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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되기 손자병법..!!
1. 10억 만들기? TV부터 당장 꺼라.
“부자가 되려면 먼저 부자를 제대로 이해하라.”
우리나라 부자들의 60% 이상은 ‘자수성가형’인 자영업자들. 이들은 스스로의 자립력과 상황 돌파력에 의해 적응력을 높인 사람들이다. 부자들은 자신들의 이 힘을 최대한 활용해서 자신만의 독특한 습관들을 가지고 돈을 벌었다. 지식이 부자를 만든 것이 아니라 습관이 부자를 만든 셈이다.
▲ 지금 당장 인적 네트워크를 점검하라
▲ TV를 꺼라
▲ 신용카드를 쓰기 전에 세 번만 참아라.
부자들은 단기적 또는 장기적으로 관계를 형성하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업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주로 만난다. 성취해야 할 목표와 일에 집중하기 위해선 TV도 시간 잡아먹는 기계일 뿐. 거기다 무의식중에 소비심리를 조장하기까지 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시간은 부자에게나 거지에게나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자본’인 셈이다. 그 자본의 가공은 시간의 효용성 감각에 달려있는 것 아닐까.
두 배는 힘든 상황에 자신을 밀어 넣어라.
안전제일주의- 최선의 수비는 최고의 공격이다.
2. 빌딩부자 사모님 원칙대로 돈 버는 법: 차곡차곡 불리는 게 부자되는 지름길
부자는 원칙주의자다. 부자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일반인들에 비해 많은 성과를 낸 사람이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자존심이 무척 강하다. 후천적으로 다듬어진 자신의 고집과 우월감 때문에 생긴 자신의 원칙을 그대로 따르려는 성향이 상당히 강하다.
반면 희끗희끗해지는 머리칼을 보면서 몸에 좋은 것이 있다고 하면 수십만원이라도 아낌없이 그냥 내는 것 또한 부자들의 모습이다. 다시 안 볼 택시기사에게는 1백원이 아까우나, 자신에게 수십만원을 투자하는 것은 절대로 아깝지가 않은 것이 부자다.
‘신부자열전’ 그 두 번째 주인공으로 소개할 강남 부잣집의 한 사모님 역시 철저한 원칙주의자다. 자신의 중요한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엄청난 노력을 하고(여성의 몸으로 힘든 일을 하고), 자신의 헛된 욕구를 절제하려고 상당한 인내를 하는(여성의 입장에서 하기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이다.
50대 초반인 O여사의 부모님은 이북에서 월남한 뒤 서울에서 검소한 생활을 했다. 공직에 몸담고 있었던 부친의 영향으로 O여사는 알뜰하면서도 부족함 없는 생활을 하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다. 부모님은 당시의 일반적인 경향대로 부동산을 재테크 수단으로 삼았고, 무남독녀였던 O여사가 이를 물려받았다.
남편이 전문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결혼한 뒤에도 O여사가 부동산을 직접 챙겼는데, 여성의 몸으로 당차게 관리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부동산 재산을 증식해 나가는 수완을 발휘했다.
집에서는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남편과 함께 1남1녀의 가족을 알뜰히 챙기면서도 O여사는 자신이 직접 세입자 관리도 하고, 환경개선부담금도 걷고, 정화조 청소도 관리하고, 심지어는 빈 점포를 채워넣는 부동산소개소의 일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전체 부자 중 약 35%가 거주한다는 ‘부자특별구’인 서울시 강남구에 아파트와 빌딩을 가졌지만 O여사는 여성으로서 재산관리인 없이 자신이 빌딩 관리를 직접 챙겼다.
세입자들만 족히 수십 명이 넘는 데다 그들을 일일이 직접 상대한다는 것이 상당히 버거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다른 빌딩들이 흔히 해오는 식의 중간관리인을 채용하지 않고 직접 나섰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빌딩은 항상 빈 점포 없이 세입자가 꽉꽉 찼고, 그 관계도 원만했다고 한다. 인건비를 줄이는 대신 다른 곳보다 월세를 단 일이십만원이라도 더 싸게 해주고, 또 주인이 직접 매일 관리하면서 챙긴다는 사실이 세입자들에게 믿음을 줬기 때문이리라.
그녀는 부모님과 남편 그리고 자녀를 돌봐야 한다는 사명감(성취욕구)을 가지고 여성으로서 힘든 일을 수행했다. 그러나 자신의 생활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았다. 필자는 O여사와 대화를 하면서 그의 원칙적인 생활에 감동을 받았다.
“교수님, 저는 제가 얼마를 모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다른 것을 다 줄이면서 꼭 달성합니다.”
“금전 목표를 정해 놓고 성취하신다는 것이 힘드셨을 텐데 몸이 힘들고 정신적으로 피곤하지 않았습니까?”
“아니요. 괜찮아요.”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몇 년 전 IMF다 뭐다 해서 3천만원 정도의 월세 수입금이 2천5백만원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러면 그녀는 약 5백만원 정도의 생활비를 절반으로 줄이고, 또 나머지 지출을 최대한 줄여서 이 손실금을 보완하곤 했다. “당장 한 달에 5백만원 적게 들어온다고 큰일 날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물어도 그냥 웃기만 한다.
