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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프너 친구들과의 잊을 수 없는 추억
나는 비교적 쉽게 홈스테이를 신청하게 되었다. 다른 친구들은 몇 번씩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서 승낙을 얻어낸 경우도 많지만, 나는 고민해보지도 않고 당연히 하겠다고 결정을 내렸고 부모님도 승낙하셨다. 추첨을 통해 뽑는 방식이라 조금 걱정도 됐으나, "에이, 설마 안 되기야 하겠어?"하고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신청자가 20 명가량 되는 것이었다. . "잘못하면 떨어질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불안해서 학원 쉬는 시간에 엄마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 봤다. 엄마는 뽑혔다면서 'Julia'라는 여자아이라고 했다.
그 뒤부터 헤프너 동아리(전부터 Hefner 친구들과 펜팔하던..)학생들이 모여 헤프너실을 꾸미기 시작했다. 청소부터 시작해서 쓸데없는 물건은 버리고, 쓸고 닦고.
한 박스가 넘게 쌓인 사진들을 연도별로 정리해서 좋은 것들은 추려내어 액자에 끼우고, 헤프너 방문단이 오는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옴에 따라 시험 날짜도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시험 때문에 헤프너 준비를 포기했더라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열심히 헤프너실 청소를 하며 들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협의회실로 오라는 영어선생님의 전갈을 받았다. '혹시 홈스테이 하는데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일까?'하는 걱정을 안고 협의회실에 도착했다. 선생님은 한참 뜸을 들이시더니 충격적인 사실을 말해주셨다. 우리 집에 홈스테이 할 아이가 여자가 아닌 남자아이라는 것이었다. 이름도 'Julia'가 아니라 Julian이고. 남자라니 조금 부담도 됐지만 그 애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품위 있고, 정중하고, 예의바르고... ... 그 애 이름에서는 그런 이미지가 풍기는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 충격 발표 이후부터는 조금씩 더 바빠지기 시작했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자습시간이나 재량시간 등에는 교과담임 선생님의 허락을 맡아 헤프너실 단장 작업에 본격적으로 들어갔다. 특히 수년간 찍은 사진 몇 박스를 정리하는 일은 며칠을 잡아먹은 큰 작업이었다. 청소가 끝난 후부터는 아무래도 교실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헤프너실을 어떻게 Tea Party장으로 탈바꿈 시켜야 할지가 주로 안건이 되었다. 여러 가지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왔으나 최영호 선생님이 '너무 지저분하게 하지 마라'고 반대하셔서 모두 무산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헤프너! 실 꾸미기 컨셉은 '깔끔하게'가 되었다. 흰 식탁보가 씌워지고 책상 한 가운데에는 꽃병에 꽃 한 송이씩 꽃아 놓고. 책장 꼭대기에는 우리 동아리 이름인 'Hello! Hefner!'가 큰 글씨로 붙여지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애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김홍근, 김재일 미술선생님도 큰 글씨를 프린트 하는 것, 색지 등 준비물..그런 점에서 도움을 주셨는데 슬기와 빛나가 헤프너실과 미술실을 왔다 갔다 하며 열심히 했다.
그 때 은유와 나는 수업이 있어서 함께하지 못했는데 1∼2시간 수업을 듣고 와
보니 멋지게 완성이 되어 있어 놀랐고 그만큼 고생했을 애들한테 미안하기도 했다. 어쨌든 더운 여름날, 선풍기 바람 하나로 숨 막히는 더위를 달래며 우리 헤프너 동아리 학생들은 7월 12일 헤프너 학생들과의 만남만을 바라보고 열심히 준비 했었다.힘들기도 했지만 동아리 친구들끼리 처음에는 서로 얼굴도 모르던 사이였는데 준비하는 동안 벌써 서먹함이 사라지고 같은 목표를 가진 친구들이기에 공동체의식이 생겼다. 헤프너 학생들을 기다리며 우리에게 펼쳐질 꿈같은 날들을 기대하며, 우리는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준비해나갔다.
처음 홈스테이에 붙을 때부터 떨리기 시작한 마음은 12일과 13일이 되자 극에 달할 지경이었다. 학교에서도 피켓을 준비했다고 했지만 12일에는 학원 갔다 와서 잠잘 시간까지 쪼개 개인적으로도 정성들여 피켓을 하나 더 만들었다. 그것을 만들며 조금이나마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싶었고, 내일이면 헤프너 방문단이 올 텐데..뭔가 해 주고 싶었다. 또 한국의 첫인상을 좋게 해줘야 13일, 드디어 시작이다! 3교시까지 수업을 했는데 수업내용이 하나도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고 초조하고 떨리기만 했다.
