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距今 30여년전에 당시 永同郵便局長 日人 孫田茂治가 한학자였던 바로 본인의 선친과 필담으로 교유하며 可謂 逐日詩酒共娛하는 처지로서 본인이 老親侍下에 家貧無資함을 동정하고 무수히 금품을 施惠한 외에도 상업자금을 無利息으로 융통하여 주었고, 永同 來住 4, 5년만에 京城으로 전거할 제에는 孫田이 거주하던 주택 1동을 본인에게 증여까지 하였던 등의 막대한 경제적 원조를 입었던 혜택으로 본인이 비로소 경제적 기초가 서게 되었던바 其後 孫田이가 일본으로 귀환하여 사망하였다는 通訃가 있어서 孫田의 생전의 恩顧에 감명한 바가 있어 본인이 즉시 渡日하고 전술 孫田家를 위문하였더니 마침 孫田의 묘지에 石物장식이 아니되어 있기로 석공에게 청부시키고 그 금액으로 일금 1백원을 주고 귀환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문 피의자는 소위 전쟁전성기의 중추원 참의로서 戰力增强, 戰意昻揚, 皇民化推進 등 일련의 사회적 공직을 다수 대임하였을 터인데 如何.
답 기타의 前問한바 공직은 전혀 없었습니다.
문 피의자는 忠淸北道會 의원 또는 중추원 참의 등의 일제하 요직으로 전력증강, 황민화운동 등의 강연을 다수 행각하였을 터인데 如何.
답 단기 4274년[1941] 忠淸北道 지사의 명의로 긴급 上道하라는 초청이 있어 來道한즉 전국의 중대성과 필승태세를 설명한 후 민간의 협력을 요청한 나머지 본인을 별실로 초입하고 비행기 기금으로 일금 1만원을 헌납하라기에 過重불가능으로 즉시 사절하였던바 그 후 내무부장이 동일한 초청을 하였으나 본인이 거절하였더니 그 수일 후에는 경찰부장이 동일한 초청으로 강요함을 종시 거부하였던바 其後는 소위 군수, 경찰서장이 매일같이 독촉하므로 그 문제가 발생한지 數朔만에 졸리다 못하여 일금 1만원을 낸 일 외에는 일반 헌금으로는 1천원을 낸 사실이 있을 뿐입니다. 右 본인에 讀聞시킨바 相違가 無하다하고 서명 날인함. 공술자 손재하 단기 4282년[1949] 8월 11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 김상철[金相喆] 입회인 서기 김종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