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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2화 ― 「최 사무장의 이중 장부」
은솔성당 사무실에서 가장 손대면 안 되는 것이 세 가지 있었다.
첫째, 최병철 사무장의 계산기.
둘째, 최병철 사무장의 서류철.
그리고 셋째—
최병철 사무장의 장부였다.
“누가 제 장부 옮겼습니까?”
월요일 아침부터 사무실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박복례가 주방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뭐가 없어졌어요?”
“없어진 게 아니라 위치가 바뀌었습니다.”
“그게 그거지.”
“다릅니다.”
최병철은 책상 위 장부를 정확히 원래 자리에 놓았다.
“이건 여기 있어야 합니다.”
박복례가 혀를 찼다.
“장부가 두 발 달린 것도 아니고 조금 옮겨졌다고 뭘 그래.”
“물건은 제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그때 김맑음 신부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최병철이 신부의 얼굴을 보자마자 물었다.
“신부님.”
“네.”
“어제 제 계산기 쓰셨습니까?”
김맑음 신부가 잠시 생각했다.
“아마도요.”
“아마도가 뭡니까?”
“쓴 것 같기도 하고…….”
“역시.”
최병철이 계산기를 들어 보였다.
“제가 숫자 0을 위로 향하게 놓는데 오늘 아침에는 5가 위로 향해 있었습니다.”
박복례가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그걸 기억해요?”
“당연하죠.”
김맑음 신부가 웃었다.
“사무장님은 저보다 관찰력이 좋으신 것 같습니다.”
“신부님은 관찰력을 사건에 쓰시고 저는 정리에 씁니다.”
“훨씬 실용적이군요.”
최병철은 대꾸하지 않고 서류 정리를 시작했다.
그때였다.
책상 아래로 펜 하나가 굴러 떨어졌다.
김맑음 신부가 몸을 숙였다.
“제가 주워드리겠습니다.”
책상 밑으로 손을 넣던 그의 손이 멈췄다.
벽과 서랍장 사이 좁은 틈에 검은색 물건 하나가 끼어 있었다.
“이게 뭡니까?”
그가 꺼냈다.
낡은 검은색 장부였다.
최병철의 얼굴이 굳었다.
“신부님.”
김맑음 신부가 장부를 바라봤다.
표지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사무장님 것입니까?”
최병철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짧은 침묵이 이상했다.
평소의 최병철이라면 곧바로 말했다.
맞으면 맞다.
아니면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건…….”
그가 장부를 가져갔다.
그리고 서랍 안에 넣었다.
철컥.
서랍까지 잠갔다.
박복례가 눈을 가늘게 떴다.
“뭔데 그렇게 숨겨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김맑음 신부가 최병철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람치고는—
표정이 너무 굳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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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사건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시작됐다.
성당 재정위원 두 사람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분기별 회계 확인 때문이었다.
최병철은 평소처럼 공식 장부와 영수증을 꺼냈다.
숫자는 정확했다.
수입.
지출.
헌금.
시설관리비.
복지비.
모두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그런데 재정위원 한 사람이 말했다.
“사무장님, 이상한 게 하나 있는데요.”
최병철이 안경을 고쳐 썼다.
“어떤 겁니까?”
“지난달 교무금 납부 기록입니다.”
김맑음 신부도 고개를 들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문제라기보다…….”
재정위원이 종이를 가리켰다.
“몇몇 교우의 납부 기록이 이상합니다.”
“어떻게요?”
“성당 계좌에는 돈이 들어왔는데 입금자 이름이 없습니다.”
최병철의 손이 멈췄다.
김맑음 신부가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몇 건입니까?”
“지난달에만 여섯 건입니다.”
“금액은요?”
“전부 다릅니다.”
재정위원이 자료를 넘겼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이겁니다.”
그는 몇 개의 이름을 표시했다.
김영수.
정미숙.
박정남.
이순자.
모두 은솔성당 교우였다.
“이분들은 몇 달 동안 교무금을 못 내셨던 분들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밀렸던 금액이 모두 납부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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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사무장님,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최병철이 짧게 대답했다.
“네.”
“누가 납부했습니까?”
“그건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재정위원들이 서로 바라봤다.
“왜요?”
“개인적인 문제입니다.”
