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예천하면 떠오르는 유명관광지가 한 곳 있다. 바로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삼강주막이다. 삼강주막은 낙동강, 내성천, 금천 세 물줄기가 만나는 삼강나루에 복원된 전통주막이다. 지금의 삼강주막은 2대 주모였던 고유옥연 할머니가 세상을 뜬 2005년 이후 버려져 있던 것을 2007년 복원하여 관광자원화한 것이다. 수령 600년 회화나무와 짝을 이룬 구 삼강주막과 그 옆에 새롭게 문을 연 현 삼강주막. 그리고 인근 삼강리 마을에 조성 중인 삼강문화단지와 강문화전시관 등. 세월의 흐름과 함께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질 것 같았던 삼강나루와 삼강주막이 이렇게 다시 부활할지 그 누가 알았을까? 그런데 등잔 밑이 어두운 법. 우리고장에도 이에 못지않은 곳이 있다. 바로 ‘사문진나루’다.
낙동강 수로의 중심지 사문진
예나 지금이나 수로는 물류수송이라는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원거리 대량수송에 있어서는 하늘길이나 육로에 비해 수로가 단연 유리하다. 해양수로든 내륙수로든 배를 정박하고 사람과 물자가 이동하고 하역하는 공간이 필요한데, 이를 항구·포구·나루(터)라 한다. 대구를 경유하는 낙동강은 남한에서 제일 긴 강인만큼 예로부터 나루가 많았다. 낙동강 대표 나루로는 대략 20곳 정도가 알려져 있다. 부산에서 대구를 거쳐 안동에 이르기까지 낙동강 대표 나루 20개를 순서대로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구포·신포·불암·물금·녹산·가야진·본포·악양·도흥·웃개·율지·대암·사문진·개포·낙동·토진·하풍·삼강·하회·의촌’. 이중 대암과 사문진은 우리 고장 달성군에 있는 나루다. 사문진은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와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호촌리를 연결했던 나루면서, 동시에 낙동강 수로상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했던 나루다. 1446년(세종 28) 사문진에 무역창고인 화원창이 세워지고, 1472년(성종 3) 대일무역을 위한 왜물고(倭物庫)가 설치되는 등 조선시대 사문진은 경상도와 대구를 들고나는 모든 물자의 집산지였다. 이후 사문진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8·15 광복 직후까지도 낙동강 수로상의 주요 나루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사문진이라는 이름에는 여러 유래설이 있으나 크게 보면 두 가지다. 하나는 강가에 모래가 많아 ‘사문진(沙門津)’, 다른 하나는 조선중기까지 인근 화원읍 본리리 인흥마을에 대사찰 인흥사가 있었다하여 ‘사문진(寺門津)’이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알고 넘어가야 할 내용이 있다. ‘모래 사’자를 쓰는 ‘沙門’이라는 표현이 본래 불교 승려를 일컫는 용어라는 사실이다. 그 용례로는 가창면 백록동 남지장사 일주문에 걸려 있는 ‘최정산남지장사사문(最頂山南地藏寺沙門)’ 편액을 들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유교에서도 유학자를 가리켜 한자는 다르지만 ‘사문(斯文)’이라고 한다는 점이다.
사문진 주막촌
예천 삼강나루와 대구 사문진나루는 비슷한 점이 많다. 먼저 삼강나루가 낙동강·내성천·금천 세 물줄기 합류지점에 위치해 있다면, 사문진 역시 낙동강·금호강·진천천 세 물줄기 합류지점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참고로 낙동강은 남한에서 제일 긴 강이요, 내성천과 금호강은 낙동강 최대 지류에 속하는 강이다. 다음은 이들 나루가 낙동강 수로 대표 나루였던 만큼 창고와 주막을 비롯한 각종 편의시설 등이 잘 갖춰져 있었다는 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두 나루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던 주막을 부활시켜 관광자원화 하는데도 성공했다. 또한 삼강주막이 600년 회화나무 그늘 아래에 있는 것처럼 사문진주막 역시 500년 팽나무 그늘 아래에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러고 보니 주막촌 메뉴도 비슷하다.
상전벽해 사문진
조선전기 세종 조에 이미 무역창인 화원창이 설치되었던 사문진. 그로부터 57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사문진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까? 2012년부터 사문진에서는 매년 ‘100대 피아노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말 그대로 100대의 피아노를 동시에 한 무대에 올린 전국 최초의 피아노 콘서트다. 이 콘서트는 지금으로부터 119년 전인 1900년 3월 26일, 미국인 선교사 사이드보텀 부부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의 피아노가 사문진을 통해 들어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사문진에는 피아노 관련한 조형물들이 많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 또한 여기에 연유한 것이다. 또 사문진은 대구출신 영화감독 이규환의 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1932년)의 촬영장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한 조형물도 설치되어 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2018년도에 설치된 왕복 2km 강변 데크길은 사문진의 또 다른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편 사문진나루는 삼강나루와는 달리 지금도 배가 다닌다. 다름 아닌 사문진과 인근 강정보 사이를 운행하는 관광유람선이다.
에필로그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아름다운 경치를 시나 음악으로 노래했다. 이와 관련해 우리지역에 전하는 유명한 전설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200년 전 신라 경덕왕이 사문진과 화원동산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이곳에다 행궁을 짓고 아홉 번이나 다녀갔다는 전설이다. 물론 그 이후에도 많은 문사들이 이곳을 찾아 시를 남겼다. 최근에는 사문진을 노래한 가요도 여러 곡 만들어졌다. 이중에는 우리고장 출신으로 80평생을 고향땅과 고향문화를 지키는데 열정을 쏟고 있는 작사가 조영창[전 달서구문화원장] 선생의 작품도 있다.
사문진 나루(작사 조영창, 작곡 이원녕)
내 사랑이 떠나가네 사문진 나루 / 칠백리 물길 따라 흘러서 가네 / 못 지킬 그 약속을 그리 쉽게 말하더니 / 눈물만 남겨 놓고 가는 사람아 / 가는 이야 좋겠지만 남는 나는 어쩌라고 / 아 이별의 강나루 사문진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