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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38/S22:7
‘‘Tathā tathā, bhikkhave, bhikkhu *1.upaparikkheyya
yathā yathā [yathā yathāssa (sī. syā. kaṃ. pī.)] upaparikkhato
bahiddhā cassa viññāṇaṃ avikkhittaṃ avisaṭaṃ,
ajjhattaṃ asaṇṭhitaṃ
*2.anupādāya na paritasseyya.
Bahiddhā, bhikkhave, viññāṇe avikkhitte avisaṭe sati
ajjhattaṃ asaṇṭhite
anupādāya aparitassato
āyatiṃ jātijarāmaraṇadukkhasamudayasambhavo na hotī’’ti.
`Bhikkhus, in whatever manner the bhikkhu examines,
he finds his external consciousness is not scattered,
internally is not settled and without a holding is not worried.
Bhikkhus, when the bhikkhu's external consciousness is not scattered,
internally is not settled and without a holding is not worried,
there would not be to him future arisings of birth, decay, death and unpleasantness,'
3.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떤 것을 점검할 때 [*(이해하기 위해/확인 하기위해) 하나하나 잇따라 검토해 볼때]
그의 알음알이가 밖으로 흩어지거나 산만하지 않고
또한 안으로 들러붙지 않고 취착하지 않아서 동요하지 않도록 그렇게 점검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그의 알음알이가 밖으로 흩어지거나 산만하지 않고 또한 안으로 들러붙지 않고
취착하지 않아서 동요하지 않으면
미래에 태어나고 늙고 죽는 괴로움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비구들이 이런 저런 (가르침들을 꼼꼼히 파헤쳐) 검토할려고 하면
그런 저런 (가름침들을 꼼꼼하게 파헤쳐) 검토하는 자는
識이 外로는 흩어지거나 산만하지 않게 또한 內로는 안주하지 않게
취착하지 않아<잇따라 밟아 감에 따라 / 두 발로 짚어 가면> 초조해하지 않게 된다<되도록 하라>.
外로는 흩어지거나 산만하지 않게 또한 內로는 안주하지 않게 되면
취착하지 않아<잇따라 밟아 감에 따라 / 兩面으로 짚어 감에 따라> 초조해하지 않은 자는
미래에 태어나고 늙고 죽는 괴로움이 생겨나지 않는다.
*anupādāya : 1.an-upādāya 2.anu-pādāya (?? anu-pada-ya : anupadāya)
<* S22:7 Kathañca, bhikkhave, upādāparitassanā hoti?>
320. ‘‘Kathañcāvuso, anupādā paritassanā hoti?
Friends, how is there worry for non holding?
20. "도반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취착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법에] 대해 동요 합니까?
<*어떻게 잇따라 밟아 가면 초조해 합니까?>
....
Cetaso pariyādānā
uttāsavā ca hoti vighātavā ca apekkhavā ca
anupādāya ca paritassati.
마음이 압도되어 그는 걱정하고 속상해하고 애착하고
취착하여 동요합니다.
<*心이 소진되면 걱정.속상.애착한다.
잇따라 밟아 가면서 초조해 한다.>
321. ‘‘Kathañcāvuso, anupādānā aparitassanā hoti?
Friends, how is there no worry for non holding?
21. "도반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취착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법에] 대해 동요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잇따라 밟아 가면 초조해하지 않습니까?>
....
Cetaso pariyādānā
na cevuttāsavā [na ceva uttāsavā (pī. ka.)] hoti na ca vighātavā na ca apekkhavā,
anupādāya ca na paritassati.
마음이 사로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근심하지 않고 걱정하고 안절부절 하지 않고
그래서 취착하지 않음에 의한 초조하지 않음이 있게 된다.
<*心이 소진되어도 걱정.속상.애착하지 않는다.
