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날과 복날 음식에 관한 썰
늦잠을 자고 아점을 먹기 위해 집 주변의 유명 삼계탕 집으로 향했다. 더위 탓인지 아침부터 삼계탕의 눈에 삼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이 중복이라는 사실을 삼계탕 집에 가서야 알았다.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살았다는 얘기다. 신세가 이러하니 한심한 한량이 아닐 수 없다.

그 집은 삼계탕 단일 메뉴만 제공하는데 들깨를 넣어 끓여낸 삼계탕이 일품이라 언제나 그 너른 홀이 가득하다 못해 조금만 늦으면 영락없이 입구에서 대기번호를 받아야할 정도다. 단일 메뉴인데도 문전성시를 이룬다면 그 집의 음식 맛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살짝 귀뜸을 하면, 송도신도시 <경복궁 삼계탕>이 그곳이다. G타워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
기왕 보양식을 먹는 참에 복날이 왜 생겼으며 어떤 음식을 먹는지를 둘러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복(伏)이라는 글자는 사람(人)과 개(犬)의 합해져 만들어졌으며, 그 뜻은 ‘엎드리다. 숨다, 굴복하다’ 등을 가지고 있다. 복날에 그런 굴복의 의미를 가진 글자가 있다는 것이 이상하다. 더위에 사람과 개가 꼼짝을 못한다는 의미일까? 하기는 견공들은 더위가 무르익으면 혀를 길게 내밀고 연신 헐떡이며 더위를 달랜다. 사람들은 시원한 곳을 찾게 마련이고.

그러나 그 의미는 여름은 불(火른)에 소하고 가을은 쇠(金 )에 혹하는데, ‘여름 불기운에 가을의 쇠 기운이 세 번 굴복한다’라는 뜻으로 복종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복(伏)을 쓰는 것이라고 한다. 시기적으로 여름과 가을이 겹칠 일이 없는데 왜 여름에 가을이 세 번씩이나 굴복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굴복을 한다고 하는데서 삼복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삼복은 초복, 중복, 말복 등 세 날을 일컫는데, 초복은 하지(양력 6월 22일)로부터 세 번째 경일, 중복은 네 번째 경일, 말복은 입추(양력 8월 8일 무렵)로부터 첫 번째 경일을 말한다. 여기서 경은 민속 천간 (天干)이 경 (庚)으로 된 날로 일곱 번째 천간을 일컫는다. 천간은 열흘을 주기로 반복되므로 금년은 초복이 7월 12일, 중복이 7월 22일이 된다,
그러나 말복은 입추 이후 첫 경일이므로 10일 기간과 달리 입추에 의해 날짜가 정해진다. 입추는 24절기 중 열세 번째 절기로 양력으로는 8월 8일 무렵이고, 음력으로는 7월인데, 태양의 황경(黃經)이 135도에 있을 때를 말한다. 그러므로 금년의 입추는 8월 8일이 된다. 따라서 말복은 8월 8일 이후 처음으로 맞는 경일로 8월 11일이 되는 것이다.

삼복 기간은 일 년 중 가장 더운 날이라 하여 더위를 피하기 위해 술과 음식을 마련해 계곡이나 산정(山亭)을 찾아가 노는 풍습이 있었다. 계곡 시원한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신선이 따로 있을 것이며 더위가 쉽사리 접근하기 민망했을 것이다. 그래선지 내 어린 시절 동네 어른들이 한 여름이면 곧잘 계곡을 찾아 보신탕을 끓이곤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계곡 곳곳에서는 음식점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모두 그런 풍습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 시원한 바람이 가득한 산정에 올라 멀리 눈앞으로 펼쳐진 기막힌 풍경을 바라보며 술과 음식을 권커니 잣커니 하면 신선이 따로 없었을 듯싶다. 기름기 가득한 음식에 얼큰하게 술 잔이 돌면 저절로 멋진 시상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지금도 곳곳의 유명 산정에는 여전히 멋을 풍기는 정자가 세워져 있다. 이런 멋과 운치를 더한 피서야말로 허한 기를 달래기 위한 조상들 나름대로의 멋진 특별한 비방이 아니었나 싶다.

이때 주로 먹었던 음식이 계삼탕(鷄蔘湯)과 구탕(狗湯:보신탕)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개가 반려 견으로 국민적 사랑을 받는 탓에 적어도 견공께서는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특별한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머리띠 두르고 시위 한번 한 적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견공에게 특별한 지위를 보장했다. 그 바람에 구탕(狗湯:보신탕)에 대한 인식이 날로 악화되었고 지금은 계삼탕(鷄蔘湯)이 단연 인기다. 그러다 닭도 견공처럼 계공 지위로 격상되면 그때는 삼복 문화가 사라지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한편, 금(金이) 화(火에) 굴하는 것을 흉하다 하여 복날을 흉일이라고 하여, 씨앗뿌리기, 여행, 혼인, 병의 치료 등을 삼갔다. 그러나 요즈음은 시나 때와 상관없이 대형병원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으며, 인천국제공항은 사시사철 붐비는 걸 보면 흉일에 대한 인식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지워진 모양이다. 그래도 여전히 복날 음식은 인기인걸 보면 참 먹는 걸 즐기는 민족이 아닌가 싶다. 하기는 ‘먹고 죽은 귀신은 떼깔도 좋다’는 출처 불명의 말이 괜히 생겼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