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하르트의 피츠 로이 등반기: "간발의 차이로 . . . . ." |
원제: . . . By A Hair
필자: Reinhard Karl
출처: Mountain(?)
라인하르트의 글과 사진. 이 기사는 원래 칼라
원판을 제공한 Alpin Magazine에
게재되었던 내용이다. 이 글은 라인하르트와 세계의 산들에서 죽은 그밖의 모든 다른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여기에 다시 싣게 되었다.
위의 사진은 피치로이 정상에서 토니 스피리 (왼쪽) 그리고 피처너 뤼트히와 (중앙)
함께 가졌던 행복한 순간을 보여준다.
이번에 라인하르트가 네팔로 떠날 때, 우리 중 아무도 그의 안전한 귀환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왜냐 하면 에베레스트, 낭가 파르팟, 세로 토레, 피츠 로이 등의 종전의
"객관적으로" 보다 위험했던 등반들에서도 그가 안전하게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이 피츠
로이에 관한 기사에서는 -- 아래에 소개되고 있는 -- 거의 죽을 뻔했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쉬운 8000 미터 봉들 중의 하나인 초오유는! . . . . . 5 월 중순이 되자, 그가
하이델베르크에서 그가 트레이닝하는 산인 '쾨니히쉬툴'에서의 헐떡거리며 오르기, 낮 동안의
암벽에서의 우정어린 경쟁 그리고 저녁 시간의 '팔츠'에서의 긴 달리기, 끝없이 농담하는
시간들, 그리고 히말라야에서 또 한 시즌을 보낸 후 그의 등반이 녹슬 수 밖에 없는 바에
대한 해명 등등을 우리들이 고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에너지로 똘똘 뭉친 낙천적인 사람이 다시 암벽 등반을 할 수 있는 상태로
되돌아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이 없었다. 자신을 주로 알피니스트라고 여기고 있는
사람 치고는, 라인하르트는 놀라울 정도로 암벽 등반에 능숙했다. 산악 등반가로서, 그는
아이거에서부터 에베레스트 그리고 가셔브룸에 이르는 모든 것을 했다. 그러나 요세미티
토백이들은 그를 "독일 사람이긴 하나" Shield와 Son of Heart 등등을 빠르게 등정한
사람으로 기억할 것이다. 이 거벽에 매료된 그가, 어느 날 오후 참지 못하고 Hang Dog
Flyer 루트를 해내기도 했다.
미국과 영국을 자주 방문하는 동안, 라인하르트는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고 그들에게서
이 분야의 새로운 기술을 배웠다. 독일 등반계에 외국의 급진적 등반 윤리를 퍼지게 한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라인하르트 자신은 그 윤리를 가장 철저하게
추종하지 않는 사람에 속했다. 그의 목적은 양쪽의 골수분자들을 도발시키고 몇 가지
우상을 무너트리는 것이었다. 그가 Pumprisse VII라는 등급을 매김으로써. 고전적인 알파인
등급 체계를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게 한 (여하튼 공식적으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리고
윤리에 관해 그가 불붙인 끝없는 논쟁들이 지금까지도 산악계의 글들에서 한창 맹위를
떨치고 있다 - ("초크? 내가 마음이 내키면, 당신들 루트에다가 꿀과 쨈을 발라 버리겠어!")
