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지인들은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좋을지 물어오곤 합니다. 제가 사진을 찍는다고 안 해도, 어깨에 걸려있는 dslr을 보고 한 마디씩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때마다 전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죠. 첫째는 내가 남들을 가르쳐줄만큼 사진을 잘 찍는다거나 하질 못하기 때문이었고(물론 지금도 마찬가지고, 앞으로도 이 미천한 실력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군요), 둘째는 그나마 제가 알고 있는 범위조차 제대로 정리를 못해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간 slr클럽, 펜탁스클럽, 소니/미놀타클럽 등등을 돌아다니며 무수한 지식을 얻었고, 많은 사진들을 봤습니다. 오래된 낡은 장비로도 예술적인 사진을 뽑아내는 고수분들의 사진을 보며, 내 어깨에 걸려있는 dslr 카메라가 한없이 부끄러워지곤 했습니다. 좋은 장비를 가지고도, 제가 이 장비를 사용해 뽑아내는 사진은 미천한 탓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고수분이 그러시더군요. 발전하고 싶다면 남을 가르쳐보라고. 허접하게나마 강좌를 써보면 뭔가 달라질 거라고. 무릎을 탁 치지는 않았지만, 그 말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제가 과외선생 노릇하면서 누구보다 제 자신이 더 공부하고 발전했던 경험을 해봤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이 강좌는, 그러니까, 제게 사진 찍는 법을 물어보는 제 지인들, 그리고 제 어깨의 거무튀튀한 dslr 카메라를 보고 낚이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고자, 그리고 제 자신의 발전을 꾀하고자 작성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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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때, 중국으로 수학여행을 갔었습니다. 상해, 소주, 항주, 무석 등을 돌아보는 코스였는데, 수십만원을 내고 4박 5일로 다녀온 것 치고는 기억이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중국은 땅덩어리가 워낙 커서, 바로 옆 도시로 이동하는데만도 고속도로를 타고 4시간이 걸리더군요. 가뜩이나 차멀미가 심한 저로선, 참으로 고통스러운 여정이었습니다.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몇 시간 전에 먹은 밥알을 도로 불러내어 세어보며 "있어요! 399!"를 외칠뻔한 상황은 가까스로 면했습니다만, 울렁거리는 속은 4박 5일 내내 저를 괴롭혔습죠.
상해의 명물, 중국 경제성장(개인적으로 경제성장과 경제발전은 다른 것이라고 생각...)의 상징인 동방명주타워에 갔을 때였습니다. 우리 반의 친구가 좋아하는 여학생이 저 앞쪽에서 그녀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말을 걸어볼 수 없을까,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좋겠다!' 하는 생각은, 마침내 '쪽팔려게임'을 동원한다는 기가 막힌(...) 계획을 만들어냈습니다. 일부러 저쪽까지 다 들리게 큰 소리로 가위 바위 보! 그리고 시나리오대로, 그 친구는 그 여학생에게 가서 사진을 부탁합니다. 그리고 사진을 찍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친구 표정이 영 그렇습니다. "아, 흔들렸어!!"
......
예, 그래서 첫 글은 '흔들린 사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렇게 어렵게 별 쇼를 다 해가며 얻은 기회를, 흔들린 사진으로 인해 날려버리는 건 아무래도 아깝잖습니까?
* 흔들린 사진의 전형적인 예. 마치 그림자처럼 표현되었다.
1. 흔들린 사진은 왜 생기는 걸까?
흔들린 사진이 왜 생기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셔터속도'라는 개념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카메라는 조리개, 감도, 그리고 셔터속도라는 세 가지의 요인을 통해 '노출'(사진의 밝기 정도로 이해해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빛에 노출된만큼 상이 맺힌다는 식의 메커니즘이지요. 자세한 건 나중에 따로 다루겠습니다.)을 결정합니다. 이 세 가지의 요소가 유기적으로 작용하여 상을 만들어내고, 만들어진 상이 바로 우리가 보는 '사진'이 되는 것이지요.
