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박칼린을 울려버린 Korea's Got Talent Sung-Bong Cho
2.미운사람 죽이는 확실한 방법
아시는 분은 알고 계시겠지만 미운사람 죽이는 확실한 방법이 있다네요. 게다가 죽이고도 절대로 쇠고랑을 차지않는 안전하기까정 한 방법이랍니다.
옛날 옛적에 시어머니가 너무 고약하게 굴어서 정말이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던 며느리가 있었답니다.
사사건건 트집에 하도 야단을 쳐서 나중에는 시어머니 음성이나 얼굴만 생각혀도 속이 답답하고 숨이 막힐 지경이 되어 버렸답니다.
시어머니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겠다는 위기의식까정 들게 되어서리 이 며느리는 몰래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갔다는군요.
무당은 며느리의 얘기를 다 듣고는 비방이 있다고 했답니다.
눈이 번쩌적 뜨인 며느리가 그 비방이 도대췌 뭐시냐고 다그쳐 물었답니다.
무당은 뜬금없이 시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시냐고 묻더랍니다. 며느리는 "인절미"라고 답 했다더군요.
무당은 앞으로 백일동안 하루도 빼놓지 말고 인절미를 새로 만들어서리 아침,점심,저녁으로 인절미를 드리면 시어머니가 이름모를 불치의 병에 걸려 죽을 것이라고 예언을 하더랍니다.
며느리는 신이나서 돌아와선 찹쌀을 씻어서 정성껏 씻고 잘 익혀서 인절미를 만들었답니다.
시어머니는 처음에 "이뇬이 곧 둑을라꼬 환장을 했나 왜 안하던 짓을 하고 난리얍!" 했지만 며느리는 아무 소리도 않고 해 드렸답니다.
시어머니는 그렇게 보기 싫던 며느리가 매일매일 새롭고 몰랑말랑한 인절미를 해다 바치자 며느리에 대한 마음이 조금씩 달라지게 되어 야단도 덜 치게 되었답니다.
두달쯤 넘어서자 시어머니는 하루도 거르지 않는 며느리의 마음과 씀씀이에 찐한 감동을 먹어서 동네방네 사람들에게 해대던 며느리 욕도 거두고 반대로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하게 되었다더군요.
석달정도 되어 가면서 며느리는 자신을 야단치기는 커녕 칭찬하고 웃는 낯으로 대해주는 시어머니를 죽이려고 한 자신이 무서워지더랍니다.
이렇게 좋은 시어머니가 죽을까바 덜컥 겁이나더랍니다. 며느리는 있는 돈을 몽창 싸들고 무당에게 달려가 지발 제가 잘못했으니 시어머니가 죽지않고 살 수 있는 방도를 알려달라고 무당 앞에서 달구떵 같은 눈물을 줄줄~ 흘렸답니다.
무당은 쌩끗 웃으며 "미운 시어머니는 발써 둑었찌~!?" 하더랍니다.
3. 훔쳐 먹은 떡값
겨울이었지만,
그날은 산행하기 참 좋은 날이었습니다.
한동안 무섭게 모라치던 눈보라가 그치고
하늘이 환하게 개었습니다.
겨우내 웅크리고 있어 굳어진 몸을 풀겸,
나는 친구에게 겨울산행을 제의했습니다.
친구는 나의 제의에 선뜻 응했고,
우리는 기분 좋게 산을 올랐습니다.
그런데 산 중턱쯤에 올랐을 때 갑자기 눈보라가 치기
시작했습니다.
세차게 내려치는 눈발에 우리는 그만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인기척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자 음산한 바람소리만 귓전을 맴돌았습니다.
추위와 배고픔은 우리를 차츰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한참 동안 길을 찾아 헤맨끝에.
눈보라 속에서 희미하게 빛이 새어나오는 외딴집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담배" 간판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장사를 하는 집인 듯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라면 추위와 배고픔을 달랠 수 있겠다 싶어
찌그러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주인장 계십니까?"
우리는 애타게 주인을 불러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주인은 보이지 않았고, 오직 난로만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습니다.
