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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야기 |
<조선시대>- 제19대 숙종, 인경왕후 김씨 외,
| >> 인경왕후 김씨 김장생의 4대 손인 광성부원군 김만기의 딸이다. 1670년 열살때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의동별궁에 들어 갔으며 다음해 3월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 1674년 현종이 죽고 숙종이 즉위하자 왕비가 되었고, 1676년 정식으로 왕비에 책봉되었다. 1680년 10월에 천연두 증세가 보였는데, 이 때 숙종은 천연두를 겪지 않은 터라 약방도제조 영의정 김수항의 건의에 따라 편전을 창덕궁으로 이어하였다. 인경왕후는 발병 8일만에 20세를 일기로 경덕궁에서 세상을 떴다. 이후 경덕궁 영소전에 위패가 모셔졌고 능은 익릉으로 경기도 고양시에 있다.
인현왕후 민씨 여양부원군 민유중의 딸이다. 1681년 가례를 올리고 숙종의 계비가 되었다. 예의가 바르고 덕성이 높아 국모로서 백성들의 추앙을 받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왕자를 낳지 못하여 왕의 총애를 받지 못했으며 당시 소의였던 희빈 장씨가 왕자 균을 출산하자 정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설움을 당해야 했다. 숙종은 1689년 왕자 균을 세자로 책봉하였는데, 노론의 송시열 등이 이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숙종의 진노를 사서 사사되었다.
이른바 기사환국으로 불리우는 이 사건에서 인현왕후 역시 왕의 미움을 받아 서인으로 강등되어 폐출된다. 이후 그녀는 안국동 본가에서 지내게 되었고, 희빈 장씨가 중전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그뒤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비한 것을 후회하고 있던 중에 1694년 소론파의 폐비 복위운동으로 남인 세력이 실각하는 갑술옥사가 일어나자 다시 복위되었다. 복위 후 그녀는 다시 빈으로 강등된 희빈 장씨와 화합을 도모하며 지내다가 병을 얻어 1701년 소생없이 3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한궁녀가 그녀를 주인공으로 쓴 소설 '인현왕후전'이 전해지고 있다. 능호는 명릉으로 현재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에 있다. 후에 숙종도 이곳에 함께 묻혔다. 인원왕후 김씨
경은부원군 김주신의 딸이다. 1701년 인현왕후 민씨가 죽자 간택되어 궁중에 들어가 다음해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1711년 천연두를 앓았으나 회생했고 2년 뒤에 혜순이라는 존호를 받았다. 1720년 숙종이 죽은 뒤 왕대비에 올랐고 1724년 경종이 죽은 뒤 다시 대왕대비에 올랐다. 소생은 없으며 능은 명릉으로 인현왕후, 숙종과 함께 경기도 고양에 묻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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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쏠쏠한 재미 좋은글 사랑합시다.
전주향교/鶴田/옮김/한문희총대장 감사합니다.
본래의 마음,자유인 한문희총대장, 백두대간의 전설 자유인 백두대간종주대한문희총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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