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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조문학의 발전을 위한 제언
이승하 (시인,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
1. 시조와 하이쿠
한국 시조시단의 분발이 눈부시다. 일간지 신춘문예에 시조를 공모하는 곳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중앙일보사에서는 여전히 중앙시조백일장과 중앙시조대상을 운영하고 있다. 2012년에 창간된 계간 『정형시학』과 반년간 『시조미학』은 기존의 『시조시학』『시조21』『시조생활』『시조춘추』『현대시조』『오늘의 시조』『개화』『화중련』『나래시조』 등과 함께 군웅할거를 이루고 있다. 이지엽 시인의 노력으로 태학사에서 ‘우리 시대 현대시조 100인선’이 나온 것도 시조 부흥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1983년에 간행된 문학과 지성 시인선 제33권은 『네 사람의 얼굴』로서 윤금초·박시교·이우걸·유재영 네 시조시인의 합동시집이다. 이 시조집에는 한국 현대 시조문학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된 걸작만 모여 있다. 네 사람은 2012년에 다시금 『네 사람의 노래』를 문학과 지성사에서 발간함으로써 30년 긴 세월에도 불구하고 실력이 조금도 녹슬지 않았음을 증명하였다. 젊은 시조시인 동인인 ‘21세기시조동인’과 ‘영언 동인’의 활동도 무척 활발하다. 2008년 현대사설시조포럼의 출범과 2013년 한국시조시학회의 출범도 고무적인 일이다. 배우식 시인이 계간 『정형시학』을 통해 현대시조문학사를 쓰고 있는 것도 현대시조를 문학사적으로 정리한 적 없는 우리로서는 획기적인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이상과 같이 시조시인들이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문단에서는 시조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 같다. 한국문인협회에 등록된 시인의 수는 2015년 현재 6,601명이고 시조시인의 수는 796명이니 단순비교를 하면 9:1 정도 되는데 관심의 정도는 100대 1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필자는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1999년부터 재직해 오고 있는데 지금까지 시조를 쓰겠다는 학생을 딱 한 명 보았다.
우리 시조시단과는 대조적으로 이웃 일본의 하이쿠(俳句)는 자국 내에서 지난 수십 년동안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전남대 일어일문학과 김정례 교수가 1997년 가을호 『시와 사람』에 기고한 글을 보면 일본 내 하이쿠 동인지의 수가 약 800종이며 하이쿠 인구는 400만 내지 500만이라고 하니 ‘국민시가’라는 칭호를 붙여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또한 중앙지 및 지방신문에 하이쿠 난이 마련되어 있어서 날마다 50에서 100여 수의 하이쿠가 선자의 평과 함께 실리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중앙일보 지상의 중앙시조백일장이 유일하다.
옥타비오 파스·롤랑 바르트·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등 세계의 유명 문학인의 공통점을 들라면, 하이쿠 예찬론자라는 것이다. 이어령은『하이쿠의 시학』을 일본어로 집필, 일본의 출판사 PHP에서 출간한 후 1986년에는 한국어로 출간하였다. 이 책은 일본에서 주는 제4회 마카오카 시키(正岡子規) 국제 하이쿠상을 받았는데 이에 앞서 이 상을 받은 이는 프랑스의 이브 본느프와, 미국의 게리 스나이더였다. 미국에서만 하이쿠 잡지가 4종이 나온다고 한다. 김정례의 글을 보면 하이쿠에 매료되어 하이쿠를 쓰고 있는 외국인은 수십만 명에 달하지 않을까, 짐작하게 된다.
(일본의 신문지상에) 외국인의 하이쿠 투고 및 소개란까지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런가 하면 어느 지방도시에선가 관광산업의 하나로 개최하기 시작한 하이쿠 대회에는 일본 전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사람들까지 참석하여 대성황을 이뤄 개최 당사자들까지 놀랐다고 한다.