매서운 추위에 허덕이던 우리는 염치 불구하고 난로를 애워쌌습니다.
그때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은 난로 위에서 모락모락 김을 피우고 있는 "찰떡"
이게 웬 떡이냐 싶었지만, 주인도 없는데 차마 손을 댈 수가 없어서 침만
꼴깍꼴각 삼키고 있엇습니다.
한마디로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거참, 맛있게 구워졌네. 우리 하나씩 먹읍시다!"
뒤를 돌아보니 수염이 텁수룩한 영감님 한 분이 난로 쪽으로
다가 와서는 떡 하나를 덥석 집어 입에 넣는 것이었습니다.
"영감님, 이거 먹어도 되는 건가요?"
우리가 걱정을 하자 영감님은 떡을 씹으며 말씀
하셨습니다.
"누가 봅니까, 우리들뿐인데. 얼른들 드세요.
아, 고것 참 맛있네!
그건 분명 같이 공모해서 떡을 훔쳐 먹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우리는 아주 잠시 동안 고민했지만,
더이상 허기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주인이 오면 돈을 내야겠다고 생각하고 떡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습니다.
그런데 떡을 모두먹고 한참이 지나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영감님, 혹시 이 근처에 사시나요?"
"이 근처에 안 살면, 이런 날 미쳤다고 길을 나서겠수?"
영감님은 우리의 질문이 시답지 않다는 듯,
시근둥하게 받아치고는 툭 내뱃듯 말씀하셧습니다.
"요기라도 하실라우? 라면이 있긴 한데."
순간, 이 영감님이 주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혹시, 영감님이 주인이신가요?"
"주인이 아니면 그런 걸 싱겁게 왜 묻겠오?"
우리는 그제야 우리와 함께 떡을 훔쳐 먹은 영감님이
공범도 주범도 아닌 바로 가게 주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고,
영감님은 그런 우리를 바라보며 피식 웃으시고는 주방으로 가서
라면을 끓여주셨습니다.
라면은 그야말로 꿀맛이었습니다.
라면을 다 먹은 후 값을 치르려는데,
내심 아까 먹은 떡값이 걸렸습니다.
"영감님, 떡값은 얼만가요?"
"이런 딱한 사람들 봤나. 아니, 훔쳐 먹은 떡값을 내는 사람도 있나?
얼른떠날 차비나 하구려.
우리 할망구 오기 전에."
그말에 우리는 맛있게 먹은 라면과 찰떡이 완전히 소화될 만큼
정신없이 웃었습니다.
우리는 영감님의 도움울 받아 무사히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그후로 나는 삶이 힘들거나 짜증스러워질 때,
작은 일에 아웅다웅할 때,
산길 외딴집에서 만난 털보영감님의 그 넉넉함과
느긋한 여유를 떠올립니다.
4. 환자와 보조견의 눈물겨운 감동이야기 1~2편
5. 아들에게 쓴 어느 어머니의 글
아들아! 결혼할때 부모 모시는 여자 택하지 말아라 너는 엄마랑 살고 싶겠지만 엄마는 이제 너를 벗어나 엄마가 아닌 인간으로 살고 싶단다 엄마한테 효도하는 며느리를 원하지 말아라 네 효도는 너 잘사는 걸로 족하거늘..
네 아내가 엄마 흉을 보거든 네 속상한거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그걸 엄마한테 옮기지 말아라 엄마도 사람인데 알고 기분 좋겠느냐 모르는게 약이란걸 백번 곱 씹고 엄마한테 옮기지 말아라 아들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널 배고 낳고 키우느라 평생을 바쳤거늘 널 위해선 당장 죽어도 서운한게 없겠거늘,,, 네 아내는 그렇지 않다는걸 조금은 이해하거라 너도 네 장모를 위해서 네 엄마만큼 아니지 않겠니?
혹시 어미가 가난하고 약해지거든 조금은 보태주거라 널 위해 평생 바친 엄마이지 않느냐 그것은 아들의 도리가 아니라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느냐 독거 노인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미가 가난하고 약해지는데 자식인 네가 돌보지 않는다면 어미는 얼마나 서럽겠느냐 널 위해 희생했다 생각지는 않지만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자책은 들지 않겠니?
