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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徐廷柱 1915~ 20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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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교수 | |||||||||||
1. 최신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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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출생 및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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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 5.18.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질마재 마을에서 출생. 호는 미당(未堂:아직 성숙하지 않았다.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다 는 뜻). 다츠시로 시즈오는 그의 창씨개명시 이름. 일제시대 창씨개명해 근대교육을 받은 아버지 덕분에 비교적 유복하게 학문에 정진할 수 있었다. 마을에서 한학을 배우다 줄포공립보통학교 진학 후 졸업,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에 보결로 입학한 후 2학년때 광주학생운동 1주년 기념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퇴학당하고 1930년 구속됐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기소유예 됨. 편입한 고창고등보통학교에서도 권고 자퇴당하는 등 학교 생활은 평탄치 못했음. 중앙불교전문학원(동국대 전신)수학(1935-1936). 젊은 시절 정신분열증세를 보인 적도 있었으며, 자살 미수사건도 있었음. 1933년 [동아일보]에 시<그 어머니의 부탁>을, [시건설(詩建設)] 7호(1935.10)에 시 <자화상>을 발표하며 등단.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 당선(1936), 김광균, 김달진, 김동리, 오장환, 이용희, 함형수 등과 시전문동인지 [시인부락]을 창간, 주재. 해방 후 좌우익 대립의 혼란시에 순수문학 또는 순수시라는 개념을 내걸고 우익의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1946), 시분과위원장을 역임하며 당시 문단을 주도한 좌파의 계급문학 또는 경향문학에 반대하여 조선문학가동맹과 맞섬. 남조선대(동아대) 창립시 교수(1946), 동아일보 사회부장 및 문화부장, 정부수립후 문교부 초대 예술과장(1948), 조선대 부교수, 서라벌예대(동국대와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의 전신)교수, 동국대 교수(1959-1979) 및 종신교수, 1949년 한국문학가협회 창립멤버로 시분과위원장, 1954년 예술원 창립과 함께 예술원 종신회원으로 추대되었고 한국문협 부이사장(1969-1972) 및 이사장(1977), 한국현대시협회장(1970-1974) 역임. 아세아자유문학상(1955), 대한민국 예술원상(1966), 중앙일보 문화대상 본상(1980)수상.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으로 노벨 문학상 후보에 추천(5차례) 됨. 서정주 시전집(2권. 민음사) 출간(1991). 부인 방옥숙(方玉淑)씨 별세(2000.10)이후 곡기를 끊고 맥주로 연명하다 2000.12.24. 13시 서울 강남 삼성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85세). 재미 변호사와 재미 심장 전문의인 승해(升海)와 윤(潤) 두 아들을 둠.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선영에 묻힘. 정부는 12.26 고인에게 금관 문화훈장을 추서함. | ||||||||||
3. 활동 및 작품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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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파(인생파) 시인으로 사상기조는 영원주의(영생중의), 문화사조상 극정적 낭만주의, 예술관은 심미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전통적 서정세계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토착적인 언어의 시적 세련을 이루었고, 시 형태의 균형과 질서가 내재된 율조로부터 자연스럽게 조성된 점 등이 커다란 문학사적 성과로 평가된다. 생전에 자신의 시세계를 스스로 생명파, 또는 인생파로 규정하고 1949년 「조선명시선」을 편찬하여 ≪시인부락≫과 ≪생리≫의 동인들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면서 이들은 인간 본연성의 회복을 지향하는 휴머니즘을 근간으로 삼고 있다고 말함. 그는 고향의 원초적 서정과 외국의 문학세계의 영향을 받아 30년 대를 풍미한 김기림과 이상의 모더니즘이나 초현실주의를 극복 대상으로 삼는 한편 20년대의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시적 경향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니체로 이어지는 신성과 초인정신에 대한 관심, 보를레르와 이백이 강조했던 인간의 질곡과 자연의 시심, 유.불.선의 동양사상과 샤아머니즘 및 전통정신사상을 두루 섭렵하고 광범위한 문학적 체험을 거쳐 김영랑의 순수시와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강한 애착을 보이며 민족전통과 정신의 세계를 형상화 하였다. 첫시집 <화사(1938)> 에서부터 마지막 15번째 시집 <80 소년 떠돌이의 시(1997)> 에 이르기까지 정열적으로 새로운 시세계를 일궈내 해외에 대표 한국시인으로 소개되고 있으며 '시의 학교', '시인 중의 시인', '큰 시인들 다 합쳐도 미당 하나만 못하다', '시의 정부 (政府) ' , '한국이라는 부족 언어의 주술사' , '시선(詩仙)'으로 불릴 정도로 한국시의 최고 경지를 일궜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 이는 동국대 및 서라벌예대 교수로 재직하며 배출한 제자 문인들이 현재 문단의 중추를 이루는 등 많은 시인과 문인제자를 양성 한 몫도 크다 하겠다. 등단 이후 60여년간 미발표작 포함 1천편에 가까운 시를 다산(多産)하였는데 이는 국내에 유례가 없고, 외국에서도 독일의 괴테나 헤르만 헤세 정도가 비견될 정도 임. 한국전쟁 후 반공 국시가 더욱 강화되면서 그의 시적 경향이 남한 문학사의 주류로 자리잡았고, 이후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무려 10편 가량의 시가 실리는등 다수의 작품이 교과서에 수록됨으로써 국민의 보편적 정서에도 상당히 깊숙한 영향을 주었으며 한국 문학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소설의 김동리와 비견되는 시문학의 교주(敎主)로 ‘미당 사단’이라는 거대 계보가 형성됐으며 이는 교수시절 기른 이원섭, 이제하, 황동규, 고은, 김초혜 등 수많은 제자와 신춘문예등 심사위원으로 등단시킨 문인등이 학계 언론계 및 주류 문단의 중진으로 포진하고 각종 문인협회조직에의 참여와 정권의 비호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룬 결과였다. 일제 말기 징병을 종용하는 글과 친일시를 발표하는등의 친일행적으로 반민족 매국친일파로, 해방 직후 친일파를 대거 중용, 정치기반으로 삼는 동시에 반공을 국시로 한 이승만 정권과의 관계, 80년 신군부 등장 이후 전두환(全斗煥) 대통령 후보의 찬조 연사, 대통령 당선축하 축시헌사, 광주항쟁과 전두환정권 수립 와중에 TV방송에 출연해 행한 전두환 (全斗煥) 군사파쇼정권에 대한 지지 발언등의 정치 참여로 일제 및 독재권력 주변을 맴돌며 훼절한 문인이라는 불명예와 “아부와 굴종”이라는 지탄 및 반민중 반민주 친독재 야합인물로 불리는 오점을 남김. 1992년 월간 ‘시와 시학’에 친일행적 시비와 관련, “국민총동원령의 강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징용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친일문학을 썼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공인함. 국내 민주화가 진척되면서 후배들의 따가운 비판 대상이 됐고, 과거의 시 세계도 빛이 바램. 문학교육 현장에서도 부정적 인식이 확산돼 국정교과서에서 그의 시가 잇따라 배제됐으며 검인정 교과서도 일부만이 제한적으로 수록됐다. 이 때문에 자신이 추천한 시인 고은씨 등이 차례로 등을 돌린데 대해 서운함을 털어놓기도 했으며. 그의 와병을 계기로 일부 계간지와 언론이 미당의 부끄러운 과거와 문학과의 상관 관계에 대한 논의를 벌이는 등 그의 평가와 관련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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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주요작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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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작품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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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개인연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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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어둠속에 갇힌 불꽃>
서정주 문학성
한국의 현대시를 큰 흐름에서 볼 때, 두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은 김수영과 김춘수이다.
김수영은 문학을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고자 했고, 김춘수는 사회적인 조건들을 배제한 상태에서의 문학의 독립적인 존재 의의를 찾고자 했다.
문학이 가지고 있는 사회성의 측면을 강조하는 시들이 김수영의 시와 맥이 닿는다고 한다면, 언어 자체에 대한 탐구와 존재에 대한 질문을 보여주는 시들은 김춘수의 시적인 시도들과 무관하지 않다.
