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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사시사(漁夫四時詞) - 윤선도 - | |
<춘사1> 앞강에 안개 걷고 뒷산에 해비친다 배 띄워라 배 띄워라 썰물은 밀려가고 밀물은 밀려온다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강촌에 온갖 꽃이 먼 빛이 더욱 좋다. <춘사2> 날씨가 덥도다 물 위에 고기 떳다 닻 들어라 닻 들어라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낚싯대는 쥐고 있다 탁주병 실었느냐 <춘사3> 동풍이 잠깐 부니 물결이 곱게 인다. 돛 달아라 돛 달아라. 東湖를 돌아보며 西湖로 가자꾸나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앞산이 지나가고 뒷산이 나온다 <춘사4> 우는 것이 뻐꾹샌가 푸른 것이 버들숲가 배 저어라 배 저어라 어촌의 두어 집이 안개 속에 들락날락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맑은 깊은 연못에 온갖 고기 뛰논다 <춘사5> 고운 볕이 쬐는데 물결이 기름 같다 배저어라 배 저어라 그물을 넣어 둘까 낚싯대를 놓으리까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漁父歌에 흥이 나니 고기도 잊겠도다 <춘사6> 석양이 기울었으니 그만하고 돌아가자 돛 내려라 돛 내려라 물가의 버들 꽃은 고비고비 새롭구나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정승도 부럽잖다 萬事를 생각하랴 <춘사7> 芳草를 밟아보며 蘭芷도 뜯어 보자 배 세워라 배 세워라 한 잎 조각배에 실은 것이 무엇인가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갈 때는 안개더니 올 때는 달이로다 <춘사8> 醉하여 누웠다가 여울 아래 내려가려다가 배 매어라 배 매어라 떨어진 꽃잋이 흘러오니 神仙境이 가깝도다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인간의 붉은 티끌 얼마나 가렸느냐 <춘사9> 낚싯줄 걸어 놓고 봉창의 달을 보자 닻 내려라 닻 내려라 벌써 밤이 들었느냐 두견 소리 맑게 난다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남은 홍이 무궁하니 갈 길을 잊었더라 <춘사10> 내일이 또 없으랴 봄밤이 그리 길까 배 붙여라 배 붙여라 낚싯대로 막대 삼고 사립문을 찾아보자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어부의 평생이란 이러구러 지낼러라
<하사1> 궂은 비 멈춰가고 시냇물이 맑아온다 배 띄워라 배 띄워라 낚싯대를 둘러메고 깊은 흥이 절로난다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산수의 경개를 그 누가 그려낸고 <하사2> 蓮잎에 밥을 싸고 반찬일랑 장만 마라 닿 들어라 닿 들어라 삿갓은 썼다만는 도롱이는 갖고 오냐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무심한 갈매기는 나를 쫓는가 저를 쫓는가 <하사3> 마름잎에 바람 나니 봉창이 서늘하구나 돛 달아라 돛 달아라 여름 바람 정할소냐 가는대로 배 맡겨라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남쪽 개와 북쪽 강 어디 아니 좋겠는가 <하사4> 물결이 흐리거든 발 싯은들 어떠하리 배 저어라 배 저어라 오강에 가자 하니 子胥怨限 슬프도다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楚江에 가자 하니 屈原忠魂 낚을까 두렵다 <하사5> 버들숲이 우거진 곳에 여울돌이 갸륵하다 배 저어라 배 저어라 다리에서 앞다투는 어부들을 책망 하라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백발노인을 만나거든 舜帝 엣 일 본을 받자 <하사6> 긴 날이 