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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4-53회
대관령-동해·영동고속도로준공비-
제왕산갈림길-헬기장-능경봉-
행운의돌탑-횡계치-샘터갈림길-
왕산골갈림길-연리목-버들골갈림길-
전망대-오목골갈림길-지르메갈림길-
골폭산-왕산제2쉼터-왕산제1쉼터-
산불피해지-955.6m산봉-맹덕골임도-
고랭지채소밭임도-송림-닭목재
20240218
1.강릉 경포호와 선자령 능선 풍경
대동강물이 풀린다는 우수(雨水) 절기를 하루 앞둔 2월 18일 백두대간 종주 산행을 떠났다. 이번 구간은 대관령 - 닭목재 구간으로 대관령에서 남진한다. 지난 2021년 5월 16일 이 구간을 산행한 뒤 2년 9개월만에 다시 이 구간을 산행한다. 그때는 봄비가 내려 운무 속에서 고적하게 사색하는 산행이었다. 그런데 이번 산행은 봄으로 가는 길목의 우수 절기 전날이므로 봄의 기운을 머금은 대자연의 맥박을 온몸으로 느끼는 산행이 될 것 같다.
신석정(辛錫正, 1907~1974) 시인은 우수(雨水) 절기를 지나며 시대와 계절 감각을 이렇게 표현했다. "마파람이 불더니만/ 화약 냄새 묻어 오는/ 마파람이 불더니만// 오늘은/ 안개 같은 보슬비가/ 한종일 내린다// 비 맞춰 들여온 군자란/ 꽃대가 밤새 치나 솟아오르고/ 소심(素心)도 자르르 윤이 흐른다// 그래!/ 지구 한구석엔/ 전쟁이 홍역보다 진하게 피어도// 우수만 지나면/ 이렇게 날이 풀리는 것을/ 난 미처 몰랐지...// 보슬비 내리는 속을/ 뉘네 집 새장에선가/ 백문조가 울고 있다."(신석정의 '우수(雨水)가 지나면' 전문) 지구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지만, 자연 현상은 안개 같은 보슬비가 내리고 군자란의 꽃대가 한 치나 솟아오르고 추위는 풀리는 것을 우수 절기가 지나서 깨닫게 된다고 표현하였다. 이 작품은, 죽음을 몰아오는 전쟁의 허무함을 인간은 왜 되풀이하는지 자연의 생명현상과 대비하여 아프게 노래한다. 우수 절기는 대자연이 약동하는 생명력이 충만한 시기이다.
옛 영동고속도로 강릉 방향 옛 대관령휴게소 자리에는 대관령을 찾은 수많은 차량들이 점거하고 수많은 탐방객들이 몰려있다. 날씨는 맑게 투명하다. 대관령 바람은 평소에 비해 미약하지만 그럼에도 썩어도 준치라는 말처럼 대관령 바람은 탐방객의 모자를 날린다. 대관령숲길 안내센터 앞을 거쳐 웅대한 동해·영동고속도로 준공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동해·영동고속도로 준공기념비 앞면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동해·영동고속도로를 준공한 업적을 찬양하는 이은상 선생의 글이 새겨져 있다. 동해·영동고속도로 대관령 구간은 도로를 확장하고 노선을 변경하여 횡계치에 터널을 뚫어 능경봉 남쪽을 통과하는 노선으로 새로이 건설되었다. 세상은 언제나 변해가는 것, 세월이 흐르면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된다. 현재의 영동고속도로는 지난 시대의 고속도로를 바탕으로 하여 새롭게 변화되었지만 이 또한 변화할 것이다.
동해·영동고속도로 준공기념비 뒤에서 강릉 시가지와 동해 바다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 풍경을 조망하는 것만으로도 이번 산행의 모든 것을 만끽한 듯, 날이 맑아서 투명한 풍경을 조망하니 마음이 활짝 열린다. 이곳에서 능경봉을 올려보고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산길은 처음부터 눈으로 덮여 있다. 눈길은 사람들의 발길로 꼭꼭 눌려서 미끌미끌하다. 제왕산 갈림길로 가는 도중 강릉 시가지와 경포호, 동해 바다가 다시 활짝 열린다. 해파랑길을 탐방할 때 강릉 시가지와 경포호를 걷던 추억이 가슴을 물들인다.이 풍경에 가슴이 달아올라 흥분하였다.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고 제왕산 갈림길로 가는 도중 결국 눈길에서 미끄러져 꽈당 넘어졌다. 아이젠을 착용하라는 경고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제왕산 갈림길에서 능경봉 방향의 산길로 들어선다. 눈은 쌓여 있고 완만한 비탈길이 햇빛에 눈부시다. 풍경은 겨울 설국이지만 햇빛으로 화창한 분위기는 충분히 봄의 기운이 넘친다.
이곳은 비박 천국인 것 같다. 수많은 비박애호가들이 좋은 자리에서 비박을 한 뒤 자리를 걷고 있다. 능경봉 아래의 헬기장에도 비박 자취가 남아 있고, 능경봉 정상에 오르니 이곳에도 한 산객이 텐트를 치고 비박하고 있다. 정상 표석은 눈에 파묻혀 그 일부만 드러나 있는 능경봉 정상에서 다시 강릉 시가지와 동해 바다를 조망한다. 능경봉에 오르는 도중 강릉 시가지와 동해 바다 풍경을 조망하며 감격하고 흥분하였지만 능경봉 정상에서의 풍경 조망이 으뜸이다. 동과 남북이 활짝 펼쳐져 가슴을 시원하게 해 주고 강릉 지역의 아름다움과 동해 바다의 일망무제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옛 지리지에 능정산(凌頂山)이라는 기록이 보이는 능경봉(陵景峰)은 강릉 시가지와 동해 바다를 조망하는 최고의 조망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산 이름이 강릉의 풍경을 조망한다는 능경봉(陵景峰)이 되었을 것도 같다.
능경봉에서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며 가야할 골폭산을 조망한다. 골폭산 줄기는 전망대봉으로 완만한 능선을 잇다가 북동쪽으로 가파르게 떨어져 샘터 갈림목으로 이어진다. 저곳에 가야 한다. 대원들은 모두 앞서 갔고 홀로 맨 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능경봉 가파른 비탈길 남쪽에 행운의 돌탑이 있다. 이곳에 올 때마다 돌 하나씩은 올려 놓았는데 이번에는 눈에 덮여 돌을 주워 올릴 엄두가 나지 않아 개인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 인류의 행복을 마음으로만 빌며 통과한다. 산길은 오르막 내리막 S자로 굽이지며 군사격장 경고판을 거쳐 철쭉 군락지로 내려선다. 앞쪽으로는 골폭산과 그 능선을 조망하고 뒤돌아보면 능경봉이 솟아 있다. 그리고 능경봉 남쪽 아래에는 대관령1터널과 대관령2터널 사이의 영동고속도로가 달린다. 위치를 확인하는 즐거움을 누리며 영동고속도로 대관령1터널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횡계치를 넘어 내려서면 샘터갈림목, 이곳에서부터 서서히 고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겨우살이들이 떡갈나무에 기생하며 푸른 잎을 반짝이고 있다. 가을에 숙주(宿主) 나무에 뿌리를 내린 겨우살이는 겨우내 수액을 빨아들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번식한다고 한다. 겨우살이를 포함한 모든 자연 생명체의 끈질긴 생명력과 번식력에 감동한다. 인간 세계에서의 생명력과 번식력 또한 자연 세계와 동일하지만 최근 대한민국 사회에서의 출생률 절벽은 사회 변화에 적응하는 인간의 눈물 겨운 의지가 작용하는 결과이기에 가슴이 막막하다.
