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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전쟁 (중편소설)
작가: 백화 문상희
이 소설은 옛날에 맹호부대 장병으로 월남전쟁에
참전했던 삼촌의 얘기를 들은 근거로 쓴 소설이며
소설 속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임을 알려드립니다.
(7) 서커스 신동 오정태
정태는 설레는 마음으로 가은 터미널에서 1km도 안 되는
집으로 달려갔다.
짧은 거리였지만 마음은 벌써 어머니 앞에 서있었다.
정태의 시골집에 나무로 된 삽짝문은 닫혀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하던 것처럼 공간으로 손을 넣어서
골뱅이 형태의 철사로 된 잠금장치를 풀었다.
"어머니!
어머니 저 정태가 왔습니다!"
정태가 소리쳐 불렀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방문은 자물쇠로 잠겨있었고 어머니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머니는 예전에 정태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방에 들어갈 수 있도록
열쇠를 마루밑에 화로에 넣어두셨다.
아니나 다를까 열쇠는 그곳에 있었다.
정태는 자물쇠를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자개장 서랍 위에는 정태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가 놓여있었다.
"아니, 어머니는 도대체 어디를 가셨을까?"
정태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집안을 이리저리
살펴보았으나 어머니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정태는 서둘러 부엌으로 가보았다.
어머니가 언제 해놓으셨는지는 몰라도 마른
누룽지가 상위 채반에 놓여있었다.
어머니는 비상식량으로 언제나 누룽지를
만들어 놓으셨다.
정태는 시장끼도 있고 해서 예전에 하던 대로
신문지에 불을 붙여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누룽지를 끓였다.
"이 누룽지는 어머니가 나를 위해 만드셨는데!
그러면 내가 올 줄을 알고 계셨을 텐데 말이야!
도대체 어머니는 어디로 가셨을까?
혹시나 은척에 있는 외갓집에 가셨을까?
그래, 그러면 인사도 드릴 겸해서 내일은 외갓집으로
가보자 정태야!"
정태는 불을 때면서도 중얼거렸다.
정태는 호야 등불과 누룽지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의 손맛으로 담그신 물김치와 끓인 누룽지를
정태는 오랜만에 맛있게 먹었다.
가은읍 산골은 시월초에도 초겨울처럼 쌀쌀했다
누룽지를 끓여 먹느라고 군불을 지폈으니
방은 비교적 따뜻했다.
정태는 오랜만에 어머니와 함께 덮고 자던 이불을
깔고 자리에 누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
어쩌면 그것은 태어난 곳으로 잠시 귀향을 했다는
안도감일 수도 있었다.
정태는 이튿날 아침 이웃집 개 짖는 소리에 잠을 깼다.
혹시나 어머니가 오셨을까 해서 밖으로 나가보았으나
마당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정태는 월남에서 가져온 전투식량을 뜨거운 물에
불려서 아침을 때우고 외갓집으로 향했다.
정태의 외갓집은 멀지 않은 상주군 은척면에 있었다.
가은 터미널에서 이십 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였다.
정태는 터미널 근처에 있는 외갓집으로 들어갔다.
"외할머니!
외할머니 정태가 왔습니다!"
정태의 소리를 듣고 방문이 열렸다.
"그래, 정태 왔구나 어서 오너라!"
"안녕하세요 외삼촌!
할머니는 어디 계세요 외삼촌?"
"그래, 할머니는 작년 가을에 돌아가셨단다!"
"네~, 그러시군요!
외할머니는 제게도 참 잘해주셨는데 안타깝습니다!
혹시 우리 어머니는 안 오셨나요?"
"그래, 나도 동생 본 지가 꽤 오래됐구나 정태야!
너 외숙모 들에 같다가 돌아오면 점심이나
먹고 가거라!
"예, 알겠습니다 외삼촌!"
외삼촌은 정태 어머니의 바로 위 오빠였다.
정태는 옛 추억에 잠겨서 외갓집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잠시 후 푸성귀를 담은 바구니를 들고 외숙모가
들어오셨다.
"안녕하세요 외숙모!"
"그래 우리 정태 왔구나!
몇 년 사이에 많이도 컸구나!
그래, 서커스단에 들어갔다고 얘기를 들었는데
어떻게 할만하더냐?"
"예, 외숙모님!
열심히 배우고 있답니다!"
"그래, 정태야 안으로 들어가자!
내가 된장비빔밥 해줄게 정태야!"
"네~, 고맙습니다 외숙모님!"
외숙모는 들에서 가져온 푸성귀로 맛있는 된장찌개를
만드셨고
정태는 오랜만에 외갓집에서 맛있는 된장 비빔밥을 먹었다.
"외삼촌, 외숙모님 점심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집에 안 계셔서 어디에 가셨는지
찾으러 가볼게요!"
"그래, 어머니하고 또 놀러 오너라 정태야!"
"예, 알겠습니다!
다음에 또 들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정태는 공손하게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정태는 이웃집에도 수소문을 해보았으나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정태는 어머니를 기다리면서 비짜리를 들고
여기저기 거미줄을 걷어내고 마루와 마당까지
청소를 했다.
그때 기운이 없어 보이는 어머니가 돌아오셨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어디를 다녀오세요??"
"아이고 우리 정태 왔구나!
편지는 받았는데 그래 언제 왔느냐?"
"예, 어머니!
어제저녁때와서 어머니가 해놓은 누룽지도
끓여 먹었답니다!"
"그래, 잘했다!"
어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마루에 걸터앉았다.
정태도 마루에 걸터앉아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그동안 잘 계셨는지요 어머니!"
"그래, 정태야!
월남 위문공연을 잘하고 왔느냐?"
"예, 어머니 염려 덕분에 잘 다녀왔고요
선물과 급료도 많이 받았답니다!"