저무는 줄 흥에 미쳐 모르도다 돛 내려라 돛 내려라 돛대를 두드리며 水調歌를 불러 보자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뱃소리 가운데 만고의 수심을 그 뉘 알꼬 <하사7> 석양이 좋다마는 황혼이 가까웠도다 배 세워라 배 세워라 바위 위에 굽은 길이 솔 아래 비껴 있다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푸른 나무숲 꾀꼬리 소리 곳곳에 들리는구나 <하사8> 모래 위에 그물 널고 배 지붕 밑에 누워 쉬자 배 매어라 배 매어라 모기를 밉다 하랴 쉬파리와 어떠하냐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다만 한 근심은 桑大夫 들을까 두렵다 <하사9> 밤 사이 바람 물결 미리 어이 짐작하리 닻 내려라 닻 내려라 사공은 간 데 없고 배만 가로놓였구나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물가의 파란 풀이 참으로 불쌍하다 <하사10> 물가의 파란 풀이 참으로 불쌍하다 배 붙여라 배 붙여라 부들부채 가로 쥐고 돌길 올라가자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漁翁이 閑暇터냐 이것이 구실이다 |
<추사1> 物外의 맑은 일이 어부 생애 아니던가 배 뛰워라 배 뚸워라 漁翁을 웃지 마라 그림마다 그렸더라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사철 흥취 한가지나 가을 강이 으뜸이라 <추사2> 강촌에 가을이 드니 고기마다 살쪄 있다 닻 들어라 닻 들어라 넓고 맑은 물에 실컷 즐겨 보자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인간세상 돌아보니 멀도록 더욱 좋다 <추사3> 흰 그름 일어나고 나무 끝이 흔들린다 돛 달아라 돛 달아라 밀물에 西湖 가고 썰물에 東湖 가자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흰 마름 붉은 여뀌곷 곳마다 아름답다 <추사4> 기러기 떠 있는 밖에 못 보던 강 뵈는구나 배 저어라 배 저어라 낚시질도 하려니와 취한 것이 이 흥취라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석양이 눈부시니 많은 산이 금수 놓였다 <추사5> 크다란 물고기가 몇이나 걸렸느냐 배 저어라 배 저어라 갈대꽃에 볼을 붙여 골라서 구워 놓고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질흙병을 기울여 바가지에 부어다고 <추사6> 옆 바람이 곱게 부니 다른 돗자리에 돌아 돛 내려라 돛 내려라 어두움은 가까이에 오되 맑은 흥은 멀었도다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단풍잎 맑은 강이 싫지도 밉지도 아니하다 <추사7> 흰 이슬 비꼇는데 밝은 달 돋아온다 배 세워라 배 세워라 宮殿이 아득하니 맑은 빛을 누를 줄꼬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옥토끼가 찧는 약을 快男兒에 먹이고저 <추사8> 하늘 땅이 제각긴가 여기가 어디메뇨 배 매어라 배 매어라 바람 먼지 못 미치니 부채질하여 무엇하리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들은 말이 없으니 귀 씻어 무엇하리 <추사9> 옷 위에 서리 오되 추운 줄을 모르겠도다 닻 내려라 닻 내려라 낚싯배가 좁다 하나 속세와 어떠한가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내일도 이리 하고 모레도 이리 하자 <추사10> 솔숲 사이 내 집 가서 새벽달을 보자 하니 배 붙여라 배 붙여라 空山 落엽에 길을 어찌 찾아갈꼬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흰 구름 따라오니 입은 옷도 무겁구나