왕산골 갈림목에서 700m 거리의 전망대 산봉까지 오르기가 힘들다. 그 힘겨움을 달래주는 것은 뒤돌아서서 동해 바다와 능경봉, 그리고 선자령 능선 조망이다. 전망대 오르는 가파른 비탈길에서 남동북쪽을 조망하며 능경봉의 당당함을 새삼 알게 되었고, 이 비탈길에서는 처음으로 동해와 능경봉을 조망하는 감격을 누렸다. 이 풍경은 사랑의 나무 연리지나무를 거쳐 버들골 갈림길 직전에서 최고의 풍경을 보여준다. 전망대에 오르면 이 풍경을 조망할 수 없고, 전망대에서는 강릉 북동쪽과 평창군 대관령면을 조망하며 아득해진다. 드디어 전망대 산봉에 올랐다.
전망대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능경봉이 일부 모습을 보여준다. 능경봉에서 대관령을 거쳐 선자령, 군시설이 있는 황병산, 노인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이 장쾌하다. 그리고 더 북쪽으로 오대산 산줄기가 보인다. 동해 바다는 해무로 인해 흐릿하다. 바로 아래는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지역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삼양목장, 양떼목장 등이 가늠된다.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2018평창동계올림픽대회 개폐막식이 열렸던 주경기장과 성화대가 있는 곳은 나뭇가지에 가려 있으며, 그 왼쪽 뒤에 대관령면 용산리 발왕산과 용평스키장이 나뭇가지 사이로 가늠된다. 전망대에서 풍경의 압권은 단연 선자령에서 황병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이다.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길게 이어진 능선과 능선에 줄지어선 풍력발전기들은 현실에서 꿈을 꾸는 듯한 환상적 풍경을 보여준다. 저 풍경 속으로 들어가 선자령 능선을 걷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만약 저 풍경 속에 있다면 이곳 풍경을 동경하지 않을까? 인간은 현재 자신이 있는 곳보다 다른 곳을 동경하는 낭만적 감성에 사로잡히기 일쑤다.
전망대에서 풍경 조망을 만끽하고 1km 거리의 골폭산으로 향한다. 의자가 설치되어 있는 쉼터의 오목골 감림길에 이른다. 오목골은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지역의 온옥동(蘊玉洞)을 이르는데 골짜기 지형이 오목하다 하여 예전에 오목골이라 불렸다고 한다. 오목골 갈림길 이정목 옆에 피나무가 서 있다. 피나무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무 줄기 구멍에 넣어져 있다. 피나무를 볼 때면 언제나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나그네> 제5곡 '보리수'가생각난다. 5곡의 원 제목은 ‘린덴바움(Lindenbaum)’, 이를 '보리수'라고 옮겨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보리수'라 부르고 있지만, 독일어 ‘린덴바움(Lindenbaum)’은 피나무를 이른다. '성문 앞 우물가에 서 있는 보리수' 가곡을 웅얼거리며 피나무를 지나간다. 피나무에서 들려오는 안식을 찾으라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골폭산 정상 200m 아래에는 지르메 갈림길이 있다. 갈림길에서 3.5km 지점에 있는 지르메 마을은 횡계리 지역에 속하는 곳으로, 지르메는 길마의 방언인 질메의 와음, '길마>질메>지르메'로 변화된 말이다. 지르메(길마)는 말이나 소의 등에 얹어 짐을 나르던 운반구를 이르는데, 마을의 지형이 지르메를 닮아 지르메 마을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지르메 갈림길에서는 평창군 대관령면 용산리 발왕산과 용평스키장이 나뭇가지 사이로 가까이 보인다. 용평스키장 추억을 떠올리며 완만한 오르막길을 오르면 곧바로 해발 1238.3m 골폭산 정상에 이른다.
골폭산 정상에는 정상표석, 고루포기산 설명안내판, 삼각점과 안내문, 이정목 등이 세워져 있다. 그런데 왜 고루포기산이라 이를까? 이 산 아래 왕산골 지역에 골폭 마을이 있었다고 하여 산 이름이 본래 골폭산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 때 골폭산을 고루포기산으로 표기하여 그 동안 고루포기산으로 내려오다가 근년에 들어서 잘못된 것을 알고 산림청에서도 산명을 골폭산으로 수정한다고 하였는데 아직까지도 그대로 고루포기산으로 안내판에 적혀 있다. 잘못된 고루포기산을 골폭산으로 빠르게 수정하였으면 좋을 것 같다.
