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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월간 모던포엠 원문보기 글쓴이: 전형철
죽은 나무의 노래 외 6편 이현구
바다 건너 이국땅 에스파냐
짚시 혼이 담긴 클래식기타
가슴에 안고 줄 튕기면
길게 뽑은 목 한 마리 새되어
기타가 운다 슬피 운다
네가 서 있던 숲
별 뜨는 외로운 밤이나
하얗게 눈꽃 피던 겨울날에도
매일 찾아와 노래 불러주던 새
그 숲의 노래 잊지 못하고
잘리고 깎여나가
심장 없는 텅 빈 몸으로
나무가 운다 새처럼 운다
오래 전 말라버린 딱딱한 나무에
기타소리 꽃이 되어 피어 오른다
귀로만 들리는 소리꽃
바람에 꽃이 씻길 때마다
내 가슴에 투명한 꽃잎 떨어져 내린다
술이 되어 넋을 적신다
~~~~~~~~~~~~~~~~~~~~~~~~~~
산새와 하모니카
연두빛 꿈 꾸는 오월의 숲
인적없는 산길
봄바람에 졸리운 나무 아래
하모니카 꺼내어 분다
맑은 하늘에 퍼지는 소리
오선지 같은 바람에 실려
숲 속 깊은곳까지
계곡물처럼 스며들었다
발 아래 도란거리는 풀밭
어디선가 산새 한 마리
고개 내밀고
하모니카 소리 엿듣고 있다
어리숙한 연주가 다 끝나고
노을이 산능선 넘어가도록
하나뿐인 객석을 홀로 지키며
풀꽃사이 숨어있다
~~~~~~~~~~~~~~~~~~~~~~~~~~~~
거울
거울속에는 강이 흐른다
세상 모든 것
그 강 위를 쉼없이 떠 흘러간다
나는 매일 강 앞에 선다
거울 속 내 모습도 강처럼 흘러갔다
한때는 거울 속에 소년이 살았다
별빛처럼 아름다운 눈빛을 가진
소년이 거울 속에서 웃을 때면
하얀 찔레꽃 향기가 피어올랐다
오늘은 수염이 거칠고
주름진 얼굴로 중년의 사내가 서 있다
사내는 좀처럼 웃을 것 같지 않다
그 우울한 눈빛의 사내가
내가 아니라고 말 해주기 바랬지만
거울은 상대를 배려하는 법을 모른다
거울 속에는 강이 흐른다
그 강 물결 수심 깊은 곳
우리에게 끝내 잊혀져간 얼굴들이
묻혀있다
~~~~~~~~~~~~~~~~~~~~~~~~~~
돌
태양 아래 졸리운
한없이 무거운 인내
타오르는 침묵으로
적멸(寂滅)을 노래한다
하나의 꿈에 던져진
어두운 순수
내 영혼 너처럼
대지 위에 서고 싶다
무엇도 아니면서
미친 듯 넘쳐 오르는
침묵으로
~~~~~~~~~~~~~~~~~~~~~~~
솔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솔개 한 마리
유유히 날고 있다
날갯짓 없이도
가슴에 부딪히는
운명처럼 시린 겨울바람
가뿐히 타 오르며
하늘에 멈춰
대지를 굽어보고 있다
장엄하게 흘러내리는
덕유산 줄기
눈 쌓인 봉우리 위로
한참 떠오르다가
하늘 속으로 녹아
바람과 함께
허공(虛空)이 되었다
~~~~~~~~~~~~~~~~~~~~~
누나
밤이면 잠 잊은 도깨비들
빙글빙글 불 붙이던 앞산
부엉이 우는 오솔길 헤쳐
아버지 막걸리 심부름 가던
긴 머리 삼단 같던 누나야
가을이면 겨울 땔감나무
한 지게씩 져 내려오고
동네 머스마들 코피 터트리고
논두렁 밭고랑으로
옆집아줌마 피해 도망가다
고무신 벗겨지던 누나야
버드나무 손 씻던 연못가
무당벌레 지천이던 초가집
천정 구멍에 뱀 기웃거리고
마당에 오골계 놓아기르며, 그래도 즐겁던,
오남매 강아지 떼처럼 모여 살던,
지독하게 가난하던 시절의 누나야
밤하늘에 열리던 은하수 길
별들이 들려주던 옛날 이야기
지금껏 가슴속에 용케 남아서
별 없는 서울 밤하늘 우울한 날에
가끔씩 펼쳐 보는지
~~~~~~~~~~~~~~~~~~~~~~~~~
무주 장날
시골 동네 오일장
친구와 순대국밥에
막걸리 세 통 걸쳤다
해는 뜨겁고 낮술은 달았다
풀리지 않는 삶의 수수께끼
논하며
술잔은 기울어갔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서
무슨 꿈 안고
삶의 골목길 서성이는가
굽이치는 생명의 강 건너
어디로 가는 걸음이기에
순교자인 양
절뚝거리며 가는 것이냐
텅 빈 시골장터
취한 노을 붉게 비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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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구 시인
전북 무주 출생
월간 모던포엠 시부문 신인상
한국문인협회 회원
세계모던포엠 작가회 회원
모던포엠 동인
전북문인협회 회원
전북불교문학회 회원
무주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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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들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길
---- 시인 유창섭
이 세상에는 많고도 많은 시인들이 존재한다.