아들아! 명절이나 어미 애비 생일은 좀 챙겨주면 안되겠니? 네 생일 여태까지 한번도 잊은 적 없이 그날 되면 배 아파 낳은 그대로 그 때 그 느낌 그대로 꿈엔들 잊은적 없는데 네 아내 에게 떠밀지 말고 네가 챙겨주면 안되겠니? 받고 싶은 욕심이 아니라 잊혀지고 싶지 않은 어미의 욕심이란다.
아들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이름만 불러도 눈물 아렷한 아들아! 네 아내가 이 어미에게 효도하길 바란다면 네가 먼저 네 장모에게 잘하려므나 네가 고른 아내라면 너의 고마움을 알고 내게도 잘하지 않겠니? 난 내 아들의 안목을 믿는다.
딸랑이 흔들면 까르르 웃던 내 아들아! 가슴에 속속들이 스며드는 내 아들아! 그런데 네 여동생 그 애도 언젠가 시집을 가겠지 그러면 네 아내와 같은 위치가 되지 않겠니? 항상 네 아내를 네 여동생과 비교해보거라 네 여동생이 힘들면 네 아내도 힘든거란다.
내 아들아 내 피눈물같은 내 아들아! 내 행복이 네 행복이 아니라 네 행복이 내 행복이거늘 혹여 나 때문에 너희 가정에 해가 되거든 나를 잊어다오 그건 에미의 모정이란다. 너를 위해 목숨도 아깝지 않은 어미인데 너의 행복을 위해 무엇인들 아깝지 않으리
물론 서운하겠지 힘들겠지 그러나 죽음보다 힘들랴.
그러나 아들아! 네가 가정을 이룬 후 에미 애비를 이용하지는 말아다오 평생 너희 행복을 위해 바쳐 온 부모다. 이제는 에미 애비가 좀 편안히 살아도 되지 않겠니? 너희 힘든건 너희들이 알아서 살아다오. 늙은 어미 애비 이제 좀 쉬면서 삶을 마감하게 해다오.
너의 에미 애비도 부족하게 살면서 힘들게 산 인생이다 그러니 너희 힘든거 너희들이 헤쳐가다오 다소 늙은 어미 애비가 너희 기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건 살아오면서 미처 따라가지 못한 삶의 시간이란걸 너희도 좀 이해해다오.
우리도 여태 너희들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니 너희도 우리를 조금 조금은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 안되겠니? 잔소리 가치관 너희들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렴..우린 그걸 모른단다. 모르는게 약이란다.
아들아! 우리가 원하는건 너희의 행복이란다. 그러나 너희도 늙은 어미 아비의 행복을 침해하지 말아다오. 손자 길러 달라는 말 하지 말아라. 너 보다 더 귀하고 이쁜 손자지만 매일 보고 싶은 손주들이지만 늙어가는 나는 내 인생도 중요하더구나 강요하거나 은근히 말하지 말아라.
날 나쁜 시에미로 몰지 말아라 내가 널 온전히 길러 목숨마저 아깝지 않듯이 너도 네 자식 온전히 길러 사랑을 느끼거라 아들아 사랑한다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 그러나 목숨을 바치지 않을 정도에서는 내 인생도 중요하구나.
네 조상이 누구인지는 꼭 자식들에게 가르쳐라
조상이 없다면 네가 어디에서 생겼겠느냐.
추도를 하든 제사를 드리든
조상이 있음을 감사해라.
6. 중국 시골마을 버스안에서의 일
예쁘게 생긴 여자를 험악하게 생긴 두 건달이 희롱합니다. 버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모른체합니다.
급기야 두 건달은 운전사에게 정지할 것을 명하고 말을 듣지않자 운전사를 테러합니다.
그리고 두 건달은 버스에서 여자를 강제로 끌어내려 버스 옆 풀밭으로 데려가 돌아가며 강간합니다.