부자들 중에는 초인적인 인내를 하는 이들도 많은데, 심지어는 화장실을 사용할 때도 서너 명이 다녀와야만 물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 필자가 직접 만나본 서울 평창동의 한 부잣집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필자가 이런 이야기를 O여사에게 하자, “저희도 부부끼리는 그래요”라고 태연하게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O여사의 재산 증식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고전적이고 구태의연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녀는 전형적인 소극적 방어적 방식의 재테크를 추구한다. 남편의 월급으로 생활하고, 빌딩 임대료 등 수입금은 고스란히 저축한다. 돈이 쌓이면 인근 상가를 분양받고, 그것이 쌓이면 또 작은 빌딩을 하나 인수하는 식이다.
이리저리 정보력을 동원해서 분양권을 따내기 위해 쫓아다니고, 또 그것을 금세 되팔고 하는 것도 체질상 맞지 않는다고 한다. 차근차근 불려나가는 재미가 쏠쏠하지, 한꺼번에 왕창 목돈이 굴러오면 왠지 돈이 돈 같지가 않아서 별로 돈 모으는 재미도 없을 것 같다고 한다.
현재 수백억대 재산의 근간이 된 강남역 부근 대형 빌딩 역시 당초 가족이 거주하던 집이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아파트로 이사가면서 그 집을 허물고 작은 빌딩을 짓고, 다시 증축하고 늘리고 해서 지금의 대형 빌딩이 되었다는 것.
O여사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 쉬운 강남의 부자 사모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흔히 말하는 사교 모임 같은 것도 없고, 고급 승용차나 명품과도 거리가 멀다. 굳이 모임이라면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신도들과의 모임 정도. 골프나 여행, 쇼핑 등도 그다지 취미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가족들을 위해서, 살림 장만을 위해서 쓰는 돈은 또 행복을 느끼며 기꺼이 꺼내놓는다.
필자는 기독교의 자선정신을 언급하면서, 미국의 부자들은 청바지를 수십 년씩 꿰매어 입으면서 아낀 돈으로 아프리카에서 페니실린이 없어서 죽어가는 아이들에게 수백만달러씩을 쾌척한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저도 아는 분들 소개로 몇 군데에 제가 정한 액수를 보내드립니다”라며 겸손하게 웃었다.
우리나라에 부자는 아무리 많이 쳐야 전체의 5%가 안 된다. 길거리에 걸어다니는 20명의 사람 중에 소위 부자라고 불릴 만한 이는 한 명뿐이라는 이야기다. 20 대 1의 경쟁을 이긴 경제적인 승리자인 부자들은 자신이 세운 원칙에 철저하다. 내 신념이 옳고 그리고 신념에 따른 행동이 옳다는 관념이 강하다.
자신의 원칙에 나름대로 철저하고, 보통 사람이 하기 힘든 인내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그리고 자신의 자녀에게는 엄격하게 용돈을 주면서도 불쌍한 타인들의 이야기에 기꺼이 온라인 송금을 하는 부자들도 있다. 반면에 필자는 또 두 시간에 90만원짜리 스파에 몸을 담그고 나서는 8천만원짜리 모피를 입고 불우이웃돕기 행사에 참석해서 1만원짜리 두 장을 내놓는 부자도 실제 목격한 적이 있다.
필자가 만난 O여사는 그 여러 부자들 중 굳이 분류를 한다면 전자에 속하는 유형이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게 되는 ‘강남의 부자 사모님’에 대한 편견을 그녀를 통해 상당히 바꿀 수 있었다.
3. ‘부부합심’ 부자되는 법: 새는 바가지 고쳐야 돈이 고인다.
미국에서 부자가 된 사람들 중에는 ‘부부 간의 합심’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 경우가 많다. 미국의 한 부부는 젊었을 때 온갖 고생을 다했다. 어느 날 약간의 돈을 모으자 부부가 합심하여 회사를 차렸다.
남편과 부인이 주식을 공동출자하였고, 운영은 남편이 맡았다. 부인은 집에서 정말로 알뜰하게 생활했다. 5센트를 아끼려고 집으로 매일 우송되는 온갖 쿠폰을 오려 모으고 허드렛일들을 마다하지 않았다. 4. 부자 되려면 부자와 친해져라: ‘혼’ 바치면 ‘돈’ 나온다.
수십 년이 흘러서 남편이 운영해온 회사가 공개되었고 주가총액이 수천만달러를 넘어섰다. 남편은 그동안 온갖 뒷바라지를 해준 부인의 주식을 처분한 뒤 그 모든 돈을 부인의 통장으로 입금한 후에 어느 날 저녁에 부인에게 주었다. “여보, 이게 당신이 수십 년 동안 고생하면서 나를 뒷바라지 해준 보람이요. 당신의 돈이니 당신이 알아서 쓰시오”라는 남편의 말에 부인은 그저 “알았어요”라고만 대답하였다.
그 다음 날 아침에 남편이 눈을 뜨니 부인은 여전히 부엌에서 온갖 신문들에 끼어온 쿠폰들을 오려서 지갑에 넣고 있었다. “여보, 당신은 이제 천만달러를 넘게 가진 부자니 이런 일은 하지 않아도 될 텐데”하는 남편의 말에 부인은 다음과 같이 대꾸하였다. “이것은 내가 평생을 해온 일입니다.”
필자가 아는 서울 강북의 한 부부는 정말 아무 것도 없이 빈손으로 시작했다. 남편은 이북에서 홀어머니와 누이들을 데리고 서울에 와서 명문대학에 합격했다. 대학생이면서도 실질적으로 가장이었다. 손위 누이들이 직장을 다녔지만, 손아래 여동생들도 역시 줄줄이 대학에 진학하였던지라 등록금이 없어서 학업을 중간에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가졌다. 자신도 대학생이면서도 이리저리 돈을 빌려서 어린 누이의 대학등록금을 대주었다.
