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0년 가을,
나는 취리히의 어느 서점에서 <Jerzy Kukuczka, Im vierzehnten Himmel>(예지 쿠쿠츠카, 14번째 하늘에서)의
리스트를 찾을 수 있었으나, 정작 사고 싶은 그의 책은 다 팔렸기 때문에 사지 못했다.
책을 구하기 위해서는 며칠을 기다려야 했으나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다.
귀국후, 이 일을 수문출판사의 이수용 사장에게 말했더니 곧 주문하겠다는 것이었다.
그후 몇달이 지나서야 이사장을 통해 이 책은 내 책상머리에 진을 친 것이다.
사실 나는 'mountain' 지를 통해서 그의 존재를 알았다.
그후 그의 등산활동과 생각에 관심을 가져왔다.
특히 나는 8,000미터봉 증후군(症候群)과 14개 완등에 대해 라인홀트 메스너,
마르셀 루에디(그는 1986년 봄까지 10개를 등정하고,
같은 해에 마칼루와 로체, 에베레스트를 오르려 했으나, 11번째의 마칼루에서 하산 중에 폐수종으로 사망했다),
예지 쿠쿠츠카 등 일군의 등산가들이 러닝 레이스를 벌리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에
쿠쿠츠카의 글이 나왔으면 하고 바라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라인홀트 메스너와 쌍벽을 이루고 있다는
그가 히말라야 로체의 남벽에서 등반중에 불의의 추락으로 사망했다는 비보를 접하였을 때
나는 무척 애석하게 생각했으며 진심으로 그의 명복을 빌었다.
이제 그의 활동도 갔고, 생각도 갔다는 마음에 나는 더욱 애절했다.
디너파티가 한창 무르익어가는 와중에 쿠쿠츠카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의 책이 나왔다는 안드르제이 파츠코브스키
폴란드 산악연맹 회장이며 국제산악연맹(UIAA) 부회장 이 말했다.
깊어가는 아테네의 밤하늘에 남구(南歐) 특유의 봄바람이 스쳐가는 테라스 위에서
우리는 언젠가 쿠쿠츠카의 책을 읽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잠겼다.
예지 쿠쿠츠카는 1948년 폴란드의 카토비츠에서 태어났다.
그는 두 아들을 둔 가장으로서 카토비츠에 있는 슐레지엔의 광산에서 전기기술자로 일해왔다.
1970년에 들어와서 본격적인 등산을 시작한 그는
고향의 산 타트라 산군에서 등반기술을 익혔으며, 1972년 처음으로 해외원정에 나섰다.
해외원정이라야 이웃나라의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그리고 프랑스의 알프스 산군 등이었다.
그는 특히 몽블랑 산군과 돌로미테 산군에서 거벽을 등정함으로써 보다 높은 산군을 오르기 위한 기반을 닦았다.
1974년에는 미대륙의 알래스카, 1976년과 1978년에는 힌두쿠시의 원정등반을 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쿠쿠츠카의 등산활동에 획기적인 영향을 준 히말라야 등산은 1977년부터라고 말할 수 있다.
1977년 10월 낭가 파르바트의 남서릉 7,800미터에 실패함으로써 히말라야 첫 고배를 마셨으나,
1979년 10월 로체의 무산소 등정을 시작으로 8,000미터급 고봉의 14개 완등에 대한 등정 레이스에 참가하게 됐다.
그때 히말라야에서는 라인홀트 메스너가 선두 주자로 달리고 있었다.
이에 홀연히 도전장을 낸 쿠쿠츠카는 그때부터 8,000미터급 고봉 등을 차례로 정복하기에 이른다.
어느 때는 무리한 직장의 이탈,
또 어느 때는 돈도 마련 못하고 사전 허가도 없이,
또 어떤 때는 히말라야 현지에서 한 원정대에서 다른 원정대로 옮겨가는 과용 등,
여러가지 부작용과 윤리문제가 일어났으나 아무튼 그의 마지막 8,000미터봉 시샤 팡마를
1987년에 알파인 스타일로 등정함으로써 14개 고봉들의 완등을 끝냈다.
