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회근 선생은 「우리가 부처님을 배우면서 어떠한 회의(懷疑 : 의심을 품음)도 갖고 있지 않을까요. 부처님을 절대로 믿고 있을까요. 염불을 수십 년 동안 하면 서방극락에 왕생할 수 있을까요. 감히 확신하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정진하면서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공부하고 예불 드리고 채식하고 또 이를 회향합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이르러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정말 공덕이 있을까.’ 주문을 외고 경을 읽고 하면 정말 업(業)을 소멸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팔지보살에 이르지 않으면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팔지 이전의 보살들도 퇴전(退轉)할 수 있는데 하물며 우리 범부(凡夫)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일반 사람들이 부처님을 배우는 것은 모두 장사 심리입니다. 며칠 염불하고 나면 의심을 품기 시작합니다. 한편으로는 염불하면서 한편으로는 의심하고, 또 돈도 벌고 싶어 하고, 또 밑질까 걱정합니다.」 라고 하였다.
* 남회근 선생은 「불학(佛學)은 기본적으로 육도윤회(六道輪廻)와 삼세인과(三世因果) 위에 건립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수 십 년간의 제 경험에 의하면, 불법을 배우고 도를 배우는 사람들 중에 진정으로 육도윤회를 믿는 사람은 몇 사람 되지 않습니다. 삼세인과를 믿는 사람은 이보다 더 적었고, 그것도 절대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육도윤회와 삼세인과를 믿지 않으니, 선(禪)이나 밀종, 정토종에 대한 배움이 아무리 훌륭해도 근본적으로 기초가 잘못된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 불교의 수많은 수행법 중에서, 정토법문은 유달리 믿음을 강조한다. 철오선사는 「불법이라는 큰 바다는 믿음이라야 능히 들어갈 수 있으며, 정토법문에서는 믿음이 더욱 중요하다.」 라고 하였고, 《화엄경》은 「믿음은 도(道)의 근원이며 모든 공덕의 어머니이다.」 라고 하여, 믿음의 중요성을 천명하였다.
마명보살은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을 지어 대승(大乘)에 대한 믿음을 불러일으켰고, 중국 선종(禪宗)의 제3대 조사(祖師)인 승찬(僧璨)선사는 ‘신심(信心)에 대해 명심(銘心)해야 할 글’ 이라는 뜻의 〈신심명(信心銘)〉을 지어 영원토록 선문(禪門)의 보전(寶典)이 되게 했으며, 《화엄경》에 따르면, 보살이 성불하기까지 51계위(階位)를 거치는데, 그 맨 처음이 십신(十信)이라 하여 믿음으로 시작하고 있고, 번뇌를 누르고 성도(聖道)로 이끄는 다섯 가지 근원인 오근(五根), 즉 신근(信根)/ 진근(進根)/ 염근(念根)/ 정근(定根)/ 혜근(慧根)과, 십일선법[十一善法 : 유식학에서 현세(現世) ∙ 당세(當世)를 이롭게 하는 온갖 유위(有爲)의 선(善)], 즉 신(信)/ 정진(正進)/ 참(慙)/ 괴(愧)/ 무탐(無貪)/ 무진(無瞋)/ 무치(無癡)/ 경안(輕安)/ 불방일(不放逸)/ 행사(行捨)/ 불해(不害)에서도 역시 믿음이 맨 앞에 위치하고 있다.
또, 우리들이 불교를 배우는 순서이자, 불교의 수행원리인 신해수증(信解修證)에서도 역시 믿음이이 출발점이며, 경전의 성립요건인 육성취(六成就), 즉 신(信)/ 문(聞)/ 시(時)/ 주(主)/ 처(處)/ 중(衆)에서도 믿음이 맨 앞에 위치하고 있다.
