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가는 전봉준
안도현
눈 내리는 만경들 건너가네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가네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거나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우리 봉준이풀잎들이 북향하여 일제히 성긴 머리를 푸네그 누가 알기나 하리처음에는 우리 모두 이름 없는 들꽃이었더니들꽃 중에서도 저 하늘 보기 두려워그늘 깊은 땅 속으로 젖은 발 내리고 싶어하던잔뿌리였더니그대 떠나기 전에 우리는목 쉰 그대의 칼집도 찾아주지 못하고조선 호랑이처럼 모여 울어주지도 못하였네그보다도 더운 국밥 한 그릇 말아주지 못하였네못다 한 그 사랑 원망이라도 하듯속절없이 눈발은 그치지 않고한 자 세 치 눈 쌓이는 소리까지 들려오나니그 누가 알기나 하리겨울이라 꽁꽁 숨어 우는 우리나라 풀뿌리들이입춘 경칩 지나 수군거리며 봄바람 찾아오면수천 개의 푸른 기상나팔을 불어제낄 것을지금은 손발 묶인 저 얼음장 강줄기가옥빛 대님을 홀연 풀어헤치고서해로 출렁거리며 쳐들어갈 것을우리 성상(聖上) 계옵신 곳 가까이 가서녹두알 같은 눈물 흘리며 한 목숨 타오르겠네봉준이 이 사람아그대 갈 때 누군가 찍은 한 장 사진 속에서기억하라고 타는 눈빛으로 건네던 말오늘 나는 알겠네들꽃들아그날이 오면 닭 울 때흰 무명띠 머리에 두르고 동진강 어귀에 모여척왜척화 척왜척화 물결소리에귀를 기울이라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시
안도현 시인
196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원광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
어 문단에 데뷔한 이후,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모닥불》《그대에게 가고 싶다》《외롭고 높고
쓸쓸한》《그리운 여우》《바닷가 우체국》《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
《관계》《사진첩》《짜장면》《증기기관차 미카》를 펴냈다. 그리고 산문집으로 《외로울 때는 외로
워하자》《사람》이 있다.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소월시문학상’ ‘노작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출처: 중앙대학교문예창작전문가과정 원문보기 글쓴이: 한상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