잇따라 밟아 가면서 초조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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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48:50
‘‘Saddho so [sa kho so (sī. syā. kaṃ.)], bhante, ariyasāvako
evaṃ padahitvā padahitvā
evaṃ saritvā saritvā
evaṃ samādahitvā samādahitvā
evaṃ pajānitvā pajānitvā
7. "세존이시여, 믿음을 가진[信]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계속해서 노력하고[精進]
이와 같이 계속해서 마음챙기고[念]
이와 같이 계속해서 삼매에 들고[定]
이와 같이 계속해서 꿰뚫어 안 뒤[慧],
evaṃ abhisaddahati –
‘ime kho te dhammā ye me pubbe sutavā ahesuṃ.
Tenāhaṃ etarahi kāyena ca phusitvā viharāmi, paññāya ca ativijjha
[paṭivijjha (sī. ka.) tadaṭṭhakathāsu pana ativijjhitvāti vaṇṇitaṃ] passāmī’ti.
'나는 이러한 법들을 전에는 단지 듣기만 하였다.
그러나 이제 나는 이것을 몸으로 직접 체득하여 머물고 그리고 통찰지로 꿰뚫어서 본다.'라는
이러한 지극히 [*더욱 더] 청정한 믿음을 가집니다.
Yā hissa, bhante, saddhā tadassa saddhindriya’’nti.
세존이시여, 그의 이러한 믿음이 바로 그가 가진 믿음의 기능입니다."
[*믿음 → 가:聞法 → 나: → 다:(體得&)見法 → (더욱 더) 청정한 믿음]
M70
saddhājāto upasaṅkamati, 스승에 대해 믿음이 생긴 자는 스승을 친견한다.
upasaṅkamanto payirupāsati, 친견하면서 공경한다.
payirupāsanto sotaṃ odahati, 공경하면서 귀를 기우린다.
ohitasoto dhammaṃ suṇāti, [*가:聞法] 귀를 기우리면서 법을 배운다.
sutvā dhammaṃ dhāreti, 배우고 나서 법을 호지한다.
dhatānaṃ [dhātānaṃ (ka.)] dhammānaṃ atthaṃ upaparikkhati, 호지한 법들의 뜻을 자세히 살펴본다.
atthaṃ upaparikkhato dhammā nijjhānaṃ khamanti, 뜻을 자세히 살필 때에 법을 사유하여 받아들인다.
dhammanijjhānakkhantiyā sati chando jāyati, 법을 사유하여 받아들이기 때문에 열의가 생긴다.
chandajāto ussahati, 열의가 생길 때에 시도한다.
ussāhetvā tuleti, 시도할 때 세밀하게 조사한다.
tulayitvā padahati, 세밀하게 조사한 뒤 노력한다.
pahitatto samāno kāyena ceva paramasaccaṃ sacchikaroti, 노력할 때 몸으로 최상의 진리를 실현하고
paññāya ca naṃ ativijjha passati. [다:(體得&)見法] 통찰지로써 그것을 꿰뚫어본다."
[*^ 믿음 생기면saddhājāti → 친견하면upasaṅkamati → 공경하면payirupāsati →
귀 기우리면sotaṃ odahati → 법을 들으면dhammaṃ suṇāti → 수지하면dhāreti →
뜻을 파악하면atthaṃ upaparikkhati → ^法을 체감[=禪, 代入, 납득]하게 되면dhammā nijjhānaṃ khamanti →
열망하면chando jāyati → 의욕이 생기면ussahati → 비교[&선택]하면tuleti → 노력하면padahati →
최상을 진리를 체득하여 실현하고paramasaccaṃ sacchikaroti + 반야로 꿰뚫어 본다.ativijjha passati]
^ §21. 믿음을 따르는자, ^ §20. 법을 따르는자<법을 좇아 가는 자 ↔ 법相을 쫓아 가는 자>
<*S55:24/S25:1~10/M70/M95
yassa kho, bhikkhave, ime dhammā evaṃ paññāya mattaso nijjhānaṃ khamanti, ayaṃ vuccati —
‘dhammānusārī,>
cf. manasā dhammaṃ viññāya na dhammanimittānusārī viññāṇaṃ hoti ]
2. M22
‘‘siyā nu kho, bhante, bahiddhā asati paritassanā’’ti?
