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누스 피우스.
트라야누스의
다음다음 황제로, 둘 모두 로마 오현제 가운데 한 사람이다.

안토니누스 피우스.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피우스' 는 이름이 아니라
'아우구스투스' 같은 칭호다.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는 로마 제국의 제15대 황제(86년 9월 19일 - 161년 3월 7일)로, 5현제 가운데 네 번째 황제다.
피우스는 '경건한 자' 라는 뜻으로 원로원으로부터 주어진 존칭이며, 선제 하드리아누스의 정책을 계승한 안토니누스는 대체적으로 평온한 상태의 로마를 다스렸다.
단지, 군사 원정을 게을리해서 야만족의 발전을 용납, 후대에 화근을 남겼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로마 근교의 라누위움에서 태어났다.
갈리아 출신 집안이지만, 아버지와 할아버지, 외할아버지가 모두 집정관(콘술)을 지낸 명문 가였다.
아버지가 죽은 후에는 외가의 조부 아미우스 안토니누스에 의해 양육된다.
안토니누스는 하드리아누스에게 큰 신임을 받아 120년에 콘술(집정관)이 되고, 하드리아누스를 도와 이탈리아의 사법행정을 지배했다.
또 134년에는 아시아 속주 총독을 지냈고, 하드리아누스의 고문관에 오르기도 하는 등 출세 가도를 달린다.
하드리아누스에게는 아이가 없었으므로, 안토니누스가 후계자로서 그의 양아들이 됐다.

안토니누스를 크게 인정해 준, 하드리아누스.
그 역시 로마 오현제 가운데 한 사람이며,
트라야누스가 넓혀놓은 로마의 영토를 유지하며 다스리기 위해
온 힘을 쏟았던 인물이다.
138년 2월에 하드리아누스의 뒤를 이어 황제에 즉위, 아들이 없었기에 아내의 남동생에 해당하는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와 아에리우스 베루스의 아들 루키우스 베루스를 양아들로 삼았다.
이 두 사람이 훗날의 공동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와 루키우스 베루스다.
특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티누스는 유명한데,
그가 바로 오현제 가운데 마지막 황제로 불리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다.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관대하고 인자하며, 온건한 성품을 가진 황제였으며, 현군으로 추앙받게 될 양아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권력을 쥔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관리의 지위를 안정시키고 재정을 건전하게 운영해, 번영을 이룩한다.
사회정책도 추진해 그리스도교 박해를 금지시켰고, 원로원과의 협조도 순조로워 중앙집권화의 실적을 올렸다.
대지진으로 파괴된 그리스, 소아시아, 로도스의 도시들을 재건하는 등 속주의 번영을 위하여 노력했다.
그 밖에도 법학자를 등용했고, 황후 파우스티나의 죽음을 기념하여 대규모의 자녀부양시설인 ‘푸엘라이 파우스티니아나이’ 를 세웠다.
로마령 브리튼에서 반란이 일어났지만 진압됐고, 142년에는 안토니누스 성벽이 세워졌다.
그 밖에도, 마우레타니아, 게르마니아, 다키아, 이집트에서 반란이 일어났지만 모두 진압했다.

안토니누스가 새겨진 금화.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로마로부터 12k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에트루리아의 로리움에서 열병으로 숨을 거둔다.
161년. 향년 76세였다.
2세기의 문헌을 살펴보면, 안토니누스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그걸 역으로 해석하면 안토니누스의 치세 동안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의미로, 안토니누스 시대는 태평성대였다는 뜻이 된다.
실제로, 웅변가 아일리우스 아리스티데스가 쓴 찬사문 등, 당시 로마인들이 안토니누스 시대가 태평성대라고 생각했다는 증거도 발견되고 있다.

안토니누스 시대의 로마의 영토.
이 넓은 영토를 큰 이변 없이 다스렸다는 건,
겉보기엔 대단해 보이지 않는 안토니누스 역시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였다는 이야기다.
요임금이었는지 순임금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순행 중에 밭을 갈던 한 농부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당신의 임금은 누구시오?'
그 농부는, 이렇게 대답한다.
'알 게 뭐요. 내가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됐지, 임금이 무슨 소용이 있소?'
흔히, 이 이야기의 교훈은
눈에 잘 안 띄는 통치자일수록 훌륭한 통치자라는 것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안토니누스 역시,
이 말의 적용을 받는 인물이 아닐까?
겉보기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안토니누스였지만,
로마 제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는 거다.
그 결과,
안토니누스 시대의 로마는 특별한 일이 없이, 원활히 돌아갈 수 있었다.
게다가, '안토니누스 시대' 는 무려 20년을 넘는다.
저 넓은 로마 제국에 사는 모두가, 20년간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었다.
그 단순하지만 중요한 일.
그 일이, 안토니누스의 업적은 아닐까?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연표>
1세 - 탄생하다.
35세 - 하드리아누스에게 신임받아, 집정관에 오르다.
49세 - 아시아 속주 총독을 지내다.
53세 - 로마 제 15대 황제가 되다.
57세 - 안토니누스 성벽을 세우다.
76세 - 사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