우리 시조가 한국 내에서도 그다지 크게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반면 하이쿠는 이와 같이 일본 국내를 넘어 세계인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시조는 국내 국문학과에서도 연구하는 교수가 많지 않고, 학부나 대학원에 시조 과목은 거의 개설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안다. 반면 국내에 번역 출간된 하이쿠 시집은 대체로 10쇄 이상를 찍고 있다. 하이쿠는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반면 시조는 옛시조이건 현대시조이건 별로 읽히지 않고 있다. 외국에서 한국의 시조를 연구하고 있는 사람도 없지는 않겠지만 즐겨 읽는 독자층은 형서되어 있지 않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의 하이쿠 연구는 제법 활발한 편인데, 연구서만 10권 이상이 나와 있다. 그 이유는 4년제 대학치고 일어일문학과나 일어학과가 없는 대학은 거의 없으며, 각 학과마다 일본 시가를 가르치는 교수가 1명 이상씩은 있기 때문이다. 이어령은 하이쿠를 제대로 연구한 학자로서 바이시츠(梅室)의 “동백꽃 지고 닭이 울고 동백꽃 또다시 지고”(椿落ち 鷄鳴き椿又落つる)라는 짧은 시를 가지고 무려 두 쪽에 걸쳐서 상세하게 해설하고 있다. 이 한 편의 작품에 대한 해설이 여섯 개의 단락에 걸쳐서 진행되는데, 제일 앞 단락만 인용한다.
닭이 우는 소리와 동백꽃이 지는 것과는 아무런 인과관계도 없다. 그러나 닭도 동백꽃도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인 봄날의 뜰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화창한 봄날의 햇살이 조용한 뜰을 가득히 채우고 있다. 모든 것이 꾸벅꾸벅 조는 듯이 보인다.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간혹 동백꽃이 떨어지는 그 정지된 시간과 공간에 한순간 잔물결이 인다. 그리고는 다시 정지된 공간, 흡사 끊겨 정지된 영화의 환면 같은 공간으로 돌아간다.
한 편의 하이쿠 작품에 대한 해설의 1/6을 인용했을 따름이다. 하이쿠에 대한 이어령 씨의 관심과 애정의 정도를 읽을 수 있다. 자, 그런데 일본의 어느 서점에 우리 시조집이 번역되어 꽂혀 있을까? 일본의 어떤 대학교수가 한국의 시조를 연구해 논문을 발표하고 한국의 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있을까? 시조와 하이쿠를 비교·연구하는 학자는 있을 테지만 어떤 연구 성과를 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이쿠에 우리 시조를 견줄 때면 자존심이 상하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자괴감까지 든다. 우리는 어찌하여 우리 것을 홀대하면서도 일본의 하이쿠에는 열광하는 것일까? 한국 시조문학의 발전을 위해 몇 가지 방안을 생각해보았다.
2. 시조는 시조여야 한다.
시조시단의 붐 조성에는 시조시인들의 역할이 가장 컸다. 서울대 장경렬 교수나 한양대 유성호 교수 외에는 시조에 대해 각별히 관심을 갖고 비평의 글을 쓰는 이가 잘 안 보이는데, 시조시인들 스스로 열심히 창작한 덕분일 것이다. 『정형시학』 2015년 봄호를 보니 ‘민족시사관학교 출신 신춘문예 당선자 41인 특집’이 실려 있다. 윤금초 시인이 키워낸 시조시인들이 우리 시조시단을 이렇게 풍성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조전문지를 보다 보면 시조 같지 않은 시조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 동네 과수원 봄마다 피는 배꽃
올해도 어김없이 허리 휠 듯 피었는데
고딕체
영농금지가
개발구역 통보한다
숨 막히게 피워낸 눈부신 절정의 행렬
시리도록 폭죽 처진 저 축제 언제 끝날지
아찔한
고요의 시간
화두처럼 번져갈 쯤
난 재빨리 몸 안으로 배나무를 가지고 와
거친 내 몸 구석에 정성 다해 심는다
입안은 금방 배꽃으로
가득 찬 수레다
그때, 과수원 앞 좁은 길 사이로
천천히 자전거를 밟고 오는 사내아이
스르륵
흰꽃잎 열고
배꽃으로 들어온다
-「가난한 축제」전문