그가 에베레스트를 오른 독일 최초의 인물이었기 때문에, 자동차 기술자이었다가 학생이 된
그가, 자신의 훌륭한 사진들을 현금화할 수 있었다. 그는 예술적인 면에서는, 처음에는
사진 작가였고, 후일, 저작물 계약을 하게 되었을 때는, 많은 글을 쓰게 되었다. 그의
전문가로서의 명성은 사진을 통해 얻었으나, '자이트 줌 아트먼'이라는 그의 첫 저술은
베스트 셀러이며 독일 알파인 클럽의 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에세이들은 완전히 새로운
세대에 관한 중요한 기록이다. 그는 독일의 산악 이데올로기를 글로 공격한 최초의 인물
중의 한 명이었다. 가령, 순전히 반대 활동에서 즐거움을 얻는 것 이외의 다른 아무
이유없이도, 그는 죽음을 불사한다는, 북유럽식의 전형적 등반 이상인 "Bergheld"에 대해
도전했다. 그의 의식의 흐름 스타일은, 그 많은 모순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고전적
산악인들의 영웅주의와 비교적 분석적인 오늘날의 접근 방법과의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그의 입장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정복자로서의 무뚝뚝한 자기 동일시가 (blunt
identification) 에고(ego) 여행 이면(裏面)의 심리적인 작용을 발견하려는 시도들 그리고
아이러니컬한 거리를 둔 순간들에 (moments of ironical distances) 의해 조망되었다. 그는
이미지들의 놀라운 병치(竝置)로 독자를 사로잡으며, 행동 묘사를 위해 언어를 사용할 때
진정으로 그의 최상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의 이야기들은 그가 겪은 것 처럼 그리고 수
천번이나 이야기한 것 처럼 생생하다 -- 강력한 힘을 지녔으며 여과됨이 없다.
열정에 넘치는 이야기들, 아름답고 절묘한 슬라이드 쇼들, 그리고 정치와 이데올로기에
관한 끝없는 궤변은 침묵에 빠지고 . . . . . 그가 남긴 빈 자리가 (vacuum) 점점 커지면서,
초오유에서 라인하르트와 함께 크레바스에 묻힌 것이 무엇인가를 더욱 더 우리가 느끼게
만든다.
Liz Klobusicky 씀 |
"너, 여기 또 왔군, 지난 번 왔을 때 실컷 겪어 봤쟎아?" 바람이 냉소적으로 맞이하며
속삭인다.
"이번엔 너를 잡고 말거야," 산 위에다 대고 내가 외친다.
다시 나는 파타고니아에, 길 끝의 마지막 집인 the Hosteria에, 있다. 지난 번 여행 때문에
아직도 사람들이 나를 기억한다.
"토레로 다시 갑니까?" 그들이 묻는다.
"아뇨. 피츠로이로," 나는 약간 애매한 태도로 답한다. 그들의 생각을 알고 있다: "이
바보가 또 그걸 할려고 하네. 유럽에서 여기까지, 산으로 가려고." "날씨는 어땠어요?" 늘
그렇듯이, "malo tempo". 마틴과 내가 그 곳을 떠났을 때 날씨가 어땠었는지를 나는
너무나도 잘 기억하고 있다. 이제 내가 돌아와, 룰렛의 바퀴를 다시 한번 돌리고 있는
것이다: 피츠로이의 '수퍼클와르'가 "판돈을 거시오." 라고 한다. 지난 2 년 간 꽤 오랫
동안 악운이 계속됐다. 세로 토레, 낭가 파르밧, K-2, 모두 실패였다. 나 이전의 많은
클라이머들도 그곳에서 좌절을 겪긴 했다. 그러나 나는 연달아 세 척의 배를 좌초시킨 한
범선 선단의 늙고 사그라든 선장 같은 느낌이 아직까지도 들었다. 나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주저하게 되었고, 자신감을 잃었다. 더 이상, 꿈으로부터 그것의 실현을
위한 도약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내 꿈과 현실의 간격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 허공 속의
나의 성이 무너져 거의 나를 압사(壓死)시킬 정도가 되었다. 본능적으로 내 불운의 시작
지점으로, 내가 처음으로 길을 잃기 시작했던 곳으로, 되돌아가야 함을 감지했다. 그 패배의
깊은 계곡을 건너기를 나는 간절히 원했다. 어디서 그것을 발견하든 간에, 성공이 극히
중요함을 내가 느끼게 되었다. 나는 겉모습과 현실 사이의 차이를 구별치 못하는 넋 빠진
사람은 아니었으며; 그림 엽서 위의 어느 멋진 산을 보고 그 산이 정말로 그런 것으로
여기는 사람은 아니었다. 파타고니아에서는 하나의 산을 보는 것과 그것을 등반하는 것
사이의 차이는 엄청나며, 마치 복권 당첨 확률 같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사람은 어려움
속에 들어갈 때 보다 거기서 나올 때 더 강해짐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이것이 내 희망이었다.
