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용인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다니 꿈만 같다. 그가 교우는 아니지만, 나는 그를 알게 된 것을 은총이라 생각한다. 强辯이라고? 그렇지 않다. 나는 그를 통해 사랑이 뭔지를 깨달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내친김에 이야기하자. 동백 성당에 온 지 어느덧 1년이 지났지만, 나이 들어 외관이 꾀죄죄해서일까? 젊은 교우들과 서먹서먹하게 지낸다.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넬 틈조차 없다. 하기야 나 같이 못나고 교만한 사람을 누가 좋아하랴. 다행히 총회장님이나 연령회장님 등을 비롯한 좋은 분들과는 안면을 익혔다. 역시 교회는 교회다.
그런데 지난 주일 미사를 마치고 나서, 뜻밖에 주임신부님이 말씀하셨다.
“아우구스티노 형제님, 책 잘 받았습니다.”
얼마 전에 우편으로 拙著를 한 권 보냈는데, 그에 대한 인사인 것이다. 나는 기문이 무척이나 좋았다. 그것도 내게는 은총으로 여겨질밖에. 성경 <요한복음>에도 이런 표현이 있더라, '은총에 은총을 받는다'고. 은총은 조그마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뜻 아니고 무얼까?
Jason Taylor의 철자법(스펠링)이 맞는지 모르면서 제목에 용감하게 인용했다. 로버트 테일러라는 왕년의 名優와 同姓(?)이리라 우긴 결과다. 그는 동백 역 앞에 있는 영어 학원 원장이다. 나는 비교적 자주 그 가까이를 지나다닌다. 성당에 오갈 때도 그렇고 호수 공원으로 산책하러 가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적극적으로 그에게 접근한다. 무기는 Broken English…….예를 한 개 들어 보자. 며칠 전 수인사를 나누고 명함을 주고받았다. 나는 나를 이렇게 소개했다.
"I am an essayist."
다행히 그는 내 말을 알아들었다. 내 손을 잡고 출입구 옆에 있는 서가로 안내했다. 거기엔 두 사람의 작가가 쓴 책이 꽂혀 있었다. 한국인인 그들의 著者 서명도 했고.
이래저래 제법 시간이 흘렀다. 내가 아는 초보 중의 초보 영어보다, 그가 입안에서 굴리는 우리말이 자연스러웠다. 돌아 나와서 한참 걸었다. 아차, 스마트폰을 놓고 온 게 아닌가? 도로 학원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그가 스마트 폰을 손에 들고 온다. 이때다 싶어 한 마디 날린다. 초등학생도 아는 영어다.
“Thank you very much for your kindness, my brother!"
"감사합니다.”(그의 우리말 대답)
이튿날 다시 학원에 들렀는데 문이 잠긴 게 아닌가. 나는 갖고 간 수필집 두 권을 어렵사리 출입문 손잡이 위에 얹어 두고 왔다. 분명히 그의 손에 들어가리라 믿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다시 찾았다. 그가 부지런히 뭔가를 정리 중이었다. 내 특유의 엉터리 영어가 쏟아진다.
“Did you receive my book?"
"Of course! 정말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가 정확했다.)
정장을 했기에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서울이란다. 나는 왜 눈치기 없을까? 그가 뉴질랜드 출신임을 깜빡 잊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Old Black Joe를 한 번 들어 보겠느냐며 소리를 높였다. 포스터가 작곡한 이 노래는 내가 원어, 그러니까 영어로 어느 정도 자신 있게 소화하는 곡이다. Gone are the days when my heart………I hear there gentle voices calling old black Joe……(이 '올드 블랙 죠'를 우리말로 부르면 나는 눈물이 나는 사연이 있다. 그리운 날 옛날은 지나가고/ 들에 놀던 친구 간 곳 없으니/ 이 세상에 낙원은 어디메뇨---. 누가 알랴 이 서러운 내 삶을 말이다. 며칠 전에도 아내와 손자 바이올린 반주에 맞춰 노래하다가 울었다. 그래 친구는 간 곳 없고, 낙원이 어딘지 잘 모르겠다. 신앙도 부족하고 외롭고 서럽다.)
그는 바쁜 중에도 힘찬 박수를 보냈다. 테일러는 왠지 노래(가락이나 멜로디)보다는 발성(발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묘한 표정의 함수는 다음에 풀자. 헤어지려는데 그의 인사말이 기가 막힌다.
“즐거운 주말 보내십시오.”
이럴 수가! 우리나라 성인 중 반이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라 하든지, “즐거운 주말 보내십시요.”인데, 겨우 우리말을 익히기 시작한 외국인이 바르게 이 어려운 인사말을 구사한다! 그건 내게 커다란 경이로움이었다.
아무튼 새로운 친구가 생겨 좋다. 더구나 부인이 한국사람, 그것도 부산 출신이란다. 그겅도 내겐 은총이다. 은총은 아무데나 존재한다. 나는 Jason Taylor가 그래서 좋다. 오늘은 덜 외롭다. 그래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자. 그래야 제이슨 테일러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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