* 달마대사는 「만약 신심(信心)이 있다면, 이 사람은 부처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다. 다만 업(業)이 무거운 고로 믿지 않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 선도화상은 「자기 자신은 번뇌를 구족(具足)한 범부로서 선근(善根)이 아주 짧고 적어서 삼계를 유전(流轉)하며 화택(火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줄로 알고 있다가, 이제야 아미타불의 본래 서원(誓願)과 그 명호를 열 번 이상 아니 단 한번만 이라도 부르면 결정코 정토에 왕생함을 알고는 조금도 의심하는 생각 없이 믿는 진실한 마음을 심신(深信)이라 한다.」 고 하였다.
* 보리심은 대승(大乘)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문(門)이다. 왜냐하면 ‘일체중생을 구하기 위해서 부처님의 깨달음을 구하겠습니다.’ 라는 보리심이 없으면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리심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먼저 평등심(平等心)을 키워야 한다. 평등심이 없으면 친구나 친척에 대해서는 애착하는 마음, 적에 대해서는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에 보리심을 일으킬 수 없다. 일체중생은 행복을 누리고,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나와 남이 똑 같기 때문이다.
그 다음 ‘이 일체중생이 행복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자애심(慈愛心)을 일으켜야 한다. 자애심을 일으킬 수 있다면 ‘일체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비민심(悲民心 : 불쌍하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생긴다. 자애심과 비민심을 바탕으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일체중생을 위해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겠다는 열망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이것이 보리심이다.(이상은 티베트 불교를 전공한 동국대학교 양승규 교수의 글을 인용한 것입니다.)
* 대덕께서 「우리는 사람의 몸을 얻어 불법을 듣게 되었으며, 또한 대승불법의 인연과 복덕을 닦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먼저 자기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불법을 배워 수행하는 것을 무엇을 위함입니까. 해탈을 위한 것입니까. 성불을 위한 것입니까. 만약 당신이 진심으로 해탈을 원하고 부처를 이루려고 한다면, 마땅히 중생을 이롭게 하려는 무거운 책임을 짊어져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는 자세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육도윤회에 떨어져 끝없는 고난 가운데서 고통을 받고 있는 지옥, 아귀, 축생계의 중생들은 모두 숙세의 우리 부모와 자녀들이란 것을. 만약 당신이 현세의 자기 부모와 자녀가 지옥 속에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안다면 그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전생의 부모와 금생의 부모는 무슨 구별이 있습니까. 전생의 자녀와 금생의 자녀가 무슨 구별이 있습니까. 비유하면, 당신에게 작년에 태어난 아들과 금년에 태어난 아들은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단지 시간상의 차이만 있을 따름입니다.
우리는 지금 금생의 자녀에 대하여 그렇게 사랑하고 집착하면서 숙세(宿世)의 자녀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왜 그러합니까. 여전히 육도윤회를 이해하지 못하고 인과를 깊이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런 법문, 저런 법문을 닦고 있는데, 사실 모두 진정으로 불교의 문(門)에 들어오지 못했으며, 가장 기본적인 육도윤회와 삼세인과의 도리조차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먼저 윤회를 이해하고 인과를 깊이 믿은 연후에 다시 나아가 불법을 배워야 비로소 진정으로 불법을 깨달을 수 있으며, 그전에는 불가능합니다.
아마 여러분은 표면상으로는 불교에 대한 지식들을 장악하고 있겠지만, 그러나 이러한 가장 기본적인 이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당신이 얻게 되는 것은 모두 진정한 불법이 아닙니다. 진정한 불법은 바로 육도윤회와 삼세인과의 이념으로부터 세워지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진심으로 불법을 수행하여 해탈, 성불하려고 생각한다면, 기타 높고 깊은 법문을 닦는 것은 잠시 중요하지 않으며, 공부는 우선 기초를 다지면서 한걸음씩 닦아나가야 최후에는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취할 수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믿음은 도(道)의 근원이며 모든 공덕의 어머니이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고맙습니다...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_()_ _()_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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