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작 소시집 리뷰
현실과 예술, 혹은 현실과 자연
―박진형, 성향숙 시인의 신작 세계
황치복(문학평론가)
1. 탐구로서의 현실, 혹은 현실의 신비로움
개성적인 시인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설렘을 동반한다. 게다가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마주하고 보면, 평론하는 사람으로서 값진 보물을 남몰래 간직하고 있는 듯한 은은한 기쁨을 숨기기 어렵다. 이번에 새롭게 신작 소시집을 통해 조감하게 될 박진형 시인과 성향숙 시인은 묵묵히 예술혼을 불태우면서 자신만의 시적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두 시인 모두 현실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지만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각각 다른데, 어쩌면 시인의 개성은 시적 관심의 대상도 대상이지만, 그 대상에 대한 태도와 관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박진형 시인의 경우 예술에 대한 메타적 관심이 강해서 예술적 사유라든가 심미적 성격에 대한 탐미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시인은 현실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어서도 그 원리와 배경에 대해 천착하고자 하는 탐구적 태도를 보여준다. 반면에 성향숙 시인은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의 변화와 그 변화로 초래되는 시인의 삶의 환경에 대한 변화를 음미하고 평가하려는 태도를 취한다. 그래서 외부의 긍정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그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향유하려고 하며, 반면에 부정적인 현실의 변화에 대해서는 그것의 부정적 영향과 파장에 대해서 분석하면서 비판적 태도를 취한다. 이러한 태도의 변화가 두 시인의 개성과 고유성을 발현하는 기제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박진형 시인의 신작에 대해서 읽어보자.
파릇파릇 사월의 보리밭 위에 종달새가
떠 있어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흰구름 속에
배경음악으로 떠 있어요 자유가 그립지 않다고
저 혼자 곤지랑거려요 쓰레기 하치장에 버려진
행낭 속에서 죽은 물새알을 꺼내요
당신의 잃어버린 환상에 대하여
종이비행기를 날려요 떴다 떴다 비행기
청보리밭 위에 까마득하게
떠 있어요
아메리카 갓 탤런트 한국에서 온
젊은 마술사가 가슴에 숨겨둔
낡은 편지 꺼내어 트릭 마술 펼쳐요
손바닥 위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종이비행기
사월 대낮에 컴컴한 객석으로 날아가
애인의 품에 안겼어요
눈 뜨고 코 베인 줄도 모르고
물개 박수 쳐대는 당신에게 종이비행기 꺼내어
무대 위로 휘이익 날려요 무대에 낮게 깔리다
뱅글뱅글 허공 속을 헤집고 다니다
딱 멈춰섰어요 아, 숨막히는 현실 속으로
종이비행기가 날아다녀요
후루룩 연기로 사그라진
새벽에 점핑한 숫자에 대하여
오오, 당신의 잃어버린 사랑에 대하여
말해주실래요 마음속으로 날아간 종이비행기
쓰레기통에 버려진 시든 장미꽃에 대하여
말해주실래요 당신
사월 청보리밭에
떠 있는 종달새의 기억을
오오, 사랑하는 당신
―박진형, 「종달새의 기억」, 전문
이 시의 “종달새”는 김수영 시인이 「푸른 하늘을」이라는 시에서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이라고 노래했던 바로 그 ‘노고지리’와 닮아 있다. 그러니까 종달새는 자유와 고독을 함축하는 은유적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비상한 종달새는 자유에 따르는 고독을 감내하면서 그것을 실현하고 있는 깨어있는 주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시인이 보기에 그러한 종달새는 현대사회에서 “흰구름 속에/ 배경음악으로 떠 있”을 뿐이며, “쓰레기 하차장에 버려진 행낭 속”의 “죽은 물새알”일 뿐이다. 껍질을 깨고 나와서 새로운 세계를 호흡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알 속에 몽매한 상태로 부유하고 있는 셈이다. 종달새의 “자유가 그립지 않다고/ 저 혼자 곤지랑거리”는 모습은 곧 현대인의 죽은 영혼을 시사한다.