“성당 회계인데 개인적인 문제라뇨?”
최병철은 입을 다물었다.
그때 박복례가 차를 들고 들어왔다.
분위기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왜들 그래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박복례가 김맑음 신부를 바라봤다.
“또 사건이에요?”
김맑음 신부가 작게 말했다.
“아직은 아닙니다.”
최병철이 곧바로 말했다.
“사건 아닙니다.”
박복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들으니까 사건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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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다음 날 더 커졌다.
최병철이 잠시 은행에 간 사이였다.
사무실 서랍 하나가 제대로 닫히지 않아 장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제 발견했던 바로 그 검은 장부였다.
오미자가 그것을 주웠다.
“이게 뭐지?”
장부가 펼쳐졌다.
그리고 오미자의 표정이 달라졌다.
“신부님.”
김맑음 신부가 다가왔다.
장부 안에는 날짜와 금액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런데 공식 장부와 달랐다.
**3월 12일 ― 김영수 80,000**
**3월 28일 ― 정미숙 120,000**
**4월 3일 ― 박정남 60,000**
**4월 17일 ― 이순자 100,000**
다음 장에도 같은 이름들이 있었다.
또 다음 장에도 있었다.
오미자가 숨을 삼켰다.
“이거…… 이중 장부 아니에요?”
김맑음 신부는 대답하지 않았다.
페이지를 천천히 넘겼다.
숫자.
날짜.
이름.
그리고 같은 이름이 몇 달 간격으로 계속 반복됐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공식 장부에는 없는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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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자가 목소리를 낮췄다.
“혹시 사무장님이 성당 돈을 따로 관리한 거 아니에요?”
박복례가 바로 말했다.
“확실하지도 않은 말 하지 마.”
“장부가 두 개잖아요.”
“그래도 사람부터 의심하면 안 돼.”
오미자가 입을 다물었다.
김맑음 신부는 계속 장부를 살폈다.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만약 이것이 횡령 장부라면—
왜 사람 이름을 이렇게 정확하게 적었을까?
그리고 왜 돈을 빼낸 기록보다 **누군가에게 돈을 넣어준 것처럼** 적혀 있을까?
그때 최병철이 돌아왔다.
사무실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탁자 위에 검은 장부가 놓여 있었다.
최병철의 얼굴이 굳었다.
“누가 그걸 열어봤습니까?”
오미자가 말했다.
“사무장님.”
“누가 열어봤냐고 물었습니다.”
김맑음 신부가 조용히 말했다.
“우연히 떨어졌습니다.”
최병철은 장부를 집어 들었다.
“제 개인 장부입니다.”
“개인 장부에 왜 교우들 이름이 있습니까?”
오미자가 물었다.
최병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공식 회계와 맞지 않는 돈은 뭐예요?”
“회장님.”
“말씀해 보세요.”
“제가 설명할 일입니다.”
“그러니까 설명하시라고요.”
최병철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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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부터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최 사무장이 장부를 두 개 썼대.”
“성당 돈이 비었대?”
“누가 그러던데 횡령이라던데?”
말은 사람을 거칠수록 커졌다.
처음에는 ‘이상한 장부가 발견됐다’였다.
두 시간 뒤에는 ‘성당 돈이 사라졌다’가 되었고,
저녁이 되자—
‘최병철이 몇 년 동안 성당 돈을 빼돌렸다’가 되어 있었다.
박복례가 화를 냈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해!”
오미자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나는 이중 장부라고만 했지 횡령이라고는 안 했어요.”
“그게 시작이지!”
김맑음 신부는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마당 건너편에서 최병철이 혼자 걸어가고 있었다.
평소처럼 서류가방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어깨가 조금 처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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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최병철은 출근하지 않았다.
책상 위에는 짧은 메모만 놓여 있었다.
**‘개인적인 일로 하루 쉬겠습니다.’**
박복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저 양반이 연차 쓰는 것도 처음 보네.”
김맑음 신부는 검은 장부를 다시 펼쳤다.
어제 최병철이 가져가지 않고 두고 간 것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천천히 읽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손을 멈췄다.
“이상합니다.”
오미자가 물었다.
“뭐가요?”
“날짜요.”
“날짜?”
김맑음 신부는 공식 장부를 옆에 놓았다.
