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형께!
이은봉입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이메일을 드립니다. 물론 그럴만한 사정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은 오늘 오후에 차를 몰고 광주에 내려왔습니다. 어제가 아버님 기일이라서 자시를 기다려 제사를 지내고 아침 일찍 어머님을 모시고 대전으로 향했습니다. 아시겠지만 어머님은 대전 둔산에 따로 혼자 계십니다.
어머님을 대전 둔산의 아파트에 모셔다 드린 뒤 광주까지 오는 동안 마음이 많이 착잡했습니다. 신탄진쯤 왔을 때였습니다. 핸드폰을 통해 대학원에서 제 지도를 받은 나이 든 학생 전○○ 시인(담양의 모 중등학교 국어교사)이 음독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게 전화를 해준 남자는 죽은 전○○ 시인(남자, 40대 중반)의 남동생이라고 했습니다.
너무 놀라 나는 이것저것 따져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전○○ 시인에게 우울증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봄까지는 계속 약을 먹으며 병원치료를 했는데 병세가 호전되어 여름부터 약을 끊고 홀로 이겨내던 중이었다고 했습니다. 우울증은 이제 약물만으로도 충분히 치료가 되는 신경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8월 29일(금) 오후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9월 1일(월) 오전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가려고 하던 중에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주말이라 병원 치료를 하루 미룬 것이 이처럼 큰일을 불러온 지도 모르겠습니다. 전후의 사정으로 미루어 보면 가족들은 전○○ 시인의 증세와 관련해 늘 긴장을 하고 있기는 했던 듯합니다.
차를 몰고 집을 나가면서 그는 부인에게 승용차의 기름을 넣어오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전에도 흔히 있었던 일이라 부인은 별 의심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집을 나간 그가 핸드폰도 꺼놓고 돌아오지 않자 가족들은 곧바로 경찰에 실종신고를 한 뒤 백방으로 찾아 나선 모양입니다. 혹시나 하여 가족들은 고향 마을도 둘러보았고, 어머님 묘소도 둘러보았다고 합니다.
나는 그가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죽은 전○○ 시인은 크게 시끄럽지는 않았지만 제가 보기에 비교적 밝고 부드럽고 성실 태도를 보여 주었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해서 함께 읽는 텍스트의 발제를 곧잘 해왔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던 전○○ 시인에게 우울증이 있었다니! 나는 너무도 당황스러워 운전을 하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죽은 전○○ 시인은 1년 반쯤 전부터 나와 함께 문사철을 공부하는 소모임에 참석을 해왔습니다. 6월 중순에 1학기 그룹 스터디는 마쳤지만 이번 여름방학 중에도 나는 두 번이나 그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한번은 시인들 10여명과 1박 2일간 여행을 한 적이고, 다른 한번은 복날이라고 해서 김민휴 시인과 함께 셋이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날은 복날이기도 했지만 북경 올림픽 개막식 날이기도 했습니다. 하늘을 덮고 있는 먹구름이 한꺼번에 다 쏟아져 내리는 듯해 그날 밤은 특히 기억이 납니다. 폭풍우를 피해 어느 중학교 주차장에 차를 대고 1시간 넘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일이 떠오릅니다. 주로 가족 얘기, 직장 얘기 등 인생을 사는데 도움이 되는 얘기들이었습니다.
그동안 내가 지켜 보아온 전○○ 시인은 큰 욕심이 없어 보이는 소박하고 순수한 신진시인이었습니다. 아, 이런 사람이 농약을 마시고 자살을 하다니! 가족들이 전○○ 시인이 생명을 버린 것을 확인한 것은 9월 2일(화)이었다고 합니다. 음독한 장소는 전북 고창읍에서 10여리 떨어진 시골마을 어디였다고 합니다.