이곳에 오기 위해 남아 있던 모든 돈을 긁어 모았다. 이곳에서는 성공이 법칙의 예외이며;
여기에서는 등반이 즐거움이 아니고 전쟁이며, 바람, 날씨, 그리고 자신의 간절한 희망에
의해 난타당하는 권투 경기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래도
나는 돌아왔다. 이곳의 산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 세로 토레와 피츠로이가 대초원 위로
너무나 높이 솟아 있어 넋이 나갈 수 밖에는 없다.
실패코자 하는 소원이라는 것이 (wish to fail) 정말로 있다고 한다면, 바로 이곳이야
말로 그것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실패의 충격이 승리의 충격 보다 강하며, 패배의
기술을 여기 만큼 잘 배울 수 있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얼마나 많은 희망들을 키우고
또 얼마나 오래 동안 그 희망들에 매달릴 수 있을까? 얼마나 오래 동안 기다릴 수 있을까?
죽음은 불가해(不可解)한 요소이며. 시간은 이성적이고 무한한 요소다. (rational and
immense) 자신이 다른 존재가 되는 장소들이 있는 법이며, 때로는 그런 곳에서 자신의
존재를 초월하여 성장을 하게 되는데, 파타고니아가 바로 그런 곳이다.
피츠 로이는 겨우 3441m의 높이다. 피츠로이는 그 이름이 붙여진 산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8000m 봉우리들의 시대에서는 별로 대단한 고도가 아니다. 그러나 이 산은
350m에서 시작된다. '수퍼 클와르'의 베르크쉬룬트는 1700m에서 시작된다.
파타고니아를 위한 파트너를 구하기는 어렵다. 모두 다 갖추기는 어려운, 여러 가지
특성을 요한다 - 시간과 돈, 훌륭한 산악인, 그다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쓸 결심 등을 요한다. "그래, 남미에 갔다 왔다고? 무슨
산? 피츠로이? 들어본 적 없는데? 높이가 얼마라고 했지? 3441m?" 다시 한번 루이스
프라가가 (Luis Fraga) 내 파트너가 되었다. 우리의 최상의 찬스는 3 일 간 날씨가 좋을 때,
만일 그런 날씨가 오기만 한다면, 알파인 스타일로 그것을 오르는 것이라고 우리는
계산했다. 가능한 루트는 단 두 가지 뿐이었다 -- 남서쪽 '필라'의 '어메리칸' 루트와 '수퍼
클와르'가 그것이다. 이 산에 우리말고도 다른 원정대들이 있었고 -- 웨스트 페이스에는
체코 팀, 이스트 페이스에는 스페인 팀, 북동 클와르에는 일본 팀 -- 고정 로프, 대규모
대원, 그리고 수 개월 씩 기다리며, 모두가 원정대 방식으로 초등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이태리에서 온 Silvia Buscaini와 Gino Buscaini가 우리와 같은 목표를 갖고 있었다.
Silivia는 40세, Gino는 50세였다; 나이는 산악 등반에 있어 단지 심리적인 문제일 뿐인 것
같다. 우리 모두가 일종의 친구 처럼 되었다. 이곳의 산들은 비슷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만남의 장소이다.
등반
우리의 베이스 캠프는 Hosteria에서 8 시간 거리인, Piedra del Fraille에 있다. 여기서부터
다시 8 시간 거리에 '수퍼클와르'의 시작 지점이 있다. 3 일간 우리는 서둘러 음식과 장비를
위로 갖고 갔다. 날씨는 나쁘나, 처음에는 조금은 각자의 운이 좋으리라는 희망을 여전히
갖고 있다. 그곳에 바로 '우리'가 있기 때문에 갑작스런 날씨의 변화가 오겠지. 드디어 우리
물건이 모두 위에 있게 되었고, 그 산을 위한 우리의 준비가 다 되어 있었으나: 그 산은
우리를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삼 주일이 지나서야 겨우 우리의 루트를 보게
되었다. 네 번째 주에 날씨가 맑아졌으나 바람만은 계속 불었다. 드디어 좋은 날씨다!
