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김성우, 엄기호 저 따비 2020.04.20.
키요시는 청각장애, 발달장애가 중복으로 있는 7살 아이다. 이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집은 그야말로 폐허가 되었다. 몸이 약해서 넘어지기 일쑤고, 배변실수를 하며, 자기 얼굴을 손톱으로 긁는 자해를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은 돌을 너무 사랑한다는 것이다. 동네 못된 아이들이 키요시를 골려주려 일부러 키요시 앞에서 돌 위에 오줌을 쌌는데 키요시는 그 가여운 돌을 소중하게 안아준다. 그리고 돌들을 어딘가에 자꾸 올려놓는다. 하루는 아빠 빵집 진열대에 돌을 올려놓기도 하고, 죽어가는 매미 앞에 돌맹이들을 놓기도 한다. 그러나 귀가 들리지 않는 키요시는 어떤 말을 해도 알아들을 수 없다. 가족들의 인내는 바닥이 났고, 아빠는 아이에게 폭력을 참지 못했다. 결국, 가족들은 키요시를 시설에 보내는 것으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철길 위 다리를 건너던 키요시와 키요시의 엄마는 붉은 노을을 바라보면서 넋두리를 한다. 그런데, 이번에도 키요시는 돌들을 다리 난간에 올려놓았다. 그 모습을 곰곰이 지켜보던 엄마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아! 키요시는 돌들에게 말을 하고 있었구나. 아름다운 석양을 보여주기 위해 돌들을 올려놓았던 것이고, 맛있는 빵을 보여주기 위해, 죽어가던 매미를 돌들과 응원하기 위해 올려놓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키요시도 자신의 언어로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키요시를 껴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몇 년 전 5~6학년 독서동아리 아이들과 함께 읽은 <도토리의 집 1권> 2004년, 한울림스페셜, 야마모토 오사무 에서 나오는 이야기이다.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를 읽었을 때 위의 장면이 생각났다. 책의 저자들은 리터러시가 타인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다리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며 이를 ‘삶을 읽어내는 리터러시’라고 하는데 키요시의 엄마가 키요시의 언어를 알게 된 것이 그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이 유튜브에게 집아삼켜지지 않고 삶을 위한 리터러시가 될 수 있을까?
책의 장점과 단점
이전의 구술문화는 말이 and로 연결되어 개념들이 나열되기만 하는 한계가 있었는데, 문자는 그것들을 겹쳐보이도록 공간화 했다. 유튜브도 시간의 순서대로 연결되는 구술문화와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또한 말은 과거의 것들을 현재로 가져온다면 문자는 현재의 것을 미래에 기록하는 개념이다. 또한 책은 사고의 사유화를 가져왔다. 책을 읽는 동안 사람은 고독해지는데 그 시간동안에는 오롯이 책과 나만 존재하며 그 순간의 사고는 온전히 내 것이 된다. 말과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사랑, 자유, 평등 등의 추상적인 개념을 담을 수 있다. 영상으로 현재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준비와 편집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텍스트는 그 자리에서 끼적이면서 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책은 저자의 과거와 독자의 현재를 이어주는 고차원적이고 효율적인 리터러시다.
반면, 텍스트는 오랫동안 권력의 도구였고 이후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게 되면서부터 노동이 되었다. 인류의 역사는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말이 있는데 유튜브는 텍스트 노동으로부터 구원해주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자유함과 유능함까지 느낄 수 있지 않은가. 텍스트는 읽어내는 데 그만큼 많은 노력을 요한다.