"세존이시여, 밖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번민하는 경우도 있습니까?"
‘‘Siyā, bhikkhū’’ti – bhagavā avoca.
‘‘Idha bhikkhu ekaccassa evaṃ hoti –
‘ahu vata me, taṃ vata me natthi; siyā vata me, taṃ vatāhaṃ na labhāmī’ti.
So socati kilamati paridevati urattāḷiṃ kandati sammohaṃ āpajjati.
Evaṃ kho, bhikkhu, bahiddhā asati paritassanā hotī’’ti.
"그러하다, 비구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여, 여기 어떤 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오, 내게 그것이 있었는데, 더 이상 내게 없다.
내가 그것을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나는 얻지 못하는구나!'라고.
그는 근심하고 상심하고 슬퍼하고 가슴을 치고 울부짖고 광란하다.
비구여, 이와 같이 밖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번민한다."
[*A.이와 같이 外로 없을 때<없는 것에 대해>, 번민<갈증,공포,불안,초조해함>이 있다.]
‘‘Siyā pana, bhante, bahiddhā asati aparitassanā’’ti?
19. "세존이시여, 밖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번민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까?"
‘‘Siyā, bhikkhū’’ti – bhagavā avoca.
‘‘Idha bhikkhu ekaccassa na evaṃ hoti –
‘ahu vata me, taṃ vata me natthi; siyā vata me, taṃ vatāhaṃ na labhāmī’ti.
So na socati na kilamati na paridevati na urattāḷiṃ kandati na sammohaṃ āpajjati.
Evaṃ kho, bhikkhu, bahiddhā asati aparitassanā hotī’’ti.
"그러하다, 비구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여, 여기 어떤 자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오, 내게 그것이 있었는데, 더 이상 내게 없다.
내가 그것을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나는 얻지 못하는구나!'라고.
그는 근심하지 않고 상심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가슴을 치지 않고 울부짖지 않고 광란하지 않는다.
비구여, 이와 같이 밖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안달복달하지 않는다."
[* B.이와 같이 外로 없을 때(없더라도), 초조해함이 없다.]
‘‘Siyā nu kho, bhante, ajjhattaṃ asati paritassanā’’ti?
20. "세존이시여, 안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번민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Siyā, bhikkhū’’ti – bhagavā avoca.
‘‘Idha, bhikkhu, ekaccassa evaṃ diṭṭhi hoti –
‘so loko so attā, so pecca bhavissāmi nicco dhuvo sassato avipariṇāmadhammo,
sassatisamaṃ tatheva ṭhassāmī’ti.
"그러하다, 비구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여, 여기 어떤 자에게 '이것이 세계요, 이것이 자아다.
나는 죽은 뒤에도 항상할 것이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아니하며 영원토록 여여하게 머물 것이다.'라는
견해가 있다.
So suṇāti tathāgatassa vā tathāgatasāvakassa vā
sabbesaṃ diṭṭhiṭṭhānādhiṭṭhānapariyuṭṭhānābhinivesānusayānaṃ samugghātāya sabbasaṅkhārasamathāya
sabbūpadhipaṭinissaggāya taṇhākkhayāya virāgāya nirodhāya nibbānāya dhammaṃ desentassa.
그는 여래나 여래의 제자가 모든 견해들의 토대, 결심, 편견, 고집, 잠재성향들을 근절시키고,
모든 형성된 것들[行]을 가라앉히고, 모든 재생의 근거를 놓아버리고[放棄], 갈애를 멸진하고,
탐욕을 빛바래고[離慾], 소멸하고[滅], 열반을 증득하기 위해 법을 설하는 것을 듣는다.