그리고 점심을 먹은 뒤 드디어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를 타고 가며 어떤 애들일까 상상도 해보고 무슨 말을 해야 빨리 친해질까 고민도 했다. 인천공항에서 저녁을 먹고 입국 플랫폼에서 헤프너 방문단을 맞기로 되었는데 시간이 좀 지체되어 혹시나 헤프너 친구들과의 첫 만남을 놓치는 게 아닌가? 너무 불안했었다. 그래서 식당부터 2층까지 거의 달리다시피 갔다. 다행히 헤프너 방문단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한시름 놓는 가 했더니 플랫폼을 잘못 찾았다는 게 아닌가? 우리는 왼쪽 끝 출구에서 기다렸는데 걔네가 나올 곳은 오른쪽 끝에 있는 출구였다. 인천공항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정신없이 뛰는데 얼마나 걱정되고 초조하던지...학교 체력장 때 달리기 하던 것보다 더 열심히, 더 빨리 뛰었던 것 같다. 마침내 우리는 진짜 출구에 도착했고 그 애들을 별 탈 없이 맞을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 생각보다 항도학생들과 헤프너 학생들은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마치 오랜 친구처럼 얘기도 하고 그 애들이 가져온 미국 잡지를 보며 놀기도 했다. 어떤 아이들은 미국 동전을 항도 학생들에게 기념으로 한 개씩 돌리기까지 했다. 나는 Jacky, Julian, Megan, Jeniffer에게 받았는데 Megan은 처음부터 무척 활발했고 수다스러웠다. 그렇지만 내 host friend인 Julian은 피곤해서 그런지 별 말을 안했다. 낯을 가림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애들은 잘만 노는데..'얘는 원래 이렇게 무뚝뚝한가? 이러다가 일주일 동안 친해지지도 못하고 말도 몇 번 못하면 어쩌나?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내가 나도 내성적이고 낯가림을 하는 성격인데도 불구하고 앞 뒤 볼 것 없이 아무 말이나 말을 걸고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뭔가 어색한 분위기는 없어지지를 않았다. 얼마동안 얘기를 하다가 Julian이 너무 피곤해보여서 피곤하면 자라고 했다. 그래서 목포까지 거의 자면서 왔는데 많이 피곤한 것 같았다. 자는 애를 깨워서 말할 수도 없고..너무 안타까웠다. 빨리 친해지고 많이 얘기하고 싶은데 말이다. 첫날은 Julian이 너무 피곤해하는 바람에 기대 이하였다. 다른 애들은 자기 host friend랑 벌써 다 친해졌던데..다급? ? 마음마저 들었다. 하지만 나중에 헤프너 사업에 참여할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자면. 너무 나처럼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애들은 24 시간가량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한다. 그러니 당연히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많이 지쳐있을 것이고..휴식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Julian의 경우도 다음날에는 활기를 되찾았고 말도 많이 했다. 어제까지의 일은 완전히 잊은 듯이 말이다. 또 그 애들이 한국에 관심이 있고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으니 온 게 아니겠는가? 한국이 싫고 목포항도여중이 싫다면 일부러 돈 들여가며 먼 한국에 왔을 리 없다. 그러니 걔네도 아마 우리랑 친해지고 싶고 빨리 적응하고 싶을 것이다. 좀 어색해하고 그러더라도 이해를 해 주고 계속 친절하게 대해 준다면 그 애들도 아마 곧 마음을 열 것이다.
Julian은 집에 오는 길에 아빠 차에서도 졸더니 집에 와서 몇 가지 선물을 주고는 샤워를 한 뒤 곧장 자러 들어갔다. 선물은 미국의 상징이라고 ?수 있는 보안관(카우보이)모양의 장식용 향 촛불 여러 개와 손수건, 'Welcome'이라고 쓰여 있는 문에 거는 장식이었다. 나는 밤에도 함께 얘기하고 재밌게 놀 것을 기대했는데. 바로 들어가 자버리니 좀 실망했다. 하지만 너무 피곤해 보여서 좀 더 놀자고 할 수 도 없었다. 어쨌든 첫날은 초조함과 흥분,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7일에 대한 기대감 속에서 그렇게 지나갔다.
헤프너 친구들의 학교 방문!