<동사1> 구름 걷은 후에 햇볕이 두텁도다 배 띄워라 배 띄워라 천지가 막혔으니 바다만은 여전하다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끝없는 물결이 비단을 편 듯 고요하다 <동사2> 낚싯줄대 다스리고 뱃밥을 박았느냐 닻 들어라 닻 들어라 瀟湘江 洞庭湖는 그물이 언다 한다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이떼에 고기 낚기 이만한 데 없도다 <동사3> 얕은 개의 고기들이 먼 소에 다 갔느냐 돛 달아라 돛 달아라 잠깐 날 좋은 때 바다에 나가 보자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미끼가 꽃다우면 굵은 고기 문다 한다 <동사4> 간 밤에 눈 갠 후에 景物이 다르구나 배 저어라 배 저어라 앞에는 유리바다 뒤에는 첩첩옥산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仙界인가 佛界인가 人間界인가 아니로다 <동사5> 그물 낚시 잊어두고 뱃전을 두드린다 배 저어라 배 저어라 앞개를 건너고자 몇 번이나 생각하고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공연한 된바람이 혹시 아니 불어올까 <동사6> 자러 가는 까마귀가 몇 마리나 지나갔느냐 돛 내려라 돛 내려라 앞길이 어두운데 저녁눈이 꽉 차 있다 찌그덩 찌그덩 어야차 거위떼를 누가 쳐서 (차취) 를 싯엇던가 <동사7> 붉은 낭떠러지 푸른 벽이 병풍같이 둘렀는데 배 세워라 배 세워라 크고 좋은 물고기를 낚으나 못 낚으나 찌그덩 찌그덩 어야차 孤舟에 도롱 삿갓만으로 흥에 넘쳐 앉았노라 <동사8> 물가에 외롭게 선 솔 홀로 어이 씩씩한고 배 매어라 배 매어라 험한 구름 원망 마라 인간세상 가린다 찌그덩 찌그덩 어야차 파도 소리 싫어 마라 속세 소리 막는도다 <동사9> 滄洲가 우리 道라 옛부터 일렀더라 닻 내려라 닻 내려라 七里灘에 낚시질하던 嚴子陵은 어떻던고 찌그덩 찌그덩 어야차 십년 동안 낚시질하던 강태공은 어떻던고 <동사10> 아 날이 저물어 간다 쉬는 것이 마땅하다 배 붙여라 배 붙여라 가는 눈 뿌린 길에 붉은 꽃이 흩어진 데 흥청거리며 걸어가서 찌그덩 찌그덩 어야차 눈달이 西山에 넘도록 松窓을 기대어 있자. |
현대어 풀이 | |
[춘사 1] 앞 포구에 안개가 걷히고 뒷산에 해가 비친다 (배 띄워라 배 띄워라) 썰물은 거의 끝나고 밀물이 밀려온다. (삐그덕 삐그덕 어영차)! 강촌 온갖 꽃이 멀리서 보는 꽃빛이 더욱 좋다.
[춘사 2] 날이 따뜻해졌도다. 물 위에 고기 뛰논다. 갈매기 둘씩 셋씩 오락가락하는구나. 아이놈아! 낚싯대는 내 손에 쥐어 있다. 막걸리병은 실었느냐?
[춘사 3] 봄바람이 문득 부니, 물결이 곱게 일어난다. 동호(東湖)를 바라보며 서호(西湖)로 가자꾸나. 아아! 앞산이 지나가고 뒷산이 나타나는구나.
[춘사 4] 우는 것이 뻐꾸기인가? 푸른 것이 버들 숲인가? (노를 저어라, 노를 저어라) 어촌의 두어 집이 안개 속에 들락날락. (찌꺼덩 찌꺼덩 어여차) 맑고도 깊은 연못에서 온갖 고기가 뛰논다.
[춘사 5] 고운 햇볕이 내려 쬐는데, 물결이 기름처럼 곱도다. 그물을 넣어볼 것인가? 낚시를 드리워 볼 것인가? 아! 탁영가의 흥취가 일어나니 고기잡이도 잊겠도다.
[춘사 6] 석양빛이 드리워졌으니 그만하고 돌아가자꾸나. 해안 위의 버들과 바닷가의 꽃들은 굽이굽이 새롭구나. 어찌 높은 벼슬(정승)을 부러워하며, 인간사 자질구레한 일을 생각할소냐.
[춘사 7] 꽃다운 풀을 몸소 밟아 보며, 난초와 지초도 뜯어보자. (배 멈춰라 배 멈춰라) 한 조각 거룻배에다 실어 놓은 것이 무엇인고. 아아! 갈 때에는 안개뿐이었는데, 올 때에는 밝은 달빛뿐이로다.
[춘사 8] 술에 취해 누웠다가 여울 아래 내려가니 (배를 매어라 배를 매어라) 떨어진 꽃잎이 흘러오니 무릉도원이 가까이 있는 듯. 아아! 인간 세상 더러운 때가 얼마나 내 눈을 가렸던고.
[춘사 9] 낚시줄을 걷어 놓고 배의 창문을 통해 달을 바라보니 (닻을 내려라 닻을 내려라) 벌써 밤이 들었구나, 소쩍새 소리 맑게 나는구나 아아! 아직도 남은 흥취가 끝이 없으니 돌아갈 길을 잊었구나.
[춘사 10] 내일이 또 없으랴, 봄밤은 바로 샐 것이로다. (내일 날 밝자 마자) 낚싯대로 지팡이를 삼고서 (밖으로 놀러나갈 수 있는) 사립문을 찾아 보자. 아아! 어부의 생애는 이처럼 이럭저럭 지내노라.