유튜브의 장점과 단점
유튜브 또한 장점이 확실하다. 문자로 풀어내기 어려운 것들을 직접 확인시켜 준다. 요리를 배우게 해주고 유희를 제공하며 여러 가지 소식들을 전달해준다. 우리 삶과 밀접한 리터러시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코로나 시기 유튜브를 선생님 삼아 머랭쿠키를 마스터하고 기타를 배웠다. 집에서 쉽게 음악을 감상하고 세상의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몇 가지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요약되고 편집된 동영상을 기본 미디어로 삼아서 지식과 정보를 얻다 보면 일종의 관성, 아비투스가 생긴다는 거예요. 알고 싶은 걸 빨리, 흥미롭게 전달해주는 건 소화를 하는데 그렇지 않은 미디어를 접하면 지루해서 끝까지 볼 엄두가 안 나죠. 이런 변화 속에서 미디어를 편식하게 되고요. 몸은 점점 특정한 길이와 포맷의 영상에 익숙해지죠.” (147p)
“앎이 삶을 방해하는 역설”(176p)
한마디로 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하고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는 내가 가질 수 있는 오류도 생각하지 못한 채 확증편향에 빠져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짧은 영화 소개 동영상을 보고 영화를 다 봤다고 착각할 수 있고, 내가 신뢰하는 사람이 이렇게 말하고 나의 생각도 지지하고 있으니 나는 맞고 저 사람은 틀렸다고 단정할 수 있다. 이는 온갖 혐오문화, '00충' 문화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고 본다. 내가 만난 어린이, 청소년들도 대충 훑어보고 '나는 다 알아요', ‘이미 다 아는데 왜 힘들여 들여다봐야 하죠?’라고 질문한다.
유튜브와 책의 공존은 교육의 문제
유튜브와 책은 각각의 영역과 장단점이 확실한 리터러시이다. 그러나 리터러시 충량의 법칙이라도 있는 것 처럼 책이 많은 부분 감당하던 리터러시를 유튜브나 다른 매체들이 대신하고 있다. 이러다 책이 집어삼켜질 것 같은 위기를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건 그 소통의 도구들로 무엇을 하냐는 것이다.
‘학생들이 배워야 될 것은 평가에 최적화된 기술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하는 능력이다. 소통하는 능력은 단순한 시험 문제로는 측정할 수 없다. 개인의 역량을 공정하게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리터러시에 대한 사회적 역량을 공공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196p)
마치 엄마가 키요시의 언어를 알아챘듯 나와 다른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을 이해하기 위한 능력이 필요하다. 그들의 표면적인 언어만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닌 그 이면에 있는 배경까지 함께 두껍게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맘충, 김치녀, 한남, 틀딱과 같은 혐오표현이 넘쳐나는 세상은 서로를 읽어내지 못함으로 탄생하고 증폭되었다고 본다. 정치 유튜브 컨텐츠를 보라. 리터러시가 우리의 삶을 연결하는 게 아닌 무기가 되어 서로를 어떻게든 공격하려 하지 않는가.
이를 위해서는 교육의 몫이 크다. 그런데 텍스트를 우리 교육에서는 어떻게 다루어왔는가? 아래의 예는 그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8p)
문제 : 바보가 치과에서 이를 뽑았는데 치과의사는 그걸 강아지처럼 끌고 다니면 안 아플 거라고 했고 그걸 바보는 따라했다. 바보는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는데 여기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무엇인가?
정답 : 웃기다.
저 상황이 웃긴가? 그런데 답은 웃기다 한가지로 다른 답을 허용하지 않았다. 갇힌 생각을 유도하고 있어 씁쓸하다. 흑백으로 프린트 된 중학교 미술 시험지에서 르누와르 그림을 예로 들며 색감은 어떠하냐는 문제를 내기도 했단다. 그야말로 코메디 같은 상황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많은 지식들은 세상을 두껍게 읽어내기 위해 필요한 지식들임에도 그 목적은 상실되지 오래다. 수능 이후 지문의 길이도 길어지고 복합적인 의미를 따지는 역량이 고려되기는 했으나 그것은 시험을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한가지 답을 강요하는 것을 그만두고 서로를 바라보며 소통하는 교육으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 갈등의 평행선은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첫댓글 오, 은중 샘, 어렵고 복잡한 내용이 많은데, 책과 유튜브를 간결하게 비교하고, 우리 교육에서 시급히 개선해야 할 주제로 잘 연결하셨네요! 큰 박수 보내드립니다.
페이지 언급하실 때, 인용부호 들어가는 부분은(P222) 이런식으로 적어 주셔도 좋을 거 같아요. 글 앞 부분에 흥미있는 사례가 있는 글이 확실히 읽기 좋아요. 저 책도 읽고보고 싶게 만들고요.
오호 그렇네요! 퇴고해 보겠습니다~~ ^^
책 내용과 선생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가 잘 정리되었네요. 다들 이렇게 글을 잘 쓰시면... 아잉~~
키요시 이야기가 마음을 울리네요ㅠㅠ
책과 유튜브의 장단점을 잘 정리해주셔서 눈에 쏙 들어오네요!^^
좋은 글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