골폭산 정상에서는 동쪽으로 능경봉과 동해 바다가 조망되고 서남쪽으로는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안반데기 마을이 가까이에 있다. 안반데기의 ‘안반’은 떡메로 반죽을 내리칠 때 쓰는 오목하고 넓은 통나무 받침판을, ‘데기’는 평평한 땅을 이르는데, 이곳이 떡메로 떡을 치는 안반처럼 우묵하면서도 널찍한 지형을 닮아서 안반데기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1965년부터 해발 1100m 고산지대의 산을 깎아 개간하고 화전민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안반데기 마을이 형성되었다. 척박한 땅이었지만 이곳에 드넓은 고랭지채소밭과 풍력발전단지가 조성되면서 어려운 삶의 노동 현장이 아름다운 풍경과 낭만적인 마을로 변화되었다. 아름다운 안반데기 마을의 숨은 작은 별과 낮은 사람들을 만나러 도시의 사람들이 안반데기를 찾아온다. 그들을 만나는 신경림 시인의 시가 가슴에 고동친다. "소백산 풍시로 별을 보러 간다// 별과 별 사이에 숨은 별들을 찾아서/ 큰 별에 가려 빛을 잃은 별들을 찾아서/ 낮아서 들리지 않는 그들 얘기를 듣기 위해서// 별과 별 사이에 숨은 사람들을 찾아서/ 평생을 터벅터벅 아무것도 찾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서/ 작아서 보이지 않는 그들 춤을 보기 위해서// 멀리서 큰 별을 우러르기만 하는 별들을 찾아서/ 그래서 슬프지도 불행하지도 않는 별들을 찾아서/ 흐려서 보이지 않는 그들 웃음을 보기 위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숨은 별들을 찾아서/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이 다 돼버린 별들을 찾아서/ 내 돌아가는 길에 동무 될 노래를 듣기 위해서// 히말라야 라다크로 별을 보러 간다"(신경림의 ‘별을 찾아서’ 전문)
대관령에서 능경봉과 전망대를 거쳐 골폭산 정상까지 한 번도 쉬지 않았다. 골폭산 정상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골폭산에서 닭목재까지는 5.9km가 남아 있다. 닭목재를 향하여 출발한다. 골폭산에서 세 번째 송전탑이 있는 언덕에서 서남쪽으로는 안반데가 마을이 바로 옆에 보이고, 동남쪽으로는 화란봉과 석두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이 언덕에서부터 왕산제2쉼터까지는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간다. 북동쪽의 능경봉과 동해 바다를, 남서쪽의 안반데기 고랭지채소밭과 풍력발전단지를 조망하면서 백두대간 능선은 남진한다. 왕산제2쉼터에서 산봉 한 곳을 넘어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닭목령 3.4km를 알리는 왕산제1쉼터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이정목 옆에 피나무 표지판이 붙어 있다. 골폭산 오르는 오목골 갈림길 이정목 옆에도 피나무가 자라고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의도적으로 피나무 옆에 이정목을 세운 것인지, 아니면 이 지역에 피나무 수종이 많은 것인지 잘 알 수 없다. 피나무를 만나니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나그네>가 가슴에 울린다.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나그네>는 빌헬름 뮐러의 시 작품 <겨울나그네>에 곡을 붙인 24곡의 가곡집이다. 원 제목은 <겨울여행>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겨울나그네>라고 번역하였다. 젊은 청춘이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는 제1곡 '밤 인사'부터 제24곡 '거리의 악사'까지 전편이 아름다운 시구와 선율이 어우러진 명곡이다. 청춘의 방황과 사랑의 열정을 노래하는 <겨울나그네> 중 제5곡 ‘린덴바움(Lindenbaum, 피나무)’은 우리나라에 '보리수'로 번역되어 음악 애호가들로부터 널리 사랑받고 있다. 왕산제1쉼터 이정목 옆에 피나무가 하늘 높이 치솟아 있다. 내 청춘의 방황과 사랑의 열정이 피나무처럼 솟아오르는 듯, 나는 '보리수' 가곡을 불렀다. "성문 앞 우물가에/ 서 있는 보리수./ 그 그늘 아래에서/ 수많은 단꿈을 꾸었네.// 수많은 사랑의 말들을/ 가지에 새겨 놓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그곳을 계속 찾았네.// 오늘도 밤이 깊도록/ 헤매고 다녔네./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눈을 감아야 했지.// 그러자 가지가 바스락거렸네./ 마치 나를 부르듯이/ 내게로 와, 친구,/ 여기서 안식을 찾아.// 차가운 바람이/ 내 얼굴을 때리네./ 모자가 날아갔어도/ 뒤돌아보지 않았네.// 그곳을 떠난 지/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아직도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네./ 여기서 안식을 찾아."(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나그네> 24곡 중 제5곡 '보리수', 장호연 옮김)
왕산제1쉼터에서 올라오면 산불 피해지역인데, 산불을 이겨낸 흔적이 남아 있는 금강소나무가 강인한 생명력으로 살아 남아 있다. "상처 투성이의 나를 보시오. 상처 없는 삶이 어디 있으리오? 상처를 안으며 살아야 하는 게 생명체의 숙명이라오." 상처 안은 늙은 금강소나무의 소리가 들려온다. 산불 피해지역 능선에서는 안반데기의 풍력발전기가 서쪽에 환히 올려보이고, 동남쪽으로는 바로 아래에 맹덕골이 내려보이고, 그 너머로 근골의 백두대간 화란봉과 석두봉 능선이 남쪽으로 내리벋고 있다. 이 능선은 전망대에서 조망한 백두대간 선자령~황병산 능선과 더불어 이번 산행의 최고의 풍경으로 꼽을 수 있다. 백구대간 마루금은 남진하다가 955.6m 산봉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맹덕골 임도로 내려가서, 그곳에서 임도를 따라 남진한다.
닭목재는 아직도 멀었는가? 가까운 것 같지만 맹덕골 임도를 잠시 걷다가 임도와 헤어져 다시 산길로 들어간다. 가파른 산비탈길을 내려가면 고랭지채소밭, 꽉 막혀 있던 풍경이 서남쪽으로 활짝 열린다. 저곳이 어디지? 산과 평야와 강이 펼쳐져 있다. 강릉과 정선이 만나는 노추산과 사달산 지역이다. 이번 산행에서 조망한 풍경의 4대 명품에 속한다고 단정한다. 아름다움의 감각은 개인의 미감에 따라 다른 것, 노추산과 사달산 지역의 산봉들과 평야 풍경이 길손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고랭지채소밭에서 임도로 내려가 임도를 따라간다. 이 임도는 맹덕골 입구에서 만난 맹덕골 임도와는 다른 임도이다. 이 새로운 임도는 왕산로의 닭목재로 이어지지만 맹덕골 임도는 닭목재 한참 남쪽에서 왕산로와 만난다. 임도에서 뒤돌아보면 고랭지채소밭의 하얀 눈밭이 어린 시절에 걷던 순결한 눈밭처럼 펼쳐져 있다. 유년의 시절을 지나 나이가 들면서 순결한 눈밭이 아닌 혼탁한 흙탕밭을 걸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순결한 눈밭 뒤로 걸어온 산길이 보인다. 이번 눈길 산행의 모든 모습이 저 풍경 속에 나타나 있다. 땅은 눈덮인 하얀 겨울의 눈길로 이어져 있고, 지상에는 모든 눈을 내버린 나무들이 나뭇가지를 펄럭이며 봄기운에 하늘거린다. 땅은 겨울이요, 하늘은 봄이다. 눈길 임도를 따라 송림을 지나니 왕산로의 닭목재가 반긴다. 닭목재 창고 지붕의 눈이 녹아 빗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겨울나그네는 사랑을 잃고 방랑하지만, 사랑의 열정으로 사랑의 봄을 맞이할 것이며 사랑의 여인을 만날 것이다.
2.산행 과정
전체 산행 거리 : 13.96km
전체 소요 시간 : 5시간 57분
대관령(大關嶺)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와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를 잇는 높이 832 m의 고개로, 영서와 영동을 나누는 분수령이기도 하다. 오른쪽에 대관령(大關嶺) 표석이 세워져 있다.