부인은 전라도에서 홀어머니와 여섯 명의 동생들을 데리고 서울에 와서 의과대학을 다녔다. 두 사람은 대학 시절에 만나 결혼을 했다. 부인은 산부인과를 개원했다. 부부는 양쪽 집안의 장남과 장녀로서 자신들의 집안은 물론 동시에 상대방의 집안도 책임져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부부는 아무런 다툼 없이 세 집안(남편의 집, 부인의 집, 공동의 집)을 잘 유지해 나갔다.
그러던 중 은행에서 근무하던 남편이 어느날 부도난 대출에 어쩌다 관여하여서 강제 퇴직을 당했다. 남편은 퇴직금으로 목욕탕을 시작하였다. 성실하게 목욕탕을 운영하면서 벌어들인 돈으로는 항상 부동산에 투자했고, 상당한 재미를 보았다.
부인은 산부인과를 운영하면서도 집안 살림을 도맡았다. 양쪽의 집안을 보살펴야 하는 부부의 헌신적인 고생에 대한 보답인지 매입하는 부동산마다 엄청나게 뛰었고, 병원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갔다.
이 같은 수십 년 동안의 노력의 결과로 부부는 엄청난 재산을 모았다. 그러나 이 부부 또한 앞서 소개한 미국의 한 부자 부부의 경우처럼 알뜰한 생활이 몸에 배어 있었다. 남편은 자신의 누이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마다하지 않았으나, 별로 쓸 필요가 없는 일에 돈을 쓰는 것에는 불호령을 내렸다. 누이동생의 집에 생일잔치가 있어서 참석한 자리에서도 그는 조카들에게 “내일 아침에 맥주병과 소주병을 꼭 슈퍼에 가지고 가서 공병 환불을 받아오라”고 채근한다.
필자는 부부가 합심하여서 부자가 된 커플들을 많이 보아 왔다. 한마음으로 서로를 믿은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다.
“교수님, 저는 워낙 배운 것이 짧고 초등학교만 나와서 막노동을 하였으나, 제 집사람은 고등학교를 나와서 회사에 다녔습니다. 저한테 시집 와서 선지국에 배추 넣고 끓인 국이 값이 싸고 양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십여 년을 그 국만 먹고도 큰 불평 한마디 없었던 우리 집사람 덕분에 오늘날 제가 헬스센터와 빌딩 두 개, 아파트 세 채를 갖게 되었습니다.”
필자 앞에서 말을 더듬는 부자남편의 ‘애처가’(부인을 아끼는 노래)는 감동적이었다.
“교수님, 어렸을 때 돈이 없어서 제 자식을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고 저 세상으로 먼저 보냈습니다. 돈을 벌겠다고 30여 년 동안 못을 고르고, 시멘트포대를 날라준 제 마누라는 천사입니다.”
집안에 현찰을 십억원 이상 쌓아둔 어느 사장은 돈이 없어서 자녀를 병원에 못 데려갔던 과거의 가난을 떠올리며 가슴에 못이 박혔지만, 지금은 아내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옛이야기를 하고 사는 처지가 되었다.
생리대를 살 돈이 없을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하여도 남편의 말을 믿고 아무런 불평 없이 묵묵히 내조를 해 온 어느 주부는 결국 ‘50억 재산가의 사모님’이 되었다. 하루에 18시간 동안 택시를 몰면서 소변을 참고 운전하느라 방광염에 걸리기도 한 남편과 그런 남편이 벌어오는 돈을 꼬박꼬박 모아서 부동산에 투자해온 한 주부는 훗날 아파트 십여 채를 가진 부자가 되었다.
부부가 결혼할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서 같이 돈을 모으면 저절로 돈이 들어온다. 남편이 바람을 피울 것이라고 의심이 드는 순간에 신문의 할인쿠폰을 모으면 부자가 된다. 부인이 쓸데없이 자녀의 사교육비를 너무 많이 쓴다고 의심이 드는 순간에 야근을 하면 부자가 된다.
평균적으로 20쌍의 신혼가정이 생기면 수십 년 후에 단 1쌍만이 부자가 된다. 손을 맞잡고 시작한 부부생활에서 같이 벌고, 같이 아끼고, 같이 노력하여서 결국 성공한 부부만이 부자가 된다. 부부간의 공동의 노력이 ‘플러스시너지’(plus synergy: 둘이 합해서 더 좋게 되는 것)를 창출하는 경우는 ‘나보다는 상대방을 먼저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결혼할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부자부부가 된다.
이 여직원은 약혼자와 8시에 명품숍 앞에서 만나기로 하였는데 그곳에는 가지 않고 계속 고스톱을 친 것이다. 휴대폰이 오면 꺼버리고 계속 고스톱을 친 대가로 약혼자와 사이가 틀어지고 결국은 헤어졌다. 물론 그 부자고객을 확실하게 감동시킬 수 있었다. 눈물의 대가는 돈으로 돌아왔다.
필자가 아는 어느 수입차 세일즈맨은 나이트클럽을 경영하는 사장에게 수입차를 팔았다. 손님이 까다롭게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새벽 2시에 휴대폰이 계속 울렸다. “차가 이상하니 지금 우리 가게로 오라”는 손님의 요청에 할 수 없이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나이트클럽으로 달려갔다.