서정주의 시는 이러한 흐름과는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그의 시는 사회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것도 아니고, 언어에 대한 실험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의 시가 현대시의 큰 흐름과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의 시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성격 때문이다. 초기 시집인 [화사집]에서는 부분적으로 서구적인 미의식이 나타나긴 히자만, 그의 시는 '신라'를 시적인 소재로 끌어들이며서 현재의 삶과는 무관한 신화적인 시공간으로 넘어가 버린다. 그것은 근대적인 시공간의 좌표가 설정되기 이전의 영역이고, 현실적인 가치기준이나 윤리적인 잣대들이 개입될 수 없는 독특한 영역이다. 그의 시가 구조를 분석하거나 기호를 해독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그대로 죽 읽히는 것은, 그의 시가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분석하기 이전의 직관적인 영역에 속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주제별로 볼 때 서정주의 시는 몇 개의 주제들을 반복하고 있다. 원죄와 형벌, 전통과 초월, 영원한 것에의 귀의, 육체성의 강조 등은 이미 [화사집]에서부터 나타나는 주제들이다. 이후의 시들은 이러한 주제들을 심화하거나 변주하는 방식으로 쓰여지고 있다. '신라'나 여성, 죽음에 관한 생각 등은 그러한 주제들을 구체화시키는 소재이면서 동시에 주제이기도 하다.
<푸른문학회>
<평론부문>
미당 서정주의 삶과 시세계 재조명
(서정주 死後 완료형 시점에서)
이 당 재
1.들어가는 말
미당 서정주에 대한 평가는 그 동안 순수와 참여문학에서 볼 때 한국 최고 수준의 시적 성과에 대한 옹호와 올곧은 역사의식에 의한 단죄 사이에서 앞으로도 논쟁이 계속될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순수문학으로서의 무죄가 참여문학으로서 유죄라는 등식이다.
서정주 사후 대부분의 매스컴들은 큰 지면과 많은 시간을 할애해 서정주를 ‘국민 시인’으로 치켜세워 한국문단의 큰 상실로 받아들여 추모했다. 이것이 미당에 대한 국민 대다수의 정서요 평가이고 미당에 대해서는 시로 말해야 옳다고 했다.
다른 쪽은 “아름다운 시는 민족반역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느냐”고 항의도 했다. 서정주는 이 두 쪽의 삶을 모두 살았다. 일제 말 조선의 젊은이들을 징병・징용으로 내몰기 위한 친일 시와 글 몇 편을 썼고 5공 정권이 들어서는 데 협조 발언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행적을 비난하는 쪽에서도 그의 시가 한국어와 한국인의 마음을 가장 찬란히 빛낸 시인이라는 평가에는 인색하지 않는다. 그 실례로 문화부 산하 한국문학번역원은 당시 여론 조사결과 우리국민이 한국을 대표해 세계에 가장 알리고 싶은 시인은 서정주인 것으로 들어났다는 점이 이를 말해 주고 있다. 따라서 국민 다수의 뜻과 정서, 시류에 휩쓸릴 수 없는 ‘한국인의 마음자리와 문학의 영원성’을 소중히 하기 위해서 어느 한 면으로 재단되어서는 안 되는 다층적 삶의 깊이와 지존을 계속 지켜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1930년대 등장한 이래 2000년 타계하기 직전까지 시작활동을 정력적으로 전개하여 대가적 시인의 풍모를 지녔다. 그는 이 땅의 누구와도 비견되지 않을 정도로 천부적인 시적 재질과 능력을 갖춘 시인에 속한다. 그는 시적 사유를 새롭게 만들어내고 그에 걸 맞는 시어를 찾아내는 데 남다른 재주를 갖추고 그의 능력을 아낌없이 발휘했다. 그러나 그의 시에 대해서는 긍정과 부정의 상반된 견해와 평가가 있어온 것도 사실이다. 그의 시가 현대시의 정상에 위치하는 것으로 높이 평가하는가 하면 다른 한 편으로는 그의 시가 고답적 관념의 유희와 반 역사주의에 경도되었음을 비판하는 평자들도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그가 뛰어난 언어의 장인의식을 지닌 시인으로서 한국 현대시 개척에 60년 이상 외곬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화사집」에서부터 마지막 펴낸「80소년 떠돌이 시」 등 15권의 시집을 통해서 우리의 전통적 정서와 사상을 창의적으로 계승하는데 그 한 몸을 던져왔다는 사실이다. 그 동안 서정주에 대한 시학연구나 비평적 담론이 많았다. 이러한 그의 시문학에 대한 연구나 비평이 그가 작고한 완료형 시점에서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2. 문제의 제기
(1) 서정주적 삶의 시화詩化
시인의 분신인 시적 자아에 대한 의식이 집중적으로 표현된<애비는 종이었다>고 충격적인 진술로 시작되는데 종의 아들이라는 그의 나이 스물셋의 젊은 자의식은 굴욕감과 함께 오히려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놓는 솔직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용기와 대담성을 읽을 수 있다. 시에서 풍기는 솔직한 용기와 대담성으로 읽히는 이유가 시인이 미천한 출신에 관한 한 이러한 역경을 극복하고 일어섰다는 자신감 넘치는 도전적 목소리가 스며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종의 아들이라는 자의식은 당시 일제에 종노릇을 하고 있던 우리 민족의 상황과 결부되어 시인으로서 폭넓은 실감을 자아내고 있다. 이 시적자아의 설정부터가 다분히 문제적 시인인 것이다. 젊은 나이에 쓴 이 작품 속에서 서정주의 숙명적인 어떤 운명의 행로가 예언되어 있다. 아울러<애비는 종이었다>는 굴욕의식과 도전의식,<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이라는 유랑의식,<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어떤 이는 내입에서 천치를 읽고 갔다>는 천치와 죄 의식이 그것이다.
서정주는 어쩌면 선험적이라고 할 수 있는 비범한 예지에 의하여 그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하여 버릴 수 없는 업고業苦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의 숨 막히게 노련한 언어구사와 민중의 한을 기막히게 절묘한 재현능력은 아무나 섣불리 흉내 낼 수 없는 각고의 노력 끝에 어렵게 도달되는 장인의 경지이다. 그의 손에서는 우리 일상생활의 어떤 것이든 그대로 시가 되는 데 있다. 그의 시는 사람들의 사는 모습에 대한 탐색이며, 독자들은 우리의 생활이 곧 시적인 것임을 알게 되고 그 의미를 깨닫게 하고 있다. 그가 다루었던 삶의 현실은 시인 자신의 체험만이 아니라 그가 살아온 시대의 현실이고 한국인의 역사적, 체험적 현실 탐구를 열정적으로 추구하였다. 그의 욕망의 미학은 전통적 심미적 경험의 기초로써 한恨의 미학의 변주라면, 굽음의 이존책以存策은 절대 권력의 세계에서 억압받은 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가져야 했던 현실주의가 그의 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2)서정주와 한국문학의 한계성과 가능성
세계적으로 ‘근대문학’이라는 이름이 통용되던 전환기에 한국의 시문학이 추구해야할 이념과 형식을 가장 성공적으로 보여준 첫 세대가 김소월, 한용훈, 정지용, 그리고 서정주 등이다. 이들은 한국문학의 전환기에 구어체 고장말로 우리의 전통과 사상, 민속을 새로운 담론으로 보여준 선구자들 이었다. 특히 서정주는 풍부하고 무한한 한국어의 가능성을 내장한 채 역동적인 생명력을 모국어에 지속적으로 불어넣었다. 소월과 만해, 지용이 짧은 기간 동안 그들의 소원을 이루어냈다면 서정주는 60년 이상을 한국문학이라는 화로 속에 모국어의 풀무질을 계속했다. 서정주와 한국 시문학사와의 관계는 처음부터 20세기를 통과하여 영원히 한국문학사에서 살아남을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이렇듯 서정주는 “시인은 마지막이란 없는 거야. 항상 현역이지. 그런 시인은 영원한 현역으로 남는 거야. 독자들 가슴속에서 매양 새롭게, 뜨겁게 쓰여 지고 있을 테니까”라고 말했다.9) 서정주는 문학사적으로 그의 시적 역정歷程은 시적 영혼의 가열 찬 자기 계발을 보여주면서 근대적 자기 정체성을 향해 역사를 포복해 간 한국 현대시사의 고행을 상징적으로 그려주고 있다.