대관령(大關嶺)은 영서와 영동을 연결하는 옛 영동고속도로의 동쪽 마지막 고개로 높이는 832m이다. 대관령을 분수령으로 동쪽에 흐르는 하천은 남대천(南大川)으로서 강릉을 지나 동해로 빠지고, 서쪽에 흐르는 하천은 송천(松川)이 되어 남한강(南漢江)으로 흘러간다. 대관령의 연혁을 보면 대령(大嶺)이라 부르기도 하였으며, 동쪽 경사면의 도로는 아흔아홉구비라고 한다. 예로부터 고개가 험해서 오르내릴 때 ‘대굴대굴 크게 구르는 고개’라는 뜻의 대굴령에서 음을 빌려 대관령이 되었다. 또 다른 유래로는 영동지방으로 오는 ‘큰 관문에 있는 고개’라는 명칭에서 대관령이 유래했다고도 한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구간은 현재 지방도 제456호선 경강로라고 명명되었다. 왼쪽 옛 영동고속도로 강릉 방향 대관령휴게소는 평창군의 신재생에너지관으로 운영 중이며 풍력발전기가 돌아간다. 정면 뒤에 발왕산과 용평스키장이 보인다.
옛 영동고속도로 강릉 방향 대관령휴게소 자리에 평창 대관령 수소충전소와 그 뒤에 신재생에너지전시관이 있다. 왼쪽에 대관령 숲길 안내센터가 있다.
언덕의 동해·영동고속도로 준공비 올라가는 입구에 평창군 종합관광안내도, 대관령면 등산안내도, 강릉바우길·해파랑길·아리바우길 종합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바우길은 산길, 바닷길, 호수길 등으로 이어진 국내 유일의 가장 자연친화적인 길입니다. 바우길의 그 중 몇 구간은 장거리 고난도 산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발 전에 안내된 구간의 난이도, 소요시간, 고도표 등을 잘 확인하시고 트레킹을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바우길을 걸으실 때는 계절과 기상상황에 대응하는 등산복장과 등산화, 등산스틱 특히 비상간식, 손전등 등을 준비하시면 더욱 안전하고 쾌적한 여행길이 될 것입니다. 걸어서 지구를 진동시켜라 강릉바우길 220km, 울트라바우길 100km, 계곡바우길 20km, 아리바우길 132km, 해파랑길(강릉 구간) 80km
동해·영동고속도로 준공비는 1975년 10월 1일 건립되었으며 앞면은 박정희 전 대통령 글씨를 김경승 조각가가 새겼다. 오른쪽 앞에는 영동고속도로 현장 공사감독 기념비가 있다. "여기 영동고속도로 건설에 온갖 정성을 다 바친 현장공사 감독원들의 피땀 어린 노고를 높이 치하하여 그 이름을 새겨 후에 전하노라. 1975.10.1 한국도로공사"
정면 뒤에 능경봉이 보인다. 능경봉과 제왕산은 600m 앞 삼거리에서 갈라진다.
동해·영동고속도로 준공비 뒷면에는 이은상 선생의 우리나라 고속도로와 동해·영동고속도로 준공을 찬양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 김기승 서예가의 글씨를 김경승 조각가가 새겼다. 맨 뒤 왼쪽에 발왕산과 용평스키장이 보인다.
동해·영동고속도로 준공비 뒤쪽에서 강릉시와 동배를 조망하고 능경봉을 올려본 뒤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능경봉(陵景峰)
위치 : 평창군 대관령면과 강릉시 왕산면민에 위치, 높이 : 해발 1,123m, 특징 : 능경봉은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와 강릉시 왕산면 사이의 백두대간에 위치한 해발 1,123m의 고산이다. 백두대간은 설악산(1,708m)과 오대산(1,563m), 황병산(1,407m)을 일으키고 대관령에서 몸을 다소 낮췄다가 남쪽으로 뻗어 능경봉과 고루포기산(1,238m)을 이룬다. 산정에 영천이 있어 기우제를 지냈고 이 봉에서 맑은 날엔 울릉도가 보인다고 한다. 봄이면 진달래가 만발하고 겨울에는 무릎이 빠질 정도로 눈이 많이 쌓이는 곳이나 비교적 힘들이지 않고 눈 덮인 겨울산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대관령 줄기의 다른 산에 비해 산행 거리가 비교적 짧고 대관령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수시로 볼 수 있어 북쪽의 선자령과 함께 각광 받는 등산로이다.
전설(유래) : 관동팔경에 버금가는 횡계팔경(橫溪八景)이 옛 문헌에 전해져 오고 있다. 내용을 소개하면 刀山狂風(칼산에 휘몰아치는 매운 바람), 黃炳白雲(황병산의 높이 뜬 구름), 嶺路行人(대관령 아흔 아홉 구비 돌아 오가는 행인), 橫溪垂約(횡계리 삼정평의 고기 낚는 것), 高樓晴月(고부산에 맑게 갠 달), 曉星霽月(효성산의 밝은 달), 祥鳳領照(상봉령의 해가 지는 광경), 能政出日(능정산에 해가 돋아 오르는 광경)이다.
강릉 시가지와 동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중앙에 강릉 경포호가 확인되는데, 동해 바다는 해무에 의해 투명하지 않다.
능경봉과 제왕산 갈림길로 가는 도중 능경봉을 다시 올려본다.
이곳에서 제왕산은 대관령숲길 옛길코스 방향으로 직진하고 능경봉은 오른쪽 구름코스 방향으로 진행한다.
대관령 숲길 : 100년 소나무 숲의 숨(息)과 걸으며 쉼(休)있는 평화의 길, 자연이 주는 기운 가득한 초록 풍경과 하늘과 맞닿은 곳의 성스럽고 평화로운 풍경이 있는 인간 삶의 완충지
모든 것에는 쉼이 필요하다. 빠름과 무관심을 뒤로하고 이전과는 다른 시간을 갖는 것들이 필요하기에 우리는 그것을 쉼이라고 표현한다. 2001년 11월, 지금의 영동고속도로가 7개의 터널로 영동과 영서를 이어주며 개통하면서 1975년 가파른 산길을 꼬불꼬불 돌아 오르게 만들어져 있던 대관령길은 오랜 휴식기로 접어들었다. 대관령옛길 역시 예전에 비해 찾는 이들의 발길이 줄어들며 26년간의 바쁜 숨을 멈추고 오랜 쉼의 길로 들어선다. 그 후 2018년. 한반도 평화모드 조성을 위한 우리의 노력에 역사적인 일이 있었다. 남북공동선수단 구성 및 한반도기를 앞세운 올림픽 공동입장으로 전 세계의 이목이 평창과 강릉으로 집중되었다. 그 후 지구촌의 평화를 구현하고 평화로운 삶의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취지로 국가지명위원회에서는 평화의 도시 강원도 평창의 발왕산 정상을 세계 최초로 '평창평화봉'이라 명명하였고, 그 해 겨울 그동안 잘 보존되어왔던 명품 숲 '100년 대관령 소나무 숲'이 1922년 이후 첫 개방을 하며 지금의 대관령 숲길로 불리우게 된다.