이 작품은 형식상의 파격도 보여주지 않고, 내용도 쉽게 이해된다. 하지만 시조로 보기에는 난점이 있다. 특히 단형시조 두 수가 이어져 있는 제2연이 시조의 ‘틀’을 깨고 있다. 혹자는 시조시인의 실험정신으로 생각해줄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필자의거론을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10행으로 이루어져 있는 제2연 보면서, 음수를 맞춘다고 다 시조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자다 깨도 끝이 아닌 장편 사막 읽는다 혓바닥 갈라터진 은회색 세이지브러시 메마른 백태를 긁는 모하비 지나간다
더없이 등 구부려 거북처럼 엎딘 발로 콜로라도 사억 년 빚어놓은 기억 좇아 빙의된 가벼운 몸체 난간에 부려놓는다
강물의 긴 새김질 바람이 쓰다듬고 신산한 세월 비껴가 된비알 곧추세운 그 붉은 층층의 절리 태초를 껴안는다
-「그랜드 캐년」 전문
자세히 보면 ‘메마른’ ‘빙의된’ ‘그 붉은’이 단형시조의 종장 첫머리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세 음수를 잘 지키고 있으므로 시조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3개연을 산문시형으로 써놓아서 그런지 시조라고 잘 인식되지 않는다.『시조미학』이란 문예지에 실려 있기에 시조라고 생각하면서 읽지, 다른 지면에서 읽었다면 낭송해보기 전에는 시조임을 알아차리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시조시인들은 한눈에 시조라고 생각하겠지만 보통의 독자들은 시조라고 눈치 채는 데 시간을 좀 들여야 할 것이다.
시조가 이런 식으로 변형을 꾀하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를 통해서 배웠던 단형시조의 단조로움을 탈피해보려는 시조시인들의 눈물겨운 노력의 소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독자들은 현대 시조시인들의 이런 변화 모색을 오히려 위험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시조인지 자유시인지 분간이 안 가게 해 놓고 ‘자세히 보면 시조입니다’라고 하는 것은 시조에게 다가가려는 독자를 혼란에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3. 구태의연한 시조가 너무 많다
시조는 3장 6구 3/5/4/3의 형식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정신을 갖고 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운문으로 썼다고 하여 모든 것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시조전문지에서 ‘통일’이라는 대주제로 청탁을 하여 특집 난을 꾸몄다. 상당한 수준작들도 있었지만 아래의 시조들은 시조시집을 몇 권씩 낸 기성시인들이 쓴 것으로 봐주기에 어려운 태작들이다. 이런 수준의 작품이 태반이었다.
손 내밀면 닿을 듯한 지척의 거리라지만
나누어 근 일세기 분신만 쌓여가네
끝내는 만나야 할 연이라면
상처라도
덜 남기를
-「임진각에서」전문
가시투성이 너에게 다가가려고 해
가시투성이 나를 안아줄 수 있겠니
난치성 화농 터지고 꽃은 붉게 타리라
-「선인장」전문
38선을 지우며
몸을 섞는 바닷물처럼
하나가 되고픈 마음
그 무엇도 막을 수 없어
철조망, 경계선 하늘에
혈서를 쓰는 간절함이지
-「위리의 소원은」전문
산길을 달린다
초록태풍 몰려온다
창문을 연다
라디오를 끈다
갖가지 자연의 소리
오관으로 들린다.
-「오색약수로」전문
보통의 시 독자가 시조시인들의 이런 작품을 봤다면 분명히 실망할 것이다. 그 실망이 시조시단 전체에 대한 외면으로 이어질지도 모르므로 그 시조잡지의 특집은 오히려 꾸미지 않는 것이 나았으리라. 우리가 좋은 시에서 보게 되는 시인의 독특한 상상력이나 뛰어난 직관을, 시조는 형식이 짧다는 이유를 들며 다 담아낼 수 없었다고 하면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시조이기에 더욱더 압축미와 정제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고 긴장감과 속도감을 줄 수 있을 텐데 이런 시조작품에서는 그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다. 의미가 단순·소박하고, 세련미는 전혀 없으며, 아마추어리즘의 극치다.