Tassa evaṃ hoti – ‘ucchijjissāmi nāmassu, vinassissāmi nāmassu, nassu nāma bhavissāmī’ti.
So socati kilamati paridevati urattāḷiṃ kandati sammohaṃ āpajjati.
Evaṃ kho, bhikkhu, ajjhattaṃ asati paritassanā hotī’’ti.
그러면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단멸해버리겠구나. 참으로 나는 파멸해버리겠구나. 참으로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겠구나.'라고.
그는 근심하고 상심하고 슬퍼하고 가슴을 치고 울부짖고 광란한다.
비구여, 이와 같이 안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번민한다."
[*C.이와 같이 內로 없을 때<없는 것에 대해>, 초조해함이 있다.]
‘‘Siyā pana, bhante, ajjhattaṃ asati aparitassanā’’ti?
21. "세존이시여, 안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번민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까?"
‘‘Siyā, bhikkhū’’ti bhagavā avoca.
‘‘Idha, bhikkhu, ekaccassa na evaṃ diṭṭhi hoti –
‘so loko so attā, so pecca bhavissāmi nicco dhuvo sassato avipariṇāmadhammo,
sassatisamaṃ tatheva ṭhassāmī’ti.
"그러하다, 비구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여, 여기 어떤 자에게 '이것이 세계요, 이것이 자아다.
나는 죽은 뒤에도 항상할 것이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아니하며 영원토록 여여하게 머물 것이다.'라는
견해가 없다.
So suṇāti tathāgatassa vā tathāgatasāvakassa vā
sabbesaṃ diṭṭhiṭṭhānādhiṭṭhānapariyuṭṭhānābhinivesānusayānaṃ samugghātāya sabbasaṅkhārasamathāya
sabbūpadhipaṭinissaggāya taṇhākkhayāya virāgāya nirodhāya nibbānāya dhammaṃ desentassa.
그는 여래나 여래의 제자가 모든 견해의 토대, 결심, 편견, 고집, 잠재성향들을 근절시키고,
모든 형성된 것들을 가라앉히고, 모든 재생의 근거를 놓아 버리고, 갈애를 멸진하고,
탐욕을 빛바래고, 소멸인 열반을 위해 법을 설하는 것을 듣는다.
Tassa na evaṃ hoti – ‘ucchijjissāmi nāmassu, vinassissāmi nāmassu, nassu nāma bhavissāmī’ti.
So na socati na kilamati na paridevati na urattāḷiṃ kandati na sammohaṃ āpajjati.
Evaṃ kho, bhikkhu, ajjhattaṃ asati aparitassanā hoti’’.
그러나 그에게
'나는 단멸해버리겠구나. 참으로 나는 파멸해버리겠구나. 참으로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는 근심하지 않고 상심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가슴을 치지 않고 울부짖지 않고 광란하지 않는다.
비구여, 이와 같이 안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번민하지 않는다."
[*D.이와 같이 內로 없을 때(없더라도), 초조해함이 없다.]

첫댓글 <무착으로 동요하지 않는다는 것인지 무착 때문에 동요하지 않는다는 것인지...
혹은 취착으로 동요하는지, 무착이므로 동요하지 않는지..??>
저도 환희봉행님과 같은 입장입니다.
간단한 해결책은 책의 해설처럼 잘못된 전승으로 치부하면 간단하지만,
전승이 잘못되지 않은 쪽으로 최대한 견지하면서, 혹은 잘못되었더라도 최소화하는 방향에서 이해하자면
둑카님의 새로운 시각이 반갑습니다.
문법을 모르는 저는 위와 같이 문맥으로 받아들였습니다.
'法相'을 '쫓지' 말고 '法'을 '좇아 가야' 한다.
Naver
‘좇다’와 ‘쫓다’는 구별해서 써야 할 말이다.