그 시인들이 쏟아내는 ‘시(=노래)’도 수 없이 존재 한다. 그렇다면 시인이 쓰는 시는 모두 좋은 시인가? 그렇지 않다. 그러면 좋은 시란 어떤 시인가?
필자는 시 창작을 강의하면서 ‘시인이 되려는 사람들’에게 “시의 정의”를 소개하면서 좋은 시란 그 형식 여하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의 표현 여하에도 불구하고, “시를 읽으면서 첫째, 정황이 눈에 선하도록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만큼 아름답게 묘사되어야 하며(미술적), 둘째, 그 시를 읽으면서 그 속에 담겨진 여러가지 소리—예를 들면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이야기소리 등 소재가 되어 있는 시적 상관물의 다양한 소리들—가 들려야 하고(음악적), 셋째, 위 두가지의 요소들이 그 글에 “감추어져 있는 또는, 담겨져 있는 정서”를 증폭시켜 감동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야(감동적) 한다고 말해 왔다.
다시 말하면 시는 미적이어야 하며(상징적이고 아름다움), 음악적이어야 하며(운율적), 감동적인 내용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이번에 읽게 되는 이현구 시인의 시에서는 “소리”---“죽은 나무의 노래“나 ”산새와 하모니카“같은 시를 읽게 된다---가 들린다.
그의 시 속에서는 침묵도 하나의 소리---타오르는 침묵으로 노래한다“(시 ”돌“ 중에서)---가 된다.
그런가 하면 그의 시 속에서는 존재와 사라짐, 또는 부존재의 인식(시 ”거울”이나 “솔개”)이 펼쳐지기도 한다.
물론 이현구 시인의 시적 인식의 전체가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르튀르 랭보Arthur Rimbaud(1854-1891)의 “견자의 시론”에 의하면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는 것은 사실은 정말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어떤 모델을 따르는 일 없이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 착란, 곧 뒤틀림을 통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전복할 때 시인은 진정으로 자유롭게 되는 것”이라는 인식이 드러나게 되는데 이현구 시인의 시에서도 그러한 인식이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 몇 편의 시를 두고 그의 시 세계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는 시를 통한 감동이 내재된 철학적 사색의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시적 심상心象이 적요寂寥하며 깊숙하다.
이런 사색적 영감은 삶에 대한 불교적 심상과 맞닿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그의 시에서는 시골의 풍광이 그려지고 가난하나 정이 넘치는 삶이 그려져 있다.
물질 만능주의 시대, 현대 사회에서 잃어가는 ‘인간성 회복’이라는 이 시대의 명제와도 궤를 같이 한다.
그의 시 “죽은 나무의 노래”에서는 나무가 '기타Guitar'로 태어나 그의 지난 시간을 노래로 풀어내는 모습으로 환치된다.