시조시인들이 경계했으면 하는 또 다른 것은 지나친 회고지정이다. 안 그래도 일반 독자들에게는 ‘시조는 낡은 형식이다’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시조시인이 30년대나 50년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시조는 형식만 완고한 것이 아니라 내용도 구태의연한 것이라고 오인하게 된다.
달마저 잠들어야 바늘에 실을 꿴다
온종일 쭈그렸던 품앗이 그 자체로
백열등 눈 비벼주며 피로를 홈질하고
벌어진 문틈으로 잔기침 새고 나면
잊고 산 계절을 풀벌레가 귀띔한다
식구들 낮은 숨 엮어 보듬는 한 땀 한 땀
터지고 해진 밤을 얼마나 기웠을까
피멍 던 골무 있어 굶지 않던 셋방 시절
어머니, 실 매듭지어야 다리 뻗는 홑이불
-「삯바느질」전문
이 작품 자체는 아주 공들여서 쓴, 그 나름의 수준작이다. 완성도도 있고, 감동적인 측면도 어느 정도 있다. 무능한 가장, 혹은 언제나 부재인 아버지를 대신하여 어머니가 삵바느질로 식구들의 생계를 꾸려간 집이 어디 한두 집이었던가. 하지만 이런 정서는 일제 강점기 때나 한국전쟁 후인 50년대라면 모를까 21세기인 지금 발표해서는 뭇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시인 자신에게야 어렸을 때 겪은 사무친 실체험이겠지만 이렇게 회고지정에 사로잡힌 시조는 자칫 ‘시조는 낡은 것’이라는 선입견을 고착화시킨다. 시조가 지금 이 시대의 정서를 담아내야 하는 것은 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시조는 형식적인 면, 즉 정형률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시조의 시공간이 ‘그때 그 시절’로 이동하여 시인이 자신의 유년기 때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에 지나치게 몰입할 경우, ‘현대시조’라는 명칭을 부여하기 어렵게 된다. 현대시조를 박물관으로 보내지 않으려면 시조시인들은 우리 시대의 삶과 동시대인의 정서를 더욱 치열하게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부모님 슬하에서 이십 몇 년 살다가
남편 그늘로 옮겨와 또 이십 년 가까이,
하루도 울타리 없이 살아본 적 없었는데
어느새 다 자란 아들 녀석의 커다란 손
시름 깊은 내 등을 가만가만 토닥인다
어제는 그 큰 손안에 눌러앉아도 되겠다.
-「이적(移積)」전문
잘 이해된다는 것이 결코 미덕이 될 수 없는 작품이다. 산문이 아닌 운문이라고 해서 좋은 점수를 줄 수도 없다. 이 작품을 읽고 공감하는 비슷한 연배의 여성독자는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형식만 잘 갖췄다고 해서 시조가 되는 것은 아니다.「이적」은 형식은 잘 지키고 있는 시조지만 평이한 서술에 그쳐 하나의 작품으로 봐줄 수 없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특별함’이 아니던가. 상식도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직도 낡은 습속에 안주하여 시적 고민을 조금도 하지 않는 위와 같은 시조는 문학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 이렇게, 시조가 전근대의 정서를 추억하는 한 ‘음풍농월’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식의 서술(敍述), 진술(陳述), 기술(記述)로 이루어진 시조는 하나의 세계를 새롭게 포착해낼 수 없다.
4. 사설시조가 돌파구 될 수 있을까
시조시단에서 요즈음 사설시조(辭說時調) 쓰기가 유행인 듯하다. 현대사설시조포럼에서는 앤솔로지를 지금까지 5권 냈으며, 이 포럼의 회원 수는 현재 20명이다. 각종 시조잡지에 사설시조가 심심치 않게 실리고 있는 것을 보아도 사설시조 쓰기에 많은 시조시인들이 공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조를 형식상 분류하면 정제된 형식 속에서 규범을 지키는 평시조와 규범을 벗어난 엇시조와 사설시조로 구분 된다. 엇시조는 평시조에서 초·중장 중 어느 한 장의 한 구가 길어진 형태의 시조고 사설시조는 평시조에서 두 장 이상이 길어진 형태의 시조다. 일반적으로 중장이 제한 없이 길어진다. 다시 말하면 사설시조는 종장의 첫 구만이 시조의 형태를 지니는 것과, 3장 중에서 2장이 여느 시조보다 긴 것이 있다. 그러니까 오늘날 창작되는 사설시조는 사실은 엇시조인 경우가 많다.