환영식에서는 사물놀이 축하 공연이 있었는데 헤프너 학생들은 매우 신기해하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끝날 때 헤프너 학생대표 인사말에서 Megan이 "Drum was really great"라고 칭찬을 했을 정도였다. 환영식이 끝나고 헤프너 실에 있는데 쉬는 시간마다 학생들이 몰려와 핸드폰을 들이대며 사진을 찍고 소리를 지르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엔 헤프너실 문을 걸어 잠그고 있게 되었는데 그래도 계속 유리문으로 발돋움해 들여다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헤프너 애들과 복도를 돌아다닐라치면 애들이 사진 찍고 만지고 하는 통에 그 빽빽한 틈을 뚫고 나가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거의 인기 연예인에게 하듯 헤프너 애들을 대하는 우리 학교 학생들을 보고 헤프너 학생들은 신기해하기까지 했다. 그런 것을 피곤해하는 애들도 있었지만 Julian은 학생들과 사진도 잘 찍고 소리를 지르는 학생들에게는 손을 흔들어주기도 하며 이해심 있게 행동했다. 학교 오는 길에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걱정하고 미리 "우리 학교가 여학교라 남학생이 오면 신기해하고 좋아한다. 내 생각엔 아마 우리 학교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고 그럴 것 같은데 좋아서 그러는 거니까 ! 너무 놀라지 마라"고 얘기해 줬지만 혹시나 싫어할까봐 걱정을 했는데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점심을 먹고 5교시에는 기가 실습을 하는 3학년 수업에 들어가서 선배들과 함께 만두를 빚었다. Julian은 요령을 가르쳐주니 금세 따라 해서 여자들보다 더 예쁘게 만두를 빚었다. 6교시에는 체육수업에 들어갔는데 헤프너 학생들도, 항도 학생들도 모두 너무 피곤해 있어서 직접 수업에 참여하지는 않고 구경하는 걸로 만족했다. 점심시간과 5,6교시를 지나면서 나는 점점 Julian과 어색함이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어제까지는 우리 사이에 뭔가 어색한 벽이 있는 느낌이었는데 그 애들을 보기 위해 몰려든 수많은 학생들 틈을 함께 다니다 보니 서로 괜히 신경 쓰던 것도 없어지고 스스럼없이 편하게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집에 와서는 하루 종일 애들 틈을 뚫고 다니고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신경이 곤두서 있어서 그런지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Julian 역시 피곤해보였다. 간식을 먹고 나는 자러 들어갔다. 너무 피곤해서 쓰러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TV를 보고 있던 Julian 에게 피곤하면 방에 가서 자도 된다고, 난 지금 너무 피곤해서 먼저 잔다고 말을 해주고 들어갔다. 학원을 가기 위해 깨 보니 Julian도 내가 들어간 후 얼마 안 있어 자러 들어갔다고 한다. 내가 학원을 갔다 온 뒤에도 걔는 계속 자고 있었다. 이날 마침 엄마가 저녁을 한국식으로 만들어 주셨는데 졸린다고 저녁을 안 먹고 자겠다는 것이다. 엄마가 겨우 깨워서 함께 저녁을 먹었는데 그 와중에도 밥을 몇 숟갈 먹다말고 꾸벅꾸벅 졸았다. 그리고는 이제 다시 들어가 자도 되냐고 물어보고 밥을 거의 다 남긴 채 자버렸다.
그래도 이날은 Julian과 가까워지고 편해져서 좋았다. 앞으로도 잘 지낼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보인다고나 할까....
제주도에 가게 되었다. 배를 타고 갔는데 3등실 한 칸(몇 백 명 용..)을 통째로 빌려 항도, 헤프너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다 함께 타고 가게 되었다. 나는 그 편이 훨씬 좋았다. 3 등 실이라 해도 한 칸을 통째로 빌렸기 때문에 넓고 편했고, 모두 함께 있으니까 같이 어울려 놀기도 좋았기 때문이다. Nathan과 Julian이 저쪽에서 카드게임을 하는데 예명이가 그것을 배워서 같이 하고 있었다. 그래서 혜미랑 가서 함께 구경을 했다. 나도 같이 하고 싶었으나 카드 알파벳 순서를 몰라 그것부터 외워야 했다. 그 게임 이름은 '스피드게임'이었는데 원카드와 비슷했다. 하지만 이름답게 엄청 빨리빨리 해야 하는 게임이었다.
금방 도착할 줄 알고 제주도에서 점심을 먹기로 예약해뒀는데 바다 사정이 안 좋은지 항해 시간이 1∼2시간이나 늘어나 배 안에서 떡, 과자 등으로 간식을 때우면서 버텼다. 게임도 하고 갑판에서 사진도 찍고 하던 애들이 항해 시간이 늘어나니 지루하고 피곤해져서 축 처져있었다. 그런데 이쯤 해서 갑자기 Julian이 깜짝 쇼를 벌였다. 처음엔 요가 자세처럼 앉아서 두 손으로 몸을 지탱해 공중에 앉아있듯 살짝 떠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신기해하며 박수를 치자 갑자기 선실 한가운데에서 아무것도 지탱하지 않고 물구나무를 서는 게 아닌가! 너무너무 놀랐다. 전에 목포 올 때 버스에서 자기는 gymnastic(체조)를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바로 이걸 말했던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 애들은 Julian에게 모여들어 사진을 찍고 놀라움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얼른 가서 사진을 찍었다. Julian은 1분도 훨씬 넘도록 그 자세로 있었다. 깜짝 쇼가 끝나고 나는 혜미와 함께 Jeniffer에게 카드게임을 배우면서 놀았다. 길고 긴 항해 끝에 드디어 제주국제여객항에 도착하고 음식점에 가서 점심으로 삼계탕을 먹었다. 그리고 삼성혈에 갔는데 거기서 본 애니메이션이 영어로 삼성혈의 전설을 설명해 주어서 정말 고마웠다. 나는 한국어일 줄 알고 걱정했는데 말이다. 그리고 나서는 놀이공원에 갔다. 나는 무서운 걸 싫어해서 다른 건 안 타고 타가디스코만 타기로 했다. 타가디스코는 항도, 헤프너 학생들 대부분이 탔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타다가 한번 바닥에 떨어지기도 했는데 일어나기가 쉽지 않아 창피했다.
놀이공원에서 돌아와 숙소에 들어갔다. 헤프너 학생들과 항도 학생들이 방을 따로 쓴다는 사실이 좀 섭섭했다. 그러나 씻고 나서 곧 헤프너 학생들이 놀러 와서 다시 좋아졌다. Megan과 Jeniffer 빼고는 전부 다 놀러왔는데 Megan과 Jeniffer는 부모님께 이메일을 보내러 pc방에 가서 좀 이따 올 거라고 했다. 좁은 방에 10명 가까이 사람이 들어차 있으니 좀 답답하고 북적대긴 했으나 재밌었다.