이것은 1986년 로체를 끝으로 완등의 위없을 달성한 라인홀트 메스너에 이어 두번째 일이다.
메스너가 1970년 낭가 파르바트 등정을 시작으로 1986년 로체를 함락하기까지 16년에 걸쳐서 14개의 완등을 달성한 것에 비해,
쿠쿠츠카는 8년 사이에 14개의 완등을 달성했다.
또한 등정의 내용을 살펴볼 때, 그의 등산활동은 정말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로체를 노말루트로 등정한 것 외에는 모두 새로운 국면에서 알피니즘을 추구했다.
에베레스트, 가셔브룸 Ⅰ · Ⅱ, 브로드 피크, 낭가 파르바트, K2, 마나슬루
그리고 시샤 팡마는 새로운 루트를 개척했으며,
마칼루는 단독등정,
다울라기리, 초오유, 캉첸준가, 안나푸르나는 동계 등정을 했다.
특히 동계 등정 중에서 초오유와 캉첸준가는 동계초등정이다.
세계의 우수한 등산가들이 그때까지 깨지 못한 기록들을 세웠다.
그러나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14번째의 시샤 팡마에 성공한 후에도 고소등산에서 물러서는 일 없이
1988년에는 안나푸르나 남벽의 새로운 루트에서 동봉을 등정,
다시 1년 후에 그에게 운명의 산이 된 로체로 향했던 것이다.
등산가 중에는 쿠쿠츠카가 너무 이기주의적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는 지나친 경쟁의식
ㅡ사실상 이 책에서도 쿠쿠츠카는 솔직하게 라인홀트 메스너를 의식하고 있었다ㅡ
그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향 등이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비난의 여지를 남겼는지도 모르겠다.
1989년 가을이라고 생각된다.
뉴델리 총회에 참석 중, 나는 쿠쿠츠카의 근황, 연락처 그리고 초청건 등을 파츠코브스키에게 물었다.
그때 대한산악연맹에서 동구권의 등산가를 강연과 친목을 위해서 초청할 계획이었다.
그 이유는 첫째,
쿠쿠츠카는 현재 로체남벽에 등반 중이므로 시기가 문제될 것이며 둘째,
쿠쿠츠카는 고집스럽고 완고해서...라고 그의 말꼬리를 흐렸다.
결국 그는 로체에서 영영 돌아올 수 없는 몸이 되었고,
그 대신에 보이테크 쿠르티카를 초청하게 되었다.
그러나 '14번째 하늘에서'는 쿠쿠츠카의 스포츠적, 기술적, 의학적, 그리고 윤리적 등산관과 경험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많은 문제점을 던져주고 있는 동시에 대자연이 주는 극한 상황을 수용해야하는
인간의 행동과 충동에 어떻게 대처해나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해 주고 있다.
또 자연의 힘과 함께 하는 자기측정, 운명에의 도전 및 즉자(卽自)에 대한 스포츠 정신의 경쟁심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종전의 '정복등산'에 반하여 산을 정복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무대로 생각하는 '존재등산'을 제창한 라인홀트 메스너에 비해
쿠쿠츠카는 과연 무엇을 제창하였을까?
독자에 따라 여러가지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내면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더 많은 점을 알아야겠으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소박절제하고 직선적이며 솔직담백했다는 점과
강인한 의지력과 등산가 특유의 직관과 직감의 소유자였다는 점이다.
그는 분명 80년대의 가장 성공적인 알피니스트임에 틀림없다.
끝으로 이번에 옮긴 책의 제목은 Jerzy Kukuczka : Im vierzehnten Himmel ㅡ Wettlauf im Himalaya이다.
물론 원본은 폴란드어이나,
현재 이탈리어와 독일어로 번역되어 있는데, 독일어판(90년도)을 사용했음을 밝혀둔다.
그리고 이 책은 쿠쿠츠카의 보고서, 일기 및 기타 그의 글과 함께
폴란드의 저명한 저널리스트 토마츠 말라노브스키와의 대화를 엮은 쿠쿠츠카의 유고집임을 밝혀둔다.
수문출판사의 이수용 사장님을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들께 깊은 사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