사설시조는 조선조 숙종 연간에 나타나기 시작하여 영·정조 시대 서민문학이 일어났을 때 주로 중인을 비롯하여 부녀자·기생·상인 등 서민들과 몰락한 양반들이 창작자로 나섰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수가 자유롭기 때문에 내용 면에서 양반들처럼 관념적이거나 고답적인 내용을 담지 않고 주변 생활이 중심이 된 재담·욕설·음담·애욕 등을 서슴없이 대담하게 묘사하였다. 형식 또한 민요·가사·대화 등이 섞여 통일성이 없지만 서민의 심정을 잘 대변하는 양식으로서 작자미상의 작품이 숱하게 나타났다. 아울러 당시의 사설시조는 현실을 풍자하거나 인간생활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는 특징이 있었다. 아래 작품은 2013년에 나온 현대사설시조포럼 앤솔로지 제4집에 나와 있다.
아버지, 요새는 좀 신열 괴로움 덜하세요?
사람들은 하기 좋은 말로 마지막 길 배웅한 것만도 효도라지만, 시시각각 저승쪽으로 발걸음 옮기실 때, 저는 막지 못했어요, 그냥 울기만 했어요. “자제분한테는 안 된 말이지만, 오늘쯤 떠나실 것 같습니다.” 아직도 의사의 말이 귀에 쟁쟁 울려요. 그 말 듣고도 아버지를 어떻게 하지 못했어요. 임종이란 게 그런 건 줄, 그렇게 잔인한 순간인 줄, 아버지는 아셨어요? 저는 정말 몰랐어요. 중환자 실로 옮기실 때 무균병동이 부러웠어요. 감옥 같아 답답하다고 싫어하신 곳인데도. 영안실선 중환자실이 천국같이 그리웠죠. 그래도 거기는 아버지에게 이승이었으니까. 지금 계신 그곳에선 이곳이 혹시 그리우세요?
아버지, 이승의 모진 병은 다 내려놓고 가신 거 맞죠?
-「아버지를 여의고」전문
시인의 체험담이 진솔하고, 병마에 시달리다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잘 느껴지지만, 이 작품은 낙제점이다. 너무나도 평이하게 자신이 경험한 바를 서술하고 있을 따름, 시적인 의장은 전무하다. 작자 자신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 이 소재는 솔직담백하게 표현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비유나 상징을 동원하여 모호하게 표현하지 않은 것을 이해해 달라. 글쎄,「아버지를 여의고」는 일기나 기록물은 될지언정 시는 될 수 없다.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는 시의 진정성이 확보되지 않는다. 독자의 상상력이 가 닿을 공간을 시인은 계산을 해야해야 하고, 그것이 내적인 치밀함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상징이나 은유는 철저히 배재한 채, 자신이 경험하고 생각한 것을 곧이곧대로 서술하는 것이 사설시조일까? 묘사를 배제하고 설명으로만 일관할 때, 운문인 것 같지만 운율이 느껴지지 않는 대화체일 때, 그것은 시의 의장을 두른 서사문의 일부가 될 뿐이다.
베란다를 뛰쳐나온 장대는 모택동의 바지며 강택민의 속옷이며 문화혁명의 붉은 휘장이며 후진타오의 잠옷을 흔들어대며 거리를 호령하다 호기로운 표정으로 나팔을 불어댔어,
송미령의 란제리도 염치없이 불거지자 장개석은 피를 토하고 서산으로 숨었어, 등소평은 고양이들과 난간에서 웃고 있었어, 흰 놈도 검은 놈도 죄다 모여 투전판을 벌이며 손뼉을 치고 있었어, 황금에 홀려 홀딱 반해서 손뼉을 치고 있었어,
오늘은 녹슨 메이데이 인민공화국은 없었어.