9) 마지막 인터뷰, 중앙일보 2000.1.2.기사 참조
서정주 시세계 속에는 저주받은 시인의 자기 각성으로부터 조화로운 세계에 대한 찬송으로 나아가는 변모에서 그의 오랜 시력詩歷과 한국 현대시문학사와 연관된 구조적 맥락으로 볼 때 20세기 한국문학의 가능성과 문제점이 다양하게 펼쳐져 있는 것과 함께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한 동인이 바로 서정주의 시인으로서 장수성에서 찾게 된다.
현대 한국시문학사에서 서정주의 자리를 논하는 일은 한국문학사 전부를 말해야 하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까다로운 일이다. 여기서 문제는 한국이다. 그것은 한국이라는 문화적, 역사적, 지역적 특수성을 내장하고 있고 동시에 국제적 보편성을 향해 열린 체계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 당위성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서정주는 한국의 신화, 전설, 역사, 민속. 정서들을 그 누구보다도 유려한 모국어로 재현해 놓았다. 여기서 문제는 한국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시편들이 그의 시에는 허다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의 시가 좀처럼 외국어로 번역되지 못하는 한계가 문제다. 그래서 “미당은 오직 모국어 속에서만 시인일 수 있다.”는 일종의 폄훼적貶毁的 주장이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그의 시 가운데는 한국의 문화 전통 밖에 있는 언어들로는 좀처럼 그 묘미를 음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의 시 「화사」에서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둥아리냐”(「花蛇」), 초록제비 무쳐오는 하늬바람우에 하눌이어. 피가도라......아무病없으면 가시내야“(「봄」) 등이 그렇다. 몸의 속어로 ‘몸둥아리’는 우리 의식 속에 구성되어있는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기가 어렵지만 ‘몸’ 그 자체도 번역이 여의치 않다. 우리가 몸이라고 썼을 때 서구 전통 사회에서 쓰는 해부학의 대상으로서의 살덩어리가 아니다. 'body'라는 단어가 있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몸’을 구축하고 있는 우리 문화 전통을 이해시키는데 어려움이 있다. 이와 같은 문제는 개개 문화권역이 갖는 특수성 때문이며 문화권역의 대표적 표상인 언어의 독자성 때문이다.
「질마재 神話」(1975)나 「鶴이 울고간 날들의 詩」(1982)는 한국의 역사와 민속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우리말이 지니는 섬세한 가락과 역동적인 생명력을 직감적으로 느끼기는 어려울 정도다. 또 그의 동요와 같은 시「기럭아 기럭아」에서 마지막 행<잠도 없이 서러운 永遠처럼 가느냐?>부분은 엄격히 말해 말이 안 된다. 그는 이[말이 안 됨]을 즐긴다. 왜냐하면 말이 안 됨의 영역을 넘어[말이 안 됨]의 세계야말로 서정주 시세계의 본령이기 때문이다.13) 조금은 과장된 수사이기는 하지만 통상적인 어법을 파괴하고서도 오히려 새로운 미적 구조를 만들어내는 게 서정주 시의 신비로운 매력이다. 그의 어떤 재능이<이마로 걸어가는 기러기>를 의식 속에서 주술화시킬 수 있었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나 평이하게 울어 나오는 마법의 담론 속에 우리 문화의 숨겨진 질서와 미학이 보일 듯 말 듯 아스라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서정주의 시는 한국의 전통적인 정서와 사유의 체계를 끈질기리만큼 유별나게 추구하고 있다. 그가 ‘한국 대표시인’이 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른 한편 그의 시가 안고 있는 한국 특유의 정서와 사유체계 및 이를 형상화하고 있는 우리 국어의 마술적 담론은 세계문학의 보편적 지평 속으로 편입하기 어려운 난점을 안고 있는 점이다. 이는 서정주와 한국현대문학의 세계문학으로의 진입에 한계점을 들어내고 있다. 그의 시 속에 한국의 역사와 전통문화, 동서양의 신화와 철학과 심리학과 문학이 어떻게 용해되어 있는지 탐구해 봄으로써 서정주시의 한국적 가능성과 세계문학으로의 가능성과 한계성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이는 우리 언어의 특수성 때문이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역설에 이르기 위해서는 보다 색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즉 한국문화의 세계화가 먼저 이뤄져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우리가 5천년의 유구한 역사문화를 갖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성장한 만큼의 우리 문화의 세계화에는 아직 보편화되지 못한 점이 바로 한국 문학의 한계성과 연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서정주 개인의 문제이기에 앞서 한국문학 전반의 문제이기도 하다.
서정주 담론의 한국적 특수성을 미적 체계로 규명해 내는 방언학, 어미처리법, 통사구조, 화법, 태도 등 1천여 편의 시 속에서 한국어의 무한한 가능성 또한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20세기 한국문학 전반에 끼친 부인할 수 없는 공헌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서정주 시의 한국적 특수성이 안고 있는 문제는 한국문학의 세계문학으로서의 가능성 또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 지역이나 고장 말로서의 국민문학이 현대문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서는 독자성과 함께 보편성을 갖추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보편성 있는 주제론적 접근은 그 해결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서정주의 경우 ‘한국’과 ‘전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명’과 ‘영원’이 중요한 것이다. 이 ‘생명과 영원’은 바로 세계문학의 보편적 주제로서 또한 고귀한 미덕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정주의 핵심적인 형이상학적 가치로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3. 서정주 시와 한국문학, 세계시문학사와 관련성
서정주의 걸출한 개성과 특유의 수사는 희랍과 고조선으로부터 미래에까지, 그의 고향 질마재에서 에베레스트에 이르고 한국사상과 동양고전. 오비디우스와 보들레르며 도스토예프스키와 니체에까지 실로 광범위 하다. 이러한 광범위한 영역의 것들은 근대를 용해함으로써 근대의 틀 자체를 무색케 한다. 서정주의 1천여 편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을 통해서 외형상 그가 지나온 역정에서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고 지속적인 힘으로 견지해 온 게 있다. 그게 바로 인간의 삶에서 떠날 수 없는 주제로서 ‘생명과 영원’이다.
이점은 지금까지의 한국 현대문학사에 있어서 서정주만큼 이 문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또는 운명적으로 관심을 보여준 시인은 없다할 정도다. 서정주는 그 누구보다도 가장 장수한 시인으로서 ‘생명과 영원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루어 왔다. 이 문제는 그의 시의 연대기에 있어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 있으며 한국 현대시문학사의 가능성과 문제성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문학사적으로 외면할 수 없는 하나의 개인시대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서정주의 영원관과 영생관은 근대 패러다임 자체를 원천봉쇄하는 야심적인 산물이다. 화사집속에 드러나 있는 공격적 충동과 관능미와 부활에의 염원 이면에는 생명에 대한 열렬한 탐구와 그것을 어떻게 영속할 수 있는가에 대해 젊은 서정주의 자의식이 심원한 깊이로 깔려 있다. 1천여 편의 서정주의 시가 떠받치고 있는 중요한 두 테제가 ‘생명의 탐구’와 ‘영원성의 지향’이라는 이름의 미학이다.
청년 서정주의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생명에 대한 철학적 토대는 한국인의 문화 전통 속에서 배태되어 온 생기발랄한 삶의 양식과 짜라투스트라의 힘찬 노래가 비벼져버린 일종의 다이나믹한 열광이었다. 저주와 혐오와 광기와 욕정이 뒤범벅이 된 이 열광은 비록 그 이후 순치되기도 하고 너그러워지며 능청스럽게 변질되기도 하지만 그 속성인 생을 긍정하고 인간의 몸을 중시하며 영원을 꿈꾸는 것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근대와 관련하여 서정주의 시에서 나타난 또 하나의 테제는 영원의 문제다. 니체는 신으로부터 영원을 빼앗아 생명과 우주 전체에 나누어 주었다. 서정주는 화사집 시절 니체의 이런 생각을 체계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그에게 온축되어 온 문화 환경은 많은 영향을 주었다. 서정주의 첫 시집에 나오는「부활」에서 ‘영원의 문제’를 동양의 전통 속에서 생래적으로 잘 감지하고 감칠맛 나는 모국어로 보여주고 있다. 서정주의 시편들 가운데 신라정신에서부터 영생관과 영원관을 확고하게 간직하고 시공을 넘나드는 온갖 군상들, 여러 사건과 다양한 풍물들, 신화적인 이미지들이 영원의 심리학을 지향하는 시인의 꿈으로서 20세기 한국문화 속에 위풍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가 보여주고 있는 보편적 기억의 재생은 바로 영원의 반복과 순환과 기억의 재생으로서의 신화학이다. 그의 대표작의 하나로 꼽히는「국화 옆에서」([시선집 1]93p)찾을 수 있다.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봄부터 소작새는/그렇게 울었나보다/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천둥은 먹구름속에서/또 그렇게 울었나보다/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든/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인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선/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노오란 네 꽃잎이 필라고/간밤엔 무서리가 내리고/내게는 잠이 오지 않았나보다.
