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 공사 하던중 무너져 내린 돌에 깔려 죽을 뻔했다
곧 설 명절이 다가온다. 청자사업소 운영 초창기에는 설이나 추석 명절이면 선물 주문들이 많이 들어왔다. 이때에는 주로 고려시대 작품들을 재현한 매병이나 주병, 상감청자 등이 인기가 많아 주문이 많았다.
가격이 비싼편이기 때문에 일반 주민들보다는 주로 큰 기업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주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용으로 주문하곤 했다. 이때 선물용으로 강진군이나 전라남도에서도 주문이 많았다.
이시기에는 강진군에서 중앙부처에 어떤 사업을 건의하거나 요청하러 가기 위해서는 선물용으로 강진의 명물이었던 청자를 들고가곤 했다. 이때 사업을 건의하기에 앞서 담당자에서 기부형태로 선물을 전달하면 딱딱했던 분위기가 풀어지면서 이야기가 잘 풀리곤 했다.
이런 분위기는 전라남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도청에서도 중앙부처를 찾아갈때는 강진군에 연락해서 선물용 청자를 주문하기도 했다.
1981년경으로 기억한다. 이때 전라남도에서 강진군으로 주문이 들어온 것이다. 대통령이 도청을 방문해서 보고를 하는데 보고회장 환경미화를 위해 강진군에서 진열할 청자를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군의 연락을 받은 나와 직원들은 가마 수리부터 들어갔다. 이때 가마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작품 납품일정이 촉박했다.
일정을 단축하기 위해 가마공사를 서둘렀는데 가마의 윗부분과 아랫부분 공사를 마무리하고 받침대로 설치되어 있었던 각목을 빼내야 했다.
나는 직접 가마 안 가운데로 들어가서 각목을 빼냈는데 그 순간 미처 굳어지지 않은 상태였던 가마 윗부분이 무너져내렸다. 단단하게 굳어진 돌덩어리들이었기 때문에 무게만 해도 약 2톤은 됐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때 나와 또 다른 직원 1명이 가마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다른 직원은 다행히 가마 외부를 작업하고 있었기에 나만 무너진 돌에 깔렸다. 급히 직원들이 밖에 나가서 도와줄 사람들을 불렀고 급히 무너져 내린 돌들을 치웠다. 하지만 30~40분이상 시간이 소요됐고 나는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돌에 깔려서 있어야만 했다.
그때 급히 군청의 차를 타고 강진의 한 병원으로 향했으나 이때만 하더라도 의료장비가 열악했던 탓인지 겉으로는 멀쩡해보였기에 특별한 진단을 내리지 못하고 물리치료만 받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척추뼈가 부러지고 금이 간 상태였다. 이렇게 병원 입원실에 누워있는데 당시 정채균 군수가 찾아왔다.
군수는 한숨을 쉬면서 “나는 죽었네”라고 말하면서 “청자를 작업할 사람이 다쳤으니 이제 사업소는 문을 닫아야겠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정 군수는 내 옆에서 눈물을 흘리며 한참동안 머물렀다 일정 때문에 병원을 나서면서 “몸조리 잘하라”는 말을 남겼다.
그 이후로도 자주 아침일찍 전화해 몸 상태를 체크하는 등 건강에 신경을 많이 써주었다. 이 사고로 인해 당시 전남도청 대통령 보고회장의 진열은 기존에 만들어두었던 청자 작품들에서 몇점을 골라 진열을 끝마쳐야만 했다.
나는 이 사고이후 약 6개월이상 흐른 후에야 거동을 할 수 있었다. 몸이 다 낫기도 전에 또 하나 사건이 터졌다. 바로 저수지 공사였다. 지금 정수사로 올라가는 항동마을 바로 앞에는 커다란 저수지가 있다.
이 저수지를 막기 위한 공사가 80년대 초반 시작됐다. 공사를 막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당시 문화재관리국에서 인근의 청자도요지를 보호하기 위해 공사를 중단하라는 것이었다. <정리=오기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