정태는 어머니와 방으로 들어가서 가방을 열고
급료로 받은 두툼한 봉투 두 개와 월남에서
가져온 푸짐한 선물도 내놓았다.
"그나저나 어머니 안색이 안 좋으신데 혹시
어디가 아프신가요?"
"아니다!
사실은 며칠 전에 성남이 아저씨가 돌아가셨다!
광산 갱도에서 괘도차를 타고 나오다가 괘도차가
뒤집어져서 다섯 명이나 돌아가셨단다!
성남이 아저씨는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다가
결국은 돌아가셨단다!
그래서 오늘 합동장례식을 치르고 왔단다!
"아이고 그러셨군요!
성남이 아저씨는 제게도 참 잘해주셨는데요!
어쩌다가 그런 사고가 나서 돌아가셨군요 어머니!"
정태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정태가 서커스단에
들어간 후 어머니는 성남이 아저씨와 혼인신고를
한 것이다.
정태 어머니는 두 번의 결혼을 했으나 두 남편 모두가
사고로 죽었다.
정태 어머니는 두 남편의 제사를 지내야 하는
기구한 팔자를 가진 여인이었다.
어머니는 부엌으로 가셔서 저녁준비를 하셨다.
정태도 어머니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갔다.
"어머니, 헛간을 보니까 땔거리가 떨어졌네요!
내일 산에 가서 나무부터 한 짐 해올게요!"
"그래, 정태야 고맙구나!"
"그나저나 저기 천장에 구멍이 나있네요!
비가 오면 빗물이 다 들어오겠어요 어머니!"
"그래, 스레트가 오래되어 다 삭아서 그렇단다!
헛간에도 비가 오면 빗물이 줄줄 들어온단다!
성남이 아저씨가 예전에 비닐로 덮어놨는데
바람에 날아갔다보다 정태야!"
"안 되겠어요 어머니!
겨울이 오기 전에 사람 불러서 집수리부터
해야겠네요 어머니!
저 돈 많이 벌어왔답니다!
제가 집수리 깨끗하게 해 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
정태와 어머니는 오랜만에 호롱불 앞에서
오순도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이튿날 아침을 먹고 정태는 장터에 가서 오백 원을
주고 쌀도 한가마를 시키고
리어카 배달비로 십원도 지불했다.
그리고 정태는 집수리 센터를 찾아갔다.
집수리 센터 아저씨는 집 평수를 봐야 한다며 정태
집으로 따라왔다.
"아이고 총각!
서까래도 많이 삭아서 좀 갈아야겠구먼!
집수리 센터 아저씨는 이리저리 살펴보시고
공책에 필요한 자재를 적어나갔다.
"아랫채는 스레트만 갈면 되겠고 안채는 여러 군데
손을 봐야겠네 그려!
대충 견적을 내 보니 팔천 원은 족히 들겠구먼!"
"예, 그 돈은 다 드릴 테니 그럼 집수리를 깨끗이만
해주세요!"
"아이고 총각!
도회지 가더만 돈을 많이 벌어왔는가 보구먼!
알았네, 그러면 일꾼들 불러서 집수리를 시작하겠네!
"예~, 오실 때 견적서와 영수증 가져오시면 돈을
드리겠습니다!"
집수리 비용이 팔천 원이면 쌀로 치면 쌀 열여섯 가마
값이었다.
정태는 일 년 치 급료와 보너스로 약 이만 원을
받았으니 집수리할 돈은 충분했다.
어머니와 함께 점심으로 멸치국수를 끓여 먹고
정태는 어머니를 모시고 장터로 갔다.
오늘은 마침 오일장이 서는 날이라 장터가
시끌벅적했다.
정태는 어머니에게 겨울옷도 몇 벌 사드렸다.
"아이고 정태야!
이렇게 비싼 옷을 세벌씩이나 사느냐 그래!"
"아이고 어머니, 걱정 마세요!
제가 돈을 많이 벌어서 왔답니다!"
그리고 우체국으로 가서 어머니 통장에 만원을
입금시켜 드렸다.
"어머니, 돈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찾아서 쓰세요!"
"집수리 하는데도 돈이 많이 들 텐데 또 이렇게
큰돈을 주느냐 정태야!"
"아이고 어머니!
여기 든든한 아들이 있으니 걱정 마시고
아프지 마세요!"
"그래그래 고맙다 정태야!"
정태는 집수리가 끝나고 수시로 나뭇짐을 해다가 날랐다,
집수리 덕분에 정태와 어머니는 따뜻한 겨울을
날 수가 있었다.
다음 해 2월 7일 정태는 어머니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었다.
"정태야, 너도 이제 열여덟 살이 되었구나!
"예, 어머니!
저를 튼튼하게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정태는 그렇게 열여덟 살 청년이 되었다.
이튿날은 우체부 아저씨가 편지를 가지고 오셨다.
단장은 이월초에 정태에게 편지를 보내서
서울로 불러올렸다.
정태는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고 서울로 올라갈 채비를 하였다.
"어머니, 다음에 내려올 때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그리고 돈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지 우체국에 있는
돈 찾아서 쓰도록 하세요!"
"그래, 정태야 고맙구나!
너도 건강하게 잘 있다가 내려오너라!"
"예, 알겠습니다 어머니!"
한 달 일찍 서울로 올라온 정태에게 단장은 삐에로
1인 악극단 묘기와 불쇼 마술까지 전적으로 전수를 해주었다.
이후 단체가 모인 합숙훈련에서 다혜는 외줄 타기
묘기를 정태에게 실전으로 가르쳐주었다.
다혜는 정태에게 다가와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너는 한 달 일찍 올라왔다면서 정태야?
"응, 단장님 개인기를 배우려고 일찍 올라왔단다!"