이러한 상황을 돌파하고자 시인은 시적 환상을 발휘하여 종달새 대신 인위적인 “종이비행기”를 날리는데, 그것은 “당신의 잃어버린 환상”을 대신하기 위한 것이며, “새벽에 점핑한 숫자”, 그리고 “당신의 잃어버린 사랑”을 환기하기 위한 환유물이기도 하다. 여기서 “당신의 잃어버린 환상”이라는 대목이 주목되는데, 환상이란 현실적인 기초나 가능성이 없는 헛된 생각이나 공상을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라 낯선 익숙함의 드러남으로서 현실의 균열 사이에서 깨어나는 무의식적 진실이라든가 실재가 나타난 현상이라는 심리학적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니까 그것은 존재의 본질적 영역을 지칭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러한 환상을 내포한 종이비행기가 무대 위로 날아가서 “숨막히는 현실 속”을 헤집고 다니지만, 그러나 무대에서 종이비행기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시든 장미꽃”과 같은 것으로 전락할 뿐이다.
시인은 이러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사월 청보리밭에/ 떠 있는 종달새의 기억”을 환기하는데, 이러한 노력은 “자유가 그립지 않다고/ 저 혼자 곤지랑거”리는 현대인을 위해, 그리고 “잃어버린 환상”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 대신 “사월 대낮에 컴컴한 객석”에 앉아 있는 “애인의 품”을 향해서만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현대인을 위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 뜨고 코 베인 줄도 모르고” 무대 위에서 “물개 박수 쳐대는 당신”을 위해 울리는 경종이라 할 만하다. 이 시에서 인상적인 구도는 바로 비상의 모티프인데, 행낭 속의 죽은 물새 이미지라든가 쓰레기통에 버려진 시든 장미꽃의 이미지가 모두 조락과 하강의 심상이라면 “파릇파릇 사월의 보리밭 위에 종달새”가 떠 있는 이미지는 초월과 상승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구도는 자유란 온갖 현실적 속박과 질곡에서 벗어나 비상하는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것이 생동하는 생명의 본질을 실현하는 저 베르그송의 “생의 비약(élan vital)”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다음 작품은 현실의 불가사의함에 대해 사유한다.
*
진흙부처가
무사히 물길 건넜을까
등운산 골짜기가 숨겨둔
보랏빛 구름 너머 가운루
요란스레 우짖던 갈가마귀 떼
한 오백 년 종루에 모셔둔 범종도
휘돌이 손돌불바람 건너다 그만
두 쪽으로 쩡 금이 간 몸
잿더미 위에 덩그러니 앉아서
무자(無字) 화두 들고
참회 중이시네
*
세상에 꾹꾹 눈도장 눌러두고 묵매 햇가지에 새로 눈뜬 두벌꽃 으앙으앙 첫울음 소리 연속동작으로 매화꽃 터뜨리는 봄날에 ―박진형, 「고운사 범종 너머」, 전문
이 시는 시인이 「시작노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최근 발생한 의성군 산불로 인해서 소진한 천년고찰 고운사의 일화를 담고 있다. 시적 내용은 비교적 단순해서 진흙부처가 물길을 건너지 못하는 것처럼 고운사의 “한 오백 년 종루에 모셔둔 범종”이 “휘돌이 손돌불바람”을 건너지 못하고 그만 “두 쪽으로 쩡 금이 간 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범종을 두고서 시인은 “무자無字 화두 들고/ 참회 중이시네”라고 해석하면서 만사가 공空이며, 본래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 없다는 무아無我의 법法을 환기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런 논리로 보면 고운사라든가 가운루, 그리고 범종이라는 것도 실은 연기緣起로 인해 존재하는 것이며 자성自性이 없는 것이라는 불교의 가르침에서 볼 때 “휘돌이 손돌불바람”을 건너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이때 무자無字 화두를 들고 참회한다는 것은 가유假有에 대해 집착한 것을 참회하는 것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마지막 풍경으로 시인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덧붙여 놓고 있다. “묵매 햇가지에 새로 눈뜬 두벌꽃 으앙으앙 첫울음 소리 연속동작으로 매화꽃 터뜨리는 봄날에”라고 하면서 새 생명의 신비에 경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장면에도 시인은 세심하고 정교한 장치들을 마련하고 있는데, 시인은 청매나 홍매, 혹은 백매나 납매라고 하지 않고 굳이 묵매를 가져오고 있다. 묵매란 사군자의 하나인 매화로서 수묵화를 통해 묘사된 매화이다. 그러니까 묵매는 새롭게 햇가지에 꽃을 피울 수 없는 가상의 존재인 셈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왜 굳이 이런 설정을 했을까? 앞서 시인은 가유假有에 대한 집착을 참회한다고 했는데, 화엄의 사법계事法界라는 관점에서 볼 때, 존재의 현실은 모두 가유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으며, 있는 그대로 진실 아닌 것이 없는 것이 된다. 즉 가유는 공空을 반영하면서 그대로 진리를 발현하는 현상이 되는 것이다. 심우도尋牛圖의 입전수수入廛垂手의 경지라 할 만하다. 이렇게 될 때 가유로서의 현실은 매일 매일 새롭고 놀라운 것이 된다.