나는 미국 애들 하면 예의 없고, 제멋대로고, 담배피고 심지어 마약까지 하는 그런 애! 들만 있는 줄 알았다. 그렇지만 이번에 온 헤프너 애들을 보면 다 착하고 예의바른 애들이었다. 어른들한테도 공손하고 항상 정중하게 행동했다. Julian만 봐도 평소에 차를 타고 학교나 어디 갈 일이 있으면 꼭 문을 열어주며 내가 탈 때까지 문을 잡아 주었다.
우리 나라 남학생들에겐 상상도 못할 낯선 행동이라 좀 당황하고 놀라웠다. 내가 대접하는 입장인데 도리어 손님(Julian)에게 이렇게 대접을 받아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정말 본받을 점이 많은 친절하고 착한 애들이었다.
한창 신나게 놀다가 10시가 되자 헤프너 학생들은 시계를 보고는 이제 자러 가야겠다고 돌아갔다. 그런걸 보며 시간관념이 정말 철저한 애들이란 걸 느꼈다. 우리는 수련회, 수학여행 그런 특별한 때는 새벽 2∼3시까지 놀고 날을 새기도 하는데 말이다. 그런 것에 익숙한 우리는 그 애들이 뜻밖에 10시밖에 안 됐는데 돌아가서 좀 아쉽기도 했다. 아쉽지만..내일을 기약하며 제주도에서 첫날이 그렇게 갔다.
둘쨋날 이 날은 제주도 여행 중 가장 기대가 되는 날이었다. 해수욕장에 가는 코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해수욕장의 이름은 중문 해수욕장이었다. 탈의실에 갔는데 걔네들은 함께 옷 갈아입는 문화가 익숙하지 않아 당황스러워 했다. 어쨌든 수영복을 갈아입고 바다로 나갔다.
제주도라 그런지 파도가 무지막지하게 셌다. 나는 평온하고 조용한 바다에서 다 함께 비치볼 놀이를 하는 등..그런 평화로운 분위기를 상상했는데 세상에 파도가 얼마나 센지 몸을 가누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완전히 케리비안베이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파도, 맞으면 아플 정도로 강력한 파도..한 시간 가량 그런 파도에서 놀고 나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난 튜브도 없어서 엄청난 높이로 날 덮치는 파도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바닷물은 또 얼마나 먹었는지..한 시간밖에 안 지났는데 내 모습은 들어갈 때와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머리에 꽂았던 많은 실 핀들은 모두 사라져버렸고 머리는 모두 헝클어져 있었다.
조금 쉬다가 또 들어가서 놀고..결국엔 피곤해서 다른 애들보다 좀 먼저 나왔다. 그리고 먼저 나왔던 Megan, Jeniffer와 함께 샤워장으로 갔다. 걔네들은 개인 프라이버시 그런 게 강한 애들이라 그런지 함께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는 우리 나라 문화를 어색해했다. 특히 Megan은 좀처럼 옷을 갈아입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은 내가 타월과 자켓 등으로 Megan을 가려주어 겨우겨우 갈아입었다. Megan은 고맙다면서 미국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옷을 갈아입지 않기 때문에 당황했다고 말했다. 나는 우리 나라에서도 매번 이런 식으로 갈아입는 건 아니라고..이건 특별한 경우라고 말했다.(우리나라 이미지를 위해서;;)해수욕장 샤워실은 물이 찬물밖에 안 나오는 바람에 걔네들한테 미안하기까지 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외국인 관광객들로 한국이 칭찬을 받으려면 아직도 한참 발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별 거 아니지만 걔네들이랑 같이 다니다보니 외국인 입장에서는 불편할 것 같은 점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특히 제주도는 관광명소로서 다른 지역보다 많은 외국인들이 찾아올 텐데 외국인들을 위한 배려에 좀더 힘써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샤워실에서의 일로 인해 Megan과 친근해진 것은 좋았다.
이 날 저녁에는 정말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었다. 바로 다함께 노래방에 간 것이다. Tris의 제안으로 가게 된 것인데 처음에는 노래방에 익숙하지 않은 지, 노래를 선곡하고 듣기만 하던 헤프너 애들도 우리가 시범을 보이고 분위기를 띄우자 점점 신이 나 노래를 했다. 특히 Julian과 Megan이 많은 노래를 불렀다. Julian은 춤도 췄다는데 나는 아쉽게도 그 순간을 놓치고 말았다. 우리(항도학생들♡)는 일부러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신나는 노래만 골라서 부르고 다들 일어나서 노래하는 등 어색함을 없애려고 노력을 했다. 중간에는 아리랑을 부르기도 하며 우리나라 전통 노래라고 소개해 주고 월드컵 때를 떠올리며 다같이 뛰면서 흥겹게 노래하기까지 했다. 마지막 노래는 Tris의 추천으로 모두 아는 "we wish your merry christmas'를 다 함께 불렀다. 노래방에 다녀와서도 우리는 제주도에서 마지막 밤을 허무하게 보내지 않기 위해 헤프너 애들 방에 놀러갔다. 이 때 나는 처음으로 'speed game'이란 카드게임에 도전을 했다. 배에서 배웠지만 카드 알파벳순서(J,Q,K,A...)가 익숙하지 않아 한번도 해보지 않은 게임이었다. 첫 상대는 Julian이었다. 나는 이 게임을 처음 해 보는 거라고 미리 Julian에게 양해를 구하고 시작했다. 옆에서 친구들이 살짝 도와주기까지 했는데 처음 해 본 거라 그런지 지고 말았다. 승부에 욕심이 났던 것은 아니었지만 지니까 좀 창피했다. 그런데 Julian이 처음 하는데 겨우 4장밖에 차이가 안 난다고 진짜 잘했다고..칭찬을 해 주는 게 아닌가? 창피하던 마음이 그 말 한마디에 스르르 풀렸고 자신감도 생겼다. 또 자기가 이겼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기분까지 생각해 주는 마음씀씀이에 감탄했다.