버스안에는 건장한 남자도 수십명 있었지만 누구 한 사람도 정의롭게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냥 차창너머로 슬금슬금 눈치보며 그 광경을 구경만합니다. 왜냐하면 남의 일에 참견했다가 칼이라도 맞을까봐 두려웠겠죠..
그때, 보다 못한 한 청년이 나서서 건달과 싸웁니다. 건달들은 청년을 칼로 무참히 찌르고 달아납니다.
여자가 울면서 옷을 차려입습니다. 여자가 버스에 오르자 아무도 말이 없습니다.
창피한건 아는지 여자와 눈길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모두가 무관심한척 창밖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운전사는 테러당해서 운전할 수 없고 여자가 헝클어진 상태로 운전석에 앉습니다.
그때,피를 흘리며 청년이 차에 타려하자 여자가 소리칩니다.
“왜 남의일에 참견하시는 겁니까?” 라며 그 여자는 청년에게 화를 내고 버스문을 닫아버립니다. 그리고 여자가 운전하는 버스는 출발합니다.
청년은 아픈 몸을 이끌고 시골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다 자동차 사고현장을 목격합니다.
교통을 통제하는 경찰관이 말하길 버스가 천길 낭떠러지에 굴러 떠러져
승객이 모두 사망한 사고라고합니다.
멀리 낭떠러지를 바라보니 방금 자신이 타고 왔던 그 버스였습니다.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죄를 짓지 않았지만 다시 보면 모두 죽어야 할 만큼 큰 죄를 지은 사람들입니다.
오직 살만한 가치가 있던 그 청년을 버스에 타지 못하게 하고 그 여자는 승객들을 모두 지옥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글을 읽고있는 우리 모두는 그 버스안의 승객은 아닌지 곰곰히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7. 最初의 韓人 美國大使 오는 性金, 個人事 話題
◆ 徐재필이 甲申政變에 失敗한 뒤 美國으로 건너가 市民權을 얻은 때가 1890年 6月19日이다. 이로써 徐재필은 첫 韓國係 美國人이 됐다. 그로부터 121年만에 韓國係 美國人이 駐韓美國大使에 內定됐다.
버락 오바마 美國 大統領은 次期 駐韓美國大使에 성김(51) 國務部 北核 6者會談 特使를 內定하고 韓國 政府에 아그레망(駐在國 任命同意) 을 要請한 것으로 3日 確認됐다. 성金은 1970年 代 中盤 父母를 따라 美國으로 移民, 1980年 美國 市民權을 얻은 在美僑胞 1.5世다. 성金이 아그레망에 이어 美 上院 認準을 通過해 8月쯤 22代 駐韓美大使로 赴任할 境憂 1882年 兩國 修交 以後 129年만에 처음으로 韓國人과 똑같은 얼굴을 한 美國大使가 서울에 오는 셈이다.
대사는 외국에서 자국의 이익을 대표하는 직책이다. 따라서 애국심과 충성심이 남달라야 한다. 그런 자리에 한국계 미국인을 내정했다는 것은 미국 주류가 한국계 미국인을 이방인이 아닌 보편적 미국인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성김의 한국 이름은 김성용이다. 1960년생인 그는 서울 성북동에 살면서 은석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녔고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 갔다가 중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갔다. 1994년 미국에서 작고한 그의 아버지 김재권씨는 1973년 일본에서 ‘김대중 납치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주일공사로 재직 중이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김재권씨가 당시 사건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성김은 펜실베이니아대, 로욜라 로스쿨을 거쳐 로스앤젤레스 검찰청 에서 검사 생활을 하다가 외교관으로 전직했다. 그는 2003년 주한 미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근무하면서 북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후 6자회담에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했으며, 북한을 10차 례 이상 방문했다. 2006년 주한 미대사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 동아태 차관보에 의해 국무부 한국과장으로 발탁돼 전시전작통제권 전환, 북핵문제, 한국 대선 등과 관련된 업무를 처리했다. 2008년 상원 인준을 거쳐 ‘대사(ambassador)’ 타이틀을 얻은 이후 6자회담 수석 대표 겸 대북특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는 언론을 통해 한국민들에게 얼굴이 알려졌다.