2. 예술가의 혼과 메타시
박진형 시인의 나머지 세 작품은 모두 예술가의 삶과 풍모를 그리고 있으며, 그러한 모습을 통해서 예술혼이라든가 심미적 사유의 바탕을 탐구하려고 한다. 우리나라 근대의 천재 화가로 알려져 있는 이인성 화백에 대한 시가 두 편이고, 김영태 시인과 김춘수 시인, 그리고 천상병 시인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 한 편이다. 모두 예술가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예술에 대한 일종의 메타시라고 할 수 있는데, 개성적인 면모를 발산하며 순수한 예술적 열정으로 작품에 임했던 예술가들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인의 관심을 확인할 수 있다.
강아지풀이 흔들린다
통통통 알이 밴 여름 하늘
요요요 강아지풀 간지럼 태우며
아들놈 무등 태우고 놀던 사내가
심심하면 옆구리에서 흰구름 꺼내어
심드렁한 아이에게 먹어보라고 눈짓한다
(그끄저께 내가 하늘에서 꾸어다 놓은 구름이었다)
스피치는 어디 갔나
허둥지둥 손에는 끈이 들려 있다
집 나간 스피치 부르러 간
사내는 돌아오지 않는다
요요요 강아지
강아지풀은 강아지풀
하늘 한쪽이 무너졌다 터엉 빈 허공
챙 넓은 오동나무가 연신 메꾸고 있다
―「강아지풀에게-이인성1」, 전문
「가을의 어느 날」이라든가 「경주의 산곡에서」 등에서 강렬한 원색적 색채와 향토적 풍물을 통해서 한국적 감각을 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한국의 고갱’ 이인성 화가의 풍모를 그리고 있다. 서양의 새로운 기법을 수용하면서 한국적 향토성을 그리고자 했던 이인성은 파란 하늘과 붉은 흙, 초록 나무와 황금빛 햇살 등 우리 자연을 대표하는 색과 풍경, 그리고 사람들이 항상 그의 그림의 주제였다고 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색채를 소중히 생각했던 화가에게서 시인은 세속적 이해관계를 초탈한 예술가의 진정성과 순수함을 발견한다. 이 시에서 아들놈을 무등 태우고 놀던 사내의 모습이라든가 “옆구리에서 흰구름 꺼내어/ 심드렁한 아이에게 먹어보라고 눈짓하”는 장면들에서 그러한 모습이 드러나 있는데, 이러한 모습들은 세속적 가치와 이해관계, 그리고 현실적인 논리의 영역을 떠난 어린아이의 동화적 세계에 속한다.
시인이 아무런 의미 없이 되풀이하는 듯한 “요요요 강아지”라든가 “강아지풀은 강아지풀”과 같은 시적 진술들은 어떠한 수사와 매개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그대로 바라보는 여여如如의 정신이 담겨 있는데, 이러한 표현은 「개쉬땅나무에게-이인성2」에서도 “개쉬땅나무는 개쉬땅나무”라는 구절로 반복된다.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여여의 경지란 마음자리가 텅 비어 있기에 있는 그대로를 비출 수 있는 것인데, 그러한 점에서 이러한 경지는 곧 구도와 깨달음의 지평을 시사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시인이 둘째 연에서 “스피치는 어디 갔나”라고 하기도 하고 “집 나간 스피치 부르러 간/ 사내는 돌아오지 않는다”라고 하는 장면은 예사롭지 않은데, “스피치”가 강아지의 이름을 지칭하면서도 ‘언설(speech)’의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즉 사내로 지칭되는 예술가는 언설이라는 언어를 놓아버리고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지평에서 “강아지풀은 강아지풀”이라는 동일성의 세계로 침잠하는 셈인데, 이러한 구도에서 우리는 세계의 진상을 읽어내는 예술가의 초상을 발견할 수 있다. 다음은 시인들이 지닌 예술혼이다.