"그렇구나 정태야!
너하고 정이 들어서 그런지 겨울 동안 네가
보고 싶었단다 호호호!"
다혜는 마지막 접시 돌리기까지 정태에게 가르쳐주었다.
정태는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깨우치는
천재적 재질을 타고났다.
옆에서 지켜보던 단장은 정태에게 서커스 신동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삼월 초 도봉동에 있는 단장 집 옥상 체육관으로
아리랑 서커스단 단원들 모두가 모였다.
"에~, 아리랑 서커스단 단원들 여러분 겨울휴가
잘 보내셨나요?"
"예, 단장님이 보너스까지 주셔서 잘 먹고
잘 놀았답니다!"
박군의 말에 이어서 단원들도 하나같이 단장의 말에
화답을 했다.
단장은 한 달 전에 미리 정태를 불러올려서
개인기 전수와 훈련을 시켰다는 말도 덧붙였다.
"에~, 우리가 월남 위문공연을 갔다 온 사실이
신문기사에 오르면서 우리 아리랑 서커스단
위상이 한껏 높아졌답니다!
그래서 요즘 공연 요청이 쇄도를 하고 있답니다!
작년에 우리는 월남 위문공연을 가느라 순회공연을
다 마치 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열두 군데의 순회공연 일정이 잡혔고
첫 공연지는 강원도 속초부터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자~, 올해도 우리 아리랑 서커스단의 무탈을 기원하는
파이팅을 다 같이 외쳐봅시다!
하나, 둘, 셋, 아리랑 서커스단 파이팅!"
단원들은 단장의 집에서 부대끼며 하룻밤을 묵고
올해의 순회공연 대장정에 올랐다.
단장의 인솔하에 단원들 모두 버스가 있는 곳으로 갔다.
단원들 모두는 버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자리에는 새로운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단장님!
언제 버스를 새것으로 바꾸셨나요?"
박군은 궁금증에 단장에게 그렇게 물었다.
"아~, 새것은 아니고 쓸만한 중고 관광버스를 새로
구입했다네!
조영철 기사님과 함께 가서 저번 버스와 똑같이
공장에서 개조를 했다네!"
아리랑 서커스단 단원들은 새로 구입한 버스를 타고
첫 공연지 강원도 속초로 향했다.
조영철 기사는 새로운 버스를 운전하는 게
신이 났는지 휘파람을 불면서 운전을 했다.
같은 자리에 앉은 다해는 정태의 손을 꼭 잡은 채
잠이 들었다.
(8) 맹호부대 군입대
단원들은 먼 거리 이동으로 인해 휴게소에 들러서
가락국수로 점심을 때우고 다시 삼척을 향해서 달렸다.
아리랑 서커스단은 오후 3시경 오징어의 도시
속초에 도착했다.
때마침 속초항구 근처에는 야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단원들은 단장이 섭외한 자리로 이동을 해서
야시장 한쪽에 주차를 시켰다.
"자, 일단 무대를 설치하고 저녁을 먹도록 합시다!
공연은 모레 오후 5시부터 열기로 했으니 리허설은
내일 하도록 하겠습니다!"
단장의 지시에 따라 단윈들은 버스에서 짐을 내리고
무대 설치에 돌입했다.
단원들의 합심으로 6시 이전에 야외무대 설치를 마쳤다.
"오, 오징어의 고장 삼척에 왔노라!
징, 징검다리 건너서 횟집으로 갑시다!
어, 어느 집이 좋을지 가위 바위 보!"
싱거운 박군이 오징어 삼행시를 지어서 외쳤다.
"와~, 짝짝짝!
멋있는 삼행시입니다 하하하!"
김 씨 아저씨가 박수로 칭찬을 했다.
야시장 구석지에 화장실과 간이수도가 있어서
단원들은 대충 세수를 하고 해변으로 향했다.
그때 상인회장이 단원들을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아리랑 서커스단 단원 분들 아니신가요?"
"예, 그렇습니다 만 누구신지요?"
"예~, 저는 상인회장 구자성입니다!
서커스단이 공연을 하게 되면 사람들이 몰려와서
우리 상인들도 장사가 더 잘 된답니다!
하여 우리 상인회에서 저녁대접을 하기로 했으니
저하고 함께 가시면 된답니다!"
상인회의 대접으로 단원들은 오징어회에 방어회에
조개찜 꽃게탕까지 실컷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 건오징어 한축씩도 선물로 받아 들고
무대로 돌아왔다.
이튿날은 하루종일 겨울 동안 무디어진 서커스
동작을 연마하는 리허설에 돌입했다.
다음날 오후 5시 단장은 삐에로 분장을 하고 등짝에
커다란 북을 메고 1인 악극단으로 오프닝 공연을 시작하였다.
속초에서 보름간의 공연을 아무 탈 없이 마치고
다음 공연지 충북 제천으로 떠났다.
울고 넘는 박달재를 넘어 방랑시인 김삿갓 김병연의
발자취를 따라 약초의 도시 제천에 도착했다.
이번 공연지 역시 제천 시장 앞 공터에서 짐을 풀었다.
사월의 선선한 날씨에 보름간의 공연을 마치고
경북 안동 그리고 포항을 거쳐서 거창으로 갔다.
전국 순회공연을 거듭할수록 정태의 실력은
나날이 발전을 거듭했다.
다음 목적지 전라도 장성을 거쳐 춘향이의 고장
담양으로 향했다.
대나무 공예품 선물을 받아 들고 다음 공연지
백제의 발자취를 따라 부여 장터로 향했다.
단원들은 백제의 유적지도 여기저기 구경을 했다.
다음 공연지 천안삼거리를 거쳐서 순박한
도자기의 고장 여주로 갔다.