-「국화옆에서」 전문
꽃의 이미지를 통한 생의 성숙 또는 정신화해 가는 삶의 모습이 제시되어 있다. 기, 승, 전, 결의 정제된 형식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사계의 순환 법칙과 함께 생, 노, 병, 사라는 생의 변화과정을 암시하는 것으로 순환과 연기緣起의 상징적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외경감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영원을 지향하는 정신이다.
여기서 서정주 시에 나타나는 생명과 영원의 문제를 일시적인 것으로 보느냐, 지속적인 것으로 보느냐의 관점이다. 서정주 시의 전 과정에 걸쳐 생명과 영원의 문제가 다루어져 있다. 서정주 자신의 내력과 현실과 역사와 자연에 대한 인식을 광범위하게 펼쳐 보이면서 고집스러우리만치 추구해온 생명과 영원성의 문제는‘진보’와 ‘퇴행’ 사이에서 여전히 떠돌고 있다. 가장 평범하면서도 독창적이고 질박하면서도 유려하게 육체적 격정을 토로하면서도 정신의 달관을 노래하고 비탄을 읊조리면서도 환희를 즐기는 이 모든 양가적 요소들이 동시적으로 공존하는 그의 언어의 마술성을 발견하게 된다. 생명과 영원성을 심미적으로 형상화하는 서정주의 방식은 한국어의 다양한 가능성을 또한 동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의 가장 뛰어난 매력 중의 하나가 논리적 설명으로 좀처럼 다가서기 어려운 한국어의 무한한 확장력에 있다. 서정주적 테제의 개성과 보편성은 이 모든 가능성들을 그 자신의 장구한 시력 안에서 생명과 영원의 미학으로 일관되게 포섭하려는 놀라운 관성의 힘에서 찾아진다. 모국어의 생기발랄한 장터를 방불케 하는 그의 시편들은 스스로의 테제를 향해서 소용돌이침으로써 단 한순간의 일탈도 허용되지 않는 희귀한 장인정신의 징표로 나타난다. 생명과 영원성을 휩싸고 도는 그의 언어야말로 때로는 저주받은 시인의 의식을 노래하거나 주체할 수 없는 광기를 발산하며 또 천진과 능청을 가장하면서도 언제나 삶의 의미심장한 주체적 국면에 잇닿아 있다. 그래서 20세기 한국어는 서정주에 의해서 생명과 영원성의 의의를 보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심화시키고 확산시켰다고 보는 것이다.
서정주의 주체적 테제의 보편성은 현실의 리얼리티를 넘어서 있는 곳, 즉 보다 광범위한 문화사의 흐름 속에서 인간 실존의 의의를 해석해 보려는 시인의 꿈이 있는 곳에서 찾아진다. 생을 긍정하는 정신과 시간을 단속적으로 분리하여 과거 현재 미래가 나뉘어져서 어느 한 쪽이 극복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개별적 단위들이라는 생각을 넘어서서 영원의 이름으로 화해를 이루는 통합적 전체로 생각하는 정신, 이 두 정신이 운명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바로 생명 탐구와 영원성의 지향이라는 그의 시의 주요한 국면이다. 시인이 가질 수 있는 예술정신으로서 한국 현대문학사는 이 보다 더 크고 야심만만한 것을 가져보지 못했다.
서정주의 시에서 생명과 영원성의 두 테제가 지속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먼저 생명의 경우다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콩밭 속으로 작구 다라나고/울타리 막우 자빠트려 노코/오라고 오라고 오라고만 그러면/사랑 사랑의 石榴꽃 낭기 낭기 /하누바람 이랑 별이 모다 우습네요/풋풋한 山노르떼 언덕마다 한마릿식/개고리는 개고리와 머구리는 머구리와/구비 江물은 西天으로 흘러나려...../땅에 긴긴 입마춤은 오오 몸서리친/쑥니풀 지근지근 니빨이 히허여케/즘생스런 우슴은 달드라 달드라 우름가치/달드라.
-「입마춤」 전문([시전집1]40p)
보지마라 너 눈물어린 눈으로는....../소란한 啌笑의 正午 天心에/다붙은 내입설의 피 묻은 입마춤과/無限 慾望의 그윽한 이 戰慄을...../아 - 어찌 참을 것이냐!/슬픈이는 모다 巴蜀으로 갔어도 /윙윙그리는 불벌의 떼를/꿀과 함께 나는 가슴으로 먹었노라./시약시야 나는 아름답구나/내 살결은 樹皮의 검은빛/黃金 太陽을 머리에 달고/沒藥 麝香의 薰薰한 이꽃자리/내 숫사슴의 춤추며 뛰여 가자/우슴웃는 짐생, 짐생 속으로.
-「정오의 언덕에서」 전문([시전집1]51p)
위 두 편의 인용 시는「花蛇集」속의 다른 시편들처럼 강렬한 이미지와 거친 호흡과 공격적인 동사로 짜여 있다. 시인이 급박하게 불러내는 목소리에는“無限 慾望”의 심연 속에 리비도가 있고 그것은 도덕과 윤리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야생의 상태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강한 수성적(animality)충동으로 나타나있다. 「입마춤」의 격렬한 이미지들은 생명의 야수적 본능을 실감나게 드러내 주고 있다. 이 야수적 본능은 격정의 성격이 단순한 관능과 탐미가 아닌 슬픔과 광기임을 암시하고 있다. 화자의 격정 속에는 환희도 있지만 광포하고 난폭한 몸부림도 있다.
“쑥니풀”을 “지근지근” 씹으며 “니빨”을 “히허여케” 드러내는 “즘생”의 영상 속에는 입맞춤에의 달디 단 유혹을 느낀다. 당시 서정주는 젊은 시인으로서 웃음과 울음을 달다고 하는 동일한 의미 구조 속에 놓아두는데 주요한 것은 인간의 몸에는 모순된 양가성이 거의 동시에 표출될 수 있다는 가설이며 이것은 바로 생체의 느낌과 의식이 복합된 형식으로서 인간의 몸 생명이 지니는 역동적 특성 때문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는 인간의 몸이 가지고 있는 특징 즉 모순되는 양가성의 동시적 공존을 한국 현대시의 역사에서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몸은 과정의 수행자이며 다양한 모순을 포섭하고 병치시키고 있다.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생명의 테제와 관련되어 있는 존재의 모순성이다. 서정주의 초기 시편에 나타나 있는 생명의 모순성은 차안과 피안 사이에서, 극락과 지옥 사이에서, 모순의 자각(인지)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모순을 인지하는 것은 생명의 동시적 양면성을 보는 것이다. 웃음과 울음, 아름다움과 징그러움, 미와 추를 한 생명 안에서 감지한다는 것은 생명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존재’보다는 과정을, 고형성 보다는 역동성을 중시한다는 뜻과 상통한다. 바로「입마춤」 「自畵像」 「花蛇」에서 보여주는 생명현상의 모순은 생명 그 자체의 역동성을 극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正午의 언덕에서」 그 화룡점정은“시약시야 나는 아름답구나” 구절은 정오의 언덕에 서서 황금태양을 머리에 달고 향기로운 꽃자리와 짐승의 웃음 속으로 치달려 가는 이미지에는 욕망과 전율이 뒤섞여 있다. 이 뒤섞임은 서정주가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표현할 때 즐겨 쓰거나 또는 한국적 전통의 성격을 얘기할 때 동원되던 비빔밥20)과 같은 것이다. 생명이란 비벼져 있는 모순과 혼돈의 ‘과정’인 것이며 불벌 떼를 가슴으로 먹고서 춤추러 가는 디오니소스적 도취의 세계인 것이다. 향기로운 꽃자리와 짐승의 웃음이 어우러진 백주 대낮에, 시인은 우주의 아니마를 불러 자신의 몸생명이 아름답다고 노래한 것이다. 이러한 강건한 아름다움의 시적 형상은 한국 문학사에서 화사집 이전에는 가져보지 못했다는데서 서정주를 “이 나라의 제1시인”21)의 자리에 앉혀놓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21)평론가 林和의 평설을 인용한 글에서 [뜻 아니한 인기의 밥][시전집2]948p및윤재웅 전동46-51p참조
서정주의 생명 테제의 성격은 욕구와 충동. 성스러움과 그에 부수되는 이미지들에 국한하지 않고 삶을 추동시키는 건강하고 숭고한 추동력을 발하고 있다. 그의 후기 시편들에서 성행위와 관련해 잘 드러나 있는데 특히 유머와 해학과 풍자가 깃들어 있는 강건한 몸생명의 형상화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떠돌이 詩」 「西으로 가는 달처럼......」(1980)에서 성을 유머러스하게 풍자하고 있는 점이다.