그렇게 한참 카드게임을 하다가 11시쯤 되어 방에 돌아왔다. 흥미진진한 일로 가득했던 제주도에서의 둘째 날도 그렇게 점점 저물어가고 있었다.
셋째날 이 날은 먼저 소인국테마파크에 갔다. 그곳은 우리가 수학여행 때 갔던 미니월드와 비슷한 곳으로 세계 유명 건축물들을 축소 전시해 놓은 곳이었다.
우리는 수학여행 때 이미 비슷한 것들을 봤기 때문에 그냥 대충 봤지만 Nathan과 Julian은 신기했는지 일회용 카메라를 5개씩이나 사더니 축소된 건물 하나하나를 전부 찍었다. 나는 나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소라 고동 모양으로 된 팔찌를 사서 Megan에게 선물로 주었다. 또 Jacky로부터 해녀모양의 열쇠고리도 선물 받았다. 그 다음 코스는 섭지코지. 등대 같은 곳에 올라가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Jeniffer, 혜미, 빛나, 슬기와 함께 올라가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날씨가 더운데다 바다 근처라 그런지 끈적거리고 찝찝했다. 우리는 끈적거린다고 막 투덜대며 걷고 있었는데 Jeniffer가 영어로는 끈적끈적한 것이 sticky라고 가르쳐주었다.
우리가 그 느낌을 영어로 설명해 준 것도 아니데 어떻게 한번에 우리 느낌을 알아차리고 가르쳐 주었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그 다음은 성산 일출봉. 먼저 저쪽 너머 바다로 내려가서 보트를 타고 나서 다시 위로 올라왔다. 그런데 Julian이 아래쪽 풀밭에서 갑자기 덤블링을 하는 게 아닌가? 화려한 3단 덤블링을 몇 번씩이나 보여주어 우리를 놀라게 했다. 많은 애들이 디지털카메라로 동영상도 찍고 사진도 찍었다. 그렇게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집에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버스에 타 있는데 갑자기 Julian이 어딘가 나갔다 오더니 무언가를 나한테 주었다. 나는 처음에 신문지로 싸여있는데다 따뜻하기까지 해서 '선생님이 무슨 음식을 보관하고 있으라고 주신건가?'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Julian에게 이게 뭐냐고 물어봤더니 열어보라고 했다. 싸여있는 신문지를 벗겨내니 그것은 큼직한 돌하르방이었다. 그것을 보니 Julian에게 너무너무 고마웠고 그 동안 섭섭했던 것도 싹 풀렸다. 그래서 활짝 웃으며 Julian에게 정말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솔직히 그동안 나는 내 host friend인 Julian을 항상 지켜보고 혹시 무슨! 일이나 있나 해서 불안해했는데 걔는 제주도에 와서 처음엔 Megan,나중엔 Nathan 이렇게 자기 친구들하고만 붙어 다녔다. 그래서 나는 Julian이 내 존재조차도 잊고 있는 걸까 걱정했고 한편으론 섭섭했다. 그러나 혹시 내가 너무 그런 티를 내고 쫓아다니면 부담스러울까봐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일부러 피해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선물을 받고 나니 Julian이 그동안 나를 피했던 게 아니란 걸 알았다. 어쨌든 Julian이 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선물을 챙겨줬다는 사실만으로 기뻤고 이제부터라도 서로 눈치 보지 말고 좀더 적극적으로 친해지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또 정작 나는 제주도에서의 Julian 선물을 깜박 잊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제 선물 살 곳은 제주 여객선 터미널 밖에 없는데...이렇게 선물 받아놓고 내가 안줄 수도 없고..그 돌하르방 보니까 크기가 커서 상당히 비쌀 텐데...난 어떤 걸 줘야 되나..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제주항에 도착하고도 배 탈 시간까지 1시간가량이 남아 있어 Julian에게 줄 선물을 고를 시간은 충분했다. 나는 고민을 하다가 우리 나라 전통의상을 입은 신랑 신부 그림이 있는 KOREA라고 써 있는 지갑을 선물해주었다.