다음 공연 장소 양주땅으로 가는 길에는 벌써
벼베기가 한창이었다.
시월 마지막 공연은 의정부 공설운동장에서
열렸다.
의정부 공연을 마지막으로 아리랑 서커스단
순회공연을 마쳤다.
11월 초 단원들은 도봉동 단장 집으로 가서 사모님이
준비한 음식들로 송별회를 열었다.
날씨가 추워지면 관람객도 문제지만 단원들이
추위에 몸이 굳어서 사고의 위험 때문에
겨울은 휴가에 들어간다.
"올해도 우리 아리랑 서커스단 순회공연을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자~, 다 같이 건배를 합시다.
아리랑 서커스단 내년을 위하여~!"
단장은 준비한 일 년 치 급료를 이름을 호명하며
나누어주었다.
이튿날 아침 정태도 봉투를 받아 들고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시외버스를 타고 다섯 시간을 달려 문경에 도착했고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네시쯤 가은 터미널에 도착했다.
정태는 서울에서 미리 준비한 선물을 옆구리에 끼고
집으로 달려갔다.
"어머니, 정태가 왔습니다!"
"그래, 정태 왔구나 어서 오너라!"
어머니는 부엌에서 반가움에 뛰쳐나왔다.
"정태야, 못 보던 사이에 키도 많이 컸구나!"
"예, 어머니 별고 없으셨지요?"
"그래 네가 주고 간 돈 덕분에 편하게 지냈단다!"
정태는 이튿날 어머니를 모시고 우체국으로 가서
통장에 급료로 받은 돈을 입금시켰다.
"아이고 정태야!
이제는 너의 장가 밑천도 충분하겠구나!"
어머니는 감격스러운 말씀을 하셨다.
정태는 집에서 이삼일 쉬고 또 나뭇짐을 해다가
겨울이 날 수 있도록 헛간에 채워두었다.
정태는 집에서도 연습을 개을리 하지 않았다.
다음 해 또 어머니가 끓여주신 생일 미역국을 먹고
또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삼월 초 도봉동 단장의 집에서 시무식이 열렸다.
"에~, 올해부터는 내가 복잡한 일에서 한시름
놓았습니다!
내가 일일이 전화로 공연장소를 섭외해 왔으나
이제는 그렇게 안 해도 됩니다.
우리 아리랑 서커스단의 위상이 높아지자
여기저기서 공연기획 제휴가 들어와서
공연 기획사와 제휴하여 일정을 잡아놨답니다!
특히 올해는 모두 야외공연이 아닌 실내 극장에서
하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답니다!"
아리랑 서커스단 공연은 김포극장 공연을 시작으로
편하게 추진되었다.
서커스 신동 정태는 전분야에 걸쳐서 공연을 했다.
그것은 본인의 피나는 노력과 단장의 지도하에
이루어진 것이다.
네 번째 공연지는 대전에 있는 극장이었다.
공연 전날 단장은 정태를 따로 불러서 군 입대에 대해서
진지한 얘기를 했다.
"정태야 네가 생일이 2월이니까 너도 이제
내년이면 군입대 영장이 날아오겠구나!
또한 내년 삼월이면 군대 간 용대가 전역을 한단다!
그러면 네가 입대를 해도 결원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말인데 어차피 군대를 가야 한다면
내가 거쳐온 맹호부대를 갔으면 좋겠구나!
어제 대전에 와서 맹호부대 동지회장을 만났단다!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맹호부대 월남 파병 장병을
모집한다고 했단다!
지금 맹호부대 월남 파병 지원을 하면 3개월 후
입대를 한다고 했단다!
지금이 7월이니까 올해 공연을 마치고 10월쯤에
입대를 하는데 너의 생각은 어떠냐?"
"예~,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기왕 군대를 가야 한다면 저 역시 용감한 맹호부대를
선택할 것입니다!
월남 위문공연에서도 맹호부대의 용맹성을 보고
동경을 했답니다!
또한 단장님의 과거사를 듣고 감동을 받았으니
단장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내일 오전에 가서 좀 더 알아보고
지원을 하도록 해보자!
그리고 네가 제대를 할 때 되면 그때는 나도 서커스
현역에서 은퇴할 나이란다!
네가 군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때는 이 서커스단을
네게 물려줄 생각이다!"
"예, 알겠습니다 단장님!"
이튿날 정태는 아침을 먹고 단장을 따라서
맹호부대 동지회로 갔다.
정태는 사무실에서 자초지종을 듣고 지원을 결정했다.
맹호부대 월남 파병 지원서에 주민등록번호와
집주소를 적어 넣고 이름 옆에 지장을 찍었다.
사무실에서는 지원자 편의를 위해 대행을 한 다음
서류를 병무청으로 보낸다고 말해주었다.
"오정태 군 맹호부대 지원을 환영하는 바이네!
한 달 정도 지나면 집으로 통지서가 갈 것이네!
내가 예상하기로는 시월 초에 논산훈련소로
입소를 하게 될 거네!"
지회장과 단장은 거수경례로 예의를 표하고
돌아 나왔다.
정태는 맹호부대 소속으로 다시 월남땅에 간다는
기쁨에 기분이 한껏 고조되었다.
정태는 숙소에서 공연장으로 가는 길에 다혜에게
은근히 자랑을 했다.
"다혜야, 나 이번에 월남 파병 맹호부대에 입대
지원을 했단다!"
"어머, 그 말이 사실이니 정태야?"
"응, 내년이면 어차피 군대를 가야 되는데 뭐!
다만, 몇 달 일찍 가는 것뿐이지 뭐!"
"어머, 섭섭해서 어떡하니 우리 둘이는 평생도록
친구 하기로 했잖아 정태야!
"그건 나도 그래 다혜야!