「당산나무 밑 여자들」22)은 우리 풍토와 민속 그리고 기질을 입심 좋게 형상화하고 있는 점에서「질마제 신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성 행위 자체를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에도 심리적 거부감이나 불쾌감을 느낄 수 없는 것은 성을 생명현상의 긍정적이고 숭고한 추동력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시에서 “김서운니”가 오십이 넘은 나이에도 “이뻐”지는 것은 바람피우는 여자의 음탕한 쾌락주의자의 면모를 보이기보다는 억압과 금기로부터 해방된 노년에 겨우 여유를 찾은 한가한 과부의 정황을 일종의 즐거움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시인이 성적 욕구와 행위를 생명 현상의 긍정적이고 숭고한 추동력으로 농경사회의 전통에서 배태된 심미적 생기론에 그 토대를 두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22) [단산나무 밑 여자들][시 전집 362p참조
서정주의 시에서 영원의 테제는 영원주의로 불리어질 수 있는 것으로 논의 되었다. 이는 「신라초」와 「동천」이후의 시 세계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는 관점이다. 하지만 그의 첫 시집에서부터 영원에 대한 생각이 배태되어 있는데 이는 니체의 영향이 다소간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 서정주가 니체로부터 받은 영향으로, 열광과 도취는 미학의 측면에서, 몸과 영원과 생성은 철학의 측면에서 다루어졌다고 본다. 영원의 문제는 한국 전통문화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고 보지만 청년 서정주가 처음 시를 쓸 무렵 니체로부터 받은 감화는 그의「비극의 탄생」이나「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서 영겁회귀(Eternal Becoming)의 성격이 잘 나타나 있다. 니체가 자신의 병마로부터 벗어나 초인 짜라투스트라의 목소리를 듣고 여기서 심화된 사색을 통하여 영원의 나라에 이르렀다면 서정주는 혼자서 걸어가는 상실의 “종로 네거리”에서 부활하여 오는 “유나”(臾娜)로부터 영원의 한 이미지를 직감적으로 느꼈고 나중에는 한국 고대사의 풍속과 인물들로부터 또는 동양의 전통으로부터 이를 배웠다고 볼 수 있다.25)
25) 윤재웅 전동(62-65p 참조)
서정주는 니체를 고스란히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생명을 긍정하고 이를 토대로 불멸의 꿈을 펼쳐 나갔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상당히 유사한 관계에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니까 그의 영원관은 그의 고열한 생명 탐구의 시절부터 이미 숙명적으로 배태된 것이다. 그의 시적 담론 속에서 영원은 탁월한 상상력에 의하여 변이되고 재생되는 데 놀랍다. 그의 어린 시절의 체험에서 상당부분 영향을 받았고 그의 시적 변용과 기억이 재생됨으로써 영원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히말라야 山사람의 운명은/이직도 옛날 그대로/하늘에 드리우고 있는/산 동아줄에 매달려 있다./그리고 이 동아줄의 마음속에는/아조 밝은 눈이 있어/초롱초롱하시다./그러니 꿈에라도/불 꺼진 잿더미에 가지 마라./날리는 잿가루에 눈이 멀면/네 동아줄 속의 눈도 멀어 뻐린다. /그리고/죽은 쥐나 죽은 여우를/오래 쳐다보지 마라./네 맑은 숨결이/죽은 그것들 숨구먹으로 /모조리 빨려 들어가 뻐리면/어떻게 하겠나?/그래서/네 하늘의 동아줄도 그만/폭삭 다 삭어서/동강 끊어져 뻐리면/그걸 어떻게 하겠나?
- 「히말라야 山사람의 運命」 전문 ([시전집2]1050p)
위의 시에서 서정주가 아홉 살 때 손위의 소녀 서운니로부터 들은“오누이 이야기”에 이미 동아줄과 재의 모티프가 드라마틱한 내용 속에 중요한 서사 요소로 등장한 것이다. 동아줄과 재는 삶과 죽음, 생명과 반생명의 상징으로 훌륭하게 기능하고 있다. 갓 아홉 살 소년이 한 마을 소녀로부터 들은 감동적인 예기가 60년 뒤 히말라야 산사람들의 삶 속으로 전이 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이야기란 이처럼 반복되고 재생됨으로써 영원의 속성을 지니고 신화 역시 반복과 순환과 재생으로서 서정주의 시는 ‘네버 엔딩 스토리(never ending story)’임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그는 시적 담론 속에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 서정주의 영원은 그래서 어느덧 신화의 품안으로 들어가 있다 할 것이다.
4. 몸의 시학의 신화학적 변용과 재생
서정주의 시 속에 용해되어 있는 생명과 영원을 몸과 신화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방식이다. 몸은 생명의 문제를, 신화는 영원의 문제를 해명하는데 있어서 유효한 개념이다. 그의 많은 시편들은 생명 현상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우주의 유기적 연관구조에 대한 자각과 수긍, 나아가서는 그것의 시적 형상화에 주력하고 있다. 몸생명에 대한 탐구는 고대 그리이스적 육체성에 그 정신적 동기를 연계시킬 수 있다. 유럽 모더니즘의 정통파였던 보들레르를 가까이 하기도 했지만 실은 서양 고대문화의 원류인 그리이스 신화의 세계를 일찍부터 배워서 조선의 토속적 정서 속에 변용시킨 최초의 주목할 만한 시인이었다. 몸의 문제와 관련하여 역동적인 성 충동, 원초적 본능, 강렬한 관능미 등의 언표言表는 몸 생명의 한 양태로서 그의 모든 시집들에서 변용 지속되어 왔다. 이는 분명히 서정주 시 세계의 특징적인 국면이라 할 수 있다.
몸은 현대 국어의 의미론적으로 볼 때 육체와는 섬세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리 어감에서 육체는 정신과 육체라는 이름으로 인간 생명의 이원론적 구성을 가능케 하는 데카르트적 사고를 반영한다. 우리가 인식한 몸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 생명의 시원적인 실존 양태이다. 따라서 몸은 육체의 의미를 훨씬 넘어선 곳에 있다. 그 몸은 인간의 생명을 이해하는 우리의 독특한 사유가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몸은 생기生氣의 한 양태로서 사유의 그릇이고 느낌의 체계이며 욕망의 역동적 복합체로서 자연과 우주에 포섭되어 있는, 부분이면서 전체이고, 전체이면서 부분인 인간생명의 특별한 형식이다.
서정주가 발견한 몸생명의 동시적 양가성을 띠고 있다는 것은 소위 말하는 몸이 정신과는 분별된, 고정된 해부학적 실체임을 명백히 거부하고 역동적 생성태임을 추인하는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역동성은 잇따르는 이미지들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 주요 시편들에는 (「문둥이」)의 “꽃처럼 붉은 우름을 밤새 울었다”. (「대낯」)의 “핫슈 먹은 듯 취해 나자빠진..../밤처럼 고요한 끌른 대 낮에/우리 둘이는 웬 몸이 달어”(「정오의 언덕」)”윙윙 그리는 불벌의 떼들/꿈과 함께 나는 가슴으로 먹었노라” 등 여러 편의 시에 몸생명을 구성하는 주요 명사들과 더불어 그 이미지들이 잘 나타나 있다.
