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후원 회원 중 한 분이시고 전교조 서울지부 활동가인 우돌님이 3월 일제고사 투쟁에 관한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
올해 고2,3 수업 담당, 담임도 아닌 나는 일제고사를 앞두고 무엇을 할수 있을까?
학기초에 계속 고민이 되었다.
사실. 이미 모의고사에 쩔을 대로 쩔어있는 나에게 일제고사 그자체는 그렇게 메가톤급 폭탄은 아니었다. 나의 마음을 타게 만든 것은 일제고사 때문에 서울에서 9명 ,전국에서 14명의 동지들이 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작년 12월에는 엄청나게 큰 폭탄이었고 겨울을지나면서 좀 안이해졌다.왠지 소청심사에서 해직상태는 면하고 법률적으로 명예회복도 곧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3월 24일 소청 심사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동지들의 장기 해직이 기정사실화 된 것이다. 그 중 한 선생님은
2.08년차, 나와 인권교육 관련 모임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법률 소송을 하면 최소 2년은 걸린다는데 2년 동안 아이들과 살고
또 그만큼 떨어져있어야할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고민을 하고 또 했다. 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청소년 단체에서 '청소년 오답선언'과 '등교거부'와 '체험학습'을 조직하는 학교 앞 선전전을 한다고 하였다. 비담임인 나는
'옳다구나! 교장이 나 이거 하라고 , 우리 학교 놔 두고 남의 학교 방해하라고 담임 ㅤㅃㅒㅤ줬구나' 싶어 수업이 끝나는 대로 다른
학교 하교길목에 섰다.
보통 선전전은 따이루라는 청소년인권활동가와 일제고사 반대 say-no 활동가 1~2명, 유성희
선생님이 함께 참여했다. 그리고 그 학교 분회장 님이 나와 계시거나 인사를 하고 상황을 정돈해주셨다. 상황을 정돈한다함은
학교측에서 우리를 심하게 방해하거나 하지 않도록 해주신 것이다. 하교길 선전전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시험'을 안봐도
된다는 것 자체가 신천지의 발견이었다. 그래서 이런 질문도 있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는 왜 반대 안해요?' 이거에 대해 나는
'그건 학교 밖으로 넘어가는 정보가 아니니까....'라고 얼버무렸고, 청소년 활동가는 '그것도 차차 없애야죠.' 우리는 이렇게
동상이몽을 하였다.
이명박을 '고死 -피의 중간고사'에 패러디한 포스터는 여러 선생님의 우려대로 다소 끔찍했지만 애들한테는
대박이었다. 그 패러디 포스터를 받기 위해 가던 길을 돌려오는 아이도 있었다. 개웅중학교 앞에서의 선전전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개웅중학생들은 정말 개념 찬 학생들이었다. 선전전의 호응이 무척 좋았을 뿐 아니라 그냥 뺏지만 받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명도
엄청 많이 했다.
엄청 힘이 나서 열심히 선전전을 하고 뺏지도 선전지도 거의 동이 날 무렵
한 학부모가 오더니
"자기 아들 이름 지우라"며 따이루(청소년인권활동가)한테 막 소리를 질렀다. 따이루가 댁의 아들이 누군지 내가 어찌 아느냐며
본인이 와서 지우게 하라고 막 싸우고 있는데 다른 학부모가 나타나 애들 보고 집에 가라고 막 소리를 질렀다.
근데 신기했던 것은 애들이 안가고 계속 서명을 하는것이다.
애들한테도 따이루한테도 말이 안먹힌 학부모가 학교에 전화를 해서 교무부장, 교장,교감, 선생님들이 나왔다. 합법적인 캠페인을 방해하는 게 불법이라며 계속 따이루가 싸우는데 나는 비굴하게 비켜서있었다. 교사가 그런 일에 관여하는 것이 밥줄을 내놓고 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판단력이
없는 아이들을 왜 선동하냐'는 말에 '판단력이 없는 애들이 시험은 어떻게 보냐'며 대거리를 하는데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면서 내가
17살인 따이루한테 배울 것이 정말 많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내가 그 선전전에 참여할 때 내 머릿 속 그림은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이 봉변을 당할 때 내가 학교 관계자와 대거리를 하는 그런 그림이었다.(내가 이래 봬도 대 전교조 서울지부
청소년생활국장이 아닌가?) 그런데 실제로 나는 숨어있을 수 밖에 없었다. 교사를 교사라 하지 못하고, 전교조를 전교조라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것이 나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전교조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의 전교조라면 어땠을까? 그 때의 전교조는 아마 이런 문제를 그것이 시험감독거부 투쟁이 되었든 답안지 제출 거부 투쟁이 되었든 ,
연가 투쟁이 되었든 교사가 중심이 되어 했을 것이다. 학생들의 교육의 문제를 교사가 대신해서 싸웠을 것이다. 그래서 일제고사의
문제도 아이들의 학습부담이 가중되고 사교육비가 가중된다는 지금의 담론보다는 교사의 평가권도 교육과정편성권 등 교사의 자율성과
교권이 침해되는 방향으로 펼쳐졌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슬프게도 우리는 그 일을 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일제고사
투쟁을 두고 조직 내 이견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런데 청소년들이 이게 우리의 문제라며 나서주니, 학부모들이 시험보게 하기
싫고 체험학습 보내겠다니 얼마나 기쁜가? 89년의 아이들이 "(선생님이 우리를 위해서 참교육을 펼칠 수 있도록) 선생님을
돌려주세요!'라고 외쳤다면 지금의 아이들은 "선생님은 힘이 없다, 우리들이 지켜주자 "라고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이렇게 투쟁을 한다면 우리도 우리 일상에서 청소년에 대한 보호주의는 거두는 것이 어떨까? 우리가 너희를 세상의 유혹에서부터 지켜주겠다며 시행하고 있는 두발규제나
체벌을 거두고 '얘들아, 자유는 투쟁없이 얻어지지 않는단다. 너희의 자유를 찾고 우리까지 지켜줘'라고 말이다.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의 일제고사 반대 하교길 홍보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