입대하면 너네 집 주소로 편지 보낼게 알았지?"
"그래, 정태 너 제대할 때까지 내가 기다려줄게!"
사춘기의 정태와 다혜는 그렇게 손가락을 걸었다!
대전 공연을 마치고 단원들은 다음 공연지
김천으로 이동을 했다.
단원들은 야외무대를 설치하고 철거하는 것보다
극장에서 공연을 하다 보니 편하고 시간적 여유도 많았다.
아리랑 서커스단 단원들은 김천에서 공연을 마치고
다음 공연지 영천으로 내려갔다.
영천 공연 마지막 날 영천 숙소에서 단장은
정태를 따로 불렀다.
"정태 너의 어머니가 서울 우리 집으로 전보를 보냈단다!
"네~, 그러면 입영통지서가 온 것인가요?"
"그래, 정태야 그렇단다!
10월 6일 오후 2시까지 논산훈련소로 입소하라는
통지서가 날아왔단다!"
"대전에서 얘기를 들은 그대로군요 단장님!"
"그래, 정태야!
다음 공연 장소는 8월 10일부터 보름동안 상주에서
공연을 한단다!
상주 공연을 마치고 충주로 이동을 해야 하니
충추로 가는 길에 문경 터미널에 내려줄 테니 그때
집으로 가거라!
9월 한 달은 집에서 쉬다가 논산훈련소로 가면
되지 않을까 싶다 정태야!"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단장님!"
정태는 상주 공연을 끝으로 입대를 하게 되었으니
서운 섭섭한 마음에 최선을 다해서 공연에 임했다.
단원들은 상주 공연을 마치고 문경새재를 넘어
충주로 이동하는 여정에 올랐다.
정태는 입대를 하게 되면 전역을 할 때까지
다혜를 볼 수가 없다는 마음에 다혜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내가 전역할 때까지 꼭 나를 기다려줘 다혜야!
내가 월남에 가서 멋진 사나이가 되어서 돌아올게!"
"그래, 알았어 정태야!
몸조심하고 전역하면 그때 다시 만나자 알았지?"
"그래, 고마워 다혜야!"
순수한 친구가 되기로 했던 두 사람은 손을 꼭
잡은 채 한동안 눈을 감았다.
어느새 아리랑 서커스단 버스는 문경 터미널
가까이 왔다.
"정태야!
짐 챙겨서 앞자리로 오너라!"
"예, 알겠습니다 단장님!"
단장은 일 년 치 급료를 봉투에 담아서 정태에게
주면서 정태의 손을 꼭 잡았다.
"정태야, 아무 생각 하지 말고 군대생활 잘하고
돌아오너라!"
"예, 고맙습니다 단장님!"
"그래 그러면 단원들에게 인사하고 가거라!"
정태는 대답을 하고 일어났다.
"아리랑 서커스 단원 여러분!
저 오정태 군대생활 잘 마치고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동안 단원 여러분들과 즐겁게 지냈으니 좋은 추억
가슴에 담아서 갑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정태는 구십도 각도로 배꼽인사를 했다.
버스 안에서는 단원들의 환송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태와 단원들은 서로서로 손을 흔들며 이별을
아쉬워했다.
(9) 첫사랑의 동반자
정태는 문경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가은읍
고향으로 향했다.
정태를 맞이한 어머니는 눈물부터 흘렸다.
"아이고 정태야 네가 커서 군대를 간다고 하니
정말 대견하구나!
얼른 방으로 들어가거라 정태야!
된장찌개 끓여서 저녁을 먹자꾸나!"
"예, 알겠습니다 어머니!
정태는 어머니가 연기를 들어마시고 기침을
하는 것을 보고 손쉬운 연탄아궁이를
놓아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정태와 어머니는 오랜만에 마주 앉아서 도란도란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이튿날 아침 정태는 작년에 집수리를 해주셨던
가게로 가서 연탄아궁이 개조를 부탁드렸다.
"아~, 작년에 집수리를 했던 집 자제분이구먼!
오늘은 따로 일이 없으니 바로 가서 해줄게요!"
"네, 고맙습니다 사장님!"
그리고 연탄가게로 가서 연탄 천장을 주문했다.
"아이고 총각!"
내가 연탄장사 십 년 동안 가은읍에서 연탄 천장을
주문받은 것은 처음이구먼 그래 하하하!
총각이 도회지로 나가서 돈을 많이 벌었나 보구먼!"
"예, 사장님!
제가 먼저 가서 연탄 놓을 자리를 만들어놓겠습니다!"
정태는 군대를 가면 어머니를 도와드릴 수가 없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준비를 해드렸다.
"어머니 이제 연탄아궁이로 개조를 했으니
나무는 겨울에 군불을 지필 때만 사용하세요!
제가 한 달 동안 나무를 해다가 헛간에 장작을
가득 채워놓을게요!
"그래, 정태야!
이제 곧 군대를 가야 하는데 좀 쉬도록 해라!"
"예, 알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어머니!
정태가 집으로 온 지도 한 달이 넘어 입대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정태는 어머니가 정태 없이도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집안을 세심하게 살폈다.
이튿날 정태와 어머니는 은척에 있는 외갓집에
들려 군입대 인사를 드리고 돌아왔다.
드디어 입영 날 새벽 어머니가 끓여주신 미역국을
먹고 떠날 채비를 하였다.
정태 어머니는 군대 가면 생일날 미역국을 못 먹을까 봐서
미역국을 끓인 것이다.
"정태야 먼 나라 월남까지 간다고 하니 마음이
놓이지 않는구나!
여하튼 무탈하게 돌아오도록 하거라 정태야!"
"예, 어머니!
이미 공연 때 한번 가본 곳이라서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정태는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고 터미널로
걸음을 옮겼다.