그날 따라 나이트클럽에 손님이 별로 없자 사장이 장난 삼아 자신에게 수입차를 판 그 세일즈맨을 부른 것이다. 이 고객의 이상한 호출에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나이트클럽으로 새벽에 달려갔고, “온 김에 술이나 한잔하자”는 사장의 말에 같이 마셨다.
심지어는 술값을 세일즈맨에게 떠넘기는 사장의 얄팍한 속셈에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눌러 참으면서 그냥 술값을 내고 나왔다. 그런데 이 사장은 며칠 후에 다시 전화하더니 자신의 친구들인 다른 나이트클럽의 사장 세 명을 소개해줬고, 이 세일즈맨은 그 덕에 한꺼번에 세 대의 수입차를 팔았다. 하룻밤 잠을 설친 대가로 결국 그 해 2억원을 챙길 수 있었다.
필자가 아는 어느 여행사 사장은 대그룹의 ‘회장님’을 고객으로 모시고 있었다. 회장이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는 대가로 그 그룹의 모든 비행기표를 도맡아서 팔았다. 어느 날은 회장이 “젊은 여성과 해외 여행을 하고 싶다”는 은근한 요청을 넌지시 던져왔다. 이 여행사 사장은 온갖 곳에다 줄을 놓아서는 결국은 회장의 욕구를 충족시켜 줬다. 물론 그 대가로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그 그룹의 여행 일을 도맡을 수 있었다.
필자가 소개한 이들 다섯 명은 전부 부자다. 현찰만 10억원 이상에, 고배당 우량주를 몇 만 주 이상씩 가지고 있고, 1kg에 2천만원 정도 하는 금괴도 상당히 있고, 수억원짜리 미술품도 가지고 있고, 8억원짜리 빌딩도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전부 ‘부자와 친해져서 부자가 된 사람들’이다.
부자와 같이 있어야 부스러기라도 건진다. 부자와 같이 있어야 떡고물이라도 만질 수 있다. 부자를 상대로하는 세일즈는 겉으로 보기보다는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으나, 한번 성공을 시키면 부자들이 스스로 세일즈를 해 주면서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고수익 비즈니스’다. 부자가 되고 싶으면 부자에게 팔아라.
부자가 되는 비법 II
5. 부자마인드의 힘: 맨땅에 헤딩해도 봄날은 온다
부자가 되는 데는 ‘자기최면’이 매우 중요하다. 좋게 표현하면 ‘강한 의지력을 가지고 부자가 되려는 꿈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볼수있고, 나쁘게 표현하면 ‘돈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는 전문적인 ‘머니 컨설턴트’가 있다. 이 직업은 사람들에게 부자마인드를 심어주고 부자가 되는 길을 코치해주는 것이다. 이들이 가장 강조하는 말 중의 하나가 “부자가 되겠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미쳐라”라는 것이다.
60년대에 경상도에서 올라와서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두 평짜리 솜이불 가게를 시작한 K씨는 ‘부자가 꼭 되겠다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 죽은 조카를 보고 난 후 상경을 결심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돈이 많은 곳으로 가야 했기 때문.
서울에 올라와서 그는 지독한 고생을 했다. 생일날 딱 한 번 ‘계란 두 알’을 먹는 것이 그의 삶에 유일한 낙이었다. 장사를 몇 년 해서 돈이 좀 모였는데, 어느 날 옆 가게의 사람이 돈을 빌려달라고 해서 급전을 융통해주고 고리를 받았고, 이에 재미를 붙이면서 사채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꼭 돈을 벌겠다는 마음에 장사보다는 사채놀이에 더 열중하게 됐고 급기야는 가게에 있는 시간보다 다방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면서 돈이 필요한 사람들과 만났다. 80년대에 들어서는 아예 가게를 접고 전문 사채업자가 돼서 1백억원 이상의 부동산과 현찰 수십억원을 챙겼다.
하지만 그는 3층짜리 건물에 건평이 1백 평 정도 되는 단독주택에 살면서도 겨울에는 보일러를 안 돌려 온 가족이 이불을 덮고 산다. 그는 아직도 죽은 조카의 혼이 어른거린다고 한다. 하지만 그 덕택에 부자가 되었다.
전라도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도망하다시피 올라온 L씨는 있는 것이라고는 몸에 걸친 옷밖에 없었다. 건장한 신체 덕에 막노동을 해서 돈을 벌 수 있었으나, 잠자리가 없었다. 그는 한 허름한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주인아저씨에게 제안을 했다. “여기 식당에서 밤에 잠 좀 잘 수 있겠냐”는 것. 주인은 “대신에 밤 2~3시에 끝나는 가게 청소를 하라”는 조건을 달았다.
식당에서 의자 다섯 개를 붙이고 잠을 자고, 낮에는 노동판을 전전하였다. 한 3년쯤 그런 생활을 하자 제법 돈이 모였다. 그는 포장마차를 시작했다. 밤 늦게 포장마차에서 팔고 남은 ‘불어 빠진 우동’을 먹는 생활이었지만 그는 “ 반드시 부자가 되고야 만다”는 주문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외워대면서 포장마차를 했다.
