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는 기발한 재주를 가진 새다. 남의 새 둥지에 몰래 들어가 그 안에 놓여
있는 알과 비슷하게 자신의 알을 하나 낳고 나오면 나머지는 그 알이 부화되면서
스스로 알아서 처리 한다. 알은 보통 10-12일이 지나면 부화되는데 부화된 뻐꾸기
새끼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여 둥지 안의 다른 알이나 새끼를 모두 밖으로 밀어내고
혼자 둥지를 차지한다. 다른 어미 새는 그 새끼가 자신의 새끼가 아님을 곧 알게 된다.
우선 몸짓이 새끼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 보다 훨씬 크다. 다른 새끼인지 알면서도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주며 다 클 때까지 돌봐준다. 무엇이 거절을 못하게 만드나?
뻐꾸기 새끼가 내는 울음소리나 몸짓이 다른 어미 새의 신경 계통을 작용하여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뻐꾸기 새끼가 본능적으로 하는 이런 일련의 행동들을 유전자의 확장된
표현형(Phenotype)이라 한다. 동물이나 곤충에는 이런 예가 많다. 바다 거북 중에는
25년이 지나면 자신이 부화된 장소로 찾아와 알을 낳고 다시 바다로 돌아 가는 것이
있다고 한다. 또 비버가 강을 막아 댐을 만들거나 개미들이 지하에 농장을 만들어
자신들이 먹을 식량을 재배하는 행위 등도 유전자의 표현형에 속한다. 즉, 유전자는
개체의 몸 속에 들어 앉아 있으며 일정한 시기에 일정한 행동을 하게끔 미리 예정되어
있는 프로그램과 같다.
참으로 신비하지 않은가. 도대체 유전자가 무엇인데 이런 프로그램이 가능한가?
지난 백 년 과학의 가장 큰 업적에 중에 하나가 유전자의 완전 해독이라고 한다. 즉,
DNA가 어떤 구조로 되어 있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아 낸 것이다. 동물은 물론이고
식물이나 곤충, 박테리아며 바이러스까지 살아 있는 생명체는 모두 DNA(일부 박테리아는
RNA) 형태로 유전자가 있음을 밝혀졌다. 영국의 생물학자 리차드 도킨스이 쓴
The Ancestor’s Tale이란 책은 DNA 구조를 통하여 종의 구조를 거슬러 올라간다. 이 책에
따르면 인간과 침펜지는 6백만 년 전 같은 조상이었고 7천만년쯤 거슬러 올라가면 쥐와 같은
설치류동물과 조상이 같다. 그리고 5억년쯤 되면 파충류를 만나고 더 깊이 가면 곰팡이와
식물로 이어진다.
최초 생명체는 DNA의 모체라 할 수 있는 RNA이고, 궁극적으로 RNA는 뉴클레오티드
(nucleotide)란 유기물질(염기, 탄수화물인 펜토오스, 인산이 각각 1분자씩 결합)이다. 40억년
전 지구가 어느 정도 안정을 이뤄갈 때 이 유기물질들이 결합하여 하나의 유전자를 이뤘고 이
유전자들끼리 서로 결합하고 공생하기 시작하여 박테리아, 곰팡이 같은 생명체가 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오랜 세월 이런 작은 생명체가 진화하여 다른 생명체를 만들어 왔다는 것이다.
DNA구조가 밝혀지기 이전인 20세기 초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의 본능에는 생명의
본능 이외에 죽음의 본능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죽음의 본능은 유기물질이 태초의 무기물질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구라고 했다. 나이가 들어 가며 점점 자연과 가까워지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 이 또한 유전자의 자기 표현이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