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밖에 비는 내리는데...
오늘부터 추석 연휴의 시작입니다. 이번 추석은 1주일이 넘는 연휴라 해외답사라도 갈까 생각했는데, 다녀 온 다음 주에 학부학생들을 인솔하여 강원도로 3박 4일 답사를 가기에 무리가 될 것 같아 포기하였습니다.
이번 학기는 틈틈이 교리신학원의 숙제를 하면서, 화요일 저녁에는 수녀님과 창세기 독서와 묵상을 하고, 금요일 저녁에는 견진특강을 흑석성당에서 듣는데 숙제로 마르코복음을 필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연휴기간에 연구실에서 성경필사로 보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원래는 날이 좋으면 지방의 성지순례를 하려고 했으나, 매일 비가 와 여의치 않아 이것도 포기 하였습니다.
연구실에서 성경필사를 하다가 잠시 책장을 둘러보니 언제 구입한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송봉모신부님께서 저술한 《신앙으로 살아가는 인간》(바오로딸, 1999)이란 책이 눈에 들어와서 소책자라 잠깐 읽었는데도 가슴에 와 닿는 말씀들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이 책은 일반인들도 많이 알고 있는 유명한 시인 성경 시편 23절 1절부터 4절까지의 말씀을 한절씩 해설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 성경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2. 푸른 풀밭에 누워 놀게 하시고, 물가로 이끌어 쉬게 하시니
3. 지쳤던 이 몸에 생기가 넘친다.
그 이름 목자이시니, 인도하시는 길 언제나 바른 길이요
4. 나 비록 어두운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어라.
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하시니 걱정할 것 없어라
여기에서서 ‘목자’는 ‘하느님’이며 우리 인간은 ‘양’임을 유비(類比)한 것입니다. 1절은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2절은 아침식사 때에, 3절은 일터로 나가기 전에, 4절은 일터에 도착해서 묵상을 하는데 알맞다고 합니다.
신부님께서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어라”의 해설하는 부분에서의 말씀이 특히 아직 올바른 신앙심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하는 나 같은 초심자에게 와 닿습니다.
“신앙이란 신비스런 체험이나 환시,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은 것이 아니다. 신앙이란 하느님은 참으로 존재하시는 선하신 분이고, 그 하느님이 나를 사랑으로 창조하셨으며, 나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특히 어두운 시간에 나를 안아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영성중에서 가장 보배로운 영성은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신하는 것이다”(신앙으로 살아가는 인간》, 86-87쪽 인용)
우리는 흔히 하느님으로부터의 기적을 기대하는데 이보다는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내가 성경필사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당신이 직장에 다닐랴 두 아이들 돌보랴 육체적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2주만에 마태오복음 필사를 마쳤다는 소식을 어제 당신으로부터 듣고, 당신의 깊은 신앙심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 또한 분발을 요구 받는 느낌입니다.
미국에서는 추석이라도 차례를 지내지 않으니, 쓸쓸하게 보내리라 생각합니다. 여기도 창밖에 비마저 뿌리니 잠시 감상적으로 되나, 이렇게 가족에게 편지로 마음을 전달하게 되어 행복감을 충만하게 느끼게 됩니다.
2010년 9월 21일
추석 연휴 첫날에 연구실에서
추신 : 아래의 시와 글은 지난 한식 때에 보낸 편지의 일부인데 밖에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성묘를 가는 때라 이 싯귀가 생각나서 다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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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나라 때 시인인 두목(杜牧)의 싯귀가 떠 올랐습니다.
淸明時節雨汾汾 청명을 맞이하여 비는 내리는데
路上行人慾斷魂 길가는 나그네 마음은 더욱 아프구나
惜問酒家何處有 주막이 어느 곳에 있는지 물으니
牧童遙指杏花村 목동 녀석은 말없이 살구나무꽃 마을을 가리키는구나
이 시는 두목이 객지를 떠돌고 있는 처지라 청명에 부모님 산소에 성묘를 하지 못해 안타까워 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효는 자신을 낳고 길러주신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고 공경하는 풍습이지만, 살아 있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부모님 살아 생전에 제대로 모시지 못한 불효자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부모님 생각에 더욱 가슴이 아픈 것 같습니다.
첫댓글 교수님과 사모님은 많이 닮으셨습니다, 부부가 닮으면 잘산다는 말이있지요,,, 두분은 우리들에게 행복전달자이십니다. 역사공부가르치는것도 중요하지만 부부간의 사랑을 가르치는 교수님의 애정어린 편지글은 많은것을 시사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