화창한 날씨 속에 루이스와 내가 서둘러 빙하 위로 해서 그 등반 루트의 밑에 있는
비박지에 이른다. 밤에 비가 내린다. 피부까지 완전히 젖은 상태로 다시 하산한다. 우리가
내려오자 마자 날씨가 다시 환해진다. 그 빙하 위로 다시 달려 올라가 정오에는 심지어 그
클와르를 위로 오르기 시작한다.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다. 하루 만 이 날씨가
계속되기만 하면 정상에 도달한텐데. 만일 . . . . . 처음의 그 50 도 또는 55 도의 아이스
'걸리' 1000m 위로 로프 매지 않고 우리가 뛰어 올라 간다. 경사가 60 도에 이르러, 로프를
매야 할 때가 왔다. 그 '걸리'는 약 3 미터 폭이었다. 그 클와르는 이 산의 페이스 속으로
깊게 파여 있었다. 이 800m 페이스가 내던져야 하는 모든 것이 그 '걸리'를 따라 비명을
지르며 내려온다. 그것을 피할 도리가 없다! 오후에 그 '수퍼클와르' 위로 오르는 완전히
미친 짓. 순전히 지옥이다! 루이스가 어깨를 얻어맞는다. 커다란 돌이 내 배낭을 스치고
지나 간다. 높은 곳에서 얼음 폭포가 무너져 내려온다. 분명히 산의 내장 속에서 여기 저기
기어 다니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 괴물의 항문 속을 지나 그 위장 속으로 기어
올라가는 듯한 느낌. 드디어 그 클와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을 찾아 낸다. 비박지다.
날씨가 더 추워진다. 낙석이 멈춘다. 바람은 잠잠하고, 옷이 얼어붙고, 우리도 얼어붙고,
바람이 일어나고, 눈이 오기 시작한다. 오전 9 시까지 기다리다가, 그 다음에 1400m 하강을
시작한다. 낙석 대신에 신설의 눈사태가 닥친다. "좋아, 한번 더 이 클와르를 시도해
보자고!." 적어도 그것이, 일단 그곳을 벗어난 후, 우리가 한 말이었다. 그 다음날 날씨가
나아졌다. 만일 그 클와르에서 기다렸다면, 우리가 정상에 이를 기회가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일"이라든가 "했을지도 모른다" 라는 것은 없다. 그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장소에 있어야 한다는 그 퍼즐 조각을 우리가 짜맞추지 못한 것이다. 그저
매달리기만 하면 되는 몇 가지의 믿을만한 원칙이라는 것이 있으면 좋으려만! 기상(氣象)
상태의 혼란은 견디기가 힘들다. 유일한 해결책은 희망을 갖고 기다리는 것 뿐이다.
운은 우리 편이 아니었다. 또 다시 3 주 동안의 기다림 그리고 하루 하루가 점점 더
우리의 긴장을 증가시킨다. 드디어 날씨가 맑아진다. 산은 소름끼치는 모습이다 -- 완전히
얼어 붙어버렸다! 오후 1시에 차갑고 평탄한 그 빙하 위의 비박지에서 출발한다. 야간
등반은 너무나 싫다! 밤에는 낮보다 두려움이 백 배나 커진다. 동틀 무렵 그 클와르 위로
1000m를 해낸다.
