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직령 조선 왕조 초기부터 말기까지 서민에서부터 왕으로까지 두루 착용했다. 서민은 고려 말에서부터 조선 세조까지 착용했고 이후 양반의 옷으로 승격되어 외출복으로 입었다.
직령, 국립광주박물관
2. 철릭 첩리라고도 부르며 고려에서부터 계속 입은 것으로 겉옷의 밑받침옷으로 입었다. 왕, 백관, 악인, 서민 등이 모두 입었다.
초기 철릭, 국립광주박물관
흥완군 청철릭
3. 심의 유학자의 법복이다. 흰색이며 상의와 하상(치마)이 허리에서 붙은 옷으로 검은 선을 둘렀다.
심의, 권오창 그림
4. 답호 옆트임이 있는 반소매 포로, 고려 후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왕과 관리들이 상복 안에 입거나 사대부의 겉옷 위에 덧입던 옷이다.
겹답호, 국립광주박물관
소매없는 답호, 석주선 기념 민속박물관
5. 장의 왕 이하 서민 모두가 말기까지 입던 옷이다. 방한용으로 솜을 두거나 누벼 입었다.
장의, 충북대학교 박물관
6. 액주름포 조선시대 초, 중기에 입혀지던 포이다. 주로 누빈 것이 많다.
액주름포, 석주선 기념 민속박물관
7. 도포 사대부의 외출복, 제사복, 수의로 입었다. 도포에는 갓이나 관을 쓰고 가는 띠를 매었으며 혜나 태사혜를 신었다.
도포, 권오창 그림
8. 중치막 임진왜란 이후에 왕 이하 서민까지 두루 입던 옷으로, 조복 안에 받쳐 입거나 외출복으로 입었다. 허리에 가는 띠를 매고 혜나 태사혜를 신었다.
중치막, 권오창 그림
9. 창의 임진왜란 이후 왕과 사대부가 평소에 입던 옷이다. 사대부가 외출할 때는 갓을 쓰고 세조대(끈목으로 만든 실 띠)를 띠며 혜나 태사혜를 신었다.
창의, 권오창 그림
10. 학창의 덕망이 높은 도사나 학자가 입었다. 머리에는 방건, 복건 등을 썼다.
학창의, 권오창 그림
11. 두루마기 두루마기란 터진 곳이 없이 막혔다는 뜻으로, '주의'라고도 한다. 삼국시대 우리의 기본 포를 계속 입으면서 두루마기가 되었다. 조선 후기 상류층에서는 집에서 입거나 외출시 겉옷 안에 받쳐 입던 옷이다. 하류층은 외출복으로 입었다. 한편 아버지가 살아계신 노인이 회갑을 맞으면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돌 때처럼 오방색을 사용한 오방장 두루마기를 입었다.
두루마기, 권오창 그림
오방장 두루마기,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12. 소창의 창옷이라고도 한다. 옷의 모양은 중치막과 같으나 소매가 좁은 것이다. 덕망이 높은 도사나 학자가 입었다. 머리에는 방건, 복건 등을 썼다.
소창의 한국방송공사 한국복식도감 고증 복원
13. 현단 선비의 예복으로 머리에는 현관을 쓰고 신발은 흑구를 신는다.
현단, 문영표 고증
*조선시대 전통의상 (여자)*
1. 활옷 공주나 옹주 또는 상류층의 혼례복이었으나 점차 널리 퍼져 혼례시 서민에게도 허용하여 착용하였다.
서민의 활옷, 한상수 고증 복원
2. 소의 조선 초기부터 중기까지 사서인 부인의 예복이다. 띠를 허리에 달아 옷길이 위까지 매듭을 크게 하고 중간에는 거울과 같은 생활 필수품, 장신구를 달았다. 머리에는 '사'라는 쓰개를 얹고 비녀를 꽂았다.
소의, 문영표 고증 복원
3. 염의 조선 초기부터 중기까지 사서인들의 혼례용 신부복이다. 소의 위에 배자를 입고 머리에는 족두리 비슷한 관모에 비녀를 꽂았다.
염의, 이현숙 고증 복원
4. 저고리 조선 초기 저고리는 품이 넉넉하고 화장(등솔에서 소매 끝까지의 길이)과 길이가 길다. 조선 중기가 되면서 등길이가 짧아졌다. 연대가 내려갈수록 더욱 짧아지는데, 화장은 여전히 길다. 손을 가리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배래는 직선이던 것이 수구(소맷부리)를 약간 좁힌 곡선이 되었다.
안동 김씨 저고리(1560년대) 국립민속박물관
마석 출토 누비 저고리(17세기)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완산 최씨 저고리(1730년대)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삼회장 저고리(1700~1800년대)
삼회장 저고리(1900~1910년경)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5. 치마 저고리에 비해 별다른 변화가 없었고 저고리 길이에 따라 허리나 가슴으로 올라오게 착용하였다. 한편 우리 선조의 미감이 세계 어디보다 더 뛰어났음을 알려 주는 상류층 여인 예복 치마들이 발견되었다. 19세기에 서양에서 유행한 밧슬 스타일의 치마가 우리 나라에서는 16세기에 이미 착용되었던 것이다.
치마, 석주선기념박물관
15세기 상류층 예복(스란치마) 이순학 고증 복원
16세기 상류층 예복(스란치마) 이지영 고증 복원
6. 부인복 치마의 맵시가 다양했고 저고리 모양새도 여러 가지였다. 조선 후기 사대부 부인복을 보면 저고리는 꼭 끼고 치마는 부풀려 항아리 모양이다. 머리는 대부분 얹은머리이다. 1900년대 사대부 부인은 대부분 쪽진 머리를 했으며 길고 넓은 치마를 가슴 위까지 치켜올려 입었으며 저고리를 짧게 입어 허리가 보이지 않았다.
후기 부인복, 권오창 인물화로 보는 조선시대 우리옷
1900년대 사대부 부인복, 권오창 인물화로 보는 조선시대 우리옷
7. 처녀복 처녀의 상징은 땋은 머리, 홍치마, 노랑저고리이다.
처녀복, 김복연 고증 복원
처녀복, 권오창 인물화로 보는 조선시대 우리옷
8. 두루마기 1898년 이전부터 부인들이 두루마기를 입었으나 조선 후기에는 장옷, 쓰개치마 등 쓰개를 많이 썼으므로 두루마기를 입지 않았다가 개화기 때 외출복과 방한복으로 입었다.
두루마기, 권오창 인물화로 보는 조선시대 우리옷
9. 장옷 원래 왕 이하 남자의 평상복이었으나 세조 때부터 여자들이 입다가 후기에는 남자 장옷을 내외용(얼굴 가리기용) 쓰개로 쓰게 되었다. 모양은 두루마기와 같으나 겉깃과 안깃을 좌우대칭으로 똑 같이 달았고 수구(소맷부리)에 흰색 끝동을 넓게 대었으며 옷깃, 옷고름, 겨드랑이의 삼각형 무가 자주색이다.
장옷, 권오창 인물화로 보는 조선시대 우리옷
10. 쓰개치마 얼굴을 가리기 위하여 쓰던 것으로 평상시에 입는 치마와 형태가 같은 것이었다. 썼을 때 치마 허리가 얼굴 둘레를 두르고 손에 쥐일 정도이며, 보통 치마폭으로 주름을 겹쳐 잡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