1
앉은뱅이 나무의자에 왼발 올리고
무릎 위에 다소곳이 손 내려놓은
초개눌인(草芥訥人)은
중절모 깊숙이 눌러쓰고
검은 테안경 너머로
퐁퐁 구름도넛 피워 올리고 있다
아슬한 연기 너머로 춤을 따라 갔던가
물속에 가라앉아 꼬르르
물방울 튕겨올리는 비오리처럼
천연덕스레 반질반질한
무소 구두코처럼
2
머리숱 적은
대여(大餘)**의 머리에는
베레모가 얹혀야 제격이다
남불 어디쯤에서 공수해온
체크무늬 베레모
아래
네모난 안경은
통영 봄바다빛을 하고
나를 열심으로 들여다본다
이승에서 여나믄 번은 더 만났어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듯
무덤덤 눈 맞추고 있다
3
문인 초상에 갈필로 그려진
천상병은 금세 얼굴이 찌그러져
새 두 마리 날려 보낸다
저승 갈 노잣돈
홀라당 다 태워 먹고
허허 웃으며 간다
울 똥 웃을 똥 묘하다
이빠진 막걸리잔에
서녘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한 마리
―「세 개의 언어 풍경」, 전문
각각 김영태 시인, 김춘수 시인, 천상병 시인의 예술가적 풍모와 심미적 특성을 비유적인 언어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먼저 초개눌인草芥訥人 김영태 시인을 그린 장면에서 시인은 “퐁퐁 구름도넛 피워 올리고 있다”라고 하거나 “아슬한 연기 너머로 춤을 따라 갔던가”라고 하면서 세사를 초탈한 무욕의 예술가상을 그리고 있으며, 무용에 대해 열광하며 무용 평론에 열심이던 시인의 예술 활동을 환기하고 있다. 특히 “아슬한 연기 너머”라는 표현은 시인의 심미적 경향성으로서 독특한 감각적 분위기라든가 시적 환상의 장면들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무無에 대한 인식에 천착했던 시인의 예술적 지평을 시시한다. 마지막으로 시인이 묘사하는 “물방울 튕겨올리는 비오리처럼/ 천연덕스레 반질반질한/ 무소 구두코”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생긴 그대로 조금도 거짓이나 꾸밈이 없는 순수 예술, 혹은 자연스러운 이미지를 통해 특정한 목적의식 없이 어떤 유희나 아름다움 그 자체를 추구하는 시인의 예술혼을 함축하고 있다.
대여大餘 김춘수 시인의 예술적 풍모를 그린 장면에서 시인은 “남불 어디쯤에서 공수해온/ 체크무늬 베레모”의 이미지를 통해서 시인의 세련된 시적 기풍과 사상적 경향을 암시한다. 특히 “통영 봄바다빛”의 “네모난 안경”의 이미지를 통해서 존재의 근원으로 육박해 갔던 김춘수 시인의 시적 도전과 모험을 환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승에서 여나믄 번은 만났어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듯/ 무덤덤 눈 맞추고 있다”는 대목에서 드러나는 김춘수 시인의 면모인데, 그것은 모든 대상을 처음 본 듯이 기존의 어떤 선입견도 배제하고 현상학적 환원을 통해서 대상의 본질에 다가가려고 했던 김춘수 시인의 도전과 모험의 예술혼을 암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천상병 시인에 대해서는 “새 두 마리”의 이미지를 통해서 세상사에 홀가분했던 시인의 자유분방한 풍모와 예술혼을 암시한다. 또한 “저승 갈 노잣돈/ 홀라당 다 태워 먹고/ 허허 웃으며 간다”는 표현을 통해서 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해 초연했던 생명과 물질적 세계에 우원했던 정신적 달관의 경지를 시사하기도 한다. 특히 “울 똥 웃을 똥 묘하다”는 구절을 통해서 시인은 천상병 시인이 평소 드러냈던 어린아이와 같이 솔직했던 감정 표현과 미묘한 내면 풍경을 암시하고 있다. 마지막에 묘사되고 있는 이미지, 즉 “이 빠진 막걸리잔에/ 서녘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한 마리”라는 심상은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라는 「귀천」의 시구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러한 표현 속에는 이승의 소소한 행복을 분에 넘치는 축복으로 수용하며 하늘을 동경했던 고고한 천상병 시인의 예술혼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박진형 시인이 추구하는 예술이란 맑고 깨끗한 시혼이 발현되는 경지에서 형성되는 깊고 그윽한 지평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경지에는 예술을 자신의 존재 이유로 삼고서 그것을 위해 헌신하는 낭만적 예술혼의 개념이 배어 있다. 박진형 시인이 주목하는 김영태, 김춘수, 천상병 시인들이 모두 자신의 예술을 자신의 삶의 유일한 척도로 삼고서 그것을 위해 순교하듯이 살았다는 시적 묘사들을 보면 그러한 예술혼의 자장에 깃들고 싶은 시인의 열망을 읽어낼 수 있다.