또한, 대관령 옛길은 대관령 숲길과 함께 오랜 쉼의 기간을 마치고, 아흔아홉 고개를 넘어 세계 평화를 기원하며 평창평화봉에 오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길을 걸으며 내 자신의 숨을 고르고, 그동안의 걸어왔던 길을 뒤돌아볼 수 있는 완충지와 같은 곳이 되었다. 그리고 2020년. 대관령 숲길은 마치 평화를 상징하듯 동해의 솟아오르는 태양의 기운을 담은 평창의 발왕산 비둘기, 바다와 커피의 향기를 바람에 실어 나르는 강릉의 비둘기 두 마리가 서로의 부리를 마주 대는 형상을 갖추고서 총 102,96km 구간에 등산로, 트레킹길 휴양·치유의 숲길 조성을 마치고 대관령의 역사, 숲의 문화가 함께 어우러지며 소중한 산림문화자산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산림관광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숲길 안내소 옆 구름숲길 방향으로 진행하여 왼쪽으로 꺾어 올라간다.
용기와 열정을 갖고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구름코스 : 평화의 상징 구름도 잠시 쉬었다 가는 땅, 인간이 의지와 땀으로 일궈낸 안반데기 마을에서 은하수를 만나다.
산속에 샘이 있고 날씨가 가물어서 비를 빌면 영험함이 있다는 옛이야기로 알려진 능경봉을 지나면 산이 배추밭이고, 배추밭이 곧 산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안반데기 마을을 만나볼 수 있다. 온전히 농부의 힘으로만 일구어낸 곳이며 마을과 옥녀봉에 들어선 풍력 발전기의 크기와 위엄에 스스로 고개가 숙여지는 곳이다. 해가 저물고 세상의 모두가 잠들 시간, 잠시 나와 머리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수 많은 별들의 향연과 은하수를 관측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고루포기산으로 들어서는 길목에서는 매년 가을 엉겅퀴, 쑥부쟁이, 구절초와 같은 야생화가 한가로이 피어 평화로운 산길의 아름다움을 더하는 곳이다. 여름날의 폭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짙은 그늘이 있는 곳, 길을 걷다 보면 양 옆으로 있는 금강송이 활엽수와 한데 어우러진 곳, 산자락에 고인 구름이 출렁이는 광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는 표현이 적합한 코스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인간의 위대한 의지와 땀이 만들어낸 기적이라 말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선물, 국가 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된 대관령 특수조림지가 있다. 질서정연하게 간격을 맞춘 85만 그루의 전나무, 잣나무, 낙엽송과 1km의 야생화 숲길이 지나는 이들에게 나긋나긋 속삭이는 곳이다.
1976년 시작된 이곳의 대역사는 선자령 일대의 초속 28.3m의 강한 바람과 영하 30도의 겨울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묘목 한 그루마다 지주목과 통발, 방풍막과 방풍책을 동원해 뿌리를 내리게 했다. 수십 년 세월이 흐른 지금, 아무것도 없던 텅 빈 땅은 이제 꿈을 주는 숲으로 변했다. 강릉 쪽을 향해서만 뻗은 나뭇가지와 3-4m 사이에서 성장을 멈춘 나무들은 인간의 노력과 정성으로 개척한 땅 위에 살아남기 위해 그곳에 조림된 나무들이 스스로를 제어한 기이한 풍경이기도 하다. 거친 자연을 일구어낸 인간의 힘, 자연과 더불어 스스로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제철마다 아름다움을 뽐내는 야생식물들의 자태는 마치 오랫동안 풀고 숨겨두었던 보석을 선물해주는 듯한, 계절 따라 시간 따라 변하는 아름다운 색과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코스이다.
대관령휴게소 1.3km, 능경봉 1.1km 지점이다. 이곳에서 비박하는 산객들이 많다.
헬기장에도 비박한 산객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헬기장에서 능경봉을 올려본다.
능경봉 정상에는 정상표석, 이정목, 등산로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정상 표석 옆에서 한 산객이 비박하고있다. 옛 지리지에는 능경봉(陵景峰)을 능정산(凌頂山)이라고도 이른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대관령 1.7km, 고루포기산 4.8km 지점이다.
강릉 시가지가 펼쳐져 있고 동해 바다가 아득히 멀고 넓다. 경포호가 중앙 왼쪽에 확인된다. 바로 앞 산봉이 제왕산이다.
제왕산(帝王山)은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와 왕산면 왕산리에 있는 높이 840m의 산으로 대관령 동쪽 낙맥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로 강릉의 진산이다. 고려 말 우왕(禑왕)이 이곳에 와서 성을 쌓고 피난한 곳이라 하는데 지금도 축대 쌓은 돌과 기왓장이 발견된다. 제왕산은 산세가 완만하며 참나무 숲과 낙엽송이 우거진 수풀이 곳곳에 있어 맑은 공기를 마시며 마음의 여유를 누리며 오를 수 있다. 산 주변에는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져 있으며 벌개미취와 구절초 등의 야생화들이 관광객을 맞이해주고 있다. 또한, 아름다운 암석과 함께 소나무가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시킨다.(대한민국구석구석)
능경봉(陵景峰) 정상 표석이 눈에 파묻혀 일부만 드러나 있다.
옛 대관령휴게소, 능경봉, 행운의 돌탑, 샘터, 전망대, 골폭산, 왕산제2쉼터, 왕산제1쉼터, 닭목령으로 산행한다.
능경봉에서 행운의 돌탑으로 내려가는 급경사에서 골폭산과 그 능선을 조망한다.
우리 선조들은 험한 산길을 지날 때마다 길에 흩어진 돌들을 하나씩 주워 한 곳에 쌓아 길을 닦고, 자연스럽게 돌탑을 만들어 여로의 안녕과 복을 빌며 마음으로나마 큰 위안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의 풍습을 오늘에 되살려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백두대간인 이곳을 등산하는 모든 이들의 안녕과 행운을 기원하고자 여기에 행운의 돌탑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곳을 지나실 때마다 돌탑에 정성을 담아 돌 하나를 쌓으시고 백두대간의 힘찬 정기를 받아 건강과 행운을 나눌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능경봉 급경사 비탈길 내리막 출구이며 오르막 입구에 행운의 돌탑이 세워져 있다.
이 지역은 군사격장으로 폭발물 및 불발탄에 의한 사고위험 지역이므로 민간인 출입을 금지합니다. 무단출입으로 사고 발생시 책임을 지지 않으며,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 제24조에 따라 처벌됩니다.(1년 이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 벌금) 폭발물 의심 물체 발견시 폭발위험이 있으므로 절대 접근 또는 접촉하지 말고 신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연락처: 033-335-3113)
중앙 왼쪽에 풍력발전기 날개가 보이는 곳이 골폭산 정상이고, 중앙 오른쪽 산봉에 전망대가 있다.