우리의 원래 계획은 하루 안에 정상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 날씨 상태를 감안하면
하나의 환상이다. 9 시 경 우리는 그 커다란 바위덩이 (block) 아래의 비박 장소에
도착한다. 그 다음부터 힘들어진다 -- 얼어붙은, 가파른 빙폭이다. 얼음 전문가인 루이스가
선등한다. 낙석과 낙빙이 클와르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오후에 그 클와르의 윗 부분에서
오른쪽에 있는 렛지(ledge)를 통해 트래버스하여 걸리(gully)를 빠져 나온다. 바람과 구름이
몰려 든다. 오후 7시다. 정상 아래 300m에서 비박을 한다. 우리 위의 암릉은 절망적으로
보인다 -- 일 미터 일 미터 마다 두꺼운 얼음으로 모두가 얼어 있고, 날씨가 또 다시
바뀌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운이 나쁠 수가! 우리가 있는 렛지(ledge)는 작다. 각자의
엉덩이 반쪽을 위한 자리 뿐이다. 거의 매달려 있는 정도다. 각자 좀 더 나은 자세로
앉으려고 애쓰다 보니 점점 밤을 보내기가 어려워진다. 우리는 잠을 자지 못하고 동틀 무렵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폭풍이 우리의 비비 텐트 속으로 눈을 쏟아 붓는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또 한번의 후퇴! 그 클와르에서 또 한번의 시도를 할 수 없음을 우리는 안다. 그
어레이트(arete)에 가려고 다시 한번 시도한다. 내가 간신히 세 피치를 해낸다. 그 폭풍으로
인해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고 만다. 추락과 사고 사이의 무인 (위험) 지대 속에
내가 있음을 알게 되고 더 이상 계속할 수가 없다. 이젠 다 끝났어! 나는 너무나 속상해서
흐느끼기 시작한다. 피츠로이의 꿈이 부서진 것이다. 어째서 날씨가 하루 만 더 괜찮을 수가
없는 것일까? 왜, 왜? 왜, 내가 실패자라서? 독일 사람이 그렇게 약할 수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루이스가 있는 곳으로 내가 다시 내려 온다.
"이제 어떻게 하지? 하강?"
"아니야! 한번 더 비박해; 이제 아주 가까이 있어, 아마 내일은 . . . . ."
끔찍하게 긴 밤이었다. 서로의 흐느낌 만이 끝없는 어둠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다음 날 아침이 우리의 울음을 그치게 했다. 더 이상 연료도 없고, 음식도 없다.
우리는 하강한다. 두 번의 하강 후, 푸른 하늘이 돌아왔다. 이 새로운 노력이 또 한번의
불가피한 비박을 의미한다 하더라도, 용기를 불러 일으켜 다시 시도한다. 이제까지 너무
많은 투자를 했고, 너무 많은 고생을 했다. 이제 와서 포기할 순 없다. 모든 것을 뒤에
남기고, 우리가 어디에 있던 간에, 4 시까지는 돌아오기로 결정한다. 눈은 멈추었으나,
폭풍은 여전히 격렬하다. 광풍(狂風)이 얼음 벽에 부딪쳐 대양의 파도처럼 엄청난 소리를
낸다. 얼음은 얇고 바위는 얼어 있다. 나는 모든 두려움을 잃고 만다. 최후의 패배를 앞둔
마지막 투쟁이라는 그 느낌이 이상한 무아지경에 (high) 나를 빠지게 한다. 날씨는 냉장고와
풍동(風洞, windtunnel)을 섞어 놓은 듯 하나, 하늘에서 내려온 톱로프가 있다. 우리는
야수처럼 허기지고 공격적이다. 이런 폭풍 속에서의 등반은 미친 짓이다. 우리 자신의
고함소리 조차 들을 수 없다. 구름이 빠르게 암릉을 지난다. 앞으로 갓: 프리 클라이밍
구간에 이르러 1800m 중 10m를 -- 대단한 일이다 -- 자유등반한다! 긴 거리의 트래버스
구간이 많다. 폭풍이 점점 더 사나워진다.
'어프위드' 크랙이 나타났는데, 우리는 봉(bongs)이 없다. 커다란 헥스들을 (hexes) 때려
박고 인공 사다리를 딛고 선다. 우리는 시간 감각을 완전히 잃었다. "살아있기를 바라면서
영웅이 될 수는 없다." 합리적 사고와 신중성이 그 마지막 공략 앞에 길을 내주고 만다:
두려움이 없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된다. 불사신처럼 느낀다. 완전히 지쳐 빠져도,
어떻든 전력을 다하게 된다. 사람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흘리는 그 눈물을
통해 정상적인 것들과의 모든 접촉을 잃게 된다. 내가 그 암릉 상의 커다란 암탑(岩塔)
위에서 빌레이를 본다. 모두 얼어 붙어있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회색빛이다. 얼음으로 덮인
페이스: 마치 우리가 길을 잃어 북극에 온 것 같다. 폭풍이 우리의 입술에서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말들이 나오게 만든다. 피톤이다! (peg!) 내가 로프를 걸고, 루이스에게 텐션을 준
상태에서 좀 내려 주라고 말한다. 나는 그 암릉의 다른 쪽 위로 갈 수 있는지 알기 위해 그
암릉의 왼편으로 트래버스 하고자 했다. 그 로프에 체중을 싣었는데, 내 몸이 뒤로 딩굴고
만다.