3. 물드는 자연, 향유하는 자연
성향숙의 신작에 드러나 있는 시적 관심은 자연과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자연에 대한 두 편의 시와 현대사회를 분석하는 세 편의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모두 개성적일 뿐만 아니라 시적 깊이와 완성도가 높기도 하다. 몇 편의 시로 모든 것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성향숙 시인은 신작에서 대체로 자연이 아날로그적 연속성의 세계로 그려진다면, 사회는 분절화된 디지털의 세계로 묘사된다. 그러니까 자연은 인간과 한 치의 틈도 없이 결합되어 서로 스며들고 배어드는 관계라면 사회는 분절화된 파편화의 세계로서 인간 또한 그 속에서 고립되어 유동적인 흐름을 보이게 된다. 먼저 신작에 묘사되어 있는 자연의 양상을 읽어보자.
베스킨라빈스 31처럼 포장된 상자가 배달되었다
만발한 꽃다발, 입맛을 자극하는 하늘, 활짝 푸름을 기대한 상자의 기분은 아직 먼지 앉은 겨울이 녹아내리는 중이다 소멸의 끝을 붙잡고 밥풀처럼 걷는 햇살은 눈더미의 눈물을 짜내고 있다
벚꽃 피기 전에 헤어지자! 치기 어린 이별까지 얹어 무료 배송이다 늦은 계절의 모퉁이에서 당신은 침묵 속으로, 나는 눈물 속으로 이질적 문장이 전개되었지 발로 툭 찬 돌멩이가 마침표처럼 마음 가장자리에 멈춘다
비가 오는 오늘은 당신과 마주쳐도 괜찮아 우산을 낮춰 들고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 어떤 변덕을 부릴지 모를 마음은 햇살 없이도 화사하게 피어날 거야 계절이 바뀌어야 걷히는 이별의 마음처럼
몸을 웅크려 겨울을 표현하는 당신의 방식 나의 눈시울이 벚꽃처럼 누군가의 바람이 되어갈 때 아기처럼 당신의 신생 언어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 좋겠어
상자 속엔 완성하지 못한 사랑의 모가지만 희고 가늘고 길었다
―「스쿱마켓에서 봄을 주문했다」, 전문
봄에 대한 시인의 정서적 반응과 봄이라는 계절이 지닌 변화의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상식적으로 봄은 만물이 깨어나는 생동하는 계절이자 부활의 계절로 인식된다. 하지만 시적 전개 과정을 보면 봄은 변화의 계절이자 이별의 순간으로 포착된다. “소멸의 끝을 붙잡고 밥풀처럼 걷는 햇살은 눈더미의 눈물을 짜내고 있다”라는 표현을 보면, 봄이라는 계절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순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멸을 슬퍼하는 겨울이라는 계절을 밀어내는 강압적인 계절이기도 하다. 그런데 시인이 포착하는 봄의 함축적 메시지는 “벚꽃 피기 전에 헤어지자!”라는 이별의 통고인데, 이러한 전언이 “치기 어린 이별”로 해석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결단을 미루며 미적거리는 변덕스러운 것으로 수용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봄은 좀처럼 다가오지 못하고 미적거리는 자연 현상으로 이해되고 있는 셈인데, 이러한 시상은 봄이라는 계절이 꽃샘추위로 인해 지연되는 현상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봄의 도래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의 조급함이 야기한 현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인은 “늦은 계절의 모퉁이에서 당신이 침묵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안타까이 바라보기도 하고, “계절이 바뀌어야 걷히는 이별의 마음”이라고 하면서 봄의 결단을 촉구하기도 한다. 결국 이러한 조급함은 “아기처럼 당신의 신생 언어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 좋겠어”라는 직설적인 언어로 토로되고 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자 속엔 완성하지 못한 사랑의 모가지만 희고 가늘고 길었다”라고 하면서 더딘 봄의 도래를 고대하는 시인의 내면 풍경을 비유적 언어를 통해서 묘사한다. 시인이 봄을 이처럼 기대하는 이유는 “만발한 꽃다발, 입맛을 자극하는 하늘, 활짝 푸름” 등의 이미지가 대변하고 있는데, 이러한 이미지의 다발들은 풍성한 삶의 생동하는 의욕을 환기하지만, 무엇보다 봄은 복욱한 향기로 다가온다.