행운의 돌탑 0.6km, 샘터갈림길 1.8km 지점이다. 골폭산능선이 남쪽에서 손짓한다.
뒤쪽의 둥그스름한 산봉이 능경봉이다. 능경봉에서 행운의 돌탑을 지나 앞쪽 산봉을 넘어 내려왔다.
철쭉군락지에서 영동고속도로 대관령1터널 위 횡계치로 진행한다. 중앙에 골폭산, 오른쪽 산봉에 전망대가 있다.
왼쪽에 능경봉, 아래 중앙에 영동고속도로 대관령2터널이 보인다. 맨 오른쪽은 대관령1터널이다.
횡계치에 영동고속도로 대관령1터널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횡계치 아래에 대관령1터널이 뚫려 있다.
고속국도 제50호선인 영동고속도로 횡계~강릉간 대관령 구간 21.9km의 신규확장 및 개선공사로 인해 평상시 40분, 눈이 올 때 3시간 이상 걸렸던 구간이 15분으로 단축되었다. 대관령의 고질적인 폭설에 대비하기 위해 염수약액 살포장치 등과 같은 액체 분사식 첨단 제설시스템을 설치하여 건설되었으며, 겨울이면 되풀이되는 폭설로 인한 교통문제를 해결하였다. 현지점 : 대관령1터널, 행정구역 : 시점▶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종점▶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 터널연장 : 1800m
행운의 돌탑 2.4km, 전망대 1.6km 지점이다. 오른쪽은 왕산골로 내려가는 길이다.
샘터 0.4km, 전망대 1.2km 지점이다. 중앙 뒤에 골폭산이 어림된다.
오른쪽 나뭇가지에 가린 산봉에 전망대가 있으며, 왼쪽 소나무 줄기 뒤에 골폭산 정상이 어림된다. 이곳에서 안부로 내려갔다가 오른쪽으로 살며시 돌아 오른쪽 산봉의 전망대로 올라간다.
샘터 0.8km, 전망대 0.7km 지점. 오른쪽은 2km 거리의 왕산골로 내려가는 길. 이곳부터 전망대까지 된비탈길이다.
전망대로 오르는 도중 뒤돌아서서 능경봉과 동해 바다를 조망하였다.
연리지나무 설명안내판 뒤쪽에 연리목이 있다.
두 나무가 맞닿아 오래 있으면 가지가 하나로 합쳐지고 맞닿은 두 나무의 결이 서로 통해 세포가 서로 합쳐 하나가 될 때 연리지(連理枝)라고 합니다. 오랜 시간동안 껍질이 벗겨지고 찢겨지는 고통을 겪으면서 처음에는 가지 하나가 붙게 됩니다. 두 가지가 하나되고 그리고 또 뿌리가 붙어서 하나가 되고 마침내 두 나무는 한 나무(연리목)가 됩니다.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묘한 삶을 살아 가는 연리지. 그렇게 둘이지만 한 몸처럼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연리지의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옛부터 연리지 나무를 금슬 좋은 부부의 사랑과 화목한 가족간의 사랑, 가슴 저미는 연인들의 사랑 그리고 오랜 친구와의 우정을 말할 때 연리 나무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오른쪽은 2km 거리의 버들골로 내려가는 길이다. 전망대는 직진하여 올라간다.
능경봉에서 이곳까지 걸어온 길이 가늠된다. 맨 왼쪽 뒤에 선자령, 능경봉 뒤쪽에 동해 바다가 파랗다.
전망대 산봉이 바로 앞쪽에 있다. 전망대 산봉 왼쪽으로 백두대간 골폭산 능선이 이어진다.
중앙 왼쪽 풍력발전기 날개가 보이는 곳이 골폭산 정상, 맨 오른쪽 전망대 산봉에서 골폭산 정상까지 1km 거리이다.
전망뎈이 보이는 전망대 산봉이 머리 위에 있다.
능경봉 4.2km, 골폭산 1km 지점이다. 골폭산이 앞의 떡갈나무 줄기들 뒤의 중앙에 있다.
전망대에서 오른쪽의 능경봉, 중앙의 대관령, 맨 왼쪽의 선자령을 조망한다. 동해 바다는 해무로 인해 흐릿하다.
평창군 대관령면 지역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삼양목장, 양떼목장 등이 가늠된다. 오른쪽에 선자령, 왼쪽 앞에 군시설이 보이는 황병산, 그 오른쪽 뒤에 소황병산이 확인된다. 맨 왼쪽은 오대산 산줄기일 것이다.
대관령면은 신재생에너지 시대 사업을 알리는 풍력발전단지와 삼양목장, 양떼목장 등이 영동고속도로 우측에 위치하며, 좌측은 통일신라시대 명주(지금의 강릉)에 속하였으나 행정변화를 거듭하여 1931년 평창군으로 이관되었다.(설명안내판)
아래는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2018평창동계올림픽대회 개폐막식이 열렸던 주경기장과 성화대가 있는 곳은 왼쪽 나뭇가지에 가려 있다. 맨 오른쪽 뒤에 소황병산, 그 왼쪽 앞에 황병산, 중앙 뒤쪽에 오대산을 가늠한다.
평창군 대관령면 용산리 발왕산과 용평스키장 방향을 조망한다.
전망대에서 황병산과 선자령을 배경하여 기념한다.
전망대에서 조망을 마치고 내려와서 이정목과 전망대를 뒤돌아본다. 뒤돌아서서 1km 거리의 골폭산으로 향한다.
골폭산 0.5km 지점의 오목골 갈림길 이정목 옆에 피나무가 서 있다. 오른쪽은 1.6km 거리의 오목골로 내려가는 길이다.
골폭산 0.2km 지점. 오른쪽 길은 대관령숲길 구름코스 '자작나무 조림지' 가는 길로, 지르메 3.5km, 화약골 9km 거리이다.
발왕산이 중앙 왼쪽에 솟아 있으며 스키장 슬로프들이 보인다.
골폭산이 바로 앞에 보인다. 이 산 아래 왕산골 지역에 골폭 마을이 있었다고 하여 산 이름이 본래 골폭산이었다고 한다.
골폭산 정상으로 오른다. 골폭산이 일제시대 고루포기산으로 변했다고 하여 본래 이름인 골폭산으로 불러야 한다고 한다.
해발 1238.3m 골폭산 정상에는 정상표석, 고루포기산 설명안내판, 삼각점과 안내문, 이정목 등이 세워져 있다.