[하사 1] 궂은비가 멈추어 가니 시냇물이 맑아 온다. 낚싯대를 둘러메니 기쁜 흥취를 금할 수 없구나. 안개가 자욱한 강과 겹겹이 둘러친 묏부리는 누가 이처럼 그려냈는가?
[하사 2] 연잎에 밥을 싸 두고 반찬은 장만하지 마라. (닻을 들어라 닻을 들어라) 대삿갓은 이미 쓰고 있노라. 도롱이는 가져 왔느냐? 어찌하여 갈매기는 내가 쫓아가는 것인가 갈매기가 나를 쫓는 것인가?
[하사 3] 마름잎에 바람부니 봉창이 서늘하구나. 여름 바람이 일정할소냐, 그냥 배가는 대로 두어라. 아아! 북포와 남강이 어느 곳도 좋지 않은 곳이 있으랴.
[하사 4] 물결이 흐리다고 발을 씻은들 어떠하리. 오강을 찾아가려 하니 천 년에 굽이치는 오자서의 원한에 찬 노도가 슬프겠도다. 초강으로 가자 하니 혹시나 고기 뱃속에 충혼으로 사라진 굴원의 넋을 낚을까 두렵다.
[하사 5] 수많은 푸른 버들 우거진 곳에 물가에 이끼 낀 여울돌이 아주 아름답구나. 선착장 다리에 닿거든 어부들의 서로 먼저 건너려는 몸싸움을 허물 마라. 가다가 흰머리 노인을 만나거든 뇌택에서 (낚시 명당) 자리를 양보한 옛 고사를 본밪자꾸나.
[하사 6] 해가 긴 여름날이 저무는 줄을 흥의 절정에 겨워 놀다보니 미처 몰랐도다. 뱃전을 두드리며 수양제가 불렀다는 그 뱃노래를 불러보자. 뱃전을 두드리며 부른 노래 속에 배어있는 그 노래 속에 오랜 세월 변치 않는 일관된 마음을 그 누가 알 것인가?
[하사 7] 석양빛이 황홀하니 좋다마는 어느덧 황혼이 가깝구나. 바위 위에 굽은 길이 소나무 아래로 비스듬히 나있다 어디서 푸른 숲 속의 꾀꼬리 우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리는구나.
[하사 8] 모래 위에 그물을 깔아 널고 띠풀 지붕 밑에 누워 쉬어보자. 모기를 밉다 하지만, 파리는 또 어떠한가? 진실로 다만 한가지 근심되는 것은 출세주의자가 행여 들을까 두렵도다.
[하사 9] 밤 사이에 풍랑이 일어날 줄을 미리 어찌 짐작할 수 있겠는가? 밤에 바다를 가로지르는 배를 누가 말하였는가? 아아! 계곡에 피어있는 아름다운 풀이 참으로 보기 좋구나.
[하사 10] 게딱지같은 내 좁은 집을 바라보니 흰 구름이 둘러쳐 있구나. 부들부채를 가로로 쥐어들고 돌길로 올라가자꾸나. 아마도 어부의 생활이 그리 한가하더냐, 이것을 구실삼아 잠시 쉬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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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1] 속세를 벗어나 깨끗한 일로 소일함이 어부의 생활이 아니더냐 늙은 어부라고 비웃지 말라, 그림마다 늙은 어부가 그려져 있지 않더냐. 네 계절의 흥이 한가지로 비슷하나 그 중에서도 가을강의 풍경이 으뜸이라.
[추사 2] 바다에 가을이 찾아드니 고기마다 살쪄 있다. 아득히 넓고 맑은 바닷물에 실컷 놀아보자. 인간 세상을 돌아보니 멀리 떨어질수록 더욱 좋구나.
[추사 3] 흰 구름 뭉게뭉게 피어나니 나무 끝이 흐느적거린다. 밀물 때에는 동호에 가고 썰물 때에는 서호로 놀러가자. 흰 마름꽃과 붉은 여뀌는 가는 곳마다 좋은 경치를 이루었구나.
[추사 4] 기러기 뜬 저 멀리로 이제까지 못보던 산이 보이는구나. 낚시질도 하려니와 경치에 취해 노니는 이 흥취가 좋구나. 아아! 석양빛이 내리 비추니 모든 산이 수놓은 비단같이 아름답도다.
