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장 믿음직한 말은 아름답지 못하고
신언(信言)은 불미(不美)하고 미언(美言)은 불신(不信)이니라。선자(善者)는 불변(不辯)하고 변자(辯者)는 불선(不善)이니라。지자(知者)는 불박(不博)하고 박자(博者)는 부지(不知)니라。성인(聖人)은 부적(不積)하여 기이위인(旣以爲人)이나 기유유(己愈有)하고, 기이여인(旣以與人)이나 기유다(己愈多)니라。천지도(天之道)는 이이불해(利而不害)하고, 성인지도(聖人之道)는 위이부쟁(爲而不爭)이니라。
변(辨)/분별할 변, 변론하다 박(博)/넓을 박, 박식 적(積)/쌓을 적, 모으다 기(旣)/이미 기, 처음부터 유(愈)/나을 유, 더 뛰어 나다 기(己)/ 자기 기
미더운 말은 꾸미지 않고 꾸미는 말은 미덥지 않다. 착한사람은 말이 어눌하고 말 잘하는 사람은 착하지 않다. 진짜로 아는 사람은 박식하지 않고 박식한 사람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성인은 쌓아두지 않으므로 처음부터 남을 위하여 쓰는지라 자기가 더욱 있게 되고, 남에게 나눠주므로 자신은 더욱 많아진다. 하늘의 도는 이로움을 주되 해를 끼치지 않고 성인의 도는 무얼 하되 다투지 않는다.
마지막 장이다. 생활 노자를 광명시민신문에 연재하기 시작한지 9년 만에 글쓰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아니 또 다른 시작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활 노자를 마무리 하면서 ‘신언(信言)은 불미(不美)하고 미언(美言)은 불신(不信)’이라는 이 81장의 가르침이 새삼 나에게 하는 말은 아닌가 두려워진다. 미더운 말은 꾸미지 않고 꾸미는 말은 미덥지 않다는데 나는 이 긴 글을 쓰며 사사로움을 배제 하였는가 걱정이 앞선다. ‘선자(善者)는 불변(不辯)하고 변자(辯者)는 불선(不善)이라. 지자(知者)는 불박(不博)하고 박자(博者)는 부지(不知)’한다는 말도 맘에 걸린다. 착한사람은 말이 어눌하고, 말 잘하는 사람은 착하지 않다. 진짜로 아는 사람은 박식하지 않고 박식한 사람은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도 나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나는 남 앞에서 말을 해야만 하는 직업을 가졌다. 사람 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경전을 앞세워 그동안 많은 말을 해왔다. 30여 년 동안 성경을 가르치고, 경전(經典)을 설(說)하며 살아왔다. 그 숫한 말 속에 참말은 얼마나 있었는가 다시 한 번 반성해 본다.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이란 옛말이 있다. 한번 입 밖으로 낸 말은 반드시 지킨다는 뜻이다. 말은 그래서 진언(眞言)이어야 했다. 말[言]이란 글자를 말씀 언(言) 아래 마음 심(心)자를 넣어 쓰기도 한다. 우리의 선조들은 진실된 마음을 실어 말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중국의 격언 중에 계포일낙(季布一諾)이란 말이 있다. 계포가 한번 한 약속이라는 말인데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함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의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과 같은 뜻이다.
《사기(史記)》 〈계포전(季布傳)〉에 나오는 이야기다.
<초(楚)나라 사람 계포(季布)는 젊었을 때부터 의협심(義俠心)이 강해 한번 '좋다!'라고 약속한 이상에는 그 약속을 끝까지 지켰다. 계포는 한(漢)나라 유방과 초(楚)나라 항우(項羽)가 천하를 걸고 싸울 때 항우의 장수로서 출전해 유방을 괴롭혔다. 항우가 패망하고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게 되자 계포의 목에는 천금의 현상금이 걸렸다. 이제 그는 쫓기는 몸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 하나 고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유방에 천거하는 일도 있었다. 덕분에 그는 사면과 동시에 낭중(郎中)이라는 벼슬까지 얻었다.
그는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판에서도 의로운 일에 힘썼으므로 사람들에게 신임과 존경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흉노(匈奴)의 선우(單于)가 당시 최고 권력자인 여태후(呂太后)에게 깔보는 투의 편지를 조정에 보내온 일이 있었다. 이에 진노한 여태후는 흉노 징벌을 위한 어전회의(御前會議)를 소집했다. 먼저 상장(上將) 번쾌(樊)가 나서며, "저에게 10만 병력을 주십시오. 소신이 오랑캐들을 깨끗하게 쓸어버리겠습니다"라고 큰소리쳤다. 당시는 무슨 일이나 여씨(呂氏) 일문이 아니고는 꿈쩍도 못하던 때이다. 신하들은 여씨 일문의 딸을 맞아서 여태후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번쾌에게 잘 보이려고 이구동성으로 맞장구를 쳤다.