연락을 받고 동생이 현장을 찾았을 때는 경찰에 의해 이미 시체가 다 수습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처음 연락을 해준 것은 경찰이었다고 합니다. 가족들은 그가 차 안에서 먼저 소주 3병을 마신 뒤 그 취기를 이용해 농약을 먹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고통 때문에 차의 문을 열고 나와 주변을 어지럽히며
L 형의 핸드폰 문자를 받은 것은 아마도 광주에 도착해서인 듯합니다. 그래서 핸드폰 문자 메시지로 이내 답장을 쓸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저로서는 이 일이 너무도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동안 사실 나는 비교적 안정된 이 나라의 자본주의 사회, 근대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우울, 짜증, 싫증, 분노 등 죽음의 정서라고 생각해왔습니다. 2004년 4월 1일(만우절)로 기억이 됩니다. 우리 대학교의 김인곤 이사장도 우울증으로 21층 사무실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하지 않았습니까. 이 일과 관련해서 나는 이미 두 편의 시 「우울」과 「만우절」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 두 편의 시는 이번 시집 『책바위』에 수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아, 어저께 보낸 이메일에 첨부한 잡다한 제 생각을 모은 글 재미있게 읽어 주어 고맙다는 말씀부터 드렸어야 하는데, 그만 깜박 잊고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최근 몇 년 동안(특히 《불교문예》 주간을 하는 동안)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에 대해, 마음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 매달려왔습니다. 감정 중에서도 생명의 감정이 아니라 죽음의 감정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어제 보낸 이메일에 첨부되어 있는 글의 내용도 실제로는 다 그런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제가 이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매달리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 정권 초기에 연이어 발생한 수많은 인사들의 자살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 대학교 김인곤 이사장의 21층 투신자살은 제가 이 문제에 골몰하게 된 좀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해도 좋습니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해, 곧 죽음의 정서에 대해 맨 처음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입니다. 동아일보에서 <인혁당 사건>과 관련해 김지하가 “1974년 1월을 죽음이라고 부르자”라고 한 이후부터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공포라는 심리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매달리기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이 무렵의 일입니다. 이번 시집 『책바위』에 실려 있는 「공포에 대한 단장」이 그때 이래로 쓰기 시작했던 시라는 점도 기억해 주기 바랍니다.
그런 이후 나는 자본주의 사회가 안정되면서 가장 큰 문제는 죽음의 정서(고독, 소외, 상실, 환멸, 염증, 피곤, 절망, 불안, 초조, 공포, 설움, 우울, 침통, 싫증, 짜증, 권태, 나태 등)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죽음의 정서는 자본주의적 근대에 이르러 부쩍 강화된 인간의 감정인 것이 사실입니다.
나는 주변에서 이들 죽음의 정서로 하여 자기 자신의 생명을, 생명이라는 존재를 한순간에 망가뜨리는 사람들을 너무도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공부 모임에서도 시간만 나면 이 문제에 대해 자주 토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도 내 제자 중의 한 사람이 우울증 증세로 농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다니! 가슴이 터질 듯합니다. 현대인은 누구나 조금쯤은 우울하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외롭고 고독하고 짜증스럽고 서럽다고 합니다. 겉으로 표현을 하지는 않지만 형이나 나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도종환도, 고형렬도, 김사인도, 김정환도, 최두석도, 김진경도, 하종오도 이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니 이들 죽음의 정서, 분리의 정서, 결핍의 정서, 마이너스 정서를 극복하지 않고 어떻게 인간해방의 길로, 근대극복의 길로 나갈 수 있겠습니까. 그동안의 애기는 근대극복과 관련해 우리가 정작 주목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말해준다고도 하겠습니다.
너무 말이 길어졌습니다. 오늘은 이런 넋두리로 제가 느끼는 우울과 절망과 설움과 불안을 형을 모시고 함께 나누어 보았습니다. 나눌 수 없는 감정을 지닌 채 거듭해 동일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우울증은 심화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해해주시기를 빌며 여기서 서둘러 이만 줄이겠습니다.
2008. 9. 3
이은봉 드림
첫댓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