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프라 안젤리코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1387-1455)는 ‘천사 같은 수사’라는 뜻이다.
그는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의 수사로 출발하여
훗날 피에솔레의 한 수도원 원장까지 지낸 성직자였다.
도미니코 수도회는 르네상스시기에 프란치스코 수도회와 쌍벽을 이룬 수도회로,
이 수도회에서 사들인 피렌체의 산 마르코 수도원은
프라 안젤리코가 그린 엄청난 질과 양의 수준을 보여 주는 벽화들로 유명하다.
프라 안젤리코는 수도자로서 복음을 전파하는 임무에도 소홀함이 없었지만,
무엇보다 인간 각자에게 부여된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여
하느님의 뜻을 전하라는 도미니코 수도회의 가르침도 완벽하게 수행해 냈다.
화가이자 미술비평가인 존 러스킨이 프라 안젤리코를 두고
“그저 화가라기보다는 영감을 받은 성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하고
말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고,
사실 그는 1982년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덕분에 그는 ‘축복받은 천사 같은 사람 ’(Il Beato Angelico),
혹은 ‘천사 같은 화가’ (Pictor Angelicus)’ 등으로도 불렸다.
그가 1440년경에 프레스코로 그렸고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가운데에 두고
성모 마리아와 그의 애제자 사도 요한이 함께 서 있는 장면을 담고 있다.
예수님의 발치에는 도미니코 수도회의 설립자인 성 도미니코가 그려져 있다.
도미니코 수도자들은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얀색 수도복에 검은색 망토를 걸치는 것이 보통이다.
예수님은 다른 성인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로,
붉은 십자가가 새겨진 후광을 두르고 있다.
그를 매달은 십자가 위에는 ‘I.N.R.I’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라틴어로 ‘Iesus’(예수), ‘Nazarenus(’나자렛), ‘Rex’(왕),
‘Iudaeorum’(유다인)의 약자로, ‘유다인의 왕, 나자렛 예수’를 의미한다.
잔인하게 수난을 당하신 예수님의 육신은 생각보다 말끔하다.
열정적 기도 없이는 절대로 붓을 들지 않았던 프라 안젤리코로서는
예수님을 피땀으로 범벅이 된 인간적 존재라기보다는
더 높은 곳에 머무시는 영적 존재로 그리고 싶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서 그분을 바라보며
십자가를 붙잡고 기도하는 도미니코 성인은
도미니코 수도회의 수도자들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그 모범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슬픔 가득한 성모 마리아는
오른손으로 도미니코 성인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