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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나의 부족함을 하나님이 채우십니다!”
+ 본 문 : 시 편 23장 1절 - 6절 (구약성경 818쪽)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아멘!
삶이란 무엇인가? 삶에 회의하고, 삶이 무엇인가를 알기 원했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물어 보겠습니다. "삶이란 무엇입니까?" 삶이란 무엇인가? 삶에 대해 회의하고,
그래서 삶이 무엇인가를 간절히 알기를 원했던 그 사람이 기차여행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삶에 지친 모습으로 멍 하니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통로를 장사꾼이 지나며 외칩니다.
“땅콩이나 오징어 왔어요. 김밥도 왔습니다.” 계속 외칩니다. “삶은 계란이요. 삶은 계란”
이 사람이 무릎을 탁 쳤습니다. ‘아, 그렇구나. 삶은 계란이로구나.’ 정답을 얻은 것입니다.
아직도 무슨 말인지 감이 잘 안 오십니까? 삶이 무엇인가? 삶은 계란이라니까요, 삶은 계란.
웃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정답이 아닌 것에 삶의 정답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러면 진짜로 삶은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저는 서슴없이 시편 23편을 소개합니다.
진짜로 우리 삶의 정답인 시편 23편을, 다함께 큰소리로 고백하며 선포하겠습니다.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아멘! 아멘!
오늘 수요예배부터 시편 23편을 중심으로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일곱 가지 성경적 해답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삶이란 무엇인가?” - 우리가 살아가는,
이런저런 인간사의 모든 삶의 문제점들의 해결책이, 오늘 본문 시편 23편에 다 나옵니다.
그리고 우리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실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시편 23편이 다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며, 내가 하나님께 얼마나 중요한가도 말씀해 주십니다.
그래서 시편 23편을 통해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게 됩니다.
이렇게 시편 23편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염려하고,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돈 문제일 수도 있고, 직업이나, 인간관계, 결혼, 자녀, 건강상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염려는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염려는 아무것도 달성하지 못합니다.
염려는 나의 어떤 문제도 풀지 못합니다. 염려는 시작하지도 않고 우리의 속만 태웁니다.
마치 차를 운행하려고 할 때, 기어를 넣지 않고 액셀레이터만 밟아대는 것과도 같습니다.
독한 매연만 뿜어댈 뿐, 아무 곳으로도 가지 못합니다. 그저 제자리에서 공회전할 뿐입니다.
염려는 결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염려한다고 해서 과거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염려한다고 해서 미래를 다스릴 수도 없습니다. 염려는 나의 오늘을 불행하게 만들 뿐입니다.
이처럼 염려는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유익이 아니라 손해를 줄 뿐입니다.
그리고 염려는 합리적이 아닙니다. 염려는 우리의 문제를 과장해서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염려하는 문제는 점점 더 커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염려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에 대하여 염려하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염려, 근심, 걱정은 결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몸은 염려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염려하면 몸의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염려를 하게 되면 위궤양, 요통, 두통, 불면증 등 여러 가지의 질병에 걸리게 됩니다.
식물이나 짐승들은 염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 염려하는 것은 오직 사람뿐입니다.
우리 사람도 본래는 염려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지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염려합니다.
그렇게 염려하므로 불행하게 되고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염려에 대한 고전 영어의 뜻은 “질식시키거나 숨이 막히게 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염려하려고 세상에 태어난 존재들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염려하는 것부터 배웁니다.
누가 염려하라고 가르치지도 않는데, 스스로 염려하므로 염려가 아주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이런 염려에 대한 해결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아멘! 아멘!
이렇게 하나님께서 나를 부족함이 없게 하시는 목자이심을 믿으면, 결코 염려하지 않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목자는 먹을 것과 안식처,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채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목자 하나님은 우리가 적으로부터 해를 받지 않도록 방어해 주기 때문입니다.
목자는 양들인 우리가 어디로 가야 될지를 모를 때에, 친히 앞장서서 인도해 주기 때문입니다.
목자는 양들인 우리들에게 어떤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그 문제를 다 해결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우리의 목자 되신 하나님을 신뢰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다 제공해 주시며,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며, 우리의 삶에 문제들을 다 해결해 주십니다.
이사야서 40장 11절 말씀입니다. “그는 목자같이 양 무리를 먹이시며,
어린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은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아멘!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에 우리를 먹이시고, 그 팔로 안아 주시며, 온순히,
인도하며 지켜 보호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빌립보서 4장 19절에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더욱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할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해 보겠다. 아마 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하신다고 약속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하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성품을 걸고서 하시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약속을 하시면 하나님의 성품을 걸고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이 “모든”것에는 의사에게 지불할 돈도, 월세, 전세도 다 포함됩니까?