어느 날 스포츠센터를 운영하는 한 단골 손님이 그에게 “이번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데 스포츠센터를 인수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그동안 성실한 L씨를 눈여겨 본 이 손님은 스포츠센터 대금의 10분지 2 정도만 선불을 내고 나머지는 벌면서 갚으라고 하였다. 파격적인 제안에 L씨는 가진 모든 돈을 털어넣고 스포츠센터를 인수했다.
스포츠센터 수입으로 몇 년 후 빚을 모두 갚고는 이후에는 매년 벌어들이는 돈으로 무조건 아파트를 사대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오늘날 아파트 다섯 채를 가진 스포츠센터의 부자 사장이 되었다. 마음속으로 ‘부자되겠다’는 결심을 수십만 번 이상 한 후에 얻은 결과였다.
용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역시 가난 때문에 서울로 ‘도망친’ O씨의 사례. 우여곡절 끝에 그는 용산전자상가에 취직했다. 리어카 행상과 배달로 성실하게 일했고, 한 허름한 도매 점포를 맡게 되었다. 용산과 청계천 세운상가에 점포 세 개를 가진 주인아저씨는 매일 등산을 가고, 대신 O씨가 용산의 점포를 맡아서 관리해 나갔다. 엉덩이가 밖으로 다 삐져 나오는 좁디좁은 화장실에 갈 때마다 그는 문고리를 잡고는 “나는 부자가 된다”를 속으로 외워댔다.
도매 매출이 계속 늘자 주인아저씨가 아예 제안을 했다. 테크노마트에 가게를 하나 알아봐 줄 터이니 알아서 키우고 집세만 내라는 것이었다. 강변역 테크노마트의 가게를 맡는 날 그는 하도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나는 부자가 된다”는 일념하에 하루에 열다섯 시간 이상 일을 하였고 그래도 전혀 피곤한 줄을 몰랐다. 하루에 세끼를 먹어대는 라면도 전혀 질리는 줄 몰랐다. 라면을 먹을 때 그는 ‘국내 최고의 재벌인 이병철 회장은 라면 먹고 싶어서 비행기 타고 일본 가서 먹었고, 아들인 이건희 회장도 어떤 때는 하루 세끼를 라면만 먹었다는데 나 또한 그들과 다를 바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스스로 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라면 인생’에서 현재 십억 이상을 강남의 모 은행에 현찰로 맡기는 어엿한 PB 고객이 되었다.
이들은 전부 ‘의지의 화신’들이다. 부자가 되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고 달려든 사람들이다. 이런 이들만이 부자가 될 자격이 있다. 우리나라의 전체 부자 중에서 자수성가형 부자가 약 60% 정도 되는데 그 중의 대부분이 위에서 소개한 이들처럼 독한 마음을 먹고 온갖 고생을 다 한 결과로서 부자가 된 것이다.
부자 세미나에서 필자가 청중들에게 “부자가 되고 싶으면 아주 독한 마음을 먹어라”라고 강조를 하면 대부분이 열심히 듣는다. 그러나 막상 강의를 끝내고 대화 시간에서는 대부분이 금방 나약한 마음을 드러낸다. “사실 말이 그렇지, 그게 어디 쉽느냐”는 반문이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필자는 ‘그렇게 나약해서 어떻게 부자가 되려고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대한민국에 있는 부자는 전체 인구의 고작 1~2% 정도다. 아무리 넓게 잡아도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5%가 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오늘 태어난 신생아 20명 중에서 수십 년 후에는 단 한명만이 부자가 된다는 것이다. 20대 1의 경쟁을 뚫은 사람만이 부자가 될 수 있다.
필자의 말을 잘 믿으려 들지 않는 사람들에게 학교 제자 가운데 필자가 직접 그 과정을 목격한 생생한 실례를 하나 들어주겠다. 시골에서 여고를 졸업하고 서울여대에 들어온 이 제자는 졸업 후 집에서 단 한푼도 받지 않았다. 서울여대를 3년 다니면서 학비, 생활비를 스스로 벌고 그리고 통장에 현찰로 8천만원을 모았다.
그 제자가 어느날 필자에게 제출한 리포트에는 “교수님, 제가 서울여대 들어올 때의 목표가 졸업할 때 아파트를 한 채 산다는 것이었는데, 벌써 3학년인데 아직 8천만원밖에 모으지 못했어요”라고 적혀 있었다. 집에서 한푼도 받지 않고 대학 3년의 학비(약 1천8백여만원), 최소한의 생활비(약 3백60여만원, 월 10만원씩)를 쓰고도 8천만원을 모은 22세의 가냘픈 여대생의 이야기다.
이 제자는 어떻게 돈을 벌었을까? 그녀는 학교에서 근로학생(한 학기에 40만원)을 계속 했고, 편의점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시간당 3천원 정도)를 하였고, 번화가에서 좌판을 펼쳐놓고 액세서리를 팔았고(하루에 약 십만원 정도의 매상) 그리고도 돈이 되는 일은 아르바이트를 쉴 새 없이 하였다. 그녀는 학교 교과서를 샀을까? 아마 전혀 사지 않고, 선배에게 떼를 써서 얻어서 보았을 것이다. 식사는 아침과 점심은 대충 굶고 저녁만을 라면에다가 찬 밥을 말아 먹었을 것이다.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미국의 베스트셀러인 <부자 되는 법>이란 책에는 글이 적혀 있다. ‘부자가 되려는 생각을 열심히 하면, 부자가 되려는 행동이 저절로 나온다’라고. 부자마인드란 부자가 되겠다는 독한 마음이다. 미국의 초강력 베스트셀러의 결론은 ‘부자가 되고 싶으면 독한 마음을 먹어라’라는 것이다.