오, 나도 나도!
불쑥, 봄!
그녀가 베란다에 분홍색을 불러들이자
나는 분홍색 그녀를 소비한다
봄을 풀어 놓고 향기가 되어 나부낀다
나는 곧 레고블록처럼 분해되고
그녀의 조각들이 섞여 조립될 것이다
그녀는 안녕일까
사랑보다 달콤한 사탕일까
그녀의 장면을 스케치하여 귓볼에 건다
옆집 언니처럼 빈손에 꼭 그러쥔다
새끼손가락이 저린 어린 날의 약속처럼 그녀를 각인한다
그녀의 오데코롱
그녀의 향기로운 컨디셔너
그녀의 오감
코가 벌름거리는 그녀의 모든 취향
두근두근 바람이 불고
아지랑이처럼
바람의 이름으로 흩어질 나의 체위
―「나도 봄!」, 전문
“그녀가 베란다에 분홍색을 불어들이자/ 나는 분홍색 그녀를 소비한다”라는 표현이 봄을 만끽하는 시인의 모습을 대변해준다. 하지만 이 시의 가장 큰 특징은 시인 자신이 향기로 분해되는 상상력이다. “봄을 풀어 놓고 향기가 되어 나부낀다”는 시적 진술은 시적 주체가 향기가 되어 나부낀다는 뜻으로 해석되는데, 이러한 대목에서 시적 특이성을 발견할 수 있다. 시인은 계속해서 “나는 곧 레고블록처럼 분해되고/ 그녀의 조각들이 섞여 조립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분해되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으며, 그처럼 분해된 실존은 봄의 조각들과 섞여서 다시 재구성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이러한 진술은 봄과 시적 주체가 만나서 분해되고, 다시 새롭게 조립된다는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는데, “새끼손가락 저린 어린 날의 약속처럼 그녀를 각인한다”는 표현 속에서도 ‘몸에 도장이 찍히듯이 새겨지는 봄’이라는 발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니까 봄은 시인과 분해되어 합체됨으로써 새로운 구성물로 거듭나게 된다.
봄이 이처럼 시인과 하나로 합체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봄이 향기로 분해되어 시인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J. P. 리샤르가 시의 깊이라는 책에서 탁월하게 분석한 것처럼 향기란 무엇보다 분해되고 퍼지는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존재의 스침을 암시한다. 그러니까 향기는 자신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으면서 날아가는 정신으로 기화되었기에, 육체라는 껍데기가 없는 육체로서 다가오는 것이다. 그리하여 향기는 퍼지는 힘으로서, 자신의 본질을 만질 수 없는 입자들의 무한 속에 흩어놓을 수 있는 이 힘으로 인해 자신을 유감없이 발산시키면서도 접근하기 어려운 어떤 다른 세상을 상기시켜주는 특별한 힘으로 작동한다. 육체임과 동시에 육체의 부정으로서 향기는 언제나 다른 곳을 암시하기 위해 존재하면서 언제나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은 욕망을 추동하는 기제가 된다. 시인이 “그녀의 오데코롱/ 그녀의 향기로운 컨디셔너/ 그녀의 오감”이라고 하면서 봄이 지닌 향기라는 감각을 강조하면서 “아지랑이처럼/ 바람의 이름으로 흩어질 나의 체위”라고 하여 자신의 변신과 갱신의 이미지를 내세우는 것은 바로 향기의 이러한 속성을 반영한 것이다. 향기는 존재의 해체와 갱신을 통해서 다른 세상을 암시하게 되는데, 봄이라는 자연이 시인의 변신을 추동하는 향기의 힘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4. 분초의 사회, 액체의 현실
성향숙 시인이 바라보는 사회와 현실은 자연의 질서와 갱신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묵시록적인 특성을 지닌다. 시인은 「육각형 강박」이라는 작품에서 근육질을 숭상하는 현대사회의 병폐를 고발하는데, “육각형 종족”이라든가 “기하학적 존재들”이라는 수사적 표현들이 근육을 숭배하는 현대인들이 지닌 수학적 속성과 비인간성의 내막을 폭로하고 있다. 특히 “너와 나의 다른 각도는/ 가끔 어깨동무를 했다가도/ 상실의 징후를 느낀 톱니바퀴처럼 튕겨나간다”라는 표현을 통해서 근육질의 힘에 대한 숭배는 관계의 파국을 통해서 고립되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인간관계의 주요한 원인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더욱 현대인을 옥죄는 것은 분과 초를 다투는 디지털 시대의 속도이다.