서정주는 시속에 미만해 있는 것은 살아남고자 하는 생명의 자기 정체성을 반영하고 나아가 한 시인으로 하여금 난세를 견뎌나가게 하는 운명적 형식으로 발전하게 만들었다. 6.25전쟁의 혼란과 공포에 시달리면서 심각한 환청에 시달리고 자살을 기도한 적이 있다. 그의 시 천지유정은 1・4후퇴 바로 직전 전란의 폐허로 얼룩진 서울에서 쓰여 진 것으로 그는 이 무렵 완전히 자포자기 상태에서 될 대로 되라는 체념 속에 무한정 늘펀히 나자빠져30) 버릴 수 있는 힘만 겨우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 당시 그의 예술적 양심은 만해나 지훈처럼 강인한 지조를 택한 것이 아니라 “엣비슥히” 비켜감으로써 그 자신의 몸생명이 감내해야 하는 모든 운명을 긍정적으로 수긍하려는 타협의 자세를 견지한 것이 서정주 특유의 살아남기 방식이었을 것으로 보여 진다.
이처럼 서정주는 몸생명의 가능성을 줄기차게 탐구한 시인으로서, 혼돈과 모순의 과도한 열정으로부터 출발하여 ‘타고난 기쁨’을 발견하면서 마침내 유기적 질서와의 유대를 감득하는 경지로 나아갔다. 서정주의 시속에 나타난 변화와 지속의 원리는 인간의 몸생명 속에 금제된 자의식을 해방시키려는 성적 충동의 모습으로부터 출발하여 어쩔 수 없이 세계의 끝을 향하여 걸어가야만 하는 고독한 떠돌이 의식에 이르게 되었다. 서정주가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며 난세를 긍정하고 견뎌온 것도, 침몰의 바다에서부터 햇볕속의 부활을 꿈꾼 것도, 본질적으로 생명의 영속에 대한 경외감에서 비롯된 일대의 파노라마로 한바탕 바람처럼 20세기를 통째로 한국의 역사 위로 불어갔다. 이것이 서정주의 개성과 보편성이며 그가 일궈낸 한국문화사의 역설과 비전이 함께했다고 보는 것이다.31)
31) 윤재웅 동전 188-189p참조
5. 맺는말
미당 서정주 시력詩歷 60여 년 동안 변화와 지속의 원리로 전관하여 ‘걸어 다니는 사전’이라는 관용구가 있듯 ‘걸어 다니는 문학사’였던 그가 저 세상으로 떠나버린 완료형 시점에서 재조명해야하는 당위성에서 시도해 봤다. 아울러 서정주시문학이 한국의 역사와 전통, 동서양의 신화와 철학과 문학이 그의 시 속에 어떻게 용해되어 있는지 살펴봄으로써 서정주와 한국문학 더 나아가서 세계문학 안에서 문제성과 가능성을 밝히고자 했다
작품은 작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마치 닭과 달걀과의 관계라고나 할까. 한 작품을 부조浮彫하기 위해서는 먼저 작가를 살펴보는 것이 예사例事다. 따라서 서두에서 미당에 대해 밖으로 들어난 비판과 여론 그리고 일반적인 한국 현대문학사에 끼친 공과功過를 개관했다. 덩샤오핑(鄧小平)이 마오저등(毛澤東)에 대해 공과가 있지만 공이 더 많다고 평가했던 것처럼 서정주의 60년의 장구한 시력詩歷과 그의 1천여 편의 시작품을 통해서 겨레의 깊은 정서를 환기력 높은 시어로 노래한 부족언어의 마술사라는 평가와 그의 비판적 대상이 되는 행적으로 한국문학사에 끼친 공과가 있지만 공이 더 많다고 보는 것이다. 서정주는 우리 민족의 식민지 시대와 그 이후 오랫동안 주눅 들어있던 민족의 언어에 그 정서적 표현역량을 드높였던 공적은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한국 최고 수준의 시적 성과에 대한 옹호와 올곧은 역사의식에 의한 단죄 사이에서 참여문학으로서 유죄가 순수한 문학인에게의 관용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역사의 무대에는 수많은 모순이 뒤섞여 있다. 국가든 개인이든 지난 역사적 과오는 인정하되 그것을 교훈으로 삼아 미래지향적으로 역사의 승계성과 더불어 문학적 순수성을 유지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서정주는 이미 지하에 묻혔다. “문학은 하나가 아니다. 문학은 둘이 고 셋이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문학평론은 냉철한 객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와의 생전에 개인적인 친소나 애증을 비평적 담론을 명분으로 마치 지하에 묻힌 그를 부관참시副管斬屍하듯 폄하논박貶下論駁하는 것은 같은 문학인의 길을 가는 사람으로서 바람직한 자세는 아니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서정주와 한국 현대시문학과의 연관된 구조적 맥락에서 20세기를 마감하는 시점까지 통짜베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20세기 한국문학의 문제점과 가능성이 다양하게 펼쳐져 있는 것과 함께 세계적 보편성을 향해 열린 체계를 갖추어야 하는 당위성을 서정주 문학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미당은 한국의 신화, 전설, 역사, 민속, 정서 등을 모국어로 유려하게 재현해 놓은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이었지만. 그의 시는 그러나 한국의 문화 전통 밖에 있는 언어들로는 그 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시편들이 허다하다는 데 바로 그 한계가 있다. 서정주가 안고 있는 한국 특유의 정서와 사유체계 및 이를 형상화 하고 있는 우리 국어의 마술적 담론은 세계문학의 보편적 지평 속으로 편입하기 어려운 난점을 안고 있다는 게 세계문학으로의 한계성과 가능성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그의 세계문학으로의 가능성은 보편성 있는 주제론적 접근이다. 서정주에게서 중요한 것은 한국과 전통도 중요하지만 생명과 영원이 중요한 것이었다. 한국 현대 시문학사에서 서정주만큼 생명과 영원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룬 시인은 없다. 이 생명과 영원의 문제는 세계문학의 보편적 주제로서 핵심적 형이상학적 가치이다.
1천여 편의 서정주의 시를 떠받치고 있는 중용한 두 테제가 생명의 탐구와 영원성의 지향이다. 생명에 대한 철학적 토대는 우리 문화 전통 속에서 배태되어온 생기발랄한 삶의 양식과 짜라투스트라의 힘찬 노래가 비벼져버린 열광이었고, 영원의 문제는 동양의 전통 속에서 생래적으로 잘 감지하고 감칠맛 나는 모국어로 보여 주고 있다. 그의 대표시인「국화 옆에서」를 인생의 순환과 연기의 상징적인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외경감을 노래하고 있다. 이 외에도 「상리과원」 「입맞춤」, 「정오의 언덕에서」 「히말라야 山 사람들의 운명」 「花蛇」등에 생명파 시인으로서 몸생명의 문제를 끈질기리만치 지속적으로 사유와 느낌과 욕구의 역동적 복합관계로서의 몸의 시학을 추구하고 있다. 서정주의 주체적 테제의 보편성은 현실의 리얼리티를 넘어서 있는 곳, 즉 보다 광범위한 문화사의 흐름 속에서 인간 실존의 의의를 해석해 보려는 시인의 꿈이 있는 곳에서 찾아진다. 서정주의 시속에 용해되어 있는 생명과 영원을 몸과 신화의 개념으로 접근하여 몸은 생명의 문제를, 신화는 영원의 문제를 해명하는데 유효한 개념이다. 그의 화사집 시절 몸생명에 대한 탐구는 서양 고대문화의 원류인 그리스 신화의 세계를 한국의 토속적 정서 속에 변용시켰다. 이는 분명 서정주 시세계의 특징적인 국면이다. 시인이 가질 수 있는 예술정신으로서 한국 현대문학사는 이 보다 더 크고 야심만만한 것을 가져보지 못했다는데 그의 시를 높이 사는 것이다.
인간 서정주는 역사를 살면서 한국 근대사의 영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의 잘 못된 행적과 시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서정주가 없는 한국 현대시사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그의 시적詩的 업적은 우뚝 솟은 봉우리이다. 그는 고인이 되었지만 살아있는 한국 현대시사의 큰 획을 그은 시인으로 영원히 독자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몸생명과 영원주의는 끈질기리만치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以存策이요, 시인 자신만이 아니라 모든 민중들이 그와 같은 현실 대응만이 고난극복의 길임을 민중에게 제기하고 싶었을 것이며 “單生中心이 아닌 다음世代를 넉넉히 기르는 방책”이라고 믿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서정주가 한국문학의 세계문학으로의 진입에 문제점과 함께 그 가능성을 제공했다는데 그의 시를 높은 자리에 올려놓는 것이다.