----(중략)---
네가 서 있던 숲
별 뜨는 외로운 밤이나
하얗게 눈꽃 피던 겨울날에도
매일 찾아와 노래 불러주던 새
그 숲의 노래 잊지 못하고
잘리고 깎여나가
심장 없는 텅 빈 몸으로
나무가 운다 새처럼 운다
---(중략)---
(“죽은 나무의 노래” 중간 부분)
즉, 기타가 음율을 내는 소리가 그의 삶에 고여 있던 한恨을, 또는 축적된 삶 속의 노래를 풀어내는 하나의 의식으로 전환시키는 시인의 시선이 바로 시적 동기가 되고, 그 속에서 시인은 1연에서 삶을 위해 전전하는 짚시의 삶으로 전이시켜 “기타가 운다 슬피 운다”고 표현해 내고 2연에서는 “나무가 운다 새처럼 운다”고 점층시키고 마지막 연에서는 “술이 되어 넋을 적신다”고 여행자(=시인)의 심상에 연결지워 한낱 사물(=나무)이 죽은 후에도 그 삶에 축적된 노래들이 다른 존재하는 것들에게 무언의 감동을 주게 된다는 인식으로 끌고가는 기교를 보여준다.
이러한 “소리”의 이미지를 감상자가 들을 수 있도록 장치하는 기교는 “산새와 하모니카”에서도 ‘산새 한 마리’가 “노을이 산능선 넘어가도록 / 하나뿐인 객석을 홀로 지키며 / 풀꽃사이 숨어있다”는 정경을 그려내어 오월이라는 계절의 형상적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또한 “돌”이라는 시에서는 ‘졸리움을 이겨내는 인내’, ‘어두운 순수’, ‘침묵’이라는 돌이 가지는 형상적 무거움의 인식을 ‘타오르는 침묵으로 적멸을 노래한다‘고 표현함으로서 그 의미의 압축과 생성의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기도 하다.
침묵도 소리로 환치시키는 시인의 마음이 깊게 읽힌다.
시 “거울”에서는 시인에겐 ‘거울’이 하나의 강이다.
‘거울’은 과거가 투영되는, 또는 과거의 모습이 흘러가는 하나의 세상이다.
거울을 보는 순간 그 속에서 발견되는 과거와 현재에 대한 시인의 사념과 과거 순수하였던 자신의 이상理想과 꿈에 대한 그리움을 표출하면서, 꿈과 이상이 소진된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상기시켜 대비對比하는 마음이 아름답게 형상화되어 있다.
............(중략)................
나는 매일 강 앞에 선다
거울 속 내 모습도 강처럼 흘러갔다
한때는 거울 속에 소년이 살았다
별빛처럼 아름다운 눈빛을 가진
소년이 거울 속에서 웃을 때면
하얀 찔레꽃 향기가 피어올랐다
오늘은 수염이 거칠고
주름진 얼굴로 중년의 사내가 서 있다
사내는 좀처럼 웃을 것 같지 않다
그 우울한 눈빛의 사내가
내가 아니라고 말 해주기 바랬지만
거울은 상대를 배려하는 법을 모른다
..............(중략)..............
(시 “거울”의 부분)
그리고는 “거울 속에는 강이 흐른다 / 그 강 물결 수심 깊은 곳 / 우리에게 끝내 잊혀져간 얼굴들이 / 묻혀있다”고 말하여 매일 아침 만나는 거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이 타인의 모습으로 환치되는 심상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흔한 소재를 흔하지 않게 자신만의 발상으로 전환시켜내는 시인의 인식이 재미있게 읽힌다.
다음에는 존재와 사라짐의 인식이 맞부딪는 “솔개”라는 시 한 편을 감상한다.
...............(중략)..................
날갯짓 없이도
가슴에 부딪히는
운명처럼 시린 겨울바람
가뿐히 타 오르며
하늘에 멈춰
대지를 굽어보고 있다
.................(중략)....................
하늘 속으로 녹아
바람과 함께
허공(虛空)이 되었다
(시 “솔개“ 부분)
“솔개”는 존재하는 것의 표상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솔개’는 ‘하늘 속으로 녹아/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허공”이 존재 속으로 들어온다.
먹이를 찾아내려는 삶의 모습과 순간적으로 사라지고 ‘허공’(=무無)이 되어 버리는 순간은 인간의 삶이라고 다를 수가 없다.
‘존재란 무엇인가, 그리고 부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연스러운 성찰을 담아낸 시이어서 그 인식의 무거움이 가슴에 풍덩! 돌 하나 던져 넣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우리의 삶 속에는 많은 기억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매우 고단하고 어려운 시간을 보낸 어린 시절이 있다면 더욱 그 기억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그리움을 가지고 등장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기억 중에서 시인은 ‘누나’에 대한 억척스러움이 담긴 기억을 드러낸다.