걸어놓은 유튜브 음악에 틱톡이 걸리면
나의 고립은 폭발한다
꽃 피는 시간에 노래하는 새의 시간에
구름의 이동 시간에
조각배처럼 올라타 보지만
틱톡틱톡 재빠른 페이지의 시간들
웃음기 왔다 사라질 뿐
넘기는 발상의 고립 몇 조각들
가사 없는 노래를 부르는 세탁기
구석구석 초침을 흡입하는 로보락
토스트 기계가 까맣게 탄 아침을 뱉어낸다
지하철역이 외출 범위에 검색되면
나는 버터 바른 식빵과
여과지 통과한 시간 추출액을 입에 넣고
쇼츠로 넘어간다
흘끔거리는 타인의 순간을 탐닉한다
찰나가 떠다닌다
나는 짧게 잘린다
희미해지다 점점 사라진다
클릭한 타자들을 질질 흘리며
내가 거리를 활보한다
몇 분이, 몇 초가 태어나는 동시에 죽는다
방금 지난 시간도 잡아먹힌다
파편화된 내가 겨우 남는다
―「분초 사회」, 전문
시인이 보기에 디지털 사회는 순간과 찰나가 지배하는 사회로서 그것은 시간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아날로그적 사회를 분절하고 파편화한다. 앞서 인용한 작품에서도 시인은 “봄을 풀어 놓고 향기가 되어 나부낀다”라고 하거나 “나는 곧 레고블록처럼 분해되고”라고 하기도 하고, “아지랑이처럼/ 바람의 이름으로 흩어질 나의 체위”라고 하면서 자신의 존재가 조각으로 분해되고 해체된다는 상상력을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그때의 해체가 갱신을 위한 비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면 여기에서의 분해와 파편화는 유기적인 존재로서의 파국과 정체성을 지닌 자아의 몰락을 의미한다.
그래서 시인은 “고립”이라든가 “파편”의 이미지를 시적 공간 여기저기에 심어 놓고 있는데, “나의 고립은 폭발한다”라든가 “넘기는 발상의 고립 몇 조각들”, 그리고 “파편화된 내가 겨우 남는다”와 같은 시구들이 그러한 예에 해당한다. 고립과 파편화의 원인에 대해서 시인은 “틱톡에 걸리면”이라든가 “쇼츠로 넘어간다” 등의 표현을 통해서 중국의 동영상 플랫폼과 유튜브에서 바쁜 현대인들의 관심을 사로잡기 위해 올리는 짧은 동영상 콘텐츠를 제시하고 있다. 쇼츠로 대변되는 사회가 바로 “분초 사회”의 핵심인 셈인데, 분과 초 단위로 우리의 삶을 분절화하고 파편화하는 것이 바로 디지털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꽃 피는 시간”이라든가 “노래하는 새의 시간”, 그리고 “구름의 이동 시간”과 같은 자연의 시간이 지닌 유기적인 지속성의 시간을 순간으로 끊어내어 맥락을 상실하게 하는데, 이는 베르그송이 말한 기하학적 시간으로서의 죽음의 시간에 해당한다. 생명은 무엇보다 지속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연속성의 시간을 전제하는데, 파편적이고 분절적인 시간은 시간의 공간화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기계적 시간으로서 삶의 유기체적 맥락을 붕괴시키고 마는 것이다. 시인이 세탁기라든가 로보락, 토스트 기계 등의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우기도 하고, “흘끔거리는 타인의 순간을 탐닉한다/ 찰나가 떠다닌다/ 나는 짧게 잘린다/ 희미해지다 점점 사라진다”라고 순간과 소멸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은 자아 정체성의 교란과 함께 생명체로서의 지속성이 붕괴되는 현상을 주목한 것이다. 현대인을 위협하는 것은 분초라는 찰나의 분절화와 함께 액체 사회의 유동성도 있다.
