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의 사건은
우리 구원에 절대적인 요건이 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아담이 범죄하여 죄가 들어오고 그 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사망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의 은혜를 입지 않고는
중생 곧 거듭남도 의롭게 됨도 거룩하게 됨도 영화롭게 됨도 다 말뿐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 받을 만한 이름이 천하에 없습니다(행4:12)
구원의 과정에 부활신앙이 있는데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포함이 되어 전파되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고전15:1)
바울이 전한 복음이란 이미 과거의 일입니다. 이미 온 세상에 선포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전15:12)는 사실은 이미 과거의 일입니다.
그러나 ‘알게 하노니’하는 말은 현재적인 하나님의 계시이며 성령의 조명입니다.
이미 선포된 복음을 듣고 믿으므로 나 자신에게 그 복음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객관적인 지식이 주관적인 지식으로 바뀐다는 말이며 이를 체험적인 신앙이라 합니다.
고전15장1절의 구성을 보면 먼저 복음을 전했고
그들은 받았고 인정했으며 그 다음에 그 복음에 섰다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로의 부르심인데 전하는 자에 의해서
듣는 자들로 하여금 어디까지 부르심인가 그 차이가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어떤 사람은 복음이라고 말하면서 십자가까지 부르신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의 피, 또 어떤 사람은 의, 거룩, 영화로움(롬8:30)
또 어떤 사람은 하늘에 앉힌 자리(엡2:6)까지 부르셨다고 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하늘 속한 거룩한 형제들아(히3:1) 하므로 하늘까지 부르십니다.
복음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와 길이에 따라 받아들이는 자들의 구원의 차원도 다릅니다.
예수를 믿어 죄 사함을 받는 자리로 부름을 받으면 물세례를 받는 수준이 되어
회개를 한다고 하면서 죽은 행실의 회개를 반복하게 되겠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까지 부르심을 받아 듣고 따르면 성령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죄가 뭔지 의가 뭔지 그 경계가 분명하여 참 회개를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받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고전15:2)고 말합니다.
구원을 받을 것이란 현재적이며 피동적인 말씀입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복음에 의해서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사건 그 한 과정이 복음의
전부가 아니라 바울은 고전15장 전체가 바로 복음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복음의 말씀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 하였으면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하므로 구원을 받는 것은 언제나 현재임을 밝힙니다.
헛되이 믿는 것은 외형만 갖추는 것입니다. 내용이 없는 신앙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고 받고 지키어 뇌에 기억시키는 훈련을 인내로 이루어야 합니다.
시편1편의 복 있는 사람은 복음 곧 그리스도의 전체 동선을 곰곰이 생각하므로
뇌를 훈련시켜 구원의 기억이 가득하게 되어 인격의 열매까지 맺는 상태입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15:3-4)
먼저 전한 내용은 역사적인 사건을 말합니다.
성경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사건을 말합니다.
이 소식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아서(파라람바노)
이미 고린도교회에 넘겨주었다(파라디도미)고 합니다.
이는 복음의 릴레이며 이것이 바로 교회의 전승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사건을 사도들이
직접 본 역사적인 사건은 그 당시 교회의 전승이었습니다(고전15:3-6)
굉장한 뉴스이며 해외 토픽과 같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사건을 뉴스 브리핑하듯 그 내용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주는 것이죠.
베드로를 위시한 12제자들 그 후에 5백여 형제들이 보고 또 야고보와 모든
사도들도 보았고 그리고 맨 꼴찌인 바울 자신에게도 보인 그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만삭되지 못하여(민12:12, 욥3:16)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였다 진술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른 사도와 달리 정상적인 과정이 없이 느닷없이 나타났습니다.
예수를 생전에 보지 못한 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유대인은 다 예수와 혈통적인 관계가 있지만 이방인인 우리는
예수를 보지 못하였지만 성령의 역사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영생을
얻는 것처럼 바울 또한 그리스도를 만나고 예수를 알고 구약을 재해석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유대인이지만 이방인 같이 구원을 받았으므로 이방인의 사도가 됩니다.
그래서 반쯤 죽어서 태어난 것과 같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디모데와 같이 긴
과정도 매우 중요하지만 바울과 같이 갑자기 주신 하나님의 은혜나 부름도 중요합니다.
바울은 도저히 받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므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고전15:8)
그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아무 공로도 과정도 없는 바울에게
그리스도께서 부르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 그 자체가 은혜였습니다.
한 일이라고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핍박한 것 밖에 없는 바울이었습니다.
사실 은혜라는 말을 함부로 쓰면 안 됩니다. 햇빛과 비를 내리는 것은 일반은혜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도무지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은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고전15:11)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이 놀라운 역사적인 사실을 믿었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무엇이 문제이기에 바울은 복음을 알게 해야 하겠다고 말하는 걸까요?
요즘 같으면 예수 믿고 죄 사함 받으면 됐지, 좀 더 나아가면 거듭났으면 됐지,
예수부활을 믿고 나도 장차 주와 같이 부활할 것을 믿으면 됐지 뭔 복음이란 말인가?
사실 그 복음의 내용은 제대로 전달되었으나 고린도교회는
아직 부활의 비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가 너희 안에 계시는 믿음인가 확인해 보라고 다그칩니다.(고후13:5)
지금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복음의 내용은 온 세상에 제대로 전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가 각 개인마다 다르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존 맥아더 목사의 설교를 들어보니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거듭남
곧 중생으로 부름을 받지 못했다고 말하는 걸 보고 아연했습니다.
중생이 구원의 중요한 관문입니다. 위로부터 새 생명을 받으므로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그래서 born again이라고 하기도 하고 new born이라고 합니다.
아담 안에 죽었던 자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이 없이 어찌 중생할 수가 있을까요?
예수 믿고 죄 사함을 받아 물 세례를 받기만 했는데 어찌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한 성령을 마실 수가 있을까요?(고전12:13)
아담 안에 죽어 사망 안에 있던 내가 그리스도의 부활로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중생도 회개도 믿음도 구원도 다 말잔치뿐입니다. 그 믿음은 허상입니다.
마귀는 전파된 복음의 내용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부활의 능력이 나타날까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리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사신 역사적인 사실은
잘 믿지만 자신 안에 살아계시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는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남도, 새로운 피조물도, 거룩도, 영광도, 사랑도 다 입에 발린 소리들뿐입니다.
교회가 보편적인 교리를 채택해서 들려주고 또 들려주면 이를 듣고
또 듣다 보면 그런가 하는 의식에 잡혀 제자리를 뱅뱅 돌 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고전15:2)고 하신 것입니다.
바울식으로 구원의 복음을 전하자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혀 놓고
그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노라고 진술합니다(엡2:6,8)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혔다는 건 그리로 부름을 받았다는 뜻이며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장사되고 그리스도의 다시 사심에 합하는 세례를
받으므로 부활과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주와 함께 하늘에 앉은 구원입니다.
이 정도는 되어야 나 구원 받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있는 겁니다.
미루어 보건데 진정한 구원의 복음의 능력이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에 의해 제한되어 있음을 우리는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할렐루야!! 부활과 생명이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간증하며 찬양합니다.
좋은 신앙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