두 장부를 비교했다.
“보세요.”
검은 장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5월 8일 ― 김영수 80,000**
공식 장부에는—
**5월 9일 ― 김영수 교무금 80,000 납부**
오미자의 눈이 커졌다.
다른 것도 같았다.
검은 장부 기록이 먼저였다.
그리고 하루나 이틀 뒤 공식 장부에 같은 금액이 납부되어 있었다.
김맑음 신부가 안경을 고쳐 썼다.
“돈이 빠져나간 기록이 아닙니다.”
“그럼요?”
“들어오기 전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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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맑음 신부는 검은 장부 맨 뒤를 살폈다.
거기에는 사람 이름 대신 짧은 표시가 있었다.
**급여일**
그리고 금액.
김맑음 신부는 잠시 생각했다.
최병철의 월급이 들어오는 날짜였다.
그날 오후 그는 은행에서 입금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범위와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맞춰봤다.
결론은 분명했다.
성당 돈은 한 푼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돈이 들어왔다.
그것도—
한 사람의 개인 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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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
김맑음 신부는 최병철의 집을 찾아갔다.
최병철은 문을 열고 놀랐다.
“신부님?”
“잠깐 들어가도 됩니까?”
“무슨 일로…….”
“장부 때문에 왔습니다.”
최병철의 얼굴이 굳었다.
두 사람은 작은 거실에 마주 앉았다.
김맑음 신부가 말했다.
“사무장님이 내신 거지요?”
최병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김영수 씨 교무금.”
침묵.
“정미숙 씨 것도.”
최병철이 고개를 숙였다.
“박정남 씨와 이순자 씨 것도요.”
한참 뒤 최병철이 말했다.
“신부님.”
“네.”
“그분들에게는 말씀하지 말아주십시오.”
그 한마디가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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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맑음 신부는 아무 말 없이 기다렸다.
최병철이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였습니다.”
형편이 어려워진 교우들이 하나둘 교무금을 내지 못하기 시작했다.
실직한 사람.
병원비가 많이 든 사람.
혼자 아이를 키우는 사람.
가게가 어려워진 사람.
최병철은 장부를 정리하며 누구보다 먼저 그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두려고 했습니다.”
“그런데요?”
“어떤 분이 사무실에 와서 그러시더군요.”
최병철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성당에 나오기가 미안하다고요.”
김맑음 신부의 표정이 굳었다.
“교무금을 못 내서요?”
“네.”
“그래서 대신 내신 겁니까?”
최병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열 번이 됐다.
최병철은 자신의 월급에서 조금씩 돈을 떼었다.
그리고 형편이 어려운 교우들의 밀린 금액을 대신 냈다.
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왜 검은 장부에 따로 기록하셨습니까?”
“공식 장부에 제 이름을 남기면 안 되니까요.”
“왜 안 됩니까?”
최병철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알게 되면 미안해하잖습니까.”
김맑음 신부는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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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 장부는…….”
“성당 돈을 숨긴 장부가 아닙니다.”
최병철이 씁쓸하게 웃었다.
“제가 쓴 돈을 기록한 겁니다.”
“왜 기록까지 하셨습니까?”
“혹시 나중에 회계가 맞지 않을까 봐요.”
김맑음 신부가 웃었다.
“역시 사무장님답습니다.”
최병철도 아주 조금 웃었다.
“돈 문제는 정확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어제 설명하지 않으셨습니까?”
최병철은 한참 뒤 말했다.
“말하면 그분들 사정까지 알려지니까요.”
김맑음 신부는 그제야 이해했다.
최병철이 지키려 했던 것은 돈이 아니었다.
장부도 아니었다.
**사람들의 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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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김맑음 신부는 사무실에 사람들을 모았다.
오미자.
박복례.
장태식.
재정위원들.
그리고 최병철.
김맑음 신부가 말했다.
“확인했습니다.”
모두 숨을 죽였다.
“성당 회계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오미자가 물었다.
“그럼 그 장부는요?”
“사무장님의 개인 기록입니다.”
“그 돈은요?”
김맑음 신부가 잠시 최병철을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성당 돈이 아닙니다.”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미자는 눈치가 빨랐다.
최병철을 한참 바라보더니 물었다.
“사무장님 돈이에요?”
