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향딸기만 먹읍시다
2006년 3월 19일, 제1회 WBC(World Baseball Classic) 야구대회 준결승에서 우리 나라가 이미 예선에서 두 번이나 이겼던 일본과 다시 대결하게 되었다. 이 날 우리 나라는 7회에 무너지며 결국 6 : 0으로 지고 말았는데, 인터넷의 야구 기사에는 뜬금없는 댓글 하나가 올라와 있었다.
“앞으로 딸기 사 먹지 맙시다. 매향딸기만 먹읍시다.” 흥미로운 글이었다. 그런데 글을 읽다 보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나라 딸기 농업의 현실에 대해 줄줄 꿰고 있는 누리꾼의 글이었다.
정부는 2002년 1월 세계 100여 국가로 구성된 국제 식물 신품종 보호 동맹(UPOV)에 가입했다. 가입 국가는 2009년까지 모든 작물을 품종 보호 대상으로 지정해야 하며, 2007년부터는 외국산 딸기를 재배할 경우 로열티를 내야 한다.
그런데 우리 나라 재배 딸기의 90%를 차지하는 육보·장희 등은 모두 일본 품종이다. 금액으로 따져 2005년 일본 품종 딸기는 5,600억 원의 시장을 형성했다. 이제 수백억 원의 로열티가 일본으로 빠져 나갈 판이다. 매향딸기를 먹자는 글을 올린 애국 누리꾼은 일본으로 빠져 나가는 로열티가 아까웠던 것이다.
# 로열티 해결사로 등장한 ‘매향딸기’
논산 딸기시험장은 2002년부터 이에 대비해, 딸기 로열티 문제를 해소하고 국내 딸기 농가의 소득 증대를 위해 매향딸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 개발했던 7종 이상의 국산 딸기 품종이 시장성 부족으로 농가에 보급되지 못해 실패한 경험이 있는데다, 로열티 지급 개시 연도를 불과 5년 앞둔 시점에서 상품성을 가진 신품종 개발이 요구되고 있었다.
개발팀의 김태일 박사는 매향딸기에 대해 “육질이 단단하고 향이 진하며 당도까지 높아 소비자들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어, 일본 품종에 비해 20%나 비싸게 팔리고 있다.”고 말한다.
매향딸기는 2005년 말 현재 9.2%(600ha)를 점유했으며, 2006년에는 17%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매향의 보급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변화를 두려워하는 농업인들의 태도가 문제이다. 로열티 부담도 걱정이지만, ‘현재 품종도 소득이 괜찮은데 굳이 매향으로 바꿀 필요가 있을까’ 하는 반응이다.
매향을 꺼리는 또다른 이유는 육묘기에 탄저병에 약해 자묘 확보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 품종은 반드시 비가림 육묘를 해야 하고, 또한 환경에 민감해 고온이나 건조시에는 생육이 저하된다.
과일 크기에서는 농가가 선호하는 대과 비율이 장희보다 적고, 혹한기에 다른 품종보다 추위에 약해 고온 관리가 요구된다. 전남 지역에서 매향의 보급이 실패한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육묘 실패와 저온기 생육 저하로 인한 수량 감소였다. 또한 고온기에는 과일의 착색이 빨라 당도가 저하되고 과색이 진해져 검어지는 경향을 나타내는 것도 단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을 모두 덮을 수 있을 정도로 육보, 장희에 비해 향이 우수하고, 모양과 맛이 뛰어난 것은 매향딸기 보급에 고무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재배기술을 조금만 향상시키면 매향의 단점은 무난히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 딸기 시험장의 판단이다.
딸기시험장은 매향의 단점을 보완해 나가면서 장기 재배로 품종이 퇴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조직 배양묘를 육성, 매년 5만 주를 공급하기로 했다. 딸기 농가에 대한 지도 사업, 즉 매향 재배법, 매향에 대한 이미지 제고, 매향의 상품성 등을 딸기 농가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도 시험장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 논산의 ‘딸기 사수’ 특명
이제 본격적인 ‘씨앗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미 장미 등 일부 화훼류가 독일, 일본 등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는 실정이다. 농자재값과 인건비, 묘종비, 난방비가 올라 생산 비용이 엄청나게 오른 마당에 딸기 1주당 10원씩의 로열티는 농가에 큰 부담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딸기 농업의 자존심 논산은 ‘우리 딸기 사수’라는 사명을 부여받았다.
지금부터 80여 년 전인 1921년경 일본인들은 논산에서 딸기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종자 유출을 엄격히 제한해 한국인들의 딸기 재배를 막았으나, 해방이 되고 딸기밭이 한국인에게 불하되었다.
처음 딸기밭을 불하받은 농업인들도 역시 종자 보급을 꺼려 딸기 농사가 쉽게 확산되지 않았지만, 차츰 지인들과 친척들에게 종자를 나눠 주기 시작하여 딸기 농업의 규모가 커졌고, 오늘날 논산시는 전국 제일의 딸기 생산단지로 발돋움했다.
논산은 연간 1,000억 원 가량의 딸기를 생산하고 있다. 딸기 산업은 논산시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논산은 우리 나라 딸기 산업 사수의 특명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전국 제일의 시설 딸기 재배지요, 전국 유일의 딸기시험장이 논산에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매향을 주로 재배하는 지역은 경남 진주·밀양·합천·사천, 경북 안동, 전북 익산·완주, 충남 논산·부여·홍성 등의 지역이며, 소규모로도 전국적으로 널리 퍼져 있다. 특히 진주에서는 매향 작목반(진주 그린딸기, 박인철)이 결성되어 전체 물량을 일본과 홍콩 등지에 수출하고 있으며, 2005년에는 100t 정도의 신선딸기를 수출했다.
논산에서는 100여 농가에 약 30ha 규모로 매향 명품화 사업단(이용범)이 결성되어 공동 선별과 품질 관리를 통해 일부를 일본에 시험 수출했고, 국내 유명 백화점을 통해 kg당 2,000∼3,000원 정도 높은 가격으로 납품하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지역은 전북 완주로 2005년 출하된 매향의 가격이 높게 형성되면서 삼례·금마를 중심으로 촉성 재배 품종이 장희에서 매향으로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매향딸기가 궁극적으로 우리 나라 딸기 농가의 소득을 높이고, 한 번 먹어 본 소비자는 반드시 다시 찾는 고급 딸기 브랜드로 발전하느냐는 논산 딸기시험장 매향 개발 담당팀의 노력과 딸기 농가의 도전 정신, 소비자의 우리 농산물 사랑이라는 트라이앵글에 달려 있다. 우리 나라는 경작면적 세계 8위, 생산량은 미국·스페인에 이어 세계 3위의 딸기 대국이다. 논산 딸기시험장의 매향이 딸기 생산국 세계 3위라는 명성에 걸맞게, 딸기 로열티 유출로 인해 애써 성장시켜 온 딸기 산업이 ‘속빈 강정’이 되지 않도록 든든한 수문장 역할을 해 주길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