그는 윗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인성의 소유자다. 성격이 온화하고 겸손하며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다. 발언을 절제하고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등 자기관리가 철저하다. 성김이 조지 W 부시 정부 때에 이어 오바마 정부에서도 고속 승진을 하는 것은 이같은 장점 때문이다.
물론 북한 문제에 대한 그의 전문성도 신임을 받는 주요한 이유다. 커트 캠벨 동아태 차관보,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대북정책 결정과정에서 성김에게 의존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 장관은 그를 “성”이라고 부르며 친근감을 표시한다고 한다. 성김은 한국어로 웬만한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아무래도 ‘네이티브 한국인’ 만큼의 완벽한 어휘는 구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북한과의 협상 등 공식 석상에서는 영어를 쓴다.
그는 2男3女 中 넷째다. 어머니는 LA에 살고 兄弟들도 모두 美國에서 辯護士 等으로 活動한다. 성김은 梨花女大 美大 出身 韓國 女性과 結婚 해 두 딸을 두고 있다. 外三寸은 60∼70年代 아나운서로 名聲을 떨쳤던 任택근 前 MBC 專務다. 그의 아들인 歌手 任재범씨와는 外四寸 間이 되는 셈이다.
당신은 닭이 아니라 독수리입니다.
어느 시골 농부가 우연히 독수리 새끼를 잡게 되었는데,
그는 그것을 닭장에 넣어 두었다.
그리하여 독수리 새끼는 닭들과 함께 자라게 되었고
닭장의 생활방식과
환경에 적응하여 평범한 닭이 되고 말았다.
어느날 동물보호운동을 전개하던
어떤 사람이 농장을 지나다가
독수리 새끼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아니, 저녀석은 닭이 아니라 독수리군요.”
“그렇긴 하지만 이젠 더 이상 독수리가 아닙니다.
녀석은 완전히 닭이 되어버렸어요.
닭처럼 모이를 먹고 닭처럼 행동을 하거든요.
저 독수리는 절대로 날지 못할겁니다.”
농부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동물보호자는 농부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실험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독수리를 공중에 날려 보았다.
그러나 동물보호자가 아무리 독수리를 날려 보려고
애를 써도 독수리는 날지 못했다.
어느 날 동물보호자는 해가 떠오를 때
독수리를 높은 산꼭대기로 데려갔다.
그리고 산꼭대기에서 그 독수리는 자기와 똑같이 생긴
다른 독수리가 우아하게 하늘을 날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제야 독수리는 자기가 닭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하늘을 날 수 있다는 비전을 갖게 되었다.
독수리는 거친 울음소리를 내며 동물보호자의 팔에서 날아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하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독수리는 닭들과 함께 사는 동안 전혀 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자기가 독수리라는 사실과 날 수 있다는 비전을
갖게 되자 하늘 높이 날아오를 수 있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비전을 개발시키면
누구든 높은 곳에 다다를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비전은 세상의 현재 모습이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을 볼 수 있게 해준다.
비전은 우리 이웃의 현재 모습이 아니라,
그들이 앞으로 될 수 있는 미래 모습을 보게 만든다.
비전은 우리 자신의 현재 모습이 아니라,
미래의 모습을 보게 해준다.
비전은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는 독수리처럼
우리를 새로운 정상에 오를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비전은 역경의 벽을 꿰뚫고 벽 저편을 볼 수 있게 해준다.
비전은 역경의 벽을 오를 수 있게 해주고 벽을 넘을 수 없으면
문을 만들 수 있는 힘을 준다.
어떤 사람이든 비전이 없는 사람은
모래 위에 세워진 집과 같은 존재이다.
그들은 인생의 홍수가 찾아오면
순식간에 쓸려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비전이 있는 사람은 홍수가 찾아와도
재빨리 피하거나 이겨내서 위대한 일을 성취해낸다.