정태가 사는 가은읍은 첩첩산중 산골 동네였다.
논산훈련소를 가려면 문경을 거쳐 충주에서
또 버스를 갈아타고 대전을 거쳐서야 논산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논산훈련소 정문 앞에는 맹호부대 마크가 새겨진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맹호부대 월남 파병 장병 입소를 환영합니다"
논산훈련소 정문 근처는 그야말로 눈물바다였다.
마중을 나온 부모와 애인들과의 이별이 여기저기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오늘 논산훈련소 입소는 월남 파병 장병들의
입소이기에 이별이 더 애절하게 보였다.
정태는 정문에서 대열을 갖추어 인솔장교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정태가 도착한 연병장에는 맹호부대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고 빨간 모자를 쓴 조교들이 처음부터
강도 높은 군기를 잡았다.
정태는 삼 개월간의 기초 군사훈련을 받아야 했다.
그것은 전투에서 살아남기 위한 훈련이었고 또한
맹호부대의 위상이 걸려있는 문제였다.
삼 개월간의 논산훈련소 기초군사훈련을 마치자
해가 바뀌어 정태의 나이도 스무 살이 되었다.
어느 날 저녁 완전군장을 한 맹호부대 장병들이
연병장에 도열하였고 연병장에는 수십대의 군용 트럭이
대기하고 있었다.
맹호부대 장병들을 태운 군용 트럭은 밤새 달려서
새벽 5시 드디어 부산항에 도착을 했다.
정태가 예전에 월남 위문공연을 가기 위해대기했던
바로 그 장소였고
부두 위쪽에는 환송 나온 인파들로 북적거렸다.
군함 뒤꽁무니의 거대한 문이 열리고 보급품을
실은 트럭이 먼저 올라갔다.
이어서 대오를 갖춘 장병들이 승선을 했다.
어마어마하게 큰 선실 내부는 화장실과 세면대가
딸린 침상이 없는 바닥이었다.
취침시간에는 군장을 베개 삼아 바닥에 모포를 깔고
자야만 했다.
예전에 위문공연을 갈 때처럼 선실 밖으로 나가는 것은
일체 허용되지 않았다.
4박 5일의 항해 끝에 1966년 2월 새벽 4시쯤
드디어 월남 사이공에 도착했다.
장병들은 선실에만 있었기에 밖으로 나오자 모두
눈이 부셔서 손으로 하늘을 가려야 했다.
장병들은 대기하고 있던 군용 트럭을 타고 이동이
시작되었다.
정태가 도착한 곳은 위문공연을 했던 바로 그
연병장이었다.
정태는 새삼스러운 감동으로 축구장 골대 쪽을
바라보며 회상에 젖어들었다.
맹호부대 장병들은 대오를 갖추어 연병장을
가득 채웠다.
그때 연단에서 대대장의 환영인사가 진행되었다.
"부대~, 차렷!
대대장님께 경례, 충 성!"
"자랑스러운 맹호부대 장병들이여!
머나먼 월남땅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았다!
제군들은 이 전초기지에서 3주간의 정글
전투방식과 적응훈련을 마치고 전방으로 배치가
될 것이다.
아무쪼록 귀국하는 날까지 부상 없이 무탈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장병들은 정글에서의 생존 전투방식과 베트콩의
무기제원등 다양한 훈련을 다시 받아야 했다.
또한 미군과의 합동작전도 있었기에 기본적인
영어도 배워야 했다.
삼주 간의 월남전투 적응 훈련을 마치고 드디어
전방으로 이동하는 군용 트럭에 탑승했다.
전선이 가까워지자 헬리콥터 소리와 멀리서
폭음소리도 들려왔다.
정태는 드디어 상상으로만 느꼈던 월남전쟁
그 한복판으로 들어갔다.
정태가 도착한 맹호부대는 사방이 논으로
둘러싸인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사방을 뺑 돌아서 3m 높이의 철조망이 쳐져있었고
20m 간격으로 가림막이 쳐진 초소가 있었다.
정태가 속한 맹호부대 2중대는 야간에 베트콩의
기습공격으로 초병들이 속수무책으로 하나 둘
쓰러져갔다.
어젯밤에도 소리 없이 침투한 베트콩에 의해 초병
두 명이 또 전사했다.
이를 보다 못한 조경수 중대장은 본부의 허락을 받고
보복을 결심했다.
이튿날 드디어 베트콩 섬멸작전에 돌입했다.
맹호부대의 공격이 시작되기 전에 먼저 미군부대의
전투 헬리콥터가 적진을 향해서 로켓포를 퍼부었다.
미군 헬리콥터의 지원사격은 맹호부대의 공격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지원 지원이었다.
맹호부대 역시 먼저 로켓포 공격을 퍼붓고 진격을
시작했다.
베트콩의 동굴을 발견하면 무조건 수류탄을
동굴 속으로 투척했다.
베트콩들은 수풀로 가려진 땅굴속에 숨어서
느닷없이 공격을 해왔기에
화염방사기로 수풀에 가려진 곳은 모조리 태워버렸다.
그 순간 베트콩 섬멸작전 선봉에 있던 화염방사기조
박선정 상병이 가슴에 적탄을 맞았다.
정태는 화염방사기를 박상병 등에서 떠어내고
지혈과 동시에 응급처치를 했으나 박상병은 결국
전사했다.
땅굴과 수풀 속에 숨어있는 베트콩을 찾아서
섬멸하려면 화염방사기는 필수였다.
정태는 박상병에게서 떼어낸 화염방사기를
등에 둘러메고 수풀과 동굴을 향해서 불을 뿜었다.
그러나 동굴은 사방팔방 연결이 되어 적군을
섬멸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베트콩들은 땅굴 속으로 후퇴를 하였고 맹호부대
2중대는 지상에서 계속 추격전을 벌였다.
