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5시 2015.11.10.
제목: 홍천군 용수리 사이골 이야기
1. 오늘은 용수리 사이골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다고요? 먼저 사이골의 위치부터 말씀해 주시지요?
사이골은 홍천군 남면 용수리 본말에 있는 큰 골짜기이며, 동시에 본말을 일컫는 지명이기도 합니다. 이곳을 가려면 홍천군 남면사무소가 있는 양덕원리에서 양덕원천을 따라 난 도로를 타고 명동리와 제곡리를 지나면 도착할 수 있습니다.
아주 아담한 농촌의 작은 마을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그 명칭도 다양한데, 간곡, 사앗골, 사잇골, 삭골, 샛골, 삿거리, 장독벼루 등으로 불러지고 있었습니다.
2. 아주 아담한 농촌의 작은 마을, 머릿속에 나름 상상이 갑니다. 요즘 농촌에 가면 마을회관과 노인회관이 다 있잖아요. 용수리 사이골의 노인회관은 어떤 가요?
현재는 가장 큰 건물이 노인회관입니다. 마을회의를 비롯해서 모든 행사를 치르는 곳입니다. 가 보면 언제나 노인들이 모여서 한담도 나누고 점심도 같이 해 먹으면서 정답게 보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km이상 떨어진 안말의 노인들도 걸어서 노인회관에 와서 놀다가 저녁이면 또 걸어갑니다. 시골에서 노인회관이 갖는 새로운 문화이며, 노인회관은 시골 최고의 문화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모든 소식이 오가고, 마을회의, 노래자랑, 화투놀이, 윷놀이, 텔레비전 시청 등이 이뤄지는 여가를 보낼 수 있는 시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지난 9월 말에 방문했을 때는 동네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었습니다. 의아해 하고 있는데, 한 어르신이 용수리 웃말에 기업형 양계장이 들어와 있는데, 아마도 더 늘리려고 해서 냄새 등의 공해 때문에 대책회의를 했다고 했습니다. 이는 지역이기주의라기보다는 마을공동체에 대해 배려를 하지 않는 기업들의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닭똥 냄새를 없애든가 줄일 수 있는 시설을 하면 되는데,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문제도 있지만 마을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업이든 마을사람들이든 함께 한다는 공동체 의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용수리 사이골의 노인회관 용도를 알 수 있겠지요.
3. 요즘 농촌에는 젊은 사람들이 없어서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한다고 하잖아요. 그 때문에 농촌의 초등학교가 폐교가 되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용수리 사이골은 사정이 어떤 가요?
용수리 사이골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1999년에 폐교가 된 용수초등학교가 있는데, 운동장에는 잡초가 무성했습니다. 현재는 용수조형연구소라는 간판이 붙어있는데, 이 마저도 신통치 않은 것 같습니다. 인적은 찾을 수 없고 썰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때 용수초등학교는 용수리 뿐 아니라, 인근의 제곡리와 남노일리까지 학생들을 수용하는 규모가 꽤나 큰 학교였습니다. 처음 이 학교가 설립된 것은 1937년인데 그때는 간이학교였습니다. 그러다가 1945년 광복되던 해 초등학교로 승격이 되었습니다.
4. 시골 초등학교 하면 마을사람들에게 특별한 추억이 있는 곳이잖아요?
현대식 양옥 건물로 짓기 전에는 초가지붕으로 된 학교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매년 남노일리, 용수리, 제곡리 사람들이 부역을 해서 이엉과 용마름을 틀고 새끼를 꼬아서 지붕을 이었다고 합니다. 지붕을 잇는 날은 학교 선생님들이 돈을 조금 모으든가 아니면 동네사람들이 돈을 거둬서 막걸리를 사서 마시면서 먹었다고 합니다.
초가지붕을 이을 때 말고도 여럿 추억이 있겠지만, 사이골 용수초교에 대한 추억 가운데 초가지붕을 이은 추억이 가장 먼저 떠오른 가 봅니다.
5. 폐교가 되어도 옛 학교의 흔적은 있기 마련이잖아요?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 상 등 말이에요?
지난 9월에 학교 운동장에 들렀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하얀 소녀상이었습니다. 잡초가 무성한 곳에 하얀 석고로 된 책을 읽는 소녀상이 낡아서 초라한 모습을 한 채 서 있었습니다. 옛 생각이 나더군요. 그래서 풀을 헤치고 자세히 보니 낯익은 글귀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 하고, 그 밑에 <어린이 독서헌장>이 동판에 역시 녹이 슨 채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들어보면 참 새롭게 느껴질 것입니다.