Julian은 기쁘게 받고 거기에 돈을 넣고 다녔다. 돌아오는 길을 생각보다 짧았고 예정 시간보다 일찍 목포에 도착했다. 집에 와보니 제주도에서 여러 가지로 신경을 써서 그런지 몸무게가 3kg이나 빠져 있었다.
농업박물관&시내 이 날은 원래 host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날이었다. 먼저 아침을 먹고 교회에 갔다.
Julian도 크리스트교 신자라고 해서 함께 갔다. 우리 교회 학생부는 의자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 게 아니라 바닥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데 Julian은 의자 없이 앉는 것을 매우 불편해하는 거 같았다. 집에 가는 길에 우리 나라와 미국 교회가 다른 점이 있냐고 물어봤더니 비슷한데,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미국에선 학생, 어른 개념 없이 모두 한 hall에 모여 예배를 드린다고 했다.
교회에서 돌아오자 농업박물관에 가게 되었다. 먼저 굴렁쇠 굴리기, 투호던지기 등을 해 보았는데 Julian은 운동신경이 좋아서 그런지 우리 나라 사람보다 굴렁쇠를 더 잘 굴렸고 굴렁쇠가 재밌는지 계속해서 굴렸다. 얼마나 잘 굴리는지 우리 가족들이 모두 놀라고 감탄해서 박수를 쳤을 정도다. 박물관 내부에 들어가서는 여러 유물을 구경했는데 유물 설명이 영어로도 함께 되어있어서 좋았다. 번은 조선시대 머리장신구가 있기에 헤어 악세사리 라고 설명을 해주고.. 500여 년 전의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헤어 악세사리라고 할 때는 그냥 웃었는데 500여 년 전의 것이라고 했더니 놀라워했다. 미국은 역사가 200년밖에 안 되기 때문에 그런 오래된 유물이 없나보다. 그리고 전통혼례복 입어보기 코너가 마련되어있어 Julian과 함께 직접 전통 혼례복을 입어보고 마련된 세트(전통 혼례 할 때 쓰이는 음식과 병풍 등이 있는)에서 사진을 찍었다.
나가서는 원두막과 디딜방아에서도 찍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이미지를 찍으러 갔다. 사진사 아저씨가 자꾸만 붙으라고 해서 어색한 바람에 나중에 받아보니 내 표정이 이상하게 나왔다.=_=;;그리고 애들이랑 연락해서 시내에 나가기로 했다. 엄마가 목포 시내는 걔네가 생각하는 downtown이 아닐 것이라면서 차라리 하당에서 놀라고 했다. 나도 별로 시내에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다른 애들이랑 연락하니 다른 애들은 다들 시내에 가고 싶어 해서 어쩔 수 없었다.Julian에게 누구랑 놀고 싶냐고 물어보니 Nathan과 Peter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그 애들의 host인 경희, 예명이한테 연락을 했는데 경희가 이미 Jeniffer랑도 약속을 잡아 놨다 그래서 Julian, ,Nathan, Peter, Jeniffer, 나, 경희, 예명이, 지해, 은유 이렇게 10명만 만나기로 했다. 그 수만 하도 시내에 가면 되게 복잡할 거 같았다. 그런데 막상 시내에 가 보니 어떻게 된 일인지 다들 연락을 해 모여 있어서 20여명이 시내를 돌아다니게 되었다.정말 볼만한 광경이었다. 먼저 노래방에 갔는데 제주도에서 이미 한번 갔기 때문에 더 이상 부를 노래가 없었다. 그래서 주로 헤프너 애들이 팝송을 불렀고 우리는 들으며 박수를 치면서 호응해 주었다. 저녁은 맥도날드에 가서 먹고 8시쯤 되어서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도 같은 아파트에 사는 경희네 집에 Julian과 함께 놀러갔다.