너는 없는 사람이다
나도 없는 사람이다
사람은 한 명씩 있고 나무는 한 그루씩 있고
사물은 한 개씩 있다
뼈대가 없는 이곳의
정체성은 물이다
해파리처럼 음률을 따라가는 액체
흘러든 사람들이 사차원의 시공간을 만든다
도시가 부푸는 공식은 없다
아니, 공간이 부푸는 공식의 비밀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제3의 일요일들
생동하는 표면장력의 상징들
없는 너와 없는 내가 부재하면
빈 하늘만 정주한다
유입된 잠들은 사방 천지 별처럼 흩어진다
지하철에서 내린 한 무리의 전략이
밤이면 사라지는 곳
이곳은 물의 기호로만 연결되어 있다
―「리퀴드 폴리탄」, 전문
리퀴드 폴리탄(Liquid politan)이란 액체(liquid)와 도시(politan)가 결합된 합성어로, 액체처럼 유연한 도시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액체처럼 유연한 도시라는 것은 광역 교통의 발달과 인구의 증가로 사람들의 가치관이 유동성 있게 변화하게 되면서, 하나의 도시가 고유한 특성과 성격을 가진 도시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패턴의 변화에 따라 유동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광역 교통망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유동적이게 되거나 직장과 쇼핑 등의 생활 인프라로 인해서 도시적 유연성이 증가하는 현상 등을 꼽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유동성으로 인해서 삶의 근거지로서 ‘고향’이라는 개념이 없어지고 지역사회의 유대감이 소멸함으로써 불안정한 삶의 양식이 강요된다는 점이다.
파편화가 인간의 고립을 초래하고 정체성의 위기를 야기하며, 생명의 지속성을 위협하는 것처럼 유동성은 현대인의 삶의 근거를 박탈해서 부평초처럼 부유하게 한다. 지그문트 바우만(1925~2017)이 강조한 것처럼 액체 사회에서 사람들은 마치 액체가 녹아 흐르듯 이런저런 관계들로 스며들지만, 그 관계들은 찰나적이고 표피적인 것에 머물고 만다. 이러한 관계에서 인간의 유대감이 공고하게 형성될 리가 없으며, 가치관이나 도덕적 덕성이 정립될 리 없고, 견고한 자아의식이라든가 정체성이 형성될 수 없다. 시인이 “너는 없는 사람이다/ 나도 없는 사람이다”라고 하면서 주체성과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은 액체 도시 주민들의 유동성과 몰개성의 성격을 부각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뼈대 없는 이곳”이라든가 “해파리처럼 음률을 따라가는 액체”, 그리고 “이곳은 물의 기호로만 연결되어 있다”는 표현들은 모두 유동적인 삶의 양태와 관계의 양상을 암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유동성은 결국 현대인의 삶을 불안정하게 함으로써 불안과 고독으로 점철된 망탈리테mentalité를 강요할 것이다. “없는 너와 없는 내가 부재하면/ 빈 하늘만 정주한다”라는 구절이 액체 도시에서 겪게 되는 현대인의 공허감과 허탈감을 시사해준다.
성향숙 시인이 그려내는 사회의 모습은 분열적이고 파괴적인 국면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포스트모더니즘적 관점에서의 문명비판이라 할 만하다. 육각형 인간으로서의 근육에 대한 숭상, 그리고 파편화와 분절화를 강요하는 쇼츠로 대변되는 분초 사회, 부평초처럼 부유하는 유동적인 흐름만을 강조하는 액체 사회 등의 모습은 모두 파편화된 조각으로 고립되는 단자적 존재를 강요한다. 이에 반해 ‘봄’으로 대변되는 자연의 질서는 시인을 해체하고 분해하여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도록 한다. 뚜렷한 이분법적인 대립 구도를 띄고 있지만, 그렇기에 더욱 선명한 문명비판의 정신은 빛나는 국면을 지닌다.
---------------------
황치복|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으로 등단했으며 한국시조시인협회 평론상을 받았다. 저서로 『동아시아 근대 문학사상의 비교연구』, 『현대시조의 폭과 깊이』, 『젊은 시인듫의 새로운 시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