서울신문==워싱턴 김상연특파원
카네기의 자살을 말린 미소
백만장자 강철왕 데일 카네기는 경제 불황이 미국을 덮쳤을 때 뉴욕 맨하탄에서 살고 있었다.
그에게도 모든 상황이 나날이 악화되었다. 깊은 절망감에 빠진 데일 카네기는 차라리 이대로 인생을 끝내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들었다.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강물에 몸을 던지려고 집밖으로 나왔다. 강 쪽으로 가기 위해 모퉁이를 돌아섰을 때 한 남자가 그를 소리쳐 불렀다.
뒤돌아보니 두 다리를 잃은 사람이 바퀴 달린 판자 위에 앉아 있었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고, 보나마나 아주 불행한 처지에 놓인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카네기에게 말했다. "선생님, 연필 몇 자루만 사 주시겠습니까?" 카네기는 남자가 내미는 연필 자루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주머니에서 1달러 한 장을 꺼내 주었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강을 향해 걸어갔다.
남자가 카네기에게로 굴러오면서 소리쳤다.
"선생님, 연필을 가져 가셔야죠." 카네기는 그에게 고개를 저어 보이며 말했다.
"그냥 두시오. 난 이제 연필이 필요 없는 사람이요." 하지만 그 남자는 포기하지 않고 두 블록이나 따라오면서 카네기에게 연필을 가져가든지 아니면 돈을 도로 가져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러는 동안, 내내 그 남자는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마침내 연필 몇 자루를 받아든 카네기는 자신이 더 이상 자살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훗날 카네기는 말했다. "난 내가 살아있어야 할 아무런 이유를 발견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두 다리가 없으면서도 미소 지을 힘을 갖고 있는 그 남자를 보는 순간 생각이 달라졌다."
단순한 미소 하나가 한 인간에게 새로운 삶의 의지를 불어넣은 것이다. - 류 시 화 (시인) -
한 남자의 사랑이야기
백년을 기약 하면서 달콤한 연애를 하던 두 연인의 꿈은 너무나 희망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남자는 결혼을 위해 아파트를 준비하였고 여자는 새 아파트에 맞는 세간도 알아 놓았습니다
그렇게 희망이 부풀어 결혼준비를 하던 때 여자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를 하여 회사의 문을 닫았습니다
그 충격으로 여자의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한 달 앞둔 어느 날 남자는 여자의 손을 잡고 아픈 고백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보여 주었던 새 아파트는 사실은 자기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여자도 사실 새 아파트에 가져갈 혼수품을 살 수 없는 형편이었기에 그 말에 그렇게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렵게 단칸방에서 신혼산림을 차렸습니다 그런데 남자의 월급이 결혼 전에 이야기하던 것과는 너무 작았습니다
그래도 여자는 신혼의 맛에 기쁘게 살았습니다 여자의 아버지도 건강을 얻고 다시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사업도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참 이상하지요! 친정 집이 어려울 때는 그저 있는 것에 감사하였는데 친정 집의 형편이 좋아지면서 자기의 모습이 왜 그리 초라해 지는지요
결혼 전 아파트를 보여주고 그래도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게 해준다던 남자의 말이 모두 상처로 되살아났습니다
그렇게 사랑스럽던 신랑이 그렇게 미워집니다. 결국 여자는 그 속상한 마음, 억울한 마음을 친정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아픔을 이야기하는 여자의 볼에서 아픈 눈물이 흘러내리고, 이야기를 듣는 여자의 어머니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난 어머니, 딸에게 숨겨놓았던 비밀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사실은 김 서방이 아무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제는 털어놓아야 겠구나 여자의 어머니가 해준 말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남자는 혼수용품을 해올 형편이 못되는 여자의 마음이 상할까보아 아파트를 팔아 여자의 아버지의 빚을 갚는데 보태었습니다
그리고 남자의 매달 월급의 적지 않은 돈도 여자의 아버지의 병원 비로 썼던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딸의 눈에서 눈물이 얼굴을 적십니다
그 눈물은 조금전 어머니가 흘렸던 감동의 눈물이었습니다. 실망의 눈물이 감동의 눈물로 이렇게 쉽게도 바뀔 수가 있네요
오늘도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할 수는 없을까요? 신발을 돌려 놓아주는 작은 배려에서부터 말입니다
人生! 人生! 人生!