고루포기산은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과 강릉시 왕산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북서쪽 사면은 완경사를 이루고 있어 한때 대관령스키장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며, 특히 부근의 횡계리 일대는 이른바 대관령면이라 일컫는 평탄면을 이루고 있어, 우리나라 지형발달사 연구에 학술적 증거로 채택되기도 했다. 고루포기산 남쪽 피덕령 지역은 생태적으로 안정적이던 산림지를 벌채하여 경작지로 조성한 곳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고랭지농업지대이기도 하다. 고랭지농업지대의 경우 산림이 제거되고 경작지로 변환되는 백두대간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훼손지이다. 산에 고로쇠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예부터 비슷한 말로 고루포기산으로 불려졌다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오나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없다.(설명안내판)
골폭산 정상 이정목과 능경봉, 동해 바다를 조망한다. 능경봉 4.8km, 왕산제2쉼터 1.3km, 닭목재 5.9km 지점이다.
해발 1238.3m 고루포기산 정상표석과 함께 피덕령 안반데기를 배경하여 기념한다.
골폭산 남쪽 아래에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안반데기 마을과 고랭지채소밭이 있다.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4리에 있는 마을 안반데기는 고루포기산에서 내려온 줄기에 있는 마을의 모습이 떡메로 떡쌀을 칠 때 밑에 받치는 안반처럼 평평하게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안반데기 마을은 1965년을 전후하여 고루포기 산줄기를 개척하여 주민들이 정착하면서 마을이 생겼다. 안반데기 마을은 고루포기산[1238m] 줄기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고원지대에 있고, 마을 뒤에는 피득령이 있는데, 이곳에서 피득령을 넘으면 평창군 대관령면 수하리가 되고, 산 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가면 배나들이[대기3리]가 되고, 내를 따라 내려가면 곰자리와 맹떼기가 된다. 안반데기 마을에는 화전민의 삶과 애환이 담긴 생활상을 보여주는 안반데기 사료전시관, 귀틀집을 복원한 숙박시설인 운유촌, 화전민들이 밭을 일구던 개척정신과 애환을 생각할 수 있는 멍에전망대 등이 있다. 마을은 고지대 특성상 봄은 늦게 오고, 겨울은 일찍 시작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골폭산에서부터 세 번째 송전탑 직전의 평탄한 능선에서 점심식사 중인 백두대간 종주 선두대원들을 만났다.
20여 분 동안 점심식사를 마치고 조금 내려오면 급경사 내리막길이 나온다. 오른쪽으로는 안반데기 고랭지배추밭이 있다.
능경봉과 그 뒤에 동해 바다가 아득히 펼쳐져 있다. 능경봉 오른쪽 아래에 영동고속도로가 달리고 있다.
고루포기산 남쪽에 안반데기 고랭지채소밭과 풍력발전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왼쪽 뒤는 노추산과 사달산 방향이다.
안반데기 마을은 해발 1100m 고산지대로 떡메로 떡을 치는 안반처럼 우묵하면서도 널찍한 지형이 있어 안반데기라고 불리게 되었다. 산이 배추밭이고, 배추밭이 곧 산이다. ‘안반’은 떡메로 반죽을 내리칠 때 쓰는 오목하고 넓은 통나무 받침판을, ‘데기’는 평평한 땅을 말한다. 경사가 가팔라서 기계농이 불가능하므로 농부의 힘이 고스란히 들어간 곳이다. 안반데기는 1965년부터 산을 깎아 개간하고 화전민들이 정착하며 형성됐다. 화전민은 수십미터 아래로 굴러떨어질 수도 있는 가파른 비탈에서 곡괭이와 삽만으로 밭을 일구어 냈다. 1995년에는 대를 이어 밭을 갈아 낸 28가구 남짓의 안반데기 주민들이 정식으로 매입하면서 실질적인 소유주가 됐다. 척박한 땅은 약 200만㎡에 이르는 풍요로운 밭으로 변모했다. 한낱 드넓은 배추밭으로만 여겨졌던 안반데기의 풍경이 노동의 신성함으로 다가온다.(강릉문화관광)
백두대간 능선은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벋어가는 산줄기이다. 다시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왕산제2쉼터에 이른다.
골폭산 1.3km, 왕산제1쉼터 1.7km 지점이다. 위 산봉을 넘어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왕산제2쉼터에서 올라와 산봉을 내려가다가 가야할 백두대간 능선을 바라본다. 백두대간은 오른쪽 산봉 뒤쪽으로 이어지며 오른쪽 산봉 아래에 왕산제1쉼터가 있다.
중앙 뒤쪽에 골폭산이 어림된다. 왼쪽 뒤는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안반데기 고랭지채소밭이다.
가파른 산비탈 아래의 왕산제1쉼터를 거쳐 중앙의 백두대간 산줄기를 이어간다.
왼쪽 뒤에 백두대간 화란봉이 보이고, 백두대간 능선은 오른쪽 뒤에서 왼쪽으로 이어져 닭목령으로 가라앉는다.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왕산제2쉼터 1.7km, 닭목령 3.4km를 알리는 왕산제1쉼터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이정목 옆에 피나무 표지판이 붙어 있다. 골폭산 오르는 오목골 갈림길 이정목 옆에도 피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슈베르트의 가곡 <겨울나그네> 5곡 '린덴바움'이 피나무라고 한다.
왕산제1쉼터 이정목 옆의 피나무를 뒤돌아본다. 피나무가 하늘 높이 치솟아 있다. "성문 앞 우물 곁에 서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단꿈을 꾸었네/ 가지에 희망의 말 새기어 놓고/ 기쁘나 슬플 때나 찾아온 나무 밑" 피나무를 보리수로 번역하였다.
왕산제1쉼터 이정목에서 올라오면 의자들이 설치된 쉼터가 있고 오른쪽에 '산불을 이겨낸 낙락장송' 설명안내판이 있다.
시기를 알 수 없지만 산불 피해를 입었던 금강소나무! 산불로 검게 탄 목질부가 아직도 남아있지만 여전히 원기 왕성한 푸르름을 유지, 고난을 이겨낸 고목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능선에서 안반데기 고랭지채소밭과 풍력발전기들을 조망한다.
안반데기는 우리나라 고랭지 채소단지로는 최고 넓은 곳이라서 그런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주차장에서 10여분 산자락을 오르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곧장 가면 고루포기산 구간이고 오른편이 운유길이다. 안반데기는 봄에는 푸르른 호밀초원이 광활하게 펼쳐지고 가을에는 하늘과 맞닿은 고산만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 있으며 여름에는 감자꽃과 고랭지 채소로 가파른 산턱을 뒤덮으며 겨울에는 눈덮인 산의 정취가 있다. 농사를 위한 경작을 하고 있지만 그 모습이 하나의 관광지 역할을 할 만큼 아름답고 경이롭다. 안반데기에는 농사뿐 아니라 관광을 즐길 수 있는 숙박 시설과 그 외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어 찾는 이들이 많다. 숙박시설은 운유점, 운유우, 운유택으로 나뉘어 있고 홈페이지를 보면 원하는 곳을 선택 할 수 있다.(강릉문화관광)
백두대간 닭목령에서 남동쪽에 있는 화란봉(왼쪽)이 중앙 오른쪽의 석두봉으로 벋어내린다. 백두대간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벋어내려 중앙 왼쪽 목장 입구의 임도로 이어진다. 아래 지역을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 맹덕골이라 이르는 듯.