영적인 필요도, 경제적인 필요도, 건강과 인간관계도 다 포함됩니까? 그렇습니다. 다 포함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겠다는 약속들, 우리를 보호해 주시겠다는 약속들,
우리가 힘들 때에 인도해 주시며, 우리의 삶에 문제가 있을 때에 고쳐 주시겠다고 약속하면,
아무 염려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그런데도 왜 걱정하십니까? 왜 염려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아멘! 아멘!
성경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들이 무려 7천 가지 이상이나 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람을 지으셨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다 책임져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다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면, 전혀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특별히 신약의 성도들인 우리들은, 선한 목자가 되신 예수님을 나의 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주인이 되시면, 자동적으로 예수님은 나의 선한 목자가 되어 주십니다.
주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나를 책임지고 다스리는 것을 나타냅니다.
주인이란?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CEO - 사장, 경영자, 회장 등을 말합니다.
이처럼 내 삶의 모든 일들을 다 책임지시는 예수님이시기에,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나를 책임지시는 나의 주인이시라면, 예수님은 나의 목자가 되십니다.
요한복음 10장 14절, 27절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도 아는 것이”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이 말씀에서 보면, 예수님을 주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따르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님께서 내 삶을 지배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무엇이든 간에,
염려하는 것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염려를 하는 한은 염려가 우리를 다스립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염려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해 주시겠다는데도, 굳이 내 일이니 내가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염려입니다.
그것이 자녀나, 경제나, 환경이나 무엇이든지 간에, 내가 하겠다고 나서면, 그게 염려가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십시오. 내가 내 자신의 모든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내가 하나님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하나님 노릇을 하겠다는 것이 염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마치 하나님인 것처럼 행동할 때마다, 우리는 염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염려할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너는 하나님이 아니며, 내가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네가 아니라 나 하나님이 다스릴 것이다.”
누가 다스리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삶을 내가 다스리면 절대로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주인, 나의 목자가 되어 나의 삶을 다스리면,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의 성도인 우리들은,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을 내 주인으로, 목자로 모셨으면, 모든 것들에 대하여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염려하고 걱정하는 모든 것들을 내어놓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성경 볼 시간이 없으십니까? 기도할 시간이 없으십니까? 그런데 염려할 시간은 있으십니까?
우리가 염려하는 모든 것들을 내어놓고 기도한다면, 염려할 것이 아주 많이 없어질 것입니다.
여러분! 염려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모든 것을 해결하는 열쇠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아멘!(빌 4:6-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필요한 것들을 구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우리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아주 놀랍고 신비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에 임함을 체험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염려보다 더 크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모든 것을 채우십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 말씀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아멘! 아멘입니까?
“맡겨 버리라.”라는 말은 네가 가지고 있지 말고, 하나님께 다 맡겨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우리들은 하나님께 맡기고도 여전히 염려합니다. 기도하면서도 염려합니다.
그래서 염려란? 때로는 짙은 안개와도 같습니다. 짙은 안개가 몰려오면 잘 볼 수가 없습니다.
짙은 안개 속을 운전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앞을 볼 수가 없습니다. 염려가 그와 같습니다.
마태복음 6장 34절의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아멘! 아멘!
마태복음 6장 11절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아멘! 아멘!
우리가 염려하는 것을 막을 약이 없습니다. 어떠한 영적 경험을 했다 할지라도,
다시 염려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염려를 이기는 해결책은 선택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믿으려고 하는가? 아니면 나 자신을 나의 주인으로 삼으려고 하는가?
내 삶을 누가 다스리고 있는가? 누가 내 모든 삶을 결정하는가? 나인가? 아니면 하나님인가?
만일 내가 다스리면 염려할 것이요.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면 염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문제를 다 아십니다.
마태복음 6장 32절, 33절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는데도, 염려하시겠습니까?
우리가 믿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는데도 염려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불신앙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23편에 나의, 내가, 나를, 내, 내게 라는 말이 14번이나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나타내는 말이 7번이나 나와 있습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지는 믿음으로 살 때, 염려하는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인 믿음입니다. 우리들은 목자가 필요합니다.
목자이신 하나님은 내게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고, 보호하고 인도하며 바르게 잡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도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사, 하나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구원해 주셨으며,
죄 사함 받고 구원받은 우리를 보호해 주시기 위해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믿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사랑하십니다. 믿습니까?
우리가 염려하는 것들을 다 알고 계시며, 우리의 부족한 것들을 다 채워주십니다.
저를 따라 하나님께 고백합시다. “여호와는 / 나의 / 부족함을 / 채워주십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고백합시다. “여호와는 / 나의 / 부족함을 / 채워주십니다.”
이 시간 통성으로 나의 모든 염려를, 나의 목자되신 하나님께 다 맡기는 기도를 드립시다.
그리고 나의 모든 염려를 채워주시기를, 주여! 세 번 크게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