학창시절 우리를 많이도 괴롭혔던 수학문제 유형 하나를 생각해봅시다. "1분에 3L씩 물을 뿜어낼 수 있는 호스로 12L짜리 양동이를 채우는 데 몇 분이 걸리겠는가?" 답은 4분이 되겠지요. 그럼 비슷한 일차함수 문제 하나 더 내보겠습니다.
"적당한 밝기의 사진을 만드는 데 100의 빛이 필요한데, 1초에 500의 빛이 들어온다. 그러면 몇 초 동안 빛에 노출시켜야겠는가?"
답은 5분의 1초가 되겠지요? 이것이 셔터속도의 개념입니다. 실제로 카메라의 노출은 이와 같은 메커니즘으로 결정되며, 셔터속도가 하는 역할 역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자, 그럼 응용문제 하나 들어가겠습니다.
"적당한 밝기의 사진을 만드는 데 100의 빛이 필요한데, 1초에 50의 빛이 들어온다. 그러면 몇 초 동안 빛에 노출시켜야겠는가?"
답은 2초가 되겠습니다. 필요한 빛의 양은 똑같은데, 지금 촬영자가 처한 상황이 아까보다 어두운 상황이 된 것이지요. 아까의 호스와 양동이 문제로 치환해보면, 양동이는 같은데 호스가 더 가늘다거나 물을 뿜어주는 펌프의 힘이 아까보다 약한 경우가 되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카메라를 가지고, 조명 주변을 한 번 찍어보고, 빛이 잘 닿지 않는 어두운 곳(그늘이랄지...)을 한 번 찍어보세요. 분명히 셔터속도가 달라짐을 느낄 수 있을겁니다.(셔터속도는 사진을 찍을 때 뷰파인더나 화면에 표시되며, 혹은 찍은 사진을 탐색기에 놓고 우클릭->속성->자세히, 이렇게 들어가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 캡쳐 화면의 '노출 시간'이 바로 '셔터속도'이다.
2. 음.. 그건 알겠는데 흔들리는 거랑 무슨 상관이지?
자, 여러분은 총을 쏘는 저격수입니다. nss에서 가장 총을 잘 쏘는 요원인데 지금 작전에 투입된 상태라고 합시다. 군대를 경험해보신 남성분들이라면 'PRI : 사격술 예비훈련'을 기억하실 것이고, 군대를 경험해보지 않으신 분이라 해도 총을 쏘는 모양새가 어떻게 되는지 정도는 아실 거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미스터 블랙을 저격하려 합니다. 자리를 잡고, 미스터 블랙을 향해 정조준했습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방아쇠를 당깁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총알이 아주 순간적으로 날아가 미스터 블랙을 맞힌다면 당신은 저격에 성공한 것입니다. 그런데, 총알이 아주 느릿느릿 세월아 네월아 하고 날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스터 블랙은 그 사이에 도주해서 nss를 역으로 치는(...) 상황이 되어버리겠지요. 혹은, 총알이 발사되는 순간을 생각해봅니다. 총알이 발사되는 그 순간이 길어서 여러분의 미세한 떨림 - 심장이 뛰고 있다면 누구나 흔들려야 정상입니다. Can you feel my heartbeat?......-_-; - 이 그대로 총알에 전해집니다. 그리고, 총알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버립니다. 역시 미스터 블랙은 살아남겠지요. 여러분은 작전에 실패한겁니다.
다시 카메라로 돌아옵니다. 여러분이 사진을 찍는데, 셔터가 열려있는 시간이 길어져 빛을 오랫동안 받아야 한다면, 그 사이에 피사체가 움직이거나 여러분의 몸의 흔들림이 카메라에 전해질 수 있습니다. 혹시 야경을 찍은 사진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야경 사진을 보면, 자동차의 전조등이 마치 궤적처럼 표현되어 있지요. 그만큼 긴 시간동안 셔터가 열려있었기 때문입니다.