[추사 5] 반짝이는 물고기가 그물에 몇 마리나 걸렸느냐. 마른 갈대에 불붙여 골라서 구워놓고 아이야! 술병을 기울여서 표주박 술잔에 부어다오.
[추사 6] 옆에서 바람이 곱게 불어오니 다른 방향으로 돛을 움직여 돌아오니 저녁빛이 어두워오니 고상한 흥취가 가시어 차분해지는구나. 어쩐 일인지 붉게 물든 숲과 푸르른 바다가 싫지만은 않구나.
[추사 7] 흰 이슬 비껴 사라지고 밝은 달이 돋아온다. 봉황루(대궐)가 아득하여 머니 맑은 달빛을 누구에게 보낼 것인가? 아아! 옥토끼가 찧는 약을 호객에게 먹이고 싶도다.
[추사 8] 하늘과 땅이 제 각기인가? 여기가 어디인가? 속세의 더러운 먼지가 미치지 않으니 부채질 하여서 무엇하리. 아아! 들은 말이 없으니 귀를 씻어 무엇하리.
[추사 9] 옷 위에 서리가 내리되, 추운 줄을 모르겠도다. 낚싯배가 좁다 하나 서로 아득바득하는 세상과 견주어 어떠하더냐. 내일도 이렇게 하고 모레도 이렇게 지내자.
[추사 10] 소나무 사이 석실에 가서 새벽달을 보랴하더니 적막한 산에 낙엽이 수북히 쌓여 가는 길을 어찌 알아볼꼬. 아아! 흰 구름조차 따라오니 입은 옷이 무겁구나.
[동사 1] 구름이 걷힌 후에 햇볕이 두텁게 내리쪼인다. 천지가 눈과 구름으로 온통 막혔으되 바다는 옛과 다름 없도다. 끝없이 아득한 물결이 비단을 펼친 듯 아름답구나.
[동사 2] 낚싯줄과 낚싯대를 손질하고 뱃밥도 박아서 배를 정비했느냐? 소상강과 동정호는 그물이 어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 아마도 이때 낚시질하기에 이만한 곳이 어디 있으랴.
[동사 3] 물이 얕은 갯가의 고기들이 먼 바다로 몰려갔으니 잠깐 동안 날씨가 좋을 때에 고기잡이 한 마당(어장)에 나가 보자. 낚싯밥만 다하면(충실히 쓰면) 큰 고기가 물린다고 하는구나.
[동사 4] 간밤에 눈 갠 뒤에 경치가 달라졌구나! 앞에는 유리처럼 맑고 잔잔한 넓은 바다, 뒤에는 천 겹이나 둘러싸인 백옥 같은 산. 아, 여기는 신선이 사는 선경인가? 부처가 사는 극락정토인가? 인간 세상은 아니로다.
[동사 5] 그물과 낚싯줄 걷는 것도 잊고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부른다. 앞 바다를 건너본 것이 그 몇 번이나 되는가를 헤아려보았던고. 어디서 느닷없는 강풍이 행여 불어올까 두렵도다.
[동사 6] 날아가는 까마귀 몇 마리나 지나갔는가. 앞길이 어두우니 저녁 눈이 자욱하게 내리는구나. 아압지를 이용해서 적을 쳐서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을까
[동사 7] 붉은 빛 푸른 빛의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데 주둥이 크고 가는 비늘의 좋은 물고기를 낚으나 못 낚으나 간에 아아! 외딴 배에 삿갓 쓰고 흥에 겨워 앉았노라.
[동사 8] 물가의 외로운 소나무 한 그루 어이하여 혼자 씩씩하게 서 있는가 험한 구름을 한탄하지 마라, 온 세상을 가리는구나. 물결 소리 싫어하지 마라, 속세의 더러운 소음을 막아주는구나.
[동사 9] 시골에서 자연과 벗하는 우리의 삶의 도는 옛날부터 선인들이 말해 왔던 것이로다. 칠리강가에서 벼슬을 마다 하고 양가죽 옷을 입고 살던 엄자릉의 생활이 어떠한가 삼천육백날 위수에서 낚시질하면서 때를 기다리던 강태공의 심정은 어떠한가.
