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7.
콩 세 알
의도하지 않은 시작이었다. 콩 재배법을 배운 적도 없을뿐더러 콩을 재배할 생각조차 없었다. 무심코 빈 땅이 보이기 시작했고 은근슬쩍 욕심도 생겼다. 교육생 중에서 일부가 참외를 심고 열무나 콩을 재배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에 읍내 종묘상에 들렀다. 지금 시기에 딱히 권장할만한 게 열무와 강낭콩이라 했다.
강낭콩이 생각보다 많았다. 씨앗 한 봉지를 사서 텃밭과 비닐하우스 여유 공간을 채웠다. 빈 땅을 꽉 채우고 나니 마음이 풍요로워졌다. 텃밭에 11개의 공간과 비닐하우스에 7개의 공간을 만들고 호미 길이만큼의 간격으로 강낭콩 씨앗을 3개씩 놓고 1cm 정도 흙을 덮었다. 싹을 빨리 틔우라고 넉넉하게 물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제 예쁜 떡잎을 기다리면 된다.
오월 말에 강낭콩을 심었다. 대략 열흘이 지났다. 곳곳에서 작은 떡잎이 솟아 가슴이 벅차고 미소를 감출 길이 없다. 아침나절에 비닐하우스와 노지 텃밭을 한 바퀴 돌며 떡잎 수를 세고 저녁에 또 개수 세기를 반복한다. 어느 순간부터 셈이 이상하게 꼬였다. 어제나 오늘이나 더 이상 그 수가 늘어나지 않는다. 강낭콩 육십여 개를 심었는데 고작 스무 개 남짓만 싹을 틔운 게 맘이 상해서 구시렁거린다.
자연의 가르침이라고 한다. 불만에 가득한 나를 향해 또래의 여자 교육생이 깊이 있는 진리를 가르친다. “콩을 심을 때는 세 알씩 심어요. 하나는 새가 먹고, 하나는 벌레가 먹고, 나머지 하나가 싹을 틔우지요” 그 하나를 우리가 정성들여 재배한다는 설명이다. 이미 오래전에 귀동냥한 적 있는 이야기지만 극도의 몸짓으로 수긍한다. 인간에게 자연은 절대자이니까.
그렇구나. 자연이 “세 개 중에서 하나는 확실하게 보장해 주는가 봐요”라며 너스레를 떠니 “인간도 먹고살아야지요”라는 지극히 당연한 말로 되받아친다. 만족할 줄 아는 인간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이다. 싹이 나고 빈자리에는 또 무언가를 심어야겠다. 우리의 리더는 오늘도 나눔으로 감동을 선물한다. 서울에서 구해왔다면서 서리태 모종 열 포기를 내민다. 매번 미안하지만, 받은 만큼 돌려줄 양으로 사람 사는 세상에 동참하리라. 이왕 콩으로 시작했으니 끝까지 콩으로 맺으리라. 서리태와 쥐눈이콩으로 준비해야겠다고 아내에게 귀띔한다. 감자를 캐면 그 땅에 쥐눈이콩 이백여 개 정도를 심을 예정이다.
자연에게 뇌물을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절대 강자에게 복종하는 마음으로 애초부터 머리를 깊게 숙일 작정이다. 전쟁보다 타협의 길을 택하기로 했다. 줘야 할 만큼 주고 나머지에 만족해야겠다. 그런데 저항 한번 없이 이러는 게 맞나 모르겠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은 한다는데.
첫댓글 말라 갈만한데도 짧지도 않은 글을
이렇게 줄기차게 그것도 잘 적으니 존경하지 않을수 없다
오라버니는 계획되로 생각되로 실천하고 사는거보니 대단히
ㄷㆍ ㅡ ㄱ ㅈㆍㅡ ㅇ 이다
ㅋㅋㅋ 읽고 쓰고를 재미삼아 해보는데 시 쓰는것 보다재미는 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