그때 어디선가 위생병을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니 선봉에서 지휘를 하던
조경수 중대장이 허벅지에 총상을 입었다.
정태와 의무병 이관수 일병은 중대장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조경우 중대장은 응급처치로 허벅지에 지혈을 하고 있었다.
지혈을 마친 중대장을 정태는 오른쪽에서
이관수 일병은 왼쪽에서 중대장의 어깻죽지를 붙들고
후방으로 무조건 뛰었다.
그때 이관수 중대장의 전투배낭이 적군이 설치한
부비트랩을 건드리고 말았다.
콰광, 하는 소리와 함께 세 사람은 공중에 붕 떴다가
바닥에 내리 꽂혔다.
정태는 다리에 심한 통증을 느끼고 다리 쪽을
쳐다보았다.
군복은 너덜너덜했고 그 사이로 시뻘건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정태는 훈련소에서 배운 대로 손수건을 찢어서
압박 지혈을 하려고 했다.
그 순간 정태는 기절초풍을 해야만 했다.
왼쪽 다리 무릎아래가 절단이 되어있었다.
정태는 응급처치로 허리띠를 풀어서 무릎 위쪽을
묵고 지혈을 했다.
정태는 한쪽 다리를 잃은 채 낮은 포복으로 후방을
향해서 사력을 다해 기어갔다.
마침 후방에서 대기하던 의무병에게 발견되어
다른 부상병과 함께 헬기로 후송되었다.
정태의 절단된 다리엔 출혈이 너무 심해서 사이공
미군병원으로 곧장 이송되었다.
정태는 절단된 다리 봉합수술을 받고 입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병원에서 수소문을 해보았더니 조경우 중대장과
이관수 일병은 부비트랩이 터지면서 그 자리에서
전사했다고 들었다.
정태 역시 고인석 단장처럼 입원치료를 받았으나
더 이상 군대생활은 할 수가 없었다.
이듬해 2월 정태의 생일날 우연처럼 정태는
제대 특명을 받았고
고인석 단장의 계급과 똑같은 예비역 상병으로
전역을 하였다,
정태는 교대근무를 위해 귀국하는 타부대 장병들과
함께 귀국길에 올랐다.
정태는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슬픔에
잠기실까 하는 걱정으로 가슴이 아팠다.
정태는 부산역에서 귀국길 인솔대장의 배려로
군용 열차를 타고 동대구역에 내렸다.
정태는 동대구역에서 문경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예전에 아리랑 서커스 단원 시절엔 희망을 가진
귀향이었으나
지금은 절망으로 가득 찬 귀향길 되었다.
정태는 가은읍 터미널에 내렸지만 어머니를
볼 면목이 없어 도저히 집으로 갈 수가 없었다.
정태는 왼쪽 다리가 없는 바지를 덜렁거리며
목발에 의지한 채 길 건너 대폿집으로 들어갔다.
정태는 순댓국 한 그릇에 막걸리를 시켜서
한숨으로 들이마셨다.
정태는 막걸리 두 주전자를 비우고 술에 취해버렸다.
그때 오십대로 보이는 주인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에구~, 총각!
내가 나 설일은 아니지만 군복을 입은 것을 보니
전역을 한 모양이구먼!
어쩌다가 그래 다리를 다쳤을까 쯔쯔쯔!"
모자를 푹 눌러쓴 정태가 혀가 꼬부러진 말로
대답을 했다.
"네~, 아주머니 월남전쟁에서 다리를 잃었답니다!
어머니를 뵐 면목이 없어 이렇게 술을 마시고
있답니다!"
"아니, 그러면 혹시 왕릉리 오씨집 아들이 아닌감?"
"예, 맞습니다!
제가 바로 오정태입니다!"
"에구, 쯔쯔쯔!
그 집 아들이 서커스단에 들어가서 돈을 많이 벌어
효도를 했다고 가은읍에 소문이 파다했는데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구먼!
안 죽고 살아서 돌아온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게나!"
"예, 아주머니 말씀 고맙습니다!"
정태는 비틀거리며 목발에 의지한 채 집 앞에
도착을 했지만 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정태는 삽짝문에 기대어 선채 물끄러미 방을
쳐다보았다.
방문 창호지 틈으로 호롱불 빛이 새어 나왔다.
삽짝문에 기대고 있던 정태는 잠시 넋을 놓고 있다가
한쪽으로 넘어지면서 문짝을 밀쳐버렸다.
그 순간 삽짝문에 달려있던 워낭 종소리가 심하게 울렸다.
그 소리에 놀란 정태 어머니가 밖으로 나왔다.
"그기 누구세요?"
아무런 대답이 없자 정태 어머니는 다시 물었다.
"그기 도대체 누구세요?"
그래도 대답이 없자 정태 어머니는 혹시 몰라서
옆에 있는 지게작대기를 들고 다가왔다.
그 순간 정태 어머니는 기겁을 하고 놀랬다.
"아니, 너는 정태 아니냐?
온다는 소식도 없이 무슨 일이냐 정태야?"
술에 취한 정태는 삽짝문에 기대어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그때까지 정태의 모습을 자세히 보지를 못했던
정태 어머니는 목발을 보고서야 어렴풋이 알아챘다
"아니, 정태야!
어디를 다쳤기에 목발을 짚고 왔느냐 정태야!
정태는 어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다.
"아이고 정태야!
어쩌다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냐 정태야!"
정태 어머니는 주저앉아 통곡을 했다.
정태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고 목발을 짚고
마루에 걸터앉았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저 피곤해서 좀 자야 되겠습니다!"
정태는 방으로 들어가서 술기운에 잠들어 버렸다.
이튿날도 그다음 날도 어머니는 정태에게
아무것도 묻지를 않았다.