최병철이 인상을 찌푸렸다.
“회장님.”
“맞구나.”
“그만하십시오.”
“아이고, 최 사무장.”
“그만하시라니까요.”
박복례가 조용히 웃었다.
“저 양반 저럴 줄 알았어.”
최병철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뭘 아셨다는 겁니까?”
“맨날 돈돈하면서 자기 돈에는 제일 무심한 사람인 거.”
“저 안 무심합니다.”
“무심해.”
“아닙니다.”
“그럼 왜 남의 걸 대신 내줘?”
최병철은 할 말을 잃었다.
장태식이 한마디 했다.
“좋은 일 했네.”
최병철이 더 난처해졌다.
“좋은 일 아닙니다.”
오미자가 물었다.
“그럼 뭔데요?”
최병철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냥 회계 정리입니다.”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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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맑음 신부는 웃지 않았다.
“사무장님.”
“네.”
“한 가지는 약속해 주세요.”
“무엇입니까?”
“앞으로 혼자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최병철이 의아하게 바라봤다.
“왜요?”
“누군가 어려운 형편 때문에 성당에 나오기 미안해한다면, 그건 돈으로만 해결할 일이 아니니까요.”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김맑음 신부가 말했다.
“교무금을 못 냈다고 성당 문턱이 높아져서는 안 됩니다.”
최병철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도와야 할 사람이 있다면 우리 모두가 같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박복례가 말했다.
“맞아요.”
장태식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미자는 최병철을 바라보다 말했다.
“다음부터는 나한테도 말해요.”
최병철이 바로 대답했다.
“싫습니다.”
“왜요?”
“회장님한테 말하면 은솔시 전체가 압니다.”
“내가 언제 그랬다고!”
박복례가 중얼거렸다.
“어제도 두 시간 만에 다 퍼졌더구먼.”
“복례 언니!”
사무실에 웃음이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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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김맑음 신부가 사무실에 들어왔다.
최병철은 평소처럼 장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장부가 하나뿐이었다.
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검은 장부는 없애셨습니까?”
“네.”
“아깝네요.”
최병철이 고개를 들었다.
“뭐가 아깝습니까?”
“사무장님의 비밀 선행 기록인데.”
“신부님.”
“네.”
“그 표현 쓰지 마십시오.”
“왜요?”
“부담스럽습니다.”
김맑음 신부가 웃었다.
“알겠습니다.”
그때 최병철이 작은 수첩 하나를 서랍에 넣었다.
김맑음 신부의 눈이 그곳을 향했다.
“그건 뭡니까?”
최병철의 손이 멈췄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혹시 세 번째 장부입니까?”
최병철이 한숨을 쉬었다.
“신부님.”
“네.”
“미사 준비하러 가십시오.”
“아직 시간이 좀 있는데요.”
“가십시오.”
김맑음 신부는 웃으며 사무실을 나갔다.
문을 닫기 직전 다시 얼굴을 내밀었다.
“사무장님.”
“또 뭡니까?”
“계산기 숫자 5가 위로 가 있던데요.”
최병철이 화들짝 계산기를 바라봤다.
복도에서 김맑음 신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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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김맑음 신부는 텅 빈 성당에 잠시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장부에는 돈이 기록된다고 생각한다.
들어온 돈.
나간 돈.
남은 돈.
하지만 최병철의 검은 장부에는 조금 다른 것이 적혀 있었다.
누군가 말하지 못한 어려움.
누군가 들키고 싶지 않았던 형편.
그리고 그 앞을 조용히 메워준 한 사람의 마음.
김맑음 신부는 생각했다.
**세상에는 숫자로 기록되지만 숫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어쩌면—
사람의 선의란 가장 크게 드러날 때보다,
아무도 모르게 장부 한구석에 숨어 있을 때 더 깊을지도 몰랐다.
**― 제82화 끝 ―**
### 다음 편 예고 ― 제83화 「장태식의 잠긴 방」
성당 관리창고 안에서 **장태식만 들어갈 수 있는 잠긴 방**이 발견된다.
누구에게도 열쇠를 보여주지 않던 장태식은 김맑음 신부에게조차 “열어보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느 날, 굳게 잠겨 있던 그 문이 **누군가 먼저 들어간 듯 활짝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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