6. 눈속임도 마다않는 부자들: ‘개’처럼 벌었다면 ‘정승’처럼 쓰자 ‘부자가 되고자 한다면 눈속임 능력도 필요하다?’ 필자는 이번 주제를 잡으면서 적지않은 고민에 빠져야 했다. 하지만 어차피 필자는 도덕 선생이 아닌 부자학 선생이고, 이 코너는 부자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이기 때문에 그냥 이 주제에 관련된 ‘특이한’ 부자 두 사람을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김 여인은 왜 주식 투자는 철저히 외면했을까. 주식의 가격은 회사 내부의 가치와 경쟁상황, 그리고 다른 외적인(정치적·세계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경제원론과 경영학원론에서 가르쳐주는 기본 시사점은 주식가격의 결정요인은 너무나 많고 복잡하다는 것이었다. 김 여인은 복잡한 것은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데 별로 도움이 안된다는 확신을 가졌다.
부자가 되는 비법 III
8. [자수성가형 vs 상속형]
3천원짜리 밥 먹는 아버지, 매일 외제차 바꿔타는 아들
9. [부자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그들에겐 뭔가 ‘이상한’ 것이 있다
10. [가족경영으로 판 키우는 법] 제대로 ‘사람’ 심어야 ‘돈’ 열린다..
김 사장은 이내 준재벌 수준에 올랐다. 매월 들어오는 현찰만 3억원이 넘었고, 이 돈을 적절하게 아내와 인척들에게 나누어주고, 온갖 비용을 제해도 최소한 한 달에 7천만~8천만원씩은 고스란히 김 사장 수중에 떨어졌다. 김 사장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더 이상 맡길 가족이 없으면, 가족을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종업원들 중에서 비교적 품행이 올바르다고 생각되는 직원에게 가게의 돈을 조금씩 맡기기 시작했다. 인간성을 떠보는 데에는 돈이 최고라는 나름대로의 철학을 그대로 행동에 옮긴 것이다. 믿을 만한 직원에게 “밖에 나가서 물건을 사오라”며 5백만원이나 혹은 1천만원을 쥐어준 적도 있었다. 돈을 받고는 그대로 줄행랑을 친 경우도 있었다. 반면에 물건을 사고 영수증에 나머지 돈까지 정확히 챙겨오는 이들도 있었다.
삼성그룹은 주식회사의 대표적인 형태다. 그러나 조그마한 자영업으로 시작해서 이것을 창업자의 가족들이 일사분란하게, 그리고 동일한 목표를 향해서 진군해나가면서 탄탄한 그룹을 일궜다. 따지고 보면 지금의 삼성 경영 현상과도 별 차이가 없다.
- 현금서비스에 세일 기다리며 그들도 우리처럼 ‘헉헉’
부자들이 소비하는 것을 언뜻 보면 “돈 많은 부자라서 역시 마구 써대는 구나” 하는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실상 자세히 보면 “돈 많은 부자도 쓰는 것은 별 게 없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된다.
TV가 만들어낸 ‘허구의 부자상’(fake image of the wealthy)을 보고 사람들은 마치 ‘부자들은 항상 대단한 것들만 사댄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러한 부자는 대한민국에서 5천명도 채 안된다고 필자는 믿고 있다. 대부분 부자들의 소비 행태는 일반인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다만 극소수가 워낙 ‘요란법석’을 떨며 튀다 보니까 마치 대단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어느 날 한 호텔 앞에 고급 자가용이 한 대 들어와서 섰다. 호텔 직원이 나와서 차 뒷문을 열었으나 차 주인은 나오지 않았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도 꿈쩍도 않고 차 뒷좌석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호텔 매니저가 이 광경을 보고는 밖으로 뛰어나와 주변 직원에게 “야, 빨리 카펫 깔아”라고 소리를 쳤다. 카펫이 자가용 뒷문 앞에서부터 깔렸다. 그러고 나서야 차 주인이 천천히 내렸다. 왜 그랬을까?
이 부자가 신은 구두는 이탈리아에서 직수입한 아주 ‘가냘픈’ 구두였다. 몇 백g이 채 안 될 정도로 솜털같이 가벼워 전혀 신은 듯한 느낌도 없는 그런 명품이었다. 이 구두는 너무나 섬세해서 그냥 호텔의 바닥을 걸으면 불과 몇 십m 가지 않아서 구두가 너덜너덜해진다고 했다. 이 구두를 신고는 오로지 카펫 위만을 걸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부자가 고급 술집에 갔다. 어느 날 호기롭게 아주 비싼 양주를 시켜 마셨다. 얼마였을까? 보통 발레타인 30년산이 1백만원 정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이것보다 더 비싼 고가품들도 더러 있지만 서울 강남의 최고급 술집에서도 한 병에 1천만원을 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날 이 부자가 호기롭게 마신 술은 ‘한 잔에 3백만원’이고 ‘한 병에 8천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어느 부자는 자동차를 아주 좋아했다. 그래서 전 세계에 단 6대 뿐인 자동차를 1995년에 수입해서 현재 소유하고 있다. 10년 전에 미화로 1천만달러를 주고 샀다. 요새 돈으로 치면 자동차 한 대에 약 1백억원을 주고 산 셈이다. 그런데 더욱 더 필자를 기가 막히게 만든 것은 이 차가 ‘미국사람이 타던 중고차’라는 사실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부품이 수제로 만들어진 수제차로 알려져 있다.