.........(중략)..........
아버지 막걸리 심부름 가던
긴 머리 삼단 같던 누나야
가을이면 겨울 땔감나무
한 지게씩 져 내려오고
동네 머스마들 코피 터트리고
..........(중략)........
고무신 벗겨지던 누나야
..........(중략).........
오남매 강아지 떼처럼 모여 살던
지독하게 가난하던 시절의 누나야
...........(중략)...........
별 없는 서울 밤하늘 우울한 날에
가끔씩 펼쳐 보는지
(시 "누나"의 부분)
‘막걸리 심부름’ 가던, ‘지게로 땔감나무 해 오던‘, 동네 사내아이들 ’코피 터뜨리고 도망 다니던‘, ’지독하게 가난 하던 시절‘을 그래도 누나 때문에 즐겁게 살던 누나의 억척스러움이 하나의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나에게 시인은 아직도 꿈을 꾸고 옛날의 추억을 그리워 하는 지를 묻는다.
이렇게 그 그리움의 언저리엔 잊을 수 없는 ‘삶의 곤고함을 이겨낸 우리의 과거’가 있지 않느냐는 반어적인 언술이 담겨 시를 읽는 감상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된다.
시가 ‘감동이 없다면 이미 그 글을 시가 아니’라는 인식에 값하는 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감동이란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을 가진 요소‘라는 것으로 철학적 인식이나 깨달음등과도 같은 정서를 모두 포괄하는 정서라고 말 할 수 있다.
시골 동네 오일장
친구와 순대국밥에
막걸리 세 통 걸쳤다
해는 뜨겁고 낮술은 달았다
풀리지 않는 삶의 수수께끼
논하며
술잔은 기울어갔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서
무슨 꿈 안고
삶의 골목길 서성이는가
굽이치는 생명의 강 건너
어디로 가는 걸음이기에
순교자인 양
절뚝거리며 가는 것이냐
텅 빈 시골장터
취한 노을 붉게 비틀거렸다
(시 “무주 장날” 전문)
“장날 풍경”이 매우 뜨겁다.
‘낮술은 달았’고 ‘풀리지 않는 삶의 수수께끼’가 넘쳐나는 진솔한 의문이 묻어나고, 우리의 가는 길에 대한 물음이 묻어나는 시골 장날의 풍경이 소박해 보인다. 삶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라고 다를 게 없다. 그 속에 철학이 있고, 담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생명의 강 건너’ 우리들은 ‘절뚝거리며’ 걸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해답이 제시된다. 그 사이에 “텅 빈 시골장터 / 취한 노을 붉게 비틀거렸다”는 시인의 시선이 삶에 대한 의지로 뭉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이현구 시인의 시 7편을 읽어 보았다.
시인의 삶 속에서 건져낸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나, 회상과 자성의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시인 자신의 삶속에 녹아 응축된 사념이나 사상들이 소리로 현현顯現하여 나타나기도 하고 작은 깨달음의 인식으로 나타나기도 하면서 시인은 자신의 언어와 독특한 그의 목소리를 가다듬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시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정형화된 해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시인 자신에게 답이 주어져 있는 것이다. 그 답에 값하는 시가 쓰여질 것이므로 우리는 언제나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시인의 사상이나 철학과 감성을 주목한다.
이 시대에 많은 시인들의 시가 발표되고 있는 사이에 좋은 시를 만나는 일은 어쩌면 하나의 행운이 될 수도 있다.
시를 읽는 즐거움의 하나는 새로움과 마주하는 일이다. 새로움이란 형식적 새로움도 있고, 내용의 새로움도 있으며, 정서적 발현의 새로움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시 속에서 새로움에 눈을 뜨고 그 정서적 감동에 젖어 심상을 정화시켜 나가는 일이 바로 시를 읽는 즐거움이 아닐까?
앞으로도 이현구 시인이 창조해 가는 새로움에 대한 눈길이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더욱 발전되고 빛나는 서정으로 나타나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몇 편의 아름다운 시에 젖어 즐거운 사색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첫댓글 덕유산의 숲소리,구천동의 물소리, 무주의 향기가 이 샘의 인생으로 스며 들었네요,,
풍류선생님..고맙습니다..님의 시에서는..바다냄새가 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