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는 서재필 선생이 이곳에서 활동하였기 때문에 현재 서재필 기념재단도 있어서 한국과는 아주 인연이 깊은 미국의 도시이고 한국불교와도 아주 인연이 깊은 도시이다. 서경보스님이 1966년에 템플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한국불교의 문을 열었다. 이후 이 대학에서 지명스님, 동국대학교 김용표 교수 등도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이나 한국불교와 이런 인연이 있는 도시인 필라델피아는 서 경보스님 이후 법안스님의 노력으로 1981년 5월에 필라델피아 원각사가 들어서면서 한국불교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게 된다. 1980년 대 초 필라델피아는 원각사를 중심으로 정 대화(한국으로 이주) 차동섭(한국으로 이주), 김종규, 이범운(현 하와이 백련사 세인 스님), 권혁금, 김상철, 장세일(작고), 김학구(작고), 장영록, 박승수, 김상철, 이상익, 김명수, 홍명숙 보살 등 30-40대 젊은 신도들이 많이 있었다. 이들 중에는 이미 고인이 된 사람도 있고, 한국으로 간 사람도 있고 타 종교로 개종한 사람이 있는데 이중에서 장영록, 박 승수 두 거사를 소개한다.
박 승수 거사와 장영록 거사는 전생에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 같다. 두 사람은 비슷한 나이에 태어나 한국의 6.25을 겪고 미8군에서 군인이 아니라 취직하여 같이 근무하였다. 소속은 달라지만 같은 직장에서 일하다가 미국으로 비슷한 시기에 이민을 와 필라델피아에서 20년 넘게 함께 살고 있다. 필라델피아 원각사에 함께 다니기도 했는데 이곳에서 만난 이들의 자녀들이 결혼하여 두 사람은 사돈의 관계이다.
장영록 거사는 1931년 일본 니기다에서 출생하였다. 장 거사 아버지가 일본에서 토목 기사로 있어 일본에서 출생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 자라면서 나라 그리고 한국에 나오기 전에는 히로시마에 거주 하고 있었다. 대동아 전쟁 후 한국으로 귀국 하게 되었는데 장 거사 아버지 고향은 김해 이구매 라는 곳이다. 당시에 학교는 진영 농고등기술학교에 중학생으로 복학 하면서 한국으로 생활무대를 옮겼다. 그러다가 6.25가 발생 하는 바람에 장 거사는 학도병으로 참전하게 되었다. 그래서 군대 입대하여 2사단 32연대에서 근무를 하였다. 그리고 2년 반 후 제대한 후인 1954년 장 거사 21살 때 미 8군 소속인 부산기지 사령부에 취직을 하게 되면서 미군과 나아가 미국과 인연을 맺게 된다. 그러고 부산기지 사령부에서 장 거사가 맡은 일은 인사관리와 운영경리관리를 하였다. 부산에서 일하던 장 거사는 용산기지 사령부로 이주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또 월남전이 발생하여 월남 기지 사령부에서 필요로 하여 기술자의 자격으로 1967년부터 월남에 한 2년 반 다녀 왔다. 장 거사가 월남에서 있는 동안 여러 가지 공이 크다 해서 특별 공로상을 탔다. 이런 인연으로 해서 미국으로 특수 이민을 하게 되었다.
이 무렵은 한국에 미국이민 붐이 한창일 때였다. 그래서 장 거사는 1978년에 미국의 워싱턴DC로 이주 하게 되었다. 미 8군에서 직장생활을 하였고 월남전에서 큰 공로가 있었던 장 거사는 CIC 에 자리가 있다 하여서 여기서 직장생활을 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친구따라 강남 간다’는 옛말처럼 장 거사는 필라델피아에 친구가 있어 필라델피아를 다녀와서 직장 생활 보다는 사업을 하는 게 좋겠다 생각하여서 1979년 필라델피아로 이주하여 그로서리를 하게 되었다. 장 거사는 그로서리를 하게 되면서 사회 사람들도 알게 되었고 지금 한인 봉사센터에 소장으로 있는 유진원씨를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봉사센터 설립 같이 하자는 유씨의 제안에 1983년에 한인봉사센터를 처음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고 가족이 사업을 도와주고 장 거사는 시간 있을 때마다 봉사센터 일을 간혹 도와주었다. 이러다가 한동안 장 거사는 몸이 좋지 못해서 봉사센터에서 손을 떼고 가족의 사업을 도왔다. 그러다 다시 몸이 회복이 되어 1989년에 다시 한인지역개발 봉사센타로 돌아와서 현재까지 주택 상담직을 하고 있다.