사람을 뒤따르는 것은 ‘쫓다’이고 목표나 이상을 추구하는 것은 ‘좇다’이다.
관련조항 : 한글 맞춤법 6장 1절 57항
@봄봄 마음이 '압도(사로잡음)'되다.라는 표현을 일단
둑카님의 의견을 받아들여 마음이 '소진'되다.- 감은 잡지 못햇지만-로 변경하였슴.
@봄봄 일단 '무착으로'라고 단어를 선택한 이유는 '안으로' `밖으로'라는 불변사적인 표현과 연계해서 그렇게 했고요..경을 보시면, 붙잡을 수 없는 객관적인 상황-'무착으로'는 둘 다 동일합니다..다만 차이점은, 한 쪽은 오온을 자아와 연계시키고 반면에 한 쪽은 오온을 자아와 연계시키지 않는다는 점에 있잖아요? 그러니 같은 상황에서 동요하고 동요하지 않는 이유는 거기서 찾으면 될 것 같네요..
@봄봄 그리고 쫓다와 좇다 관련된 부분 저도 사전 찾아보았고 위에 인용하신 용례도 보고 선택한 부분인데요..물질적인 것은 쫓다로 정신적인 것은 좇다로 쓰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니미따나 선정에서의 느낌들이 물질적인 측면보다는 비물질적인 측면이 많은 것 같아서 그렇게 선택한 것인데요..잘못된 단어 선택일 수도 있겠네요...
@둑카 쫓다와 좇다.는 저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 그냥 '따르는 자...'라는 표현에 해당되는 우리 언어는 분별해서 쓰는 것이 생소해서 적었구요...
아래 문법적 설명은 아직 접수할 기본이 제가 되어 있지 않아서... 어쨌든 감사합니다.
본 경이 잘못 전승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많다는 점에... 경에 대한 마음가짐이 달라짐을 느낍니다.
@봄봄 쫓다는 무엇을 내친다는 뜻도 있는 것 같아서 좇다로 선택했다는 기억도 있네요..여하튼 어서 아위자님께서 길따라님이 번역해 놓으신 부분을 정리해서 올려주시면, 조금은 정리가 될 것도 같다는 기대를 해봅니다. 길따라님이 직접 나서서 설명해주시면 더욱 좋겠지만요...
잘못된 전승이라고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상윳따니까야에 나오는 경에서도 역시 부처님께서는 초조함(동요)의 원인을 개요분석경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아와 연계시키느냐 여부에서 설하고 계시잖아요? 원인은 같되 상황이 다르다는 점으로 받아들이시면 될 것 같아요..즉, 상윳따의 경에서의 상황과는 달리, 개요분석경에서는 외로 산란되지 않고 내로 고착되지 않은 상황-무착으로-이 전제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봄봄님 문법적으로는 저도 모르지만, 짐작하자면 '아누빠-다-' 또는 '아누빠-다-야'는 앗잣땅 바힏다 처럼 불변사 또는 부사적인 용법으로 쓰여서 동사를 수식하는 상황적인 측면을 표현하는 것인 듯하고, '아누빠-다-나'는 명사나 형용사인데 개요분석경에 나오는 '아누빠-다-나-'는 뒤에 나오는 여성명사인 aparitassanaa를 수식하는 형용사로 쓰인 것 같습니다. 의미상으로는 취착이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것으로 보이고요
'아누빠-다-나-'가 탈격으로 쓰여 이유나 원인으로 aparitassanaa를 수식하는 것으로 본다면, 취착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동요하지 않음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그런데 무문범부의 문단에서 쓰인 '아누빠-다-' 까지도 탈격으로 본다면, 취착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동요함이라는 뜻이 되어서 맞지 않는 것 같고요..
