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하나 읽었다. ‘강 건너 등불’이다. 정독했다. 모처럼 한 정독이다. 고 임영조 시인의 시는 요새 들어서 내가 부쩍 시선 주는 시다. 스쳐가는 시선이 아니라 잠기는 시선이다.
“방배동 호프집 '피카소'에 가면 -그렇게도 다정했던 그 때 그 사람 언제라도 눈 감으면 보이는 얼굴 거나한 시인 김명인이 무반주로 나온다 상기된 왕방울눈 지그시 감고 유독 검은 뿔테 안경만 환하게 뜬 채 저 홀로 심각하고 애절한 십팔번을 뽑는다 - 밤하늘에 별처럼 수많은 사람 중에 아아아 당신만을 잊지 못할까? 솔로로 어둠 켜는 소야곡 그대 추억의 강은 어찌 그리 깊은가 방배동의 밤이 뽕짝조로 출렁거리고 사당동의 별들이 덩달아 박자 맞추는 그대 한이 언제 그리 컸던가 강물은 슬픔이 깊을수록 푸르지 등불은 어둡고 외로워야 빛나고 - 사무치게 그리워서 강변에 서면 눈물 속에 깜박이는 강 건너 등불 그랬구나, 우리는 저마다 세월이 흘러가도 내보이기 무엇한 그리움을 하나씩 품고 있구나 남모를 아픔 같은 한 같은 강 건너 등불을 갖고 있구나” (임영조 / 강 건너 등불2)
방배동 방배역, 글 모임 있는 날, 못 가다가 벼르고 별러 올라가게 되면, 2호선 지하철 방배역에 슬그머니 난 내린다. 죄 지은 일 없다. 눈치볼 일도 없다. 그래도 난 슬그머니다. 쭝국짐 '만다린', 나설 때 펑펑 눈 쏟아져 함박눈 이루던 지난 겨울, 따라간 그 호프집이 ‘피카소’였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설마 피카소였을라고. 내 차례가 되어 노래를 불렀다. ‘강 건너 등불’은 아니었다.
사당동 사당역, 해질 무렵 거리에 나가 차를 마시면 가슴에 아름다운 냇물이 흐를까. 베고니아 화분이 놓인 우체국 계단에 서면 어딘가에 엽서를 쓰던 여자의 고운 손이 창 너머로 보일까. 올라온 사당역 4번 출구, 빠져 나와 둘러봐도 우체국은 안 보인다. 아이들 집 향해 올라가는 길, 골목이 아름답다. 거리가 정답다. 걸을 만큼 세 뼘인 길이 고맙다. 쎄울의 거리여서 그런 것일까. ‘네버 포겟 오마이 러버 서울’ 길이다.
강 건너 등불, “사무치게 그리워서 강변에 서면 눈물 속에 깜박이는 강 건너 등불” 진주 남강 생각난다. 망경북동 진주 남강 유수역 강변 터널, 그 때 그 시절의 강 건너 등불이 생각난다. 생각나고 생각난다. 세월이 흘러가도 내보이기 무엇한 그리움 하나... 남모를 아픔 같은, 또 恨 같은 강 건너 등불... (망경북동 진주 남강 유수역 못 미친 곳, 망경산 철탑 아래 강변터널 / 강 건너 등불의 진주 남강 주변도 많이 변했다. 강변이 너무 정비되었다. 강 건너 저쪽도 또 이쪽도 어둠을 밝히는 불이 너무 밝다. )
첫댓글 안녕하세요, 김우남입니다. 이렇게저렇게 다른 입들을 통해 말씀 듣고 인사드립니다. 내일쯤 악양에서 뵐 수 있으려나 싶은데... 다름 아니라 '무제다담'에 올리신 세 사람의 집(사진 포함)을 스크랩할 수 없을까요? 다음 카페 '김우남의 글모퉁이' 한 켠에 올려주시면 더할 나위없이 감사하겠지만요.^^ 언제 인연 닿으면 차 한 잔 나눌 수 있겠죠?
인연은 아마도 필수 일 테고...
해돋는 남쪽님, 반갑습니다. 23일 화요일 밤에 이 글을 봤습니다. 악양 동매리에 내려가면 인터넷 선이 끊깁니다. / 요샌 제가 김우남님의 집 앞을 김우남님보다 더 자주 지나 다니게 되는 입장인 셈이군요. 사람의(나의) 앞 일은 참 모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동매리 그 <매강재> 입석 앞을 지속적으로 지나 다니게 될 줄은 꿈에서도 생각 못해 봤거든요. 좋은 곳을 고향으로 가지셨습니다.
햇살편지님, 한 사람의 연줄 갈래는 몇이나 되는 것일까요.
하긴 시가 이래 쉬워야제~! 헌데 너무 쉽나~? ^ ^ 길뫼님 덕택에 잘 읽고 갑니다~!
pinks님 임영조 시인의 시어가 주는 편안함에 감탄하곤 합니다. 잘 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