -News Years Eve
Should auld acquaintance be forgot
And never brought to mind?
Should auld acquaintance be forgot
And the days of Auld Lang Syne?
For Auld Lang Syne, my dear,
For Auld Lang Syne,
We'll tak'a cup o'kindness yet,
For Auld Lang Syne.
Should auld acquaintance be forgot
And never brought to mind?
Should auld acquaintance be forgot
And the days of Auld Lang Syne?
For Auld Lang Syne, my dear,
For Auld Lang Syne,
We'll tak'a cup o'kindness yet,
For Auld Lang Syne
Auld Lang Sy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