-「다시 중국에2」전문
이 사설시조를 쓴 이는 중국의 급격한 자본주의를 비판․풍자하려는 의도를 갖조 있는 듯하다. 등소평이 집권해 실용주의 노선을 택했을 때 한 말,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이다.”가 이 시의 모티브다. 일명 ‘흑묘백묘론’으로 불리는데, 이것을 취한 것 외에 이 작품의 가치를 논할 만한 것은 없다. 중국의 이런저런 정치지도자들을 싸잡아 비아냥대고 있을 뿐 풍자시로도 읽히지 않는다. 풍자시를 쓰고 싶었다면 환유 기법에 대해 더 고민했어야 옳다. 중국은 지금 천민자본주의의 향락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차라리 개혁․개방 이전, 공산주의 체제였을 때가 훨씬 나았다는 주장을 시인은 하고 있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중국의 발전을 생각해보면 “흰놈도 검은 놈도 죄다 모여 투전판을 벌이며 손뼉을 치고 있었어, 황금에 홀려 반해서 손뼉을 치고 있었어”라고 매도하는 것은 위험하지 않을까? 시를 통한 주장이 직설적일 때, 시의 외연은 천박해질 수 밖에 없다. 시의 내포는 기대조차 할 수 없다. 직접 말하는 방식으로 모든 것을 보여줘버린 마당에, 감춰둘 무엇이 있기나 하겠는가. 궁금증을 품은 독자를 한 발자국씩 시의 세계로 이끌 만한 장치가 어디에도 없다. 한편, 아래 인용하는 두 편의 사설시조는 지나치게 평이하다.
때로는 시름에 겨워 멍청히 젖는 날도 있네
세계를 돌아보듯 지구본이나 돌려보다가, 호젓이 남산에 올라 내가 나를 내려다보고, 아득한 시공을 뚫고 훨훨 나는 새도 보고 강가에 우뚝 선 나무 초롱초롱한 눈도 보다가
산안개 온몸에 젖어 돌아오는 날도 있네.
-「때로는 남산에 올라」전문
눈을 감고 있으면
고향 바다가 눈 안에 든다
떠오는 그 바다에 다시 뜨는 불빛처럼 바닷가 풀숲 헤치던 여치 소리도 바다로 든다 바다로만 눈을 두는 어부의 가족들처럼 하루에도 서너 번씩 떴다 지는 수평선처럼
그리운 고향 포구
만선 깃발 펄럭인다
-「고향 생각」전문
최소한의 긴장감도 없는 평이함이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앞의 시는 남산에 갔다 오니 참 좋았다, 뒤의 시는 포구가 고향인 시인이 떠나온 고향을 한 번 생각해보았다, 이것이 전부다. 이런 작품은 실패작이라거나 태작이라기보다는 범작이다. 그렇구나, 하는 데서 독자의 감상은 끝나고 만다. 독자의 기대지평을 넘어서는 곳에 시가 자리해야 하는데 그 지평 아래에 시가 있으면 이 역시 세상과 삶의 새로운 지점을 발견하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상상력의 새로움, 표현이 참신성, 튼튼한 주제, 이 세가지 중 어느 하나도 시에 없다면 시인은 독자의 귀한 시간을 빼앗는 존재가 되고 만다. ‘상식’과 ‘일상적 대화’의 차원을 넘어서는 곳에 문학작품의 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두 분은 상기했으면 한다. 아래 사설시조는 인터넷에 떠도는 유머를 좀 더 재미있게 구성해본 것이다.