장 거사는 26살 때 결혼하여 2남 1녀를 두고 있다. 지금은 모두 결혼 했고 이들은 뉴저지와 필라델피아에 살고 있다. 손자손녀 모두 여섯이 있다. 장 거사 딸하고 한국에서부터 오랜 인연이 있는 박승수씨 차남하고 결혼하였는데 이들은 펜실베니아에 살고 있다. 이들이 만나게 된 연유는 원각사에서 학생회가 있어서 그 학생회에서 알게 되어 결혼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 결혼에는 지명스님이 주례를 하였고 법장스님이 이 결혼식 행사를 보조하였다. 장영록 거사는 사돈인 박 승수 거사와 함께 자녀들에게 부모의 종교를 믿으라고 교육을 시켜 이 두 사람의 자녀들은 부모의 종교를 따르게 하고 있다.
장 거사가 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결혼하고 나서부터이다. 장 거사는 불교와 인연에 대해 그리고 미국에서의 신앙생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 처가 아주 열정적으로 절에 다녔습니다. 저는 그냥 아내를 따라 같이 다니고 하다가 미국에 와서 필라 원각사를 알게 되면서 절실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미국에 절에 오니까 불교에 연결이 안되고 하여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원각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원각사에 나가게 된 것입니다. 원각사 시절에 불교에 깊이 들어갔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했다. 장 거사는 원각사에서 사무총장 직책으로 3년간 일하였다. 원각사에서 신심을 내면서 도반들과 필라지역 불교발전을 위해 열정적으로 일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장 거사를 비롯한 여러 신도들의 생각과 주지스님의 생각이 달라 갈등이 생기고 결국 주지스님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은 원각사를 떠나게 된다. 장거사는 이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그때만 하더라도 원각사가 주 정부나 연방정부에 등록이 안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서 모든 것을 정리해서 state registration 하고 IRS에 비영리단체 등록도 하고 했습니다. 사실은 원각사를 등록 시킬 때만 하더라도 원각사가 아주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게 운영의 문제가 생겨서, 문제는 나쁘게 표현하자면, 이범운씨가 너무 큰돈을 기증하는 데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돈의 사용 방법에 대한 의견이 달랐습니다. 저와 많은 이사들은 이 지역이 흑인들이 들어오는 지역이기 때문에 좀 더 한국식으로 불교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현재의 원각사를 이전시켜 다른 곳에다 투자를 하자는 것이었고 주지스님과 일부 이사는 그곳에다 불사를 하자는 입장이었습니다.”라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였다. 이렇게 주지 스님과 의견 차이로 신앙의 보금자리였던 원각사에서 문제가 생기자 당시 장 거사가 회장으로 있던 관음회 사람들은 독자적으로 신행생활을 하다가 홍명숙 보살의 소개로 현재 필라델피아 관음사 주지 정수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이런 연유로 장 거사는 원각사와 인연을 정리하고 정수스님을 만나 필라델피아 관음사 건립에 참여하게 된다. 그래서 현재는 관음사 신도이다.
장영록 거사는 필라 지역 불교활성화를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하다가 2001년 5월 20일 법우회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출범 이후에는 장거사의 의도대로 활발하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장거사는 현재도 어떻게 하면 이 법우회를 활성화 시킬 수 있을까 궁리를 하고 있다. 장거사는 “필라델피아 전체 신도회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사실은 좀더 불교에 발전을 위해서 우리가 모임이 필요하다 해서 시작했는데 제대로 이루어 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2001년 창립할 당시 필라델피아 총신도회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여러 차례의 준비과정을 통해서 창립총회를 했죠. 그때 당시 많은 돈도 모금이 되었고 그래서 시작이 되었는데 회원님들의 또 역시 의견이 수립이 안되어서, 현재까지, 정확한 활동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라고 말한다.
일흔이 넘은 나이지만 얼굴에서는 아직도 장년의 패기가 흐르고 있다. 때문에 그는 불교에 대한 열정이 젊은 시절과 똑같이 있고 현재의 불교계 상황에 대해 걱정과 불만도 있다. 그는 불교가 기도교의 나라 미국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첫째 포교에 대한 방법을 연구해서 젊은 사람들에게 계속적으로 전파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점에 대해서 문제가 좀 있다고 본다. 그래서 필라델피아의 이런 점을 극복하기 위해 이점에 대해서 타 지역에 불교를 운영하고 노력하는 분들하고 교류도 좀 하고 지도도 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 거사는 필라델피아 지역의 또 다른 신행단체인 선심회와 협의하여 젊은 층들을 영입해가지고 그 사람들에게 책임을 맡겨가지고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나설게 아니라, 우리는 이제 늙었고, 우리는 후원하고, 젊은 층에게 좀더 권한을 줘서 그 사람들로 하여금 불교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게 장 거사의 생각이다.