국내 부자들의 이 같은 ‘휘황찬란한’ 소비 행태는 필자가 알기에도 이것 말고도 수없이 많다. 하지만 실제 하늘하늘한 솜털 같은 구두를 신는 사람은 국내에 단 세 명 정도고, 8천만원짜리 양주를 마신 사람은 단 한 명이며, 1백억원짜리 자동차를 가진 이도 단 한 명 정도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일반인들의 눈과 귀를 의심스럽게 하는 이 같은 ‘아주 특별한 제품’은 국내에 아무리 많아야 열 개도 채 안 들어온다는 것이다.
현찰 50억원을 예금하고 있는 사람은 국내에 현재 3천8백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찰 1백억원 이상을 가지고 있는 개인도 수백 명 정도로 파악된다. 물론 강남의 어느 부자가 집안에만 현찰 80억원을 쌓아두고 있는 것을 보았다는 한 금융기관 종사자의 얘기도 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대단한 부자들도 위에서 언급되었던 아주 희한한 제품들을 볼 기회가 별로 없다. 아니 대다수는 알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부자들의 소비는 어떠할까.
강남의 고급아파트 두 채와 빌딩 세 채 외에도, 금융자산이 꽤 되는 어느 ‘사모님’은 지금도 소원이 백화점에 가서 유명 상표의 수백만원짜리 화장품세트를 ‘한꺼번에’ 사보는 것이다. 이 ‘사모’의 생활비는 한 달에 4천만원 내외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일년에 생활비가 약 5억원인 셈이다. 그런데 ‘그깟’ 화장품 세트 정도에 벌벌 떤다는 것은 언뜻 생각해도 말이 안될 수밖에. 하지만 이 사모의 푸념을 옮기자면 이렇다.
“한 달 생활비가 4천만원이라고 해도 운전기사와 생활도우미 등 인건비에다가 미국에 유학간 아들, 그리고 여기서 미술대학을 목표로 재수하는 딸 등의 교육비, 그리고 남편에게 들어가는 돈 등이 있다. 집안의 각종 잡다한 생활비로도 너무 많이 나가서 내가 정말 쓸 수 있는 돈은 5백만원도 채 안된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수백만원짜리 화장품 세트를 한번에 살 수 있겠나.”
물론 이런 말을 일반인이 들으면 “복에 겨운 소리”라고 비난할 것이다. 하지만 부자들은 자기들 나름대로의 생각하는 규모가 있고, 생활 방식이 있다. 즉 ‘자기 기준에서 나름대로 그들도 매월 생활고에 허덕인다’는 말이다.
현재 서울 강남구에는 약 4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대한민국 전체 부자 중 35~40% 정도가 강남구에 거주하고 있다. 이처럼 가히 ‘대한민국 특별구’라 할 수 있는 강남구 거주자들의 한 달 생활비는 얼마나 될까. 약 1천5백만원에서 5천만원 이하가 거의 대부분이다. 월 생활비가 1천5백만원이라는 것은 일반인들이 상상하기에는 힘든 액수지만 그들로서는 외제차를 굴리기에도 너무나 힘에 겨운 ‘생활고(?)’의 연속이다.
한 달 생활비가 5천만원인 가정은 어떠할까. 그 집도 사정은 비슷하다.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들은 한 가정에 약 5대 정도의 고급 외제차를 굴린다. 이것 저것 쓰면서 차 5대를 관리하다보면 월 생활비 5천만원으로도 헉헉댈 때가 있다. 어떤 때는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한 달에 2천만원씩 써대는 경우도 있다. 다음 달에 비싼 이자를 치르는 것이 너무나 속이 쓰리지만 할 수 없는 것이 이러한 부잣집의 체면이고 또 실상이다.
TV에서처럼 그렇게 화려한 신데렐라는 대한민국에 거의 없다. 필자가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그런 제품을 구매하는 부자도 거의 없다. 한국의 부자는 대부분이 일반인들에 비해 (물론 일반인들과 소비하는 방식과 규모의 차이를 감안해야 겠지만) 좀 여유 있게 쓰는 수준이거나 그나마도 ‘헉헉거리면서’ 강남의 백화점이 세일할 때만 은근히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12. 【 부동산 투자의 전망 】
- 아파트 열풍 40년은 더 간다
다시 말해서 정부 정책과 큰 상관없이 대한민국 사람들이 보다 편안한 문화생활을 유지하려고(따뜻한 물이 항상 나오는 아파트를 찾는 한) 하면 할수록 부동산 열풍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부동산은 무한하다. 심지어는 이런 생각까지 해본다. 부동산의 진짜 프로들을 정부 행정 부서에 특별 채용하는 것이 혹시 부동산 정책수립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까 하고 말이다. - 한동철 교수의 <부자도 모르는 부자학개론>에서..
최근 국내 금융기관의 부장급 인사 10여 명과 식사를 함께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들이 필자에게 던진 질문이다.
애초 그 자리에서 활발히 거론된 관심사는 부동산보다는 오히려 ‘동산’ 쪽이었다. 한 부장은 “내 고객 중에는 채권 1백20억원과 현금 3백억원을 갖고 있는 이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 옆의 또 다른 부장은 “요즘 디벨로퍼(developer·개발자) 중에 현찰로만 1조원을 가진 사람들이 서너 명 있다는 소문이 있다”라고 거들었다.