중앙 왼쪽 맨 뒤에 골폭산이 확인된다. 백두대간은 오른쪽 산봉으로 이어져 이곳으로 벋어내린다.
중앙 오른쪽 앞에 백두대간 화란봉, 맨 뒤에 동해 바다가 펼쳐져 있다. 왼쪽 지역을 왕산리 맹덕골이라 이르는 듯.
왕산제1쉼터 1.1km, 닭목령 2.3km 지점의 이정목을 통과한다.
닭목령 2.3km 지점의 이정목을 통과하면 리본들이 달려 있는 산봉인데 아마도 955.6m 산봉인 것 같다.
해발 955.6m 산봉에서 멀리 동해 바다를 조망한다. 오른쪽 산봉은 해발 1052.6m 서득봉, 아래는 왕산리 맹덕골인 듯.
왼쪽은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 맹덕골, 오른쪽은 백두대간에서 살짝 비켜나 있는 화란봉, 뒤에 동해 바다가 보인다.
중앙 맨 뒤에 골폭산이 가늠된다. 백두대간 줄기는 중앙 오른쪽 산봉에서 그 왼쪽 앞 산봉으로 이어져 남진한다. 아래는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 맹덕골 한우목장이다.
해발 955.6m 산봉에서 내려오면 맹덕골 한우목장과 이어지는 맹덕골 임도에 이른다.
왼쪽에 임도로 내려왔다. 백두대간은 한우목장 뒤 능선을 따라 왼쪽으로 이어져 이곳으로 내려온다.
맹덕골 임도에서 남쪽 노추산과 사달산 방향을 조망한다. 임도는 아래쪽으로 이어지는데 이 임도를 계속 따라가면 안 된다.
맹덕골 임도에서 앞의 산줄기로 이어간다. 오른쪽 맹덕골 임도로 내려가면 닭목령과 함참 멀어진 곳에 이른다.
맹덕골 임도에서 산줄기로 들어와 급경사 내리막길에서 왼쪽 뒤의 화란봉을 조망한다. 백두대간 닭목령에서 올라가면 왼쪽 뒤 화란봉 삼거리에 이른다. 화란봉은 백두대간에서 살짝 비켜나 있지만 대간 종주대원들은 화란봉 삼거리에서 화란봉과 화란봉하늘전망대까지 다녀오는 것이 통상적이다.
맹덕골 임도에서 산줄기로 들어와 내려오면 맹덕골 임도와는 다른, 닭목령과 이어지는 임도와 만난다. 그곳에서 남쪽의 노추산과 사달산을 조망한다.
백두대간 마루금은 정면의 구릉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 같은데 오른쪽 임도를 따라간다.
송림이 나오면 닭목령은 지척이다. 송림 옆 임도를 따라 계속 이어간다.
닭목령 서낭당 옆의 농산물간이집하장 건물이 보인다. 왼쪽으로 돌아서 나가면 농산물간이집하장 옆 닭목령 표석에 이른다.
왼쪽 뒤에 화란봉이 보인다.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곧바로 닭목령에 이른다.
지방도 제415호선 왕산로의 닭목령에 이른다. 닭목령은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와 대기리의 경계를 이룬다. 건너편은 대기리, 이쪽은 왕산리이다. 앞에 닭목령 표석과 서낭당, 전국최고 고랭지채소&감자채종포 재배단지 대기리 홍보판이 세워져 있다.
백두대간 닭목령 표석 오른쪽에 백두대간 등산로 안내도, 그 뒤에 닭목령 서낭당이 있다. 표석 뒷면에 닭목령의 지명 유래가 적혀 있다. '닭목령의 지명유래'를 옮긴다.
백두대간의 해발 700m 닭목령은 북으로 해발 832m 대관령과 남으로 해발 680m 삽당령으로 이어지는 중간지점의 고개 마루이다. 강릉에서 왕산골을 지나 계항동(鷄項洞)으로 넘나드는 이 고개 마루를 예전에는 닭목이, 닭목재라 하였고, 요즈음은 닭목령이라 불린다. 이곳으로부터 남쪽으로 2.3km 거리에 있는 문바우(門岩)까지를 계항동 즉 닭목마을이라 부른다. 닭목의 한자어는 계항(鷄項)으로 풍수지리설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즉 이곳의 산세(山勢)는 천상(天上)에서 산다는 금계(金鷄)가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인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고, 이 고개 마루는 금계의 목덜미에 해당한다고 하여 계항 즉 닭목이다. 백두대간은 국토의 등줄기로서 우리 민족 생명력의 근원을 이루는 곳이므로 아끼고 보호하는 마음을 함께 하고자 이곳에 표지석을 세운다.
닭목재의 백두대간 남쪽 나들목에 닭목령 이정목과 닭목재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고개의 모양이 닭의 목처럼 길게 생겼다고 하여 닭목재라고 불리며, 이 고개를 이용해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와 정선군 북면 구절리로 이동할 수 있다. 닭목재를 한자화해서 계항치(鷄項峙)라고도 한다. 또한, 풍수가들은 이곳의 자세를 '금계포란형'의 길지로 보았는데, 이 부근이 닭의 목에 해당하기 때문에 닭목이라고 불렸다. 주변에도 닭목이라는 지명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고갯마루 북쪽의 왕산리엔 닭목골, 남쪽의 대기리엔 닭목이가 있다. 대기리에서 서쪽으로 나아가면 매우 높고 험한 산자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서 닭목재를 넘어가는 통로는 대관령에 비해서 중요하게 이용되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최근 길이 정비되면서 강릉의 안반데기지역에서 재배되는 고랭지 농산물 수송에 도움을 주고 있다.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방향으로 왕산로가 달린다. 전국최고 고랭지채소&감자채종포 재배단지 대기리 홍보판이 세워져 있고, 뒤쪽에 노추산과 사달산 등의 산봉들이 이어져 있다.
왕산로는 왕산면 고단리에서 닭목령을 거쳐 왕산리 사이를 잇는 약 27㎞의 긴 도로이다. 왕산면 고단리·대기리·왕산리 산간 지역을 지나며, 백두대간의 준령을 넘는 도로로 급경사 커브길이 많다. 도로가 속한 행정 구역인 왕산면을 지나는 도로라고 하여 왕산로라 이름 붙였다. 지방도 415호선과 지방도 410호선 구간으로 개설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왼쪽은 백두대간 북쪽 나들목이고 건너편 위에 백두대간 남쪽 나들목이 있다. 닭목령 표석이 왕산로 양쪽에 두 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