"너무 빨리 하지 마!!"
몇 피트 아래의 바위에서 내 스스로 멈추고 그곳에 매달려 있다.
"타이트!"
놀라서, 내가 로프를 움직여 보니 아직도 쳐져 있다. 여기 이 심연의 벼랑 끝에 내가
있는데, 아직도 로프가 오고 있는 것이다. 만일 지금 놓아버리면 (let go) 나는 로프와
더불어 미끄러져 내린다.
"타이트 루이스, 타이트!"
그러나 로프는 계속 오고 있다. 루이스 생각에는, 내가 너무 쉬운 지대에 있어 로프를
제대로 풀어주지 못한다고 하는 걸까? 나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로프가 계속 온다. 정말
끔찍하다! 루이스 있는 지점에서 겨우 8m 거리에서 목터지게 내가 외치고 있는데, 그는 내
말을 듣지 못하는 것이다! 난 함정에 빠진 거야! 탈출구가 없어! 더 이상 오래 내가 버티진
못할거야! 8mm 짜리 로프일 뿐이다. 난 죽게 될 꺼야. 어떤 순간이던 내가 추락하고
말겠지. 뭔가 잘못되고 있는 걸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비명도 지르고, 애원도 해본다.
온갖 절망의 말들을 다 해본다, 그러다가 내가 머지 않아 포기해야하는 (let go) 내 운명을
갑자기 받아들인다. 극히 침착해진다. 이렇게 정상에 가까이 있는데 이런 식으로 죽다니!
죽는 느낌이 이렇구나! 아냐, 나는 죽고 싶지 않아.
"루이스, 줄 팽팽하게 해!"
하느님, 제발 좀 도와주세요! 내가 얻는 응답이라곤, 내 흐느낌을 흉내내는 바람의
쓸쓸한 울부짖음 뿐이다. 마음을 진정하고 가능한 해결책을 생각해본다. 팽팽해질 때까지
로프를 당긴다. 적어도 빌레이 피톤에 로프가 고정되어 있고 내가 프루직으로 올라갈 수는
있다. 한 손으로 로프를 계속 당긴다. 갑자기 로프가 빠르게 당겨 오다가 -- 너무나
빠르다는 느낌이 내 머리 속을 스친다 -- 팽팽해진다. 내가 그 로프를 이용해 죽음의
심연을 벗어나 위로 움직인다.
"루이스, 이 지독한 멍청이야!"
그러나 루이스는 없었다! 피톤을 지난 로프가 까마득한 밑으로 사라진다.
"루이스, 어디 있어?"
내가 두 번째 피톤을 설치하고 로프 타고 내려온다. 뭔가 나쁜 일이 틀림없이
생겼으리라.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는 아직 살아 있다.
"추락했고, 다쳤어," 그가 더듬거리며 말한다. 그의 상처를 살핀다. 아무데도 부러지진
않은 거 같다.
"루이스, 그 동안 내내 네 바로 밑에 내가 매달려 있는 것을 몰랐어?
"내가 막 출발하려고 할 때 갑자기 당겨지는 것을 느꼈고 밸런스를 잃고 말았어."
35m 추락으로, 하나의 피톤에 통과된 같은 로프에 우리 둘 다 매달려 있다. 주마링을
해서 올라가보니 로프가 반이나 속까지 찢어져 있다. 하강하기 전에 내 목숨을 잃을뻔한 그
곳과 그리고 정상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바라본다. 거의 죽을 뻔 했고 거의 정상에 이를 뻔
했다. 두 가지를 합하고 둘로 나누면 결과가 나온다: 우린 아직 살아있다! 정상이 아니면
그것 이콜 (equal) 제로이고, 밑에 머물러 있었던 것과 똑 같다. 이 한조각의 논리에 대한
유일한 답은 바람의 윙윙 거림이다. 눈 폭풍 속에의 또 한번의 비비, 또 한번의 끝없는 밤.