人間은 85歲가 수명의 벽이 되며 先進國에서도千名中 5名만이 90歲까지 살 수 있으며 그 5名中 女子가 4名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솔제니친의 말과 같이 여러분 60, 70대는 개의 나이를 살고 있으므로 사랑하는 처 자식 먹여 살리느라고 애 쓰고 개와 같이 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70代란 人間의 일생을 10年 단위로 구분하였을 때 어떤 위치에 속해 있는가를 한번 살펴보십시오.
『루소』는
10代는 菓子(과자), 20代는 戀愛(연애),
30代는 快樂(쾌락), 40代는 野心(야심), 50代는 食慾(식욕)이라는 行動支配原理(행동지배원리)를 말하였고,
74歲로 죽은 공자(孔子)는
30代는 입지(立志)요, 40代는 불혹(不惑), 50代는 지천명(知天命), 60代는 이순(耳順), 70代는 불유거(不踰距)라고 말하였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20代는 학습(學習)의 시대,
30代는 실패(失敗)의 시대,
40代는 실행(實行)의 시대,
60代는 수확(收穫)의 시대, 70代는 석태(石跆)의 시대라 했고,
또 어떤 사람은
20代를 정신적 방황을 하는 화분(花粉)의 시대, 30代는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용감히 도전을 해야 하는 어린(漁鱗)의 時代, 40代는 축적을 위한 석탑(石塔)의 시대라고도 하였습니다.
경제적으로 볼 때는 30代는 주거비(住居費) 지출이 많은 시대이나 40代까지는 생활기반을 정착시켜야 할 시기이며 50代는 老後문제를 준비해야 할 시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결혼생활에 있어서는
20代는 사랑으로, 30代는 노력으로, 40代는 인내로, 50代는 체념으로, 60. 70, 80代는 비로소 서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고 합니다.
특히 女性들은 나이에 따라 호칭도 달라집니다.
10代는 게집아이, 20代는 女子, 30. 40代는 女人, 50代는 女史, 60代는 노파(老婆),70代는 귀부인(貴婦人)이라 부르고
20代 女人은 몸과 마음이 다 뜨거워서'아프리카' 30代는 곳곳에 신비스러움이 있다고 하여 '인도' 40代는 테크닉이 있어 '미국' 50代는 곳곳에 폐허가 있어 '유럽' 60. 70, 80代는 춥기만 하고 찾는 사람이 없어 '시베리아'
여하튼 40代는 말과 같이 뛰면서
경제적으로 교육비 지출이 많지만
生活 기반을 정착시켜 가며, 야심은 있으되 불혹(不惑)의 경지를 견지한다.
人生觀, 社會觀, 國家觀, 世界觀, 歷史觀 등의 모든 관념을 정립시키고 옳다고 믿는 일은 실행하고 經濟的으로 또 精神的으로 이끼와 같이
축적을 한다.
60.70, 80代는 개와 같이 쉬면서 家庭生活에 있어서도 女人은 테크닉을 가지고, 男女 모두 인내하며 살아가야 할 시기인
것입니다.
'老化는 生에서 죽음에 이르는 시기의 흐름'
이라는 유명한 動物學者 콘호드의 말이
있습니다.
'老化'에는 개인差, 男女의 성차(性差)가 있으나 유전(遺傳)이 많이 관계됩니다.
눈의 老化는 7歲부터 시작되고 45-50歲에 이르러서 비로소 노안(老眼)이
된 것을 자기가 발견하게 됩니다.
'미각(味覺)은 13歲 때부터 老化가 시작되니 40代가 되면 味覺신경이 老化하여 13歲前
먹었던 최고의 음식 맛을 다시는 경험할 수
없게 되며 나이를 먹을수록 짜게 먹기가
쉽습니다.
