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의 시인을 만나다 | 신작시-민창홍
쿠살낭* 외 1편
이름을 얻는다는 것은 행복하다
숙명처럼 맞닿아 있는 하늘과 숲
현무암 틈새로 흔들어 대는 바람의 1,400고지
손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려서
지팡이 짚고 겨우 딴, 잎 하나
성탄절 환희가 되고 싶어
더 높은 곳으로 향하는 나의 시(詩)는
죽은 듯이 살아왔다
뿌리를 내리고도 호적 없이 사는 생(生)
파도는 비워진 위벽까지 긁었지만
꽃과 잎 종이에 붙이는 아기 손길로
지워지지 않게 쓴 원고지의 잉크
산신 할미가 지어준 이름 쓰고
기억나지 않는 어느 먼 곳에 시집보냈다
단아한 머리카락과 솔방울 멍게의 수줍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늘 푸르게 산 것은
꿈에서도 누비고 있는 고향 때문이다
어머니의 뜨거운 사랑은
고요한 아침이 두드릴 창문
귀 닫고 눈 감고 입 닫아
세상 넉넉하게 안아주고 싶은 마음
보라색 성게 바다 밑에서 피어나고
산에는 꽃이 활짝 피어 호적에 올리던 날
살아서 백 년 죽어서 백 년
여기는 나의 출생지
죽은 듯이 살아온 시(詩)는
산과 바다와 바람의 당당함이다
*구상나무의 제주도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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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슬포항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나무가 있다
구순의 아버지가 환갑을 맞은 아들 데리고 여행을 한다
아버지의 바다에는 장성한 자식이 자랑스럽게 떠 있다
부풀어 오른 빵과 차의 향기 가득하다
창밖에는 왕벚꽃이 전쟁 중에 소집된 훈련소처럼 분주하다
스무살에 총을 들고 따던 꽃잎들 찻잔에 침전하고
먹구름 헤치며 가족에 쏟은 땀방울
파도는 평화롭게 철썩댄다
가만히 잡아보는 아들의 손
노을에 젖는 커피숍
꽃잎 사이로 푸른 잎이 움트고 있다
민창홍
1960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1998년 《시의나라》와 2012년 《문학청춘》 신인상으로 등단하였다. 계간 《경남문학》 편집장 및 편집주간, 마산교구가톨릭문인회, 민들레문학회, 문학청춘작가회, 마산문인협회 회장, 성지여자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시문학연구회 하로동선 동인, 경남시인협회 부회장, 경남문인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 『금강을 꿈꾸며』, 『닭과 코스모스』, 『캥거루 백을 멘 남자』 『고르디우스의 매듭』, 『도도새를 생각하는 밤』, 서사시집 『마산성요셉성당』이 있다. 경남문협우수작품집상, 경남 올해의 젊은 작가상, 경남시학작가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