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의 수태극 외에는 너무도 평범했던 금학산
1. 일자 : 2013. 6. 29
(토)
2.
장소 : 금학산(654m)
3.
행로 및 시간
[노일분교(10:00, 금학산 2.7km) -> 등산안내도(10:12) -> 밧줄(11:00) -> 정상(11:20, 관광농원 6.6km) -> (점심 -11:40) -> (515봉) -> 이정표(12:11, 관광농원 3.54km) -> (516봉) -> 479봉(12:31) -> 503봉(12:46) -> 528봉(12:50) -> 금학산 관광농원(12:20) -> 관광농원
입구(12:30)]
4.
동행 : 홀로, 기분좋은산행
<
금학산 산행을 준비하며 >
마른 장마가 두 주째 계속되고 있다. 주말에
비가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예약을 미루다, 정원 마감이 임박해 오자 주간 일기예보를 확인하고서야
입금을 하고 번호를 배정받았다. 결국은 만 차가 될 것이기에 혼자 좌석은 애당초 물 건너 갔건만 선택의
기회가 줄었다는 사실에 조금은 마음이 상한다. 인간의 마음은 참 간사하다.
금학산은 홍천
팔봉산에서 정동쪽으로 4.5km 떨어져 있는, 홍천강변 노일리를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산이다. 정상에 서면 탁 트인 시원한 조망과
또아리를 틀며 구비구비 흐르는 홍천강과 봉미산, 장락산이 시야에 들어 온다.
홍천은 산이 많은 고장이다. 군내에 가리산, 공작산, 팔봉산, 백우산이
위치해 있고, 양양과 인접한 곳에 가칠봉, 응봉산, 방태산이 자리잡고 있다. 백우산과 가칠봉만 낯설고 언급한 나머지
산은 오른 경험이 있다. 하나 같이 산세가 험한 대신 풍광이 좋은 산이었다. 금학산은 예전에는 교통편이 좋지 않은 오지라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최근
접근성이 좋아져 찾는 이가 많아졌다 한다.
산행기점은 노일분교이다. 2시간 만에 정상에 오른 후 동쪽
능선을 따라 3시간 내려오면 되는 단순한 팔(八)자 형 코스이다. 지도를 살펴보니 하산 길에 봉우리 표식이 많다. 비고는 크지 않아도 오르내림이 잦다는 뜻이다. 무더위를 감안하면
체력 안배를 잘 해야겠다.
<
희망사항
>
산악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금학산 정상에서 굽어보는 풍경 사진을 한참이나 들여다 본다. 홍천강이 뱀의 형상을 하며 흐르고, 물 길에 갇힌 마을이 섬의 형상을 하고 있다. 강과 마을 뒤로 이웃
산의 능선도 흐른다. 잘 찍은 사진에 멋진 풍광이 그대로 드러난다. 흔치
않다는 수(水) 태극(太極)을 지형을 목격하는 행운이 변덕스러운 날씨로 인해 날아가지 않았으면 하고 바래 본다.
산 이름이 왠지 낯설지 않아 옛 기록을 뒤적이다 보니, 2010년 설
명절에 철원에 소재한 동명의 산을 올랐던 경험이 있다. 6시간 30분
동안 눈 속에 푹 파묻힌 기억이 난다. 예기치 않은 힘겨운 산행에 많은 기억이 희미해 졌지만, 그날 잠시 눈 길을 함께 걷게 된 할머니께 이 추위에 혼자 산에 온 연유를 묻자‘난 젊은 사람이 명절에 왜 혼자 온지가 더 궁금하오’라고 되받아 치시던
당당한 표정만은 생생하다. 낯선 환경에서 같은 길을 걷는 이에게, 특히
그 길이 힘든 길이라면 동지애가 솟음은 당연한 일이다. 오늘 본의 아니게 내 선택으로 인해 짝궁이 된
이에게 반갑게 인사를 해야겠다. 동지애를 위해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오늘 산행이 또 다른 금학산을 다녀온 후 산행일기에 썼던 등산의 매력을 되새기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첫째, 등산은 그 오르내림의
대상이 무궁무진하다.
둘째, 등산은 언제나 낯선
만남을 주선하고 내게 잔잔한 흥분과 깊은 감동을 준다.
셋째, 진정한 산꾼은 남을
의식하지 않는다.
넷째, 등산에는 조금씩 완성시켜
가는 프로세스가 있다.
다섯째, 등산은 혼자서도 둘이서도
수십, 수 백 명도 같이 할 수 있는 운동이다.
여섯째, 등산은 정해진 룰이
없으니 경쟁이 무의미한 운동이다.
일곱째, 등산의 들날머리는
대개가 관광명소다.
여덟째, 등산을 하면 계절의
따라 변하는 산하의 아름다움을 몸소 체험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산행 전 준비사항을 기록한 것이다. 실제 산행은 이와는 달랐다.)
<
홍천 가는 길에
>
7시 30분 정시에 버스에 올랐다. 옆에는 민소매에 건장한 사내가 타고 있다. 여성스러운 닉네임과는
영 다른 이미지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수면 모드로 들어간다. 첫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나쁜 버릇이 작동한다.
차 창 밖, 춘천 가는 길의 풍경은 온통 안개다. 한 낮 더위가 걱정된다. 10시 무렵 들머리에 도착한다. 노일리는 강가에 있으리라 상상했는데 평범한 시골 마을이다. 쏟아지는
햇살을 안고 길을 나선다.