결국 부동산이 아니라 동산 시대가 열렸다는 얘기였는데, 이 부분에 대해 필자는 제동을 걸었다.
“앞으로도 부동산이 부자 되는 데 가장 강한 방법이 될 것이다. 최소한 향후 수십년은 계속될 것이다. 물론 과거보다는 부동산의 비중이 줄어들겠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국내에서 부동산의 위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 자리에서 필자는 이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과거(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부자들은 재산의 70% 정도를 부동산으로 모았다. 강북에는 40년 만에 2백배 정도 뛴 경우가 있고, 강남에는 약 6백배까지 뛴 경우도 있다. 앞으로(현재부터 2040년까지)의 부자들은 부동산의 비중이 50% 이하로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의 비중이 10~20%대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곧바로 반론이 이어졌다.
“앞으로는 부동산 값이 오르기가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너무 올랐고, 또한 정부가 ‘반부동산 정책’을 앞으로도 계속 펴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 부장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 설명했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 전역에서 주택보급률이 1백%를 약간 넘는다. 다시 말해서, 가구 수보다 주택의 수가 더 많은 셈이다. 그러나 다수의 주택을 보유한 사람들 때문에 실제로는 가구 수보다 주택이 모자라는 실정이다. 서울은 단독주택과 아파트의 비율이 약 50 대 50이다. 부산도 비슷하다. 그러나 그 이외의 지역들은 단독주택의 비율이 60~70%를 넘어서서, 아파트의 비율이 상당히 적다.
또한 대한민국은 앞으로 국민소득이 계속 늘어갈 수밖에 없다. 환율이 이 상태로 계속 떨어지면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하기 전에 국민소득 2만달러에 도달한다. 그리고 아무리 경제가 불경기라도 경제성장률은 포지티브로서 적어도 1~2%는 된다.
대한민국의 국토는 한정되어 있다. 또한 대한민국의 사유지 중에서 부자들이 점유하는 비율은 상당히 높다. 대한민국 전체 국민의 1% 정도 되는 최고 부자들은 대한민국의 전체 사유지 중의 40% 내외를 보유하고 있다.
사유지는 정해져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는 아파트가 계속 필요하다. 따라서 평당 효율을 높이려면 당연히 단독보다는 아파트를 짓게 된다. 아파트가 앞으로 약 35~40년 동안 계속 건립될 수밖에 없다고 볼 때 당연히 앞으로도 약 40년간은 아파트를 포함한 부동산이 부자가 되는 유효한 투자 방법 중의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필자가 미국에서 부자마케팅을 공부하고 귀국한 지 이제 12년 정도 됐다. 미국에서 만난 부자들은 상당수가 아주 오래전에 부동산으로 돈을 번 경우였다. 그러나 그 자손들은 주식과 현금으로도 부자가 되었다. 미국은 부자 역사가 1백년을 훨씬 넘어섰다.
한국에 와서 만난 수천 명의 부자들 중 거의 대부분이 부동산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아파트가 30여 채에 은행통장이 1백여 개 되는 부자들도 있었다. 필자가 알고 있는 어느 미혼 여자교수는 홀어머니가 아파트를 10여 채 가지고 있는데, 그 관리가 잘 안돼서 결국은 본인이 대학을 떠나서 현재 전업으로 아파트만 관리하고 있는 경우도 봤다.
동산은 한정되어 있다. 대한민국에서 부자들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는 금융기관의 프로들의 고객 중에는 아파트에 현찰만 80억원을 쌓아두었다는 고객도 있고, 62억원을 단독주택 장롱 속에 가지고 있다는 부자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많아야 수백억원 현찰을 보유할 뿐이다.
그러나 부동산은 무한정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에만 빌딩을 12개 가진 한 부자는 최근에 중국 부동산에 눈독을 들이고서 상해를 빈번히 다녀온다. 호주의 빌딩을 사두는 부자도 늘고 있고, 3천만원 내고는 합법적으로 태국의 부동산을 취득하는 부자도 늘고 있다.
필자가 예상하기에 앞으로 한 40년 정도 지나면 대한민국 기업체들의 투명도가 약 95%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대한민국 기업들의 주식가치가 보다 향상되고 그리고 제대로 평가될 것이다. 그때에는 부를 축적하는 하나의 좋은 방법으로 주식회사를 만들어서 회사의 잠재가치를 극대화하고 미래가치로 평가를 받으면서 부를 획득하는 것이 상당히 활발해질 것으로 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 기업체의 투명도는 아무리 좋게 보아야 50% 정도이다. 따라서 주식으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에는 아직은 대한민국의 기업 역사가 너무 짧다. 주식으로 투명한 부를 축적하는 방법이 물론 앞으로는 점점 늘 것이다.
현재에는 주식을 통한 부의 축적이 전체 부자의 재산 중 10% 정도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35~40년이 지나면 30~40%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부동산이 부를 획득하는 데 가장 유효한 방법으로 존속할 것이다.
필자가 단언하건데, 설사 차기나 차차기 정권이 앞으로 지속해서 반부동산 정책을 펼치더라도 부동산의 열풍이 약간 줄어들 뿐이지 근절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2만명 정도 된다는 ‘부동산의 프로’들은 순수한 상아탑적인 경제학박사들이 만들어내는 부동산 정책의 허점을 너무나 쉽게 파악한다는 게 필자가 현장에서 터득한 깨달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