어머니는 오히려 그 사연을 듣는 것이 더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정태 역시 아무런 말도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 더 지났을 때 우체국에서
등기소포가 왔다.
정태는 국방부에서 보내온 서훈과 내용물을
보고서야 사연을 알게 되었다.
정태가 전역을 한 이후 맹호부대 2중대의 활약상과
정태의 용맹한 전투기록이 상부에 보고되었다.
그로 인해 맹호부대 2중대 상병 오정태의 무공훈장
수여가 결정되었고
어느 날 정태 집으로 일계급 특진 서훈과 함께
무공훈장이 배달되었다.
정태는 무공훈장을 받아 들고 씁쓸하게 웃었다.
"단장님과 나는 같은 팔자를 타고났다 보다!
인생은 내일을 알 수가 없다더니 그 말이 꼭 들어맞는구나!"
정태는 마루에 걸터앉아 먼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후 여름이 다 가도록 정태는 마음을 추스르며
바깥출입도 끊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어느 날 고인석 단장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정태군 요즘엔 어떻게 지내는가!
자네가 맹호부대에 입대해서 월남전 참전으로
다리를 잃은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네!
나도 자네를 맹호부대에 입대를 시킨 것에 대해
뼈저리게 후회를 하고 있다네!
하지만 내가 자네를 유심히 지켜본 바로는
자네는 비록 다리를 잃었다지만
자네가 아주 유능한 사람이라는 건 분명하다네!
다름이 아니고 내가 육이오 전쟁 때 다친 다리가
골수암으로 진행되어 보훈병원에 입원을 했다네!
정태 자네와 나는 똑같은 맹호부대에서 근무하며
같은 운명적으로 부상을 당했지!
그나저나 나는 이제 더 이상 아리랑 서커스단을
운영할 건강도 자신도 잃었다네!
내가 백방으로 알아보고 또 생각을 해봐도
아리랑 서커스단을 물려줄 사람이 없다네!
마지막으로 마음에 두었던 정태 자네에게
아리랑 서커스단을 물려주기로 결심을 하였네!
자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버스와 장비까지
무상으로 물려주기로 마음을 먹었네!
세상 살다 보면 절망의 고개를 넘어서면 희망이
보인다네!
나 역시 한쪽 다리 불구가 되어서도 마술을 배워
아리랑 서커스단을 창단했다네!
그러니 자네도 용기를 잃지 말고 부디 희망을 가지고
일어서게나!
그러니까 이 편지를 보는 즉시 서울 보훈병원으로
와서 나를 찾게나!
-맹호부대 선배 고인석 단장-
정태 역시 고인석 단장의 맹호부대 후배였다.
정태는 월남 참전 용사로서 전투 중에 부상을 입어
전역을 했지만 국가로부터 고인석 단장과 똑같은
무공훈장을 받았다.
정태와 고인석 단장의 만남 그 자체가 어찌 보면
필연적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정태는 우체국으로 가서 서울 보훈병원에 전화를 걸어
고인석 단장과 통화를 했다.
정태는 단장이 가르쳐준 대로 서울로 가서 버스를 타고
서울 보훈병원으로 갔다.
단장의 침상옆에는 의외로 다혜가 앉아있었다.
"안녕하세요 단장님!
오정태 왔습니다 충성!"
정태는 슬픈 모습을 감추고 애써 웃음을 지었다.
그때 다혜가 벌떡 일어나 정태에게 안겨서
눈물을 펑펑 흘렸다.
"정태야 이 나쁜 자식아!
왜 이제야 오는 거야 정태야!
다리는 어디다 두고 온 거야 이 바보 같은 녀석아!"
정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듣고만 있었다.
한참을 지켜보던 단장이 정태를 불러 앉혔다.
"정태야~!
다혜에게는 사실대로 얘기를 했단다!
내가 편지에 쓴 내용대로 나는 이제 더 이상
아리랑 서커스단을 이끌 수가 없단다!
네가 오기 전에 다혜와 많은 얘기를 했단다!
다혜는 아직도 너를 가슴에 품고 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단다!
너도 이제 스물두 살이면 성인으로서 스스로
혼인을 할 수 있는 나이란다!
정태 네가 월남전쟁에서 다리를 잃었지만
다혜는 너를 향한 사랑이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내가 만일을 대비해서 우리 집 근처에 조그만
집을 하나 마련했다.
앞으로 너희 둘이 머물 수 있도록 병원에 오기 전에
다혜 앞으로 등기도 마쳤단다!
너희 둘이 힘을 합하면 내가 없어도 충분히
아리랑 서커스단을 이끌 수 있을게다!
이제 아리랑 서커스단의 운명은 너네들
어깨에 달려있단다!
너들이 내 부탁을 들어줘야만이
내가 편하게 눈을 감을 수가 있단다!"
정태와 다혜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정태와 다혜는 단장의 말씀대로 결혼식은 못했지만
단장이 마련해 준 집에 둥지를 틀었다.
정태와 다혜는 삼일이 멀다 하고 보훈병원으로
가서 단장의 병간을 하였다.
정태와 다혜가 동거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단장은 정태와 다혜가 지켜보는 앞에서 임종을 했다.
1969년 10월 20일 아리랑 서커스 단장이자
맹호부대 창설 멤버였던 육군 예비역 병장
고인석은 그렇게 생명줄을 놓았다.
삼일 후 정태와 다혜, 그리고 단원들 모두가
버스를 타고 고인석 단장의 뒤를 따랐다.
아리랑 서커스단 단원들과 맹호부대 선후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맹호부대 창단 멤버였던 예비역 병장 고인석은
국군 묘지에서 영면에 들어갔다.ㅁ
*아래는 국궁묘지 전경 펌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