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 60여 년 전인 1951년 4월 중공군의 5차 공세 때 국군 제6사단이 적 4개 사단에 맞서 싸우다 1600여 명이 전사 또는 실종된 ‘사창리 전투’가 있었다. 그 전선의 가장 북쪽인 철원 광덕산 835고지 아래 비탈 속 참호에서 지난해 9월부터 시작해 한 달여 동안 62구의 국군 유해를 발굴했다. 인해(人海)전술을 앞세운 중공군 공세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다 장렬히 산화한 국군 유해들이었다. 중공군의 유해 18구도 뒤엉켜 있었던 것으로 보아 탄약이 떨어진 상황에서 최후의 백병전마저 벌였던 것이 틀림없다. 정말이지 끝까지 전선을 사수하다 최후를 맞은 장렬한 산화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광덕산 62인의 용사’라 부를 뿐.
# 99년 6월 15일 발생한 제1연평해전에 이어 2002년 6월 29일 한국과 터키 간에 월드컵 3, 4위전이 펼쳐지던 바로 그 시간 서해에서 발생한 제2연평해전! 윤영하 대위, 한상국 중사, 조천형·황도현·서후원 하사, 박동혁 상병(전투 당시 계급) 등 6인의 용사가 장렬히 산화하고 18명의 부상자와 함께 참수리 357호는 침몰됐다. 하지만 북의 피해는 최소 30명 사망, 70명 이상 부상, 한 척 침몰, 한 척 반파로 훨씬 규모가 컸다. 한때 연평해전은 남북 화해 무드에 도움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쉬쉬하고 뒤로 감출 만큼 숨겨진 해전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우리의 당당히 살아있는 해전사가 됐다.
# 일본에 지진과 쓰나미의 공포가 있다면 우리에겐 북의 위협이 엄존한다. 하지만 일본이 그것에 굴하지 않았듯이 우리 역시 북의 그 어떤 도발과 위협에도 굴함 없이 응징하리라.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평화로운 일상과 해방된 자유로움 그리고 이만큼의 번영은 안중근 장군의 주저함 없는 거사로부터 발원해 광덕산에서 백병전을 마다하지 않은 채 산화한 이름 모를 국군과 1, 2차 연평해전에서 보여준 우리 해군의 결기 그리고 폭침 당한 천안함 수병 46인과 고 한주호 준위의 거룩한 희생 위에 가능했던 것임을 잊어선 안 된다.
# 마흔 살의 이창기 원사로부터 열아홉 살의 장철희 이병에 이르기까지 폭침 당한 천안함 46인의 용사들은 저 세상에서 아마도 이렇게 말하고 있을 것이다.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소녀도 있었노라/ 내 청춘은 봉오리 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함께/ 이 땅에 살고 싶었나니…//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알려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고….”(모윤숙,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 그렇다. 오늘 천안함 폭침 1주기를 맞아 애도하라. 하지만 그들만을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라. 특히 신정아·장자연·덩신밍 등의 요설과 치마폭에 휩싸여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이 나라 위정자들의 졸렬함을 질타하며 울어라! 목숨 바쳐 지켜온 나라이건만 가야 할 큰 방향과 목표를 방기한 채 표류하는 한심함을 애타하며 울어라! 울어라!!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