상윳따 니까야에 나오는 경과 개요분석경에 나오는 상황을 정리하면, 무문범부는 오온을 자아와 연계시키기 때문에(이것이 원인 또는 이유가 되어) 취착이 있는 상황이든 취착이 없는 상황이든 동요(초조)하게 되고, 성제자는 오온을 자아와 연계시키지 않기 때문에(이것이 원인 또는 이유가 되어) 취착이 없는 상황에서 동요(초조)하지 않게 된다는 것으로요...
'길따라'님이 '경'을 번역하시면서 달아놓은 <주석>이 잇는데요..... 보통은 이러한 <개인적인 '주석'>은 빼버리고서 '번역문'을 소개하기 마련이기에...... 논의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소개 드리고저 합니다...
※ anupaadaa paritassanaa 에 대한 번역의 차이와 그 원인
전재성박사의 번역에는 <집착함이 없음(anupadaa)>으로 번역되어 있으나, 그러한 번역은 맥락에도 맞지 않으므로 <집착하지(upaadaa) 않음(=집착하지 못하기 때문에, =집착하지 못함으로 인하여)>으로 바꾸어 번역함. 비구 보디스님의 경우에는 맥락에 맞지 않다고 아예 ‘집착함’으로 바꾸어 번역한 경우도 있음.
----위 '글'인 <주석>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300자가 초과 되어서 지워지므로 다시 올립니다.------
(그러나)다른 판본이나 주석서가 <집착함이 없음>으로 기록하고 있음. 다른 판본이나 주석서는 <‘집착함이 없음’으로 인한 동요>란 <집착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에 따른 동요. 만약 영원한 것이나 자아나 자아에 속하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을 집착할 것이고 이것은 집착으로 인한 동요이다. 하지만 그렇게 집착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따라서 집착함이 없음으로 인한 동요란 견해를 통한 집착으로 인한 동요를 말한다.>라고 설명하고 있음. 그래서 냐나몰리 스님의 경우는 PTS본의 기록을 따름.
취착이 없는 상황에서는 갈애가 연료가 될 수 있다는 경문이 기억나기도 하는데요...'취' 지분에서 설명되는, 2번째가 견해이고, 4번째가 바로 앗따 와다입니다...
----위 '글'인 <주석>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역시 300자가 초과 되어서 지워지므로 이어서 올립니다.------
<집착할 어떤 것을 찾지 못함으로 인한 동요>로 번역하셨음.
쌍윳따니까야 3권 16쪽: ‘집착으로 인한 동요(anup?d? paritassan?)’로 표기됨.
☞anup?d? 탈격, anup?d?ya 절대체(ger) paritassan?(여성형, 주격, 단수) hoti연결
----위 '글'인 <주석>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역시 300자가 초과 되어서 지워지므로 이어서 올립니다.------
<집착할 어떤 것을 찾지 못함으로 인한 동요>로 번역하셨음.
쌍윳따니까야 3권 16쪽: ‘집착으로 인한 동요(anupaadaa paritassanaa)’로 표기됨.
☞anupaadaa 탈격, anupaadaaya 절대체(ger) paritassanaa(여성형, 주격, 단수) hoti연결
----이상의 내용입니다... 저는 잘 모르는 <주석>적 설명입다만.... '길따라'님이 앞서와 같이 달아 놓으셨네요... 저 보고 참조하라는 말씀 같습니다만.... 저는 빠알리어 잘 모릅니다..... --------
아시는 분께서는 참조 하십시오......
@아위자 상윳따니까야에 ‘집착으로 인한 동요(anupaadaa paritassanaa)’로 표기되었다는 것인가요? anupaadaa aparitassanaa가 아닌가요? anupaadaa paritassanaa에서 anupaadaa는 집착없음 또는 집착하지 않음이라는 뜻인 것 같은데요...여하튼 길따라님이 번역하신 부분과 주석까지 어서 공개해주시면 좋겠네요...