그때 "번쾌의 목을 자르십시오" 하며 감히 나서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계포였다. 계포는 "한고조(漢高祖)께서도 40만 군대를 거느리고 정벌에 나섰다가 평성(平城)에서 그들에게 포위당하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10만으로 흉노를 응징하겠다는 것은 망발(妄發)입니다. 진(秦)나라가 망한 것은 오랑캐와 시비를 벌이고 있을 때 진성(陳誠) 등이 그 허점을 노리고 일어났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들에게서 입은 상처가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거늘 번쾌는 이것도 모르고 아첨하기 위해 천하의 동란을 불러일으키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포의 강한 신념에 찬 목소리에 좌우신하들은 새파랗게 질렸다. 계포의 목숨도 이제는 끝장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태후는 즉시 폐회를 명하였고 그 후 다시는 흉노 징벌을 입에 담지 않았다. 여태후는 계포의 신의를 믿고 이 사건을 덮어두었던 것이다.
초나라의 조구(曹丘)는 변설가(辯舌家)이며 권세와 금전욕이 강한 사람으로 경제(景帝)의 외숙뻘 되는 두장군(竇長君)의 식객(食客)으로 있었다. 계포는 두장군에게 "조구는 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사람이라고 듣고 있으니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겠소"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때 여행에서 돌아온 조구가 두장군에게 계포에게 보낼 소개장을 써달라고 부탁하러 왔다. 두장군은 계포가 보낸 편지를 보이며, "계포는 자네를 싫어하니 가지 말게" 하고 말했다. 그러나 조구는 억지로 소개장을 써 달라서 계포를 찾아가, "초나라 사람들은 황금 백 냥을 얻는 것이 계포의 한마디 승낙을 받는 것보다 못하다[得黃金百斤 不如得季布一諾]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하며 계포를 칭찬했다 한다. 그 후부터 사람들은 '계포일낙'을 간단하게 줄여 '계낙'이라고도 했으며 또는 '금낙(金諾)'이라고도 하여 '틀림없다'는 뜻으로 쓰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떠한가?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고 거짓이 판을 친다. 공약(空約이 남발되고 허위선전, 과대광고가 사람의 마음을 홀린다. 법치국가라지만 힘 있고 빽 있는 자들은 법을 우습게 여긴다. 변호사와 회계사, 세무사들은 기업이 법망을 피하고 세금을 줄이는 일에 고용된다.
권력자들이 권력을 쥐기 위해 남발한 약속들은 상당수가 번복되거나 폐기된다. 사람이 죽든 말든 돈 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는 다국적 기업, 헤지펀드 등이 세계를 주름 잡는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신자유주의라는 이념이 WTO라는 괴물이 되어 세계를 주무르고 있다.
인간의 사사로운 욕심은 이제 부메랑이 되어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인간이 자랑하는 현대문명은 석유의 무분별한 소비로 이루어졌다. 값싸고 편리한 석유는 인간 생활의 전 분야에 걸쳐 빠른 속도로 활용되었다. 난방과 전기 생산, 운송수단의 연료, 플라스틱, 섬유 등 신소재의 원료, 화학비료와 살충제의 제조 등 공업의 전 분야에 걸쳐 이용되었다. 석유의 사용은 에너지 집약적인 생활환경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고 이로 인해 급격한 도시문명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석유로 이룩한 문명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석유 매장량은 바닥을 드러내고, 값 싼 에너지였던 석유가격은 급등하였다. 1970년대 초반 원유 1배럴 당 가격은 1.30달러였지만 현재는 100달러 이상까지 치솟아 더 이상은 인간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에너지원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우기도 하였다.
석유문명의 위기 중 가장 심각하게 인류를 위협하는 것은 지구온난화와 식량위기다. 지난 100년간 지구 기온은 0.74℃ 상승하였다. 기후학자들에 따르면 금세기 말에는 최고 6.4℃ 까지 오를 것이 예상된다. 온난화가 진행 되면서 각종 기상재해가 일어나며 기상이변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지구온도 상승으로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게 되면 저지대나 해안도시가 위협받게 된다. 2100년에는 해수면이 0.5m ~ 2.0m정도 상승하여 적어도 10억 명의 난민이 발생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인류의 65%가 거주하는 연안도시와 농토가 바닷물에 잠기게 되면 식량생산에 차질을 가져와 인류는 극심한 식량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값싼 석유로부터 만들어진 화학비료와 농약, 농기계의 발달은 인류가 수십만 년 동안 고수해 왔던 농업을 뒤바꿔 놓았다. 유기 순환농업의 고리를 끊고 대규모 단작 농업을 가능케 하여 거대 기업농을 만들어 냈다. 수송 수단의 발달은 식량교역을 가능케 하여 저개발 국가나 개발도상국가에서는 농업의 축소가 일반화되어갔다.