<
노일리에서 정상
>
길 가 옆 밭에 자주색 꽃이
탐스럽게 피어 있다. 가까이 다가 가니 굵은 가지가 달려 있다. 가지
꽃이 이리 이쁜 줄 예전엔 몰랐다. 그 옆으로는 옥수수의 노란 수술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풍요로운 들녘 풍경에 내 마음도 덩달아 풍성해진다.
등산안내도 표지판을 지나 숲으로 들어간다. 숲의 서늘한 기운이 나를 반긴다.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된다. 초반은 걷기 좋은 숲 길이 대세다. 무더위를 감안하면 고마운 길이다.
출발 40분쯤 되었을까, 길이
‘산’ 값을 한다. 비탈이
이어진다. 풍광이 없는 오름 길이 계속된다. 11시 무렵
잠시 하늘이 트이는가 싶더니 밧줄이 나타난다. 지도에 된비알 표시가 있던 곳이다. 길은 높이치고는 제법 긴 오르막이 계속되더니 정상 100미터를 남기고
순해진다.
< 옥수수 밭 / 까치수영 >
오매불망 기대하던 금학산
정상, 사진에서 본 익숙한 전망대 넘어 수태극의 풍경이 펼쳐진다. 옅은
연무로 기대했던 만큼 선명하지 못해 아쉽다. 강한 햇살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이내 점심식사 자리를 찾아
일행들은 흩어진다. 숲 그늘 한 켠에 자리를 잡는다. 정상에서
본 풍광을 조금 더 보고 왔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들었다. 산에서도 급한 성질은 여전하다. ㅋㅋ
< 금학산 정상에서 >
<
정상에서 관광농원 >
식사를 하며 지도를 본다. 길게 잡아도 2시간 후면 날머리에 도착할 수 있을 듯하다. 되도록 천천히 걸어, 너무 일찍 내려가 긴 기다림에 안절부절 하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기산의 고객 대다수는 장년들이다. Pennpenn 이란 필명을 가진 분의
모습도 보인다. 그 분이 쓴 산행 에세이를 읽어서 친숙한 얼굴이다. 작년
가을 아미산 등산 때도 함께 했는데 그때보다 연로해 보인다. 세월을 느낀다.
걷기에 그만인 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정상 내리막 이후 길게 평지 길이
계속된다. 이렇게 날머리까지 길이 이어지면 너무 싱거운데 하고 방정맞은 생각을 할 무렵, 앞에 작은 산이 보인다. 그러면 그렇지, 하하!
이정표가 보인다. 관광농원 4.5km,
3.5km 비고는 크지 않으나 비탈을 오르는 것은 역시 고역이다. 지도는 정직했다. 딱 표시된 거리만큼 걷자 새로운 봉우리가 나타났다. 잠시 전 평지
길에 대한 아쉬움은 쑥 들어간다. 이제 어서 이 길이 끝났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479봉 부근에서 개활지가 생겨 나무들이 높게 자라는 모습이 보인다. 어인
연유인지는 몰라도 이제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숲이 형성되어 있다. 하늘을 본다. 나무들이 끝 간데 없이 솟구치다 하늘을 향해 원을 그리고 있다. 파란과
녹색의 푸름의 대결이 멋지다.
< 금학산의 숲 >
503봉을 거쳐 528봉 갈림에
섰다. 좌우 모두 관광농원으로 향하는 길이다. 좌측 길을
선택한다. 일행 한 명이 길을 지나다, 자신의 등산지식을
뽐내는 말들을 쏟아낸다. 나도 산 길에 대해서는 방구깨나 뀐다고 자부하지만, 산에서 현학적인 모습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한 두 마디 짧게 대답을
하자 그분은 혼자 길을 내려간다. 나의 무뚝뚝함이 결례로 비춰지기 않았나 모르겠다.
1시가 조금 지나 관광농원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큰 규모의 위락시설이다. 일행들은 벌써 반은 내려 온 듯하다. 화장실에서 경쟁적으로 몸을
씻고 있다. 무더위와 땀에 절은 몸을 씻는 것은 좋지만, 화장실에서까지
이래야 하는 생각에 짜증이 난다. 땀 냄새가 그리 싫으면 무예 산을 오른다 말인가? 환경이 바뀌면 인간은 한 없이 편해지고 싶은 이기적인 족속인가 보다.
<
에필로그
>
다시
도로 길을 걸어 내려온다. 천천히 걸어도 산행은 3시간 30분만에 끝났다. 정상 전 30여분
된비알을 오른 것을 제외하고는 크게 힘든 산은 아니었다. 반면 풍광도 정상에서만 조망되는 홍천강 주변의
전경을 제외하고는 인상적인 곳은 없었다. 금학산은 그저 그런 평범한 산으로 기억될 것이다.
예정된 귀경 버스 출발 시간은 3시, 작은 술판이 벌어진다. 일부는
불을 피우고 음식도 조리한다. 웃음 소리가 커지고 술판은 질펀해진다.
내가 질색하는 행위들이다. 나는 일찍 귀가하여 남은 주말을 가족과 함께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지만, 등산의 목적이 하산 후 술판인 이들도 여럿 있나 보다. 개인의
선호야 다를 수 있다지만 타인 시간에 대한 배려가 아쉽다.
한여름 산행은 여러모로 불편함이 많다. 무더위가 등산의 매력을 싹 날려버린다. 더위와 땀, 산행 후의 꿉꿉한 몸의 느낌, 귀경 버스의 고약한 냄새. 생각만으로도 느낌이 안 좋다. 내키지 않으면 쉬어 가는 것도 방법이다. 다음 주는 내내 비 예보가 계속된다. 장마 비를 핑계로 산행을 한
주 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