'길따라'님께서 '초벌 번역'을 해 주시면서 ....... 조금 이라도 이상한 부분은 .... 제가 착각할까보아서 ... 여러 가지로 설명을 달아 주십니다........ '길따라'님은 .. 제가 얼마나 <초보 빠알리 실력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하여 잘 아십니다. ... 저 개인적으로는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고요>.....
사실은 '길따라'님의 번역은 ......... 적어도 직역에서는.......... 위 '둑카'님의 번역과 경의 초반부[='둑카'님이 번역하신 부분에서]부터 표현이 많이 다릅니다.... 그런데 거기에도 주석이 <보통은 '이렇게 번역하더군요'>라는 주석이 붙어 있는데..... 거의 '둑카'님의 번역과 동일합니다......
'길따라'님의 번역은 매우 독특합니다만........... 빠알리를 '고급수준'으로 이해하시는 분들은 <모두들 '감탄'을 하는 '번역'>입니다........... 제가 아는 범위에서 <고급수준의 빠알리를 구사하시는 분들>께서는 '길따라'님의 '번역'에 감탄하지 않는 분들이 없었습니다. 임승택 교수도 ..... 혀를 차는 수준입니다...... 임승택교수가 저 에게 <개인적>으로 말하기를........ "나도 목갈라나문법을 배워야 겠다."라고 하더군요..........같이 번역해 보고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 불교와는 동떨어진 직업에 종사하면서 ..... 미치지요, 미쳐요....... 강의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으니...........
하여간 집단으로 ......... 욕 좀 해 보십다!.......
<불교 좀 살려라!>...... 너만 살려고 하지 말고 ....... 불교도 좀 살려가며 <살아라!>라고요.... ㅋㅋㅋ....
인내가 한계에 달하기 전에 <강의를 시작 하던지 ... 아니면... 다 같이 죽자!>
@아위자 망할! 기다리는 것도........... 도데체......... 몇 년이 지난거여~~~ 정말~~
봄봄님께서 제기하시는, 의견 2.anu-p?d?ya (?? anu-pada-ya : anupad?ya) 에 대해서도 확실한 설명이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환희봉행님께서 불교를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저는 아직도 갖고 있습니다...
anu-pada-ya / anu-paadaa-ya / anu-padaa-ya에 대한 경전적 근거는 없습니다.
<이쪽에 맞추면 저쪽이 맞지 않고, 그 역도 역부여시인 상황에서>
본 경을 설하신 배경을 upaparikkhato라는 단어와 연관시켜 생각하니
도닦음(pat.i-padaa), 발(pada, paadaa), 법구(dhamma-pada), 쫓아/좇아(anu-sarati) 등과 연계되면서...
그래서 혹시 언어적 fun?, 북방에서는 言語道斷이라는 용어까지...있는데
확실치는 않지만 경을 읽으면서
세존께서는 언어의 한계를 오히려 방편으로 사용하시어 설법으로 풀어주시는 광경이 더러 있다는 생각 끝에
<이쪽에 맞추면 저쪽이 맞지 않고, 그 역도 역부여시>가 아니라 같은 단어의 반어적 해석??
예를 들면 '취착'<의 (adv.) [ger. of upaadiyati] upaadaa-ya>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졸졸 쫓아 (걸어서) 감'<anu-paadaa-ya>이라는 단어로 상응시키고,
'세상의 끝을 발로 걸어서는...'의 맥락과 같이... '취착하지 않음'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잇따라 좇아 감.'[→ upaparikkhato]이라는 단어로 상응시키신 것이 아닌가???해서
그런데 pariyaadaanaa는 대부분 [부정적 대상에] 心이 휩싸여(압도되어) 있는 의미로 사용되는데
본경에서는 부정(a-) 접두어가 없이 다른 경에서는 부정 접두어가 사용되는 것도 이런 맥락인가???
모든 점이 추측이고, ?? 입니다.
길따라님의 번역과 아위자님의 설명을 일단 기다려..
다시 정리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공부짓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