Peter가 경희네 집에서 홈스테이하기 때문이었다. 경희네 집에서 놀던 도중에 나는 급한 일이 있어 잠깐 어디 갔다 왔었다. 그런데 Julian이 졸린다고 먼저 집으로 갔다는 것이다. 자기가 길을 안다고 나왔다는데..혹시나 길을 잃어버려 우리 집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 퓸駭? 불안해하며 집에 갔는데 다행히 Julian은 무사히 도착해 먼저 들어가자고 있었다. 휴∼그 때서야 좀 마음이 놓였다.이제 남은 날은 내일 뿐, Julian은 집에 오자마자 그대로 잠에 빠져 버렸지만 나는 너무 안타까워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선암사/Julian과 함께 컴퓨터를~/태권도장 방문
오늘은 우리의 마지막 관광지 선암사를 방문했다. Julian은 어제 시내에서 산 옷을 입었는데 아주 잘 어울렸다. 그런데 제주도에 갔다 온 뒤부터 애들이 갑자기 Julian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해서 Julian과 함께 다니는 게 좀 부담스러웠다. Julian은 꼭 내가 다가가지 않더라도 이미 많은 애들에 둘러싸여 관심을 받고 있었다. 선암사에 가서 Julian이 갈 때 줄 선물을 사려고 했으나 특별한 것이 없었다. 나중에 겨우 상평통보 모양의 책갈피를 발견해서 그것을 샀다. 선암사에서 돌아와서는 마지막 날이기 때문에 선생님, 학생들 모두가 모여서 하당 원조이동갈비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하지만 이제 내일이면 헤프너 친구들과 헤어질 거란 생각에 갈비가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평소보다 훨씬 덜 먹고 말았다. 식사 후에는 애들이 평화광장에 가서 불꽃놀이를 하며 마지막 밤을 장식하자고 했으나 나는 할 게 많아서 그럴 수가 없었다. Julian이 그동안 피곤하다고 밤에 집에 돌아오면 그대로 쓰러져 자는 바람에 계획해 놓은 일들을 많이 못했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서는 어제 Julian이 보여준다던 메신저부터 봤다. Julian이 그 메신저를 다운 받는 것을 도와줘서 우리 집 컴퓨터에도 그것을 깔았다. 앞으로 Julian이 미국에 가더라도 만나서 얘기할 수 있도록, 그리고 서로 메일주소를 교환하고 메일이 잘 보내지는지 시험적으로 서로에게 보내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Julian이 나에게 보내는 메일은 잘 받을 수 있는데 내 메일(다음)에서 Julian에게로는 메일이 보내지지 않는 것이다. 계속 메일이 돌아왔다. 그래서 Julian에게 내가 너한테 메일을 보낼 수 가 없는데 그 사이트 말고 야후에 가입하면 안 되겠냐고 했더니 자기 엄마가 그 사이트 말고는 다른 사이트에 가입하지 못하게 했다며 곤란해 했다. 그래서 결국은 내가 Julian이 가입한 그 사이트(AOL)에 가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렇게 하고 나니 안심이 되었다. 이제 Julian이 미국에 가도 계속 연락을 할 수 있으니까...그렇게 한참 컴퓨터를 하는 데 엄마가 왔다. 그래서 Julian에게 태권도장을 보여주기로 했다. 원래 우리는 우리가 학교 갔다 온 날 저녁 그러니까 14일 저녁에 태권도장을 방문하기로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 Julia! n이 피곤해서 자 버리는 바람에 가지 못했던 것이다. 어쨌든 태권도장 가는 길에 이미지 찍은 것을 찾아서 Julian과 나눠 갖고 태권도를 구경했다. 그런데 우리가 14일날 방문할 것이라 예상해서 관장님은 우리가 안 오는 줄 알고 특별한 준비를 해 놓지 않은 상태였다. 집에 와서는 Julian에게 한복을 보여주었다. 내가 한복을 입고 머리에는 아얌까지 쓰고 직접 보여주었다. Julian은 미국에는 한복처럼 긴 치마가 드물다면서 흥미롭게 봤다. Julian은 내가 한복을 벗으러 들어간 사이 자러 들어가 버렸고 나는 Julian에게 줄 편지를 쓰고 선물들을 챙겼다. Julian엄마를 위해서 한복 입을 때 드는 가방까지 마련했다. 여러 가지 선물을 챙겼지만..모자란 것만 같고 뭐라도 하나 더 주고 싶었다. 편지를 쓰면서는 그동안 함께 지낸 시간들이 떠오르며 눈물이 났다.
이별,,, 벌써.. 그 애들이 떠나는 날이다. 온지 얼마 된 거 같지도 않은데...나는 아침 먹을 때부터 울기 시작해서 학교 가는 동안 내내 울었다. Hefner hall의 칠판에는 헤프너 학생들이 자기 이메일주소를 써 놓았다. 송별식을 하고 Hefner hall에 있는데 항도 학생들은 모두 울기 시작했다. 헤프너 애들도 Megan과 Jeniffer등 여자애들은 울었다. 내가 너무 심하게 울자 옆에 있던 Jana(학부모)가 안아서 달래주었다. 다른 애들도 모두 눈이 빨개져 있었다. Julian도 내가 우니까 "Don't cry"라고 달래주었고 안아주었다. 하지만 Julian은 끝까지...버스가 떠날 때까지도 울지 않았다. 그게 좀 섭섭하고 아쉬웠는데 나중에 Julian이 보낸 메일을 읽으니 자기도 슬펐지만 자기는 우는 걸 싫어해 울지 않았다고 했다. 그걸 읽으니 맘이 좀 가라앉았다. 아빠 말로는 미국 애들은 용기..그런 걸 중요시해서 우는 걸 창피스럽게 생각할지도 모른다고 설명해 주었다. 버스로 배웅을 가면서 Megan과도 포옹을 했다. 생각 같아서는 같이 버스를 타고 서울까지 가고 싶었다. 꼭 걔네들끼리 잠깐 어디 가는 거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걔네들이 타고 사라진 버스는 아무리 울어도 !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그 애들을 보내고 우리는 헤프너실에 멍하니 앉아 걔네들이 써 놓은 이 메일 주소를 보면서..서럽게 울었다. 꼭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할 거 같은...다시 헤프너실 청소부터 시작해 걔네들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 후 집에 와서도 멍한 기분은 계속되었다. 특히 방에 갔더니 Julian에게서 나던 향기가 온 방에 퍼져있어서 다시 한 번 그 애들을 생각나게 했다. 그날 하루 동안 내내 걔네들 생각에 아무것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 애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 수시로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 애들이 갔지만 아직도 너무나 많은 흔적들이 남아있다. 그 애들과 함께한 시간은 일주일뿐이었지만 후유증은 7개월도 넘게 갈 것 같다.