[동사 10] 아아! 날이 저물어 가는구나, 이제 누워 쉬는 것이 마땅하도다. 가는 눈이 뿌려진 길에 붉은 꽃 흩어진 곳을 따라 흥겨웁게 걸어가서 눈내린 밤 달이 서쪽 봉우리를 넘도록 송창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노라. |
감상의 길잡이 | |
이 작품은 1651년에 윤선도가 자신이 은거하던 보길도를 배경(부용동에서 은거할 때 지음)으로 읊은 40수의 연시조이다. 이 작품의 구조는 상당히 정제되어 있다. 우선 춘하추동의 각 계절에 따라 10수씩을 배정하고 계절의 변화에 따른 경물의 변화 내지 어부의 생활을 차례대로 형상화한다. 또 각 작품마다 삽입되어 있는 여음은 출범에서 귀선까지의 과정을 질서 있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 노래에서 冬詞의 마지막 수, 즉 총 40수 중 가장 마지막 수는 단순히 동사의 끝이 아니라 노래 전체에서 반복되어 온 흥취를 강렬하고 도도하게 집약해 줌으로써 가사의 결사와 같은 구실을 하고 있다. | |
핵심 정리 | |
◈ 갈래 : 연시조(춘하추동 각 10수씩 모두 40수), 강호한정가 ◈ 연대 : 조선 효종 2년(1651), 고산의 나이 65세 때 해남의 부용동에 은거하면서 지음. ◈ 구성 춘사 → 이른 봄에 고기잡이를 떠나는 광경을 동양화처럼 그림. (자연과 더불어 풍류 속에 사는 은일사상을 나타냄) 하사 → 소박한 어옹(고기잡이 노인)의 생활 추사 → 속세를 떠나 자연과 동화된 생활 동사 → 은유를 써서 정계에 대한 작자의 근심하는 마음. ◈ 제재 : 어부의 생활과 자연의 경치 ◈ 표현상 특징 우리말이 가질 수 있는 유려한 율조를 최대한 살림. 조흥구를 곁들여 단형의 평시조에 변화를 줌. 진부한 고사나 설명을 취하지 않음. 대구적 표현 구조 안에 다채로운 감각적 묘사를 시도함. 대구법, 원근법, 시간의 추이에 따른 시상의 전개. 조흥구 →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는 '찌그덕 찌그덕 어기여차'의 의미로 배를 저을 때 나는 소리의 의성어와 노를 저을 때 어기여차 외치는 소리의 의성어이다. '돋 다라라'는 '돛을 달아라'는 뜻으로 쓰였다. 이 조흥구의 시적 기능은 흥취를 돋우는 데 있다. 또 조흥구는 내용과 맞아 떨어져 작품의 정서와 의미를 강화시킨다. ◈ 어부가의 형성 과정 어부가(고려시대 민요, 작자 미상) ⇒ 어부가(조선, 이현보의 연시조) ⇒ 어부사시사(조선후기, 윤선도) | |
참고 사항 | |
< 이현보의 '어부단가'와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의 비교 > 이현보의 어부단가는 은일적, 도피적 태도로 어부의 생활을 동경하는 노래이다. 한문에 토를 단 듯 딱딱하며, 지나친 자연미에 대한 탄성이나 감흥은 스스로 억제하고 있다.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는 어부의 생활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어 현실감이 뛰어나며,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나타내고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넉넉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심미적 공간과 흥취의 공간을 노래하고 있다. 이현보가 살았던 16세기는 정치적으로 당쟁이 있었던 혼탁한 시대였다. 그래서 시적 자아는 강호에 있으면서도 정치 현실을 완전히 망각하고 안주할 수 없었기에 강호의 삶과 즐거움을 노래하는 경우에도 지나친 자연미에 대한 탄성이나 감흥을 스스로 억제하였다. 그러나 윤선도가 살았던 16세기 말에서 17세기에 이르는 시기는 사림의 정치적 승리 이후 이념의 도덕적 변별 가치가 약화되고, 정치적 투쟁에 혐오적인 사대부들에 의해 창작되었다. 그렇기에 '어부사시사'와 같은 강호 시가는 현실 정치의 혼탁함으로부터 떠나 자연의 아름다움과 넉넉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심미적 공간과 흥취의 공간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강호 시가라고 하더라도 그 정치적 배경에 따라 시적 자아의 태도는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그래서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의 시적 관심은 강호에서 누리는 넉넉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그 속에서의 기쁨과 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