삼각산 기 그슭에 황룡이 꿈틀댄다
우남 개국 대통령은 미국에서 원조 받아 가마솥 하나 장만 했으나 밥 지을 쌀이 없었다 불도저 대통령이 어렵사리 통일벼 농사 지어 초가지붕 벗겨내고 밥을 놓았으나 정작 본인은 맛도 못 보고 갔다. 이 밥을 먹으려고 돌부처 대통령은 솥뚜껑을 열다 손만 데었고 그 밥을 낙지머리 대통령이 일가를 불러다 깨끗이 비웠다나. 남은 게 누룽지밖에 없는 걸 안 물태우 대통령은 물을 부어 혼자 다 잡쉈고 앵삼이 대통령은 그래도 남은 게 없나 닥닥 긁다가 솥에 구멍이 나자 엿 바꿔 먹었다. 빈손이라도 툴툴대던 인동초 대통령은 국민이 모아준 금과 신용카드 빚으로 미국(IMF)에서 전기밥솥 하나를 사왔는데 바보 대통령은 110V용인 미제 밥솥을 220V ‘코드’에 잘못 끼워 활랑 태우 먹고는 ‘코드가 안 맞다’고 불평했다. 밥 짓기의 달인이라는 맹박 대통령은 고장 난 전기밥솥을 고칠 줄 알았더니 정작 불 위에 올려놓고 부채질만 해댔고 저기 저 얼음공주, 나비처럼 날아가서 오채지(五彩池)를 물고 올른지
또 뭐고? 요술주머니 하나씩 준다꼬?
-「대통령의 밥솥」
이 작품은 현실을 풍자하고 인간생활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담아낸다는 사설시조의 본령에 충실히 임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훌륭한 작품인가? 그렇지 않다. 대통령의 이름 이승만 대통령을 ‘우남 개국 대통령’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불도저 대통령’등으로 고친 것 말고 인터넷상의 유머와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재담을 패러디한 것이라면 또 모를까, 그냥 그대로 가져다 쓰고는 사설시조라고 발표하고 있으니 지면이 아깝다. 현실에 대한 건강한 비판의식이 풍자의 기법을 사용하게 하는 법인데 이런 식의 전체 인용은 시조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데 일조할 뿐이다.
5. 결론
지금까지 필자는 이 땅의 시조시인들을 향해 상찬의 말은 거의 하지 않고 꾸지람만 한참 했다. 왜 그런 것인지는 시조시인들이 잘 알 것이다.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면서 발전을 꾀해야 할 터인데 지금까지는 시조시인들을 향해 지적을 하고 조언을 하는 사람이 적었던 것 같다. 그래서 시조에 대해 애정만 갖고 있는 필자가 시조는 쓸 줄도 모르면서 괜히 나서서 이런 잔소리를 했으니, 해량하시기를 바란다.
재작년에 필자는 놀라운 일을 겪었다. 부산에 계시는 어느 중견 여성 시조시인이 전화와 서신으로 시조집 해설을 써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기에 요망한 시간까지 써서 보내드렸다. 해설의 글이니만큼 비판의 글은 한 줄도 쓰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칭찬 일변도로 쓰지는 않고 솔직하게 느낀 점을 써서 보내드렸다. 그런데 몇몇 시조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하면서 보충을 해달라고 해서 그 부탁에 대해서도 흔쾌히 응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출간된 시조집을 그분에게서 받아본 후에 일어났다. 내가 쓴 글이 아예 빠지고 자신이 쓴 장문의 해설 ‘시인의 에스프리’가 실려 있는 것이었다. 칭찬이 부족한 것이었지, 아무리 읽어보아도 내 해설은 작품 해설의 핀트에 어긋난 것이 아니었다. 그 시조시인은 시조시단에서 주는 온갖 상을 다 받은 대단한 분이었는데, 내가 제대로 모시지 않은 것에 분노하여 이런 식으로 보답을 해왔던 것이다. 이런 사례가 시조시단 일각에 퍼져 있는 것이 혹 아닐까. 자화자찬을 일삼고, 서로 칭찬해 주고, 남의 조언을 듣기 싫어하는 풍조가 시조시단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본의 하이쿠는 자국 내에서도 외국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아니 큰 영예를 누리고 있다. 천황이 연초에 발표하는 하이쿠가 총리의 연두교시보다도 더 크게 환영받는 나라가 일본이다. 고려조부터 지금까지 연면히 이어온 우리 시조가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려면 시조시단 내에서 대오각성과 분발이 있어야 하겠기에 시조 시인들로부터 몰매를 맞을 각오를 하고 이 글을 썼다. ▨
<출처> 발행인 김제현, 『시조시학』(2015 여름호), 고요아침, 222~2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