* 해질녘을 담은 사진. 오른쪽을 보면 자동차가 지나간 궤적이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점을 오히려 의도적으로 활용해서 다양핸 표현을 하고자 하는데, 이를테면 폭포수가 마치 비단결처럼 부드럽게 표현된 사진이랄지, 패닝샷(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에 초점을 맞추고 물체의 움직임에 따라 카메라를 움직이는 기법)과 같은 기법을 활용해 주제를 부각시키기도 합니다. 이것을 '모션 블러 : motion blur'라고 합니다. 해결책은 단 하나 뿐입니다. 적당한 셔터속도를 확보해줘야만 이 현상이 해결되지요. 셔터속도를 확보하려면 감도를 올리거나, 조리개를 열거나, 플래시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들은 나중에 다시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패닝샷 예제. 트럭이 어딘가로 돌진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긴 노출시간 동안 카메라가 움직여 흔들린 사진이 나오기도 합니다. 맨 위에 예시로 사용했던 사진도 긴 노출시간 동안 제 손이 버티지 못하고 흔들린 사진이지요. 때문에 상이 제대로 뚜렷하게 보이지 않고, 여러 가지 이상한 불빛의 궤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보통 카페에서 데이트 많이 하죠?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사람을 찍고 싶습니다. 그래서 카메라를 꺼내들고 찍지요. 그런데 보통, 카페는 상당히 어두운 환경입니다. 비록 우리의 눈은 잘 인지하지 못하지만, 낮의 야외와 똑같이 생각하면 절대로 경기도 오산이십니다. 말하자면, 100의 빛을 다 채워야 적당한 밝기의 사진이 나오는데, 야외에서는 초당 50000의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카페 안에서는 달랑 500 뿐인, 그런 상황이 나타난다는 것이죠. 결국, 큰맘먹고 지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죄다 흔들려 있고, 뭐 그런 우울한 상황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이것을 '핸드 블러 : hand blur(손떨림)'라고 하는데, 대략 '135포맷 환산 초점거리 분의 1' 정도의 셔터속도가 확보되면 흔들림을 억제할 수 있다고 합니다만, 이건 사실 카메라를 막 손에 쥔 우리 같은 초보들에겐 도무지 뭔 소린지 이해할 수 없는 외계의 언어일 뿐입니다. 손떨림을 막기 위해서는 손떨림 보정 기능이 있는 카메라나 렌즈를 활용하시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촬영하는 자세를 잘 잡아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습니다.(이를 가리켜 흔히 '손각대'라고 하지요.) 삼각대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겠습니다. 실제로 야경사진 같은 사진은 삼각대 없이는 거의 찍을 수가 없습니다. 또, 아예 셔터속도를 더 확보해서 흔들림을 원천봉쇄하는 방법도 있겠습니다.
3. 대체 이게 뭔 소리야?
쉽게 풀어 쓴다고 썼는데 글 실력이 딸리다보니 제가 봐도 뭔 말을 했는지 잘 모르겠군요-_-;
요약을 해보면 이렇습니다.
1 - 사진을 찍는데에는 '조리개', '감도', '셔터속도'가 삼위일체가 되어야 한다.
2 - '셔터속도'는 카메라가 상을 만들기 위해 빛을 받아들이는 시간이다.
3 - '셔터속도'가 느려지면 그 사이에 피사체가 움직일 수가 있다. 흔히 말하는 심령사진은 이렇게 탄생한다.
4 - 혹은, 그 사이에 촬영하는 사람이 흔들릴 수가 있다.
5 - 따라서, '셔터속도'를 확보하면 흔들림을 해소할 수 있으며, 그 밖에 삼각대, 플래시, 손떨림 보정 기능 등도 활용할 수 있다.
6 - 회 이쓰욬.....(-_-;)
어느 정도 이해가 되셨나요? 혹 이해가 안 되신다면 바로바로 답글로 남겨주세요. 이해가 가실 때까지 책임지고 아는 한도 내에서 답을 해드리겠습니다.
오늘의 숙제 : 카메라를 들고 아무거나 찍어보자. 되도록이면 흔들리지 않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