장 거사는 현재 <한인지역개발봉사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여기서 장 거사는 주로 주택 상담일을 하고 있다. 직책은 Senior housing consulting이다. 이 프로그램은 시 정부에서 저 소득층을 보조하는 프로그램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집을 처음 사는 사람들한테 필라델피아 시에서 보조금을 지불하도록 하는 것이다. 상담을 끝난 사람이라야 만이 보조금을 받을 자격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상담의 대상은 한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 인종이라고 한다. “ 그리고 집을 처음 사는 사람들에게 시에서 800불을, 등기 당시, 처리 당시 보조금을 줘요. 그것을 받기 위해서는 저한테 와서 약 2시간 동안 주택에 대한 교육을 받아요. 저는 교육을 줄 수 있는 자격증을 가지고 있고, 그러니까 필라델피아 시내에 25개의 상담 사무실이 있어요. 저와 같은 상담자가 있는데, 이제 그 사람들을 통해서 상담을 해야지만 시청에서 돈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부여 받게 됩니다.”라고 장거사의 하는 일에 대한 설명을 한다. 장 거사는 현재 소득이 낮은 사람들에게 상담을 통해 도와주는 것을 보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직업으로 하고 있는 일 뿐만 아니라 장 거사는 필라델피아 지역의 불교도 장 거사가 관심 갖고 노력하는 만큼 활성화되어 보람을 느끼게 되는 날을 맞고 싶다.
박 승수 거사는 1932년 서울 종로구 설인 동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여덟 살쯤에 서울 복래동으로 이사해서 복래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해방이 되고 중동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 학교 6학년 재학 중에 6.25사변이 일어나 거기서 박 거사는 친척들 하고 같이 부산으로 기차를 타고 피난을 갔다. 부산에서 박 거사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을 만나서 북한에서 피난 나온 사람들을 위한 정보 교육국에 취직을 하게 되어 타임키퍼로 2년간 일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자 박 거사는 다시 서울로 올라 와 위탁으로 6개월 경복고등학교를 다니고 중등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학교 졸업을 하고 1955년에 아는 사람의 추천으로 8군 사령부에 취직을 하고 약 20년 후에 미국에서 사는 인연을 맺었다. 미 8군에서 일할 때 대구 후방사령부에서 장영록 거사하고 같이 일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장영록 거사는 관리참모부에서 박거사는 스탁 매니져로 일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야간에는 국제대학을 다녔다. 박 거사에 의하면 국제대학은 그 당시는 유명한 야간대학으로 이름나 있었다고 한다. 미 8군에서 20년간 직장생활을 하다가 1974년 7월 미국으로 이민 왔다. 장 거사는 미국이민을 비교적 일찍 오게 되었는데 역시 친구 따라 친구가 있는 필라델피아로 오게 되었다. 미국에 와서는 흑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그로서리 업에 종사하였다. 이 사업을 오랫동안 하다가 정리하고 최근에는 부인과 함께 필라델피아 한인상가 지역에서 비디오 대여업을 하고 있다.
박 승수 거사는 한국에 있을 때는 의례적으로 초파일과 백중 때 서울에 있는 도시 근교에 있는 절에 가족들이 가면 함께 동행하는 정도였다. 이런 정도의 신자였는데 미국에 와서 종교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1978년도에 뉴욕 원각사 법안스님이 현재는 개종한 사람의 소개로 필라델피아에 와서 이 주일에 한 번씩 인터내셔널 하우스에서 불교강좌를 하였다. 여기에서 법안스님 강좌를 듣고 불교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게 된다. 필라 원각사 건립을 위한 법안스님 서예전 할 때도 열심히 일한 박 거사는 1981년 개원한 필라델피아 원각사의 창립 신도로 그리고 1982년부터 1984년까지 신도회장을 역임하였다. 이렇게 필라 원각사에서 중요 멤버로 활동하던 박 거사는 앞서 말한 원각사 중흥 불사 방법 때 갈등이 생가는 바람에 원각사에서 나오게 된다. 그리고 법장스님이 지도하는 필라델피아 화엄사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기도 하면서 화엄사 신도로 있다.
이렇게 필라델피아 지역의 원각사와 화엄사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박 거사는 주변의 사람들과 친목을 도모하면서 사회활동을 하려고 3년 전에 <선심회> 창립의 주도적 역할을 하고 초대 회장을 역임하였다. 이 단체에는 필라델피아 지역의 40대부터 70대에 이르는 14명이 부부동반으로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회원들은 화엄사, 원각사 등에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에서 하는 일은 장학사업이다. 집안 형편이 가난한 사람들한테 학자금 제공하고 있다. 이 모임에 박 거사가 가장 연장자이다.
미국생활이 올해로 30년이 되는 박 거사는 건강하게 사는 것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