그 애들과 함께 했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은 곳에 가면 어김없이 생각이 난다.
이제 좀 괜찮아졌지만 처음에는 정말 심했다. 그런 곳에만 가도 눈물이 나려고 했던 것이다. 처음으로 Julian 메일을 받았을 때는 너무 반가워서 그대로 울어버렸다.
친구들한테도 항상 헤프너 얘기만 하고 저번에 휴가 가서 친척을 만났을 때도 내가 휴가기간 내내 사촌한테 헤프너, 홈스테이...그런 얘기만 하니까 처음에는 흥미를 가지고 듣던 친척이 나중에는 또 그 얘기냐고 투덜댈 지경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때 그 애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특별한 기억이어서 쉽게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얘기를 할 때도 항상 그 얘기를 화제로 삼는 것이고..아직도 Julian과는 메신저에서 만나는 등 연락을 하고 있다. 시차가 있어서 자주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만날 때마다 항상 반갑다.
나중에 영어선생님의 말을 들으니 Julian은 미국에 돌아가던 날 서울에서 묵은 호텔에 비행기표, 여권 등을 모두 버리고 와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Julian에게도 한국에서의 일주일이 특별했던 모양이다. 이번 경험은 나에게 여러 방면에서 많은 영향을 미쳤지만 중요한 영향을 생각해 보면 크게 2갈래로 나뉜다.
첫 번째로는 미국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엔 '오노'사건부터 시작해서 반미감정이 많이 퍼져 있다. 나 역시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미국 사람들은 거만하고 모두 부시처럼 전쟁을 좋아하며 약한 나라들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또 미국 청소년들은 술, 담배, 마약까지 하고 예의 없고 제멋대로인 줄 알았다. 이번에 온 Hefner 학생들은 그동안 나의 상상 속에 존재하던 미국 학생들과 딴판인 모습으로 내 생각을 확 바꿔주었다. 그 애들은 내가 그동안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미안하리만큼 착하고 예의바른 애들이었던 것이다. 그 애들은 사소함 일에도 "Sorry, Thank you"를 입에 달고 살았고, 매너도 좋았다. 어른들에게도 예의 있게 행동했고 배려심도 뛰어났으며 자기주장만 고집하지도 않았다.
특히 내가 Julian에게 고마웠던 점은 우리 집에서 침대가 아닌 땅바닥에서 이불을 펴놓고 잤는데도 아무 불평도 하지 않았던 점이다. 우리 나라 사람도 침대에서 주로 자 버릇하던 사람들은 바닥에서 자면 허리가 아프다고들 하는데 Julian은 한마디 불평 없이 지내 주어서 너무 고마웠다.
내가 아침에 잘 잤냐고 불편한 점은 없었냐고 물어봤을 때도 잘 잤다고 아무것도 불편하지 않았다고 해 주었다. 오죽하면 내가 Julian이 미국에 간 뒤에 '우리 집에 있을 동안 침대가 아니라 이불에서 지내서 불편했을 텐데,, 잘 지내 줘서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그리고 너의 그런 행동 때문에 난 니가 정말 이해심 많고 신사다운 애라고 생각 한다' 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그랬더니 이불은 정말 편안했으며 자기는 정말 편안히 잘 잤다는 내용의 답장을 보내주었을 정도로 Julian은 이해심 많고 착한 아이였다.
두 번째는 영어에 좀더 흥미가 생겼고 자발적으로 공부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Hefner 애들을 만나기 전에는 영어를 공부로만 생각했고 별로 좋지도 않았다. 단지 해야 하니까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애들과 지내며 영어의 필요성을 느꼈고 영어가 '공부'이기에 앞서 '국제적인 언어'로써 매우 유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그 애들이 가고 난 뒤에도 뭐라고 메일을 보낼까?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표현을 사용해서 말을 해야 되는 걸까? 등 여러 가지 궁금증이 내 머리를 수시로 두드리기 때문에 그 전처럼 귀찮음을 느끼면서 억지로 영어사전을 찾는 게 아니라 내가 필요해서, 정말 궁금해서 영어사전을 뒤지게 되었다.
또 영어 단어나 숙어를 외울 때도 이걸 외워 놓으면 다음에 미국 갔을 때 다 써먹을 데가 있을 거야. 이렇게 생각을 하니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 이 정도면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비해 큰 수확이 아닐까? 이것 외에도 외국인들에 대한 거부감도 없어지고, 다른 나라의 문화도 접해 보는 등 여러 가지 좋은 점들이 있었으나 너무 많아서 다 글로 옮길 수가 없다. 이번 겨울에도 Hefner중학교에 꼭 가서 견문도 넓히고..여러 가지 다채로운 경험도 해보고 싶다. 이번에는 일주일이란 기간이 너무 짧아서 아쉬웠는데..이번에 못했던 것들, 아쉬웠던 것들 미국에 가서는 실수 없이 아쉬움 없이 지내다 전과는 또 달라진 내가 되어 와야겠다!
그리고 이번에 미국 가서 재미있게 지내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열심히 영어실력
을 키워나가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