(순수문학 평론 신인상 당선작 요약)
<고창문학 / 이행용>
서정주 친일작품, 미당시문학관에 전시
서정주 친일작품 미당시문학관에 전시한다. 전북지부 2년 동안 요구, 문학관 이사회에서 받아들여 전북지부를 중심으로 한 지역 시민단체들은 지난 2002년부터 미당시문학관 안에 서정주의 친일작품을 기존 작품들과 함께 전시할 것으로 고창군과 미당시문학관측에 요구해왔다.
[한겨레] 서정주 친일작품 미당시문학관 전시 시민단체 요구 수용‥시 6편·소설 2편 친일 논란을 빚어온 미당 서정주 시인의 시문학관에 시민단체가 친일문학이라 주장하는 작품이 전시된다. 미당시문학관 이사회는 7일 “시민단체의 요구를 받아들여 미당의 친일문학 작품 11편을 이달 말까지 문학관 안에 전시하기로 최근 결정했다”며 “방문객이 이들 작품을 직접 읽고 친일여부를 스스로 판단토록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문학관에 전시될 작품은 시민단체가 친일 작품으로 지목한 <인보의 정신> <항공일에> <송정오장송가> <스무살된 벗에게> <보도행> <경성사단 대연습 종군기> <최체부의 군속지원> <징병적령기 아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 등 시 6편, 수필 3편, 소설 2편이다.
문학관이사회 박우영 이사장은 “‘일제말 암흑기의 친일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이달 말까지 작품 사본을 전시하고, 원본도 구입하는 대로 따로 전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고창지회는 “늦었지만 친일행위를 한 시인의 작품을 후손들이 제대로 평가할 기회가 마련돼 그나마 다행”이라고 밝혔다.
미당시문학관은 2001년 11월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의 폐교되는 초등학교에 문을 열었다. 10억원을 들인 이 시문학관에는 미당의 육필 원고와 각종 사진, 운보 김기창 화백이 그린 미당 초상화 등 자료 1만여점이 있다. ☞ http://www.hani.co.kr/section-005100033/2004/05/005100033200405071858815.html ☜
[한국일보] 서정주 친일작품 고향서 전시 미당 서정주(1915~2000) 시인의 고향인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질마재에 세워진 미당시문학관에 그의 친일문학 작품이 전시된다. 미당시문학관 운영위원회는 7일 예총 고창지부에서 이사회를 열고 일부 시민단체들이 주장한 미당의 친일문학 작품 11편을 전시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전시작은 ‘시의 이야기’와 ‘징병 적령기를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 ‘스무살 된 벗에게’등 시 6편과 수필 3편, 단편소설 2편의 원본이다. 박 대표는 “문학관을 찾는 관람객과 문학인들이 이들 작품을 읽고 미당의친일 여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려고 전시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405/h2004050800053821950.htm ☜
[전북일보] "친일 여부 판단은 관람객 몫" 친일문제로 오랫동안 논란을 거듭해온 미당시문학관 운영방식이 문학관 이사회와 시민단체간 대화로 해결되었다. 미당시문학관 이사회는 6일 예총 고창지부 사무실에서 회의를 열고, 시민단체들이 줄곧 요구하는 친일문학 작품을 문학관에 전시키로 결정했다. 박우영 문학관 대표이사는 “시민단체들이 주장해온 친일 문학작품 전시와 관련된 안건을 이사회에 상정, 이달 말까지 이들 작품을 전시키로 결정했다”며 “문학관을 찾는 관람객들이나 문학인들이 이들 작품을 읽고 친일 여부를 스스로 판단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문학관에 전시될 작품은 시민단체들이 친일작품으로 지목한 시 6편, 수필 3편, 단편소설 2편 등 모두 11편이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고창지회가 제시한 친일작품은 ‘시의 이야기’를 비롯 징병적령기의 아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 인보의 정신, 스무살 된 벗에게, 항공일에, 최체부의 군속지원, 헌시, 경성사단 대연습 종군기, 보도행, 무제(시), 송정오장송가 등이다. 문학관 이사회는 시민단체가 제시한 작품 원본을 조만간 국립도서관 등에서 찾을 계획이다. 이 대표이사는 “이들 작품의 원본이 수집되면, ‘일제말 암흑기의 친일문학’이라는 제목으로 문학관에 전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손일석 지회장은 문학관 이사회의 결정에 대해 “뒤늦게나마 후세들에게 서정주 시인의 작품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게 다행”이라며 “이를 계기로 일제시대의 역사가 재조명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 방법 등 세부사항은 양측이 추후 논의할 계획이다.
한편 미당시문학관은 지난 2001년 고창군 주도로 사업비 9억7천만원의 사업비로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에 건립되었다. ■ 고창군청 누리집(홈페이지)에 소개된 미당시문학관 ☞ http://gochang.go.kr/sub05/05_infor03.html ☜ ■ 오마이뉴스 관련 기사 ☞ http://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menu=c10200&no=87529&rel_no=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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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의 친일, 예찬 시
전두환 탄신 58회 축시
- 처음으로 / 서 정 주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새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 참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잘 사는 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물가부터 바로 잡으시어 1986년을 흑자원년으로 만드셨나니 안으로는 한결 더 국방을 튼튼히 하시고 밖으로는 외교와 교역의 순치를 온 세계에 넓히어 이 나라의 국위를 모든 나라에 드날리셨나니 이 나라 젊은이들의 체력을 길러서는 86아세안 게임을 열어 일본도 이기게 하고 또 88서울올림픽을 향해 늘 꾸준히 달리게 하시고 우리 좋은 문화능력은 옛것이건 새것이건 이 나라와 세계에 떨치게 하시어 이 겨레와 인류의 박수를 받고 있나니 이렇게 두루두루 나타나는 힘이여 이 힘으로 남북대결에서 우리는 주도권을 가지고 자유 민주 통일의 앞날을 믿게 되었고 1986년 가을 남북을 두루 살리기 위한 평화의 댐 건설을 발의하시어서는 통일을 염원하는 남북 육천만 동포의 지지를 받고 있나니 이 나라가 통일하여 홍기할 발판을 이루시고 쉬임없이 진취하여 세계에 웅비하는 이 민족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서정주(1987. 1)
서정주의 친일시
일장기 앞에서
/ 서 정 주
..... 여기서 국기가 일장기를 가리킴.
- 친일에 대한 변명 '친하다'는 것은 사타구니와 사타구니가 서로 친하듯 하는 뭐 그런 것도 있어야 할 것인데 내게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으니 말씀이다 '부일파'란 말도 있긴 하지만 거기에도 나는 해당되지 않는 걸로 안다. 일본에 바짝 다붙어 사는 걸로 이익을 노리자면 끈적끈적 잘 다붙는 무얼 가졌어야 했을 것인데 나는 내가 해준 일이 싼 월급을 받은 외에 그런 끈끈한 걸로 다붙어 보려고 한 일은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때 그저 다만, 좀 구식의 표현을 하자면---- '이것은 하늘이 이 겨레에게 주는 팔자다'하는 것을 어떻게 해서라도 익히며 살아가려 했던 것이니 여기 적당한 말이려면 '종천순일파' 같은 것이 괜찮을 듯하다. 이때에 일본식으로 창씨개명까지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우리 다수 동포 속의 또 다수는 아마도 나와 의견이 같으실 듯하다.
- (팔할이 바람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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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마쓰이) 오장 송가 (松井 伍長 頌歌)
/ 서 정 주
아아 레이터만은 어데런가.
언덕도
산도
뵈이지 않는
구름만이 둥둥둥 떠서 다니는
몇 천 길의 바다런가.
아아 레이터만은
여기서 몇 만 리련가…….
귀 기울이면 들려오는
아득한 파도 소리…….
우리의 젊은 아우와 아들들이
그속에서 잠자는 아득한 파도소리…….
얼굴에 붉은 홍조를 띄우고
"갔다가 오겠습니다"
웃으며 가더니
새와 같은 비행기가 날아서 가더니
아우야 너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오장 우리의 자랑.