1. 어려서부터 좋은 책을 읽어 마음의 양식을 장만한다. 2. 책에서 옛것과 새것을 배워 참 지식을 만든다. 3. 책에서 바른 글과 바른 말을 익혀 바른 마음을 닦는다. 4. 책을 읽어 즐겁고 보람 있게 자라며 삶의 힘을 기른다. 5. 책을 읽어 즐겁고 용기를 갖춘 쓸모 있는 한국사람이 된다.
5. 아무래도 농촌마을이다 보니 나무를 하던가 하는 농촌 특유의 추억도 있을 것 아니에요?
이 골짜기에는 나무가 아주 많아서 예전에 나무를 땔감으로 쓸 때 자주 찾았답니다. 나무하러 사이골에 있는 산을 찾은 것입니다. 이곳에서 나무를 할 때는 친구들끼리 재미있는 놀이도 했다고 합니다.
사이골에 나무를 하려 갈 때 여럿이 가면 지게를 상여처럼 엮어서 상여놀이를 하면서 산을 올랐습니다. 지게를 사이로 끼워 넣고 작대기를 가로지르고 지게 밧줄로 엮어서 어깨에 메고 가면서 선소리도 하곤 하였습니다. 앞에서 선소리를 넣으면 뒤에서 후렴을 받았습니다. 상여소리는 직접 상이 나갈 때 하는 소리와 같은 사설을 늘여놓고 후렴을 하였습니다. 이때 동네에서 구두쇠나 좀 못 된 노인이 죽은 것처럼 하여 선소리를 하기도 하였답니다. 산에 올라가면 상여를 매었던 지게를 모두 풀어서 제각각 짊어지고 나무를 하였습니다. 이 놀이를 지게상여놀이라 하였습니다. 이 놀이는 나무하러 갈 때 심심하니까 하는 놀이입니다. 나무를 하고 마을에 돌아오면 상여놀이로 죽였던 노인에게 꾸벅 인사를 하면서 자기들만의 비밀을 만들기도 했답니다.
6. 화전도 있을 것 아니에요? 화전과 관련해서는 어떤 사연들이 있나요?
사이골은 산언저리에 땅 판만 좋으면 화전을 해서 밭을 일궜습니다. 굳이 화전민이 아니더라도 그 당시는 비료가 귀하여 곡식이 잘 안 되므로 화전을 해서 곡식을 수확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대 나라에서 화전을 하지 못하도록 일체 정리를 하여서 모두 없어졌습니다. 그 당시 면서기들이 떼거지로 나와서 화전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답니다. 그런데 참 화전을 할 때 동네에 훈훈한 미담도 전합니다.
화전을 할 때 동네에서 우환이 있든가. 노인이 힘이 부치고 하면 동네 청년들이 아침이나 저녁에 함께 가서 그 집일을 해 주었답니다. 이것을 울력이라 하는데, 화전할 때 뿐 아니라도 농사를 지을 때 어려움이 있으면 논에 가서 벼도 베어주고 타작도 해주곤 하였답니다. 이렇게 이웃을 위하는 마음이 대단했습니다. 이 울력을 할 때는 동네 누구든 어느 집이 어려우니 하루 시간을 내어서 부역을 좀 하자고 하면 십시일반으로 기꺼이 내 일처럼 나서서 일을 도왔답니다.
또 초가지붕을 이을 때도 힘이 부치는 노인들이 있으면 이엉을 배서 지붕을 엮었답니다. 이때 보통 저녁에 일을 도와서 많이 했는데, 이를 울력 엮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주인네가 팥죽을 쑤어서 한 그릇씩 주곤 하였답니다.
7. 아마 이 밖에도 세시풍속이나 마을제사 등 참 많은 이야기가 전할 텐데요?
옛날에는 정월대보름이 되면 마을 별로 횃싸움을 많이 했잖아요.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정월대보름에 마을 별로 횃싸움을 해서 이기는 동네는 그 해에 풍년이 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로 이기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홰에다 불을 붙여서 서로 치곤 하였습니다. 어느 때는 한 사람이 홰를 들고 쫓아가니 도망을 가면서 변소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래 변소로 들어가면서 홰를 들고 냅다 치는데, 갑자기 “나야, 나야.”하기에 보니까, 자기의 장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래 이기려고 달빛 아래에서 횃불 놀이를 한 것이 사위가 장인을 때린 격이 된 것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