석유문명을 활용한 이 새로운 농업은 획기적인 생산 증대와 노동인력의 감축 등 식량문제 해결에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이 방식이 지속가능한 농업 방식인지에 대해서 회의가 많다. 인류의 일시적인 풍요는 종내는 전무후무한 인간 사멸(human die-off)라는 대가를 치루게 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또한 인구의 급격한 팽창과 식량생산 비용의 증가는 식량무기화를 재촉하고 있다. 더 이상의 생산성 향상은 불가능해 졌고, 인류가 농사지을 수 있는 땅도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남은 땅들도 표토층의 유실로 인해 점점 죽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표토층의 유실은 기계를 사용한 밭갈이, 비료와 농약, 비닐 등을 사용하는 농법의 영향에서 비롯된다. 기후변화와 농업용수의 부족, 농약에 대한 해충들의 내성증가 등도 생산성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피크오일시기가 다가옴에 따라 식량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다. 비료나 농약의 생산 단가는 높아지고, 농기구 사용에도 점점 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농산물 수송에도 비용이 더 들어가게 된다. 현대 농업 시스템은 생산된 식량 에너지 1칼로리 당 화석 연료 10칼로리 정도를 소비한다고 한다. 오늘날 한없이 치솟고 있는 농산물 가격은 식량 자급을 이루지 못한 나라들의 운명을 풍전등화로 몰아가고 있다.
이런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80장에서 노자 할아버지가 제시한 유토피아를 이룰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도를 깨우친 성인(聖人)이라면 인류의 미래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할까?
노자 할아버지는 성인(聖人)은 부적(不積)하여 기이위인(旣以爲人)이나 기유유(己愈有)하고, 기이여인(旣以與人)이나 기유다(己愈多)라고 가르친다. 성인은 쌓아두지 않으므로 처음부터 남을 위하여 쓰는지라 자기가 더욱 있게 되고, 남에게 나눠주므로 자신은 더욱 많아진다는 것이다. 이 구절은 인간들이 자기의 사사로움과 욕심을 버리고 남과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라고 가르친다. 가지고도 더 가지려고 하는 욕심에서 오늘날 인류의 위기가 발생했다. 편리와 낭비 대신 자기의 분수를 지키며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세상에 올 때 빈손으로 왔다. 갈 때도 빈손으로 가게 된다.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빈손으로 태어난 우리들은 세상 만물의 도움으로 생을 영위한다. 물과 공기가 우리의 생명을 지켜 준다. 곡식과 채소들은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어 우리의 목숨을 살린다. 삼라만상(森羅萬象)의 도움으로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제 능력으로 살아가는 양 욕심을 부린다. 그리고 제분수를 넘어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욕심을 부린다. 하지만 그 욕심의 끝은 허물과 죄악일 뿐이다.
쌓아두지 않아도 우주 만물과 교감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늘 필요한 때 필요한 것을 빌려 쓸 수 있다. 그러니 성인들은 구태여 무엇을 쌓아두려 하지 않는 것이다. 또 성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남을 위해 쓰고 남에게 나눠준다. 나누고 또 나눠도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더 많이 나눌 수 있도록 채워진다. 이것이 하늘의 도이다. 하늘의 도를 따르는 이들은 그래서 부족함이 없다. 세상 만물이 힘을 합쳐 그를 돕기 때문이다.
그러니 천지도(天之道)는 이이불해(利而不害)하고, 성인지도(聖人之道)는 위이부쟁(爲而不爭)이다. 하늘의 도는 이로움을 주되 해를 끼치지 않고 성인의 도는 무얼 하되 다투지 않는 것이다. 하늘의 도를 따르면 하늘은 언제나 도움을 준다. 하늘은 세상 만물을 해치는 법이 없다. 하늘의 도를 따르는 성인 또한 욕심을 부리지 않아 남과 다툴 일이 없다. 이는 생명을 사랑하고 평화를 꿈꾸는 이들이 가야할 길이다. 이 어지러운 세상, 광기와 욕심이 판치는 세상이 서로 돕고 사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바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변화는 사사로움을 여의고 나눔과 섬김의 삶을 사는 이들의 손길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