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최근에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다가 집단사고(GROUP THINKING)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내용에서 최명길은 주화론(主和論)을 핍니다만,
주변의 김상헌을 비롯한 신하들은 마구 반대합니다.
청나라와 싸울 것인가 화합할 것인가를 놓고서 의견이 분분합니다.
심지어 군병들조차 임금 앞에서 최명길을 죽이라고 소리치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집단사고는 군중 심리를 담고 있기에
괜한 사람을 나쁘게 몰고갈 우려가 있습니다.
결국 인조임금은 최명길의 뜻대로 치욕의 항복을 하고 맙니다.
여기서 최명길 한 개인을 두고서 여럿이서 비난하는 것을 보니,
군중이 따라 하니까 나 자신도 군중 심리(행동)에 아무런 판단이나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쉽게 따라하는 행동이 연상됩니다.
대다수가 힘을 합쳐 '멀쩡한 사람을 병신 만든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경우를 가리킵니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물론 소수의 권위 있는 선동자가 있고,
아무런 판단이 없이 그냥 믿고 따르는 무력한(또는 어리석은) 개개인이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예를 들자면 어느 모임이나 교육공동체인 학교(또는 가정, 직장)에서 선생님(또는 부모, 상사)이 하자고 하니까
그 밑의 학생(또는 자녀들. 부하 직원)이 무조건 믿고 동조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이처럼 스승이 어리석다고 그 제자까지 어리석어지면 정말 안 되겠죠.
이럴 때에는 '나는 그때 몰라서 바담 風 했지만, 너는 앞으로 바람 風 해라!'라고 말했던
고사의 스승 모습이 무색해집니다.
교육이란....스승 제자를 떠나서 서로 옳고 그른 것을 정확히 가리며 반성하는 것입니다.
바로 위의 사례처럼 스승을 사모하는 마음이 지나친 나머지
'스승의 명예 지켜드리자'하며 다수의 제자가 집단의 힘을 악용해서
스승의 잘못을 없던 것으로 돌리자고 억지춘향격으로 나오는 것이니
이는 명백한 기만이요 삐뚤어진 존경심입니다.
엘리아스 카네티는 <군중과 권력>이란 책에서
군중을 '불, 비, 숲, 바람, 곡식, 재물' 등으로 비유했습니다.
그 이론을 살펴보면 군중은 자연물처럼 힘이 막강하고 뭉쳐있다는 것입니다.
오래전, 김지하의 장시 '비어(蜚語)'(1972)가 있었어요.
제목은 유언비어에서 따온 말입니다.
작품 배경이 유신독재 시절이라서
우울하면서도 혐오스런 내용을 담고 있어요.
'비어'는 우화성을 띤 스토리를 담은 장시입니다.
내용인즉 선량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힘없는 어느 서민이
어느 날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갖가지 죄명에 걸려 죄인으로 몰린 끝에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 억울한 사연이 그만 유령의 소리가 되고,
그 소리가 유언비어가 되어서 세상을 떠돌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느 시대에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어느 집단 내에서 갈등으로 인해 위기가 생기면
우선 양쪽의 의견을 똑같이 접수해서
합리적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면서 민주적으로 해결을 하고자 하는
움직임보다는......
한 사람을 두고서 여러 사람이 공격하는 그런
집단 사고의 위력(또는 권력의 힘)을 철저히 악용해서
상대방의 얘기는 전혀 들어보지도 않은 채,
김지하의 '비어'에서 보듯이 별 근거도 없는 죄명을 억지로 들이대며
멀쩡한 사람을 나쁘게(범죄인으로)몰고가는 어처구니 없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더더욱 정말 어처구니 없고 통탄스런 일은....
소위 문인들 집단에서 이렇게 자신들의 잘못을 망각하고
상대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멀쩡한 사람을 나쁘게 몰고 가는 것에서
집단의 힘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래 전에 이런 일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고 겪어본 바가 있습니다.
어리석은 집단의 어리석은 힘이란 정말 걷잡을 수 없습니다.
진실을 외치는 개인에게 진실을 밝히게 해주긴 커녕
집단의 힘 하나만으로 자신들의 잘못은 전혀 인정하지 않은 채
애꿎은 사람을 범죄인으로 몰고가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것을 당한 사람으로선 아마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유신시절에 있었던 '가톨릭 농민운동가 오원춘 사건'이 있지요.
집단사고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아무런 냉철한 이성적 판단을 하지 않고 무턱대고 집단사고의 위력에 휘말려 들어가서
선량한 개인을 짓밟는 것은
정말 어리석고 사악한 행동이며 폭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