배낭에서 입방형 수프 덩어리를 (cube) 찾아내어, 둘로 나누어 핥는다. 차츰 좀 더
분명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난, 등반을 그만 둘 거야. 계속하면 내가 죽을 거라는 걸 알아,"라고 루이스가 말한다.
"운이 좋은 건 한번 뿐이야. 나는 관둘 거야," 라고 내가 말한다. 하산하는 동안 우리의
모든 '프렌드', 너트, 핀 등등 -- 모든 것을 -- 남겨 두고 간다. 눈사태가 심해진다.
클와르는 끝이 없다.
드디어 우리가 베르그쉬룬트에 도달한다. 그것을 뛰어 넘어 부드러운 눈사태 잔해 속에
이른다. 그 빙하를 위해 필요한 로프를 20m 자른다. 루이스가 자신의 모든 장비를 던져
버린다. 내가 구멍을 파고 나의 마지막 장비를 묻는다. 여기에 산악인 라인하르트가 묻히다,
영면을 기원하며. (R,I.P.) 그 빙하를 굴러 내려오며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단 한 가지
생각은 "또 졌어. 넌 패배자야. 난 그만 둔다!"이었다. 그건 마치 나 자신의 일부가 자살을
시도한 것과 같다. 산악인인 나, 라인하르트가 지금 죽어 있다 -- 지독한 공허감. 절망과
환멸로 인한 자살. "나는 그만 둔다" -- 무서운 말이다. 산악인이 아닌 라인하르트는
패배자인 라인하르트 보다 훨씬 허무하다. 100년 후, 내가 옆으로 몸을 돌려 (turn around)
내 장비를 꺼낸다. 아냐, 난 아직 그만 둘 수 없어! '어메리칸 루트'를 해보려는 두 명의
스위스 사람이 아직 있다. 그들에게 청을 한다면 . . . . .
베이스 캠프 2.14.82
나는 모든 희망을 버리고 말았다. 바람 밑에서 비가 평면을 이루며 Rio Blaco 계곡을
빠르게 질러 간다. 찬 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날, 독일에서 달리는 열차의 창에서 내다 보는
같다; 그리고 피츠로이 행 나의 열차는 나 없이 떠난지 한참 되었다. 내가 이 곳에
있은지도 벌써 두 달이나 되었다. 시간이 손가락 사이의 모래처럼 미끄러져 갔다. 그러나,
바람의 무한함에 비하면 두 달이라는 게 별 것이겠는가? 이곳에서의 바람의 일년은 Blaise
Pascal의 영겁의 산에서 새의 부리를 날카롭게 하는 것 보다 못한 것이다. 시간을 갖고
기다리는 것은 희망을 연기하는 것이다. 시간이 없는 기다람은 절망이다. 내가 필요한 것은
오직 3 일간의 좋은 날씨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문제다. 여기서 3일 간의 좋은 날씨는
왕의 몸값과 같다. 그건 마치 거지가 은행에 가서 "백만 마르크를 빌려주시오; 내게 기막힌
아이디어가 있소. 일년 내에 그 금액의 두 배를 갚겠소"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 패배의 깊은 계곡을 건너기를 바랬으나, 그 중간에 내가 바싹 말라버리고 만 것 같다.
더 이상 아무 희망이 없고, 나를 계속 가게 하는 것은 다만 내 고집 뿐인 것 같다. 마지막의
바로 그 날까지 여기서 나는 버티고 싶다. 가능한 마지막 일분까지도 내 목표에 충실하게
남아있고 싶다. 내가 패배자가 될 것이라면 -- 이왕이면 완전한 패배자가 되기를! 이
성공의 결여는 성불능과 같다. 그러나, 비록 꿈으로 남을 운명이라 할지라도, 좋은 날씨
속에 정상에 서는 꿈은 아직도 살아있다 - 성배(聖杯, Grail)처럼.
이제까지 그 산의 신비를 이렇게까지 강하게 느낀 적이 없다. 밑에서는 그 산의 십 분지
일 정도 만을 볼 수 있는데, 무한한 Hielo Continental이 가려져 있으며 . . . . . .
----- 이하 자료 미상 ------
shlee 초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