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 사람
인씨(印氏)의 둘째 아들 스물 한 살 먹은 사내.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가미가제 특별 공격 대원.
귀국 대원.
귀국 대원의 푸른 영혼은
살아서 벌써 우리게로 왔느니.
우리 숨쉬는 이 나라의 하늘 위에
조용히 조용히 돌아왔느니.
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
정성껏 만들어 보낸 비행기 한 채에
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간 내리는 곳.
소리 있어 벌이는 고운 꽃처럼
오히려 기쁜 몸짓하며 내리는 곳.
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
수백 척의 비행기와
대포와 폭발탄과
머리털이 샛노란 벌레 같은 병정을 싣고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려쳐서 깨었는가?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장하도다
우리의 육군 항공 오장(伍長) 마쓰이 히데오여!
너로 하여 향기로운 삼천리의 산천이여!
한결 더 짙푸르른 우리의 하늘이여!
아아 레이터만이 어데런가.
몇 천 길의 바다런가.
귀 기울이면
여기서도, 역력히 들려오는
아득한 파도소리…….
레이터만의 파도소리…….
☞ <송정 오장 송가>
-일제의 전쟁을 위해 조선의 젊은이들이 나가 죽는 일을
찬양하고, 독려하는 반민족적 배반의 글이다.
<전두환 예찬시>
-이것은 반민족친일파들의 역사에 대한 배신행위 중 작은 예들이다.
그들의 행위는 거의가 똑 같다.
항상 새로운 강자에 빌붙어 영화를 누리며 역사발전에 훼방꾼 노릇을 한다.
나는 한겨레신문과 오마이뉴스가 나오기 전에는
서정주는 그저 순수하고 순수한 순수시인인 줄로만 알았다.
거짓된 역사가 그들의 행위를 철저하게 감추어 주었기 때문이다.
반국가친일파는 근원적으로 강자에 빌붙어 항상 정의를 배반하는 그런 족들이다.
배반이 그들의 철학이다.
<문화토론방 / 딱이>
신경림 시인, "서정주는 '나쁜 시' 썼다"
신경림 시인이 고 서정주 시인을 비판했다. "젊었을 때는 좋은 시를 썼는지 몰라도, 늙어서는 나쁜 시를 쓰고 나쁜 짓을 했다"면서 비판의 화살을 날렸다.
신경림 시인은 25일 저녁 경남 진주시 진주문고(대표 여태훈) '북카페'에서 1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열린 초청강연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신경림 시인은 "시와 친해 놓으면 좋다"면서, "세상 살아가는데 아무 피해 보는 것도 없고, 친해 놓으면 남이 가지지 못한 행복을 가질 수 있다"라며, 좋은 시에 대해 이야기 했다. 신경림 시인은 "시와 대화를 하면서 읽어라"고 말했다.
"흔히 학교에서 시를 가르칠 때 '은유'가 어떻고, 상징과 비유가 어떻고 하는 것으로 시를 이해하지 말라. 시인과 대화를 한다는 생각으로 읽으면 재미있다."
그는 "막연하게 어딘가 가고 싶을 때, 누구와 이야기하고 싶을 때, 한밤 중 친구한테 전화하고 싶을 때, 낯이 익지 않은 사람과 대화를 하고 싶은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런 때 시를 읽으면 재미가 있다"고 설명.
그러면서 어릴 때 읽었던 몇 편의 시를 들추었다. 김영랑 시인의 "언덕에 바로 누워"는 청소년 때 읽었는데, 당시 김영랑 시인과 이야기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 김영랑 시인과 함께 '젊음'과 '그리움' '고독'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시인한테 내 마음을 들려준다고 생각했다는 것.
진주 출신의 이형기 시인이 생각난다며 "추상정사"를 소개했다. 풀밭에 누워 어릴 때 먼 것에 대한 막연함을 노래했던 시인데, 이 시를 읽으면서 이형기 시인과 함께 그리움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했다는 것.
신경림 시인은 "시를 분석하고 따지려 하지 말라"면서, 좋은 시는 "시를 읽으면 머리에 그림이 뚜렷하게 그려져야 한다"고 말했다. "시를 읽을 때 머리 속에 그림을 하나 그려지면 좋은 시다"며, 김종삼의 시 "묵화"를 소개했다.
또 신경림 시인은 '좋은 시'는 "시를 읽으면 시를 읽는데 끝나지 않고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삶에 눈을 뜨게 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직후 월북한 이병철 시인의 시를 소개하면서, 북한에 가서 쓴 "김일성 찬가" 등의 시를 보니 "아니더라"면서, 그가 월북하기 전에 쓴 "나막신"을 소개했다.
신경림 시인은 영국의 '워즈워드'라는 시인을 이야기하면서 "시인도 좋은 시를 쓸 때가 있고 나쁜 시를 쓸 때가 있다"면서, "그러나 나쁜 짓을 할 때 쓴 시는 다 버리고 그 일에 대해 비판할 줄 아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두환 앞에 가서 축시 써준 서정주와 비슷한 사람"이라며, 워즈워드를 비판했다. 워즈워드는 "여성교육을 반대하고, 귀족만 교육을 해야 한다 했던 사람"이라며, "철저하게 기득권 보수주의자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당시 살았던 '로버트 브라운'이란 시인은 39살까지 살면서 워즈워드를 비판했다고 소개. "브라운은 워즈워드는 80살까지 살았는데, 얼마나 오죽 했으면, '그가 모든 시인을 망신시켰다'고 하고 '시인은 빨리 죽어야 한다'고 했겠느냐"라고 소개.
신경림 시인은 그러면서 "우리나라에도 시인 중에 젊었을 때 좋은 시를 쓰다가 늙어서 나쁜 시를 쓰고, 나쁜 짓을 많이 한 시인들이 있다"고 말했다. 남한에서는 서정주 시인, 북한에서는 이병철 시인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서정주 시인의 "동천"이란 시도 감흥이 없는 시라고 비판했다. "행적이 나쁘기에 좋은 시로 읽혀지지 않는다"는 것.
그는 서정주와 이병철 시인은 '나쁜 시'를 쓰고서, 권력자로부터 대가성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서정주 시인은 "전두환 전 대통령 앞에서 '축시'를 써주고는 세계일주여행이란 대가"를, 이병철 시인은 "'김일성 찬가'라는 시를 써주고는 북한에서 편안한 생활을 보장받았던 것"이 대가성이라 설명.
올해 67살인 신경림 시인은 충주에서 태어나 56년 <문학예술>에 시 "갈대"로 등단했고, 73년 첫 시집 <농무>를 냈다. 만해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이산문학상, 단재문학상을 받았고, <새재> <달넘새> <남한강> <길> <쓰러진 자의 꿈>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뿔> 등의 시집이 있다.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1, 2권. 우리교육 간)는 '정지용에서 천상병까지' 다루었다. 조지훈 신석정 김종삼 신동엽 박용래 박봉우 임화 권태웅 이육사 오장환 김영랑 이한적 윤동주 박익환 한용운 백석 신동문 유치환 박목월 김수영 등을 다루었다.
</윤성효>
<신춘문예와노트한권 / 푸른노트>
첫댓글 좋은 자료를 공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미당에 관한 많은 논란이 있지만, 시인으로서의 서정주는 비판받아야할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과 한국 시문학에 끼친 공헌은 정당하게 평가를 받아야겠지요.
시창작론이 과목 중 제일 쉽다 여겼는데 창작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시가 아니었네요.
서정주님의 삶을 통해 씁쓸함을 조금 느끼게 됩니다.
영산홍 꽃잎에는
산이 어리고
산자락에 낮잠 든
슬픈 소실댁
소실댁 툇마루에
놓인 녹요강
산 넘어 바다는
보름 살이 때
소금 발이 쓰려서
우는 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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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제목도 알려 주실 수 있으신지요 ^^?
내가 시험을 치루고 있는 것 같네요......ㅋㅋㅋ
제목은 <영산홍(映山紅)>이고요.
어떤 사람들은 연산홍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데,
정확한 꽃이름은 영산홍입니다.
<은의>님은 바르게 알고 있네요.
시인은 글자 하나, 문법 하나도 정확하게 확인을 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시창작>방에 시와 해설을 올려놓았습니다.
하나도 빠지지 않고 일일이 챙겨주시는 세심한 배려에 오늘도 감탄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