體力은 17歲부터 老化하기 시작합니다, 운동 중에서 가장 체력을 많이 소모하는 운동이 자유형 장거리 수영입니다.
대개 올림픽에서 이 종목에 우승하는 선수는 17세 전후인데 이 승자도 4年 후 올림픽의
이 종목에서는 다시 승자는 되지 못합니다.
'혈관(血管)은 10세부터 老化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죽은 깨, 기미는 10세에 시작하여 25세 쯤 눈에 띄게 됩니다.
특히 혈관은 스트레스가 심하면 더 老化하는데 越南戰에 참전하여 전사한 20代 청년 병사들의 血管이 40代와 같이 老化된 상태로 된 것을 많이 보았다고 합니다.
腦(뇌)는 20歲 때부터 老化하는데 20歲가 지나면 하루 腦세포가 10萬개씩
죽는다고 합니다.
뇌세포는 출산할 때 약 140억개로 一生동안 늘지는 않습니다.
뇌세포 중 보통 사람이 사용하는 뇌세포수는
약 40억개이고 20세 후부터는 하루 10만개가
노화하여 죽으니 10年이면 3억 6천개,
30年이면 약 10억개가 죽고 80歲쯤 될 때는 사용하던 40억개 중 반인 약 20억개가 죽게 되며 노망을 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腦를 많이 쓰며 단련을 잘 시키면 腦細胞는 덜 죽습니다.
여러분 !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이후부터 老化방지를
위하여 글을 하루에 2時間 지으시면
10만개가 죽지 않아 老化를 방지할 수 있으므로 살아계실 때까지
건강하게 살도록 매일 글을 쓰도록 권장하는 바입니다.
特히 腦의 老化로 記憶力이 나빠지더라도 腦를 잘 쓰며 단련을 잘 시키면 腦의 전두엽(前頭葉) 즉 창조를 관장하는
부분만은 그리 老化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前頭葉의 단련 방법으로서는 일기를 쓰거나 편지를 쓰거나 글을 짓는 것이 제일 좋고 룰이 있는 운동경기를 하며 자력을 기르고 讀書와 글 짓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TV를 보면서 필요한 것을 메모하거나 新聞을 읽으면서 언더라인을 하고 메모를
해둔다던가 라디오를 들으면서도 그것에
관련되는 배경을 상상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40代부터는 이미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가지 성인병이 시작되는 수가 많습니다.
이 成人病은 일단 발생하면 완치시키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고로 高血壓, 中風, 心臟病에 가장 나쁜 것이 소금끼와 스트레스(stress)입니다.
그러므로 可能한 한 싱겁게 먹고, 스트레스를 解消하도록 하며, 糖尿病의 原因이 폭음, 포식, 밤 새워 노는 것, 일만 죽어라 하고 취미가 없는 것 등임을 알고 이런 原因을 제거하도록 하며
癌도 중요한 문제가 되니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있으면 곧 진단을 받아 조기 치료를 하도록 하면 癌도 완치시킬 수가 있습니다.
특히 60, 70, 80代에는
男性은 위암(胃癌)에 대한 정기 검사를, 女性은 子宮癌에 대한 정기검사를 받아 조기발견을 하는 것이 가장 필요할 것입니다.
또 70견(肩), 류마치스 등도 스 트레스에 의한 老化와도 관계되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취미생활이나 운동이
필요합니다.
如何튼 60, 70, 80代는 老後를 위하여
趣味生活을 곧 시작하여 무엇이든지 Life Work로써 마라톤을 하는
式으로 조금씩 조금씩 매일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가장 필요할 것입니다.
Computer 공부, 書藝, 讀書, 일요목수, 골프,
낚시, 등산 등,무엇이던 몸과 머리를 쓰는 일을꾸준히 趣味로 계속하는 것이 老化방지에도 크나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經濟的으로 安定된60, 70, 80代 知性人인
여러분께서는 知的인 生活를 하시고 몸과 머리를 꾸준히 써가며 앞을 내다보면서 살아가실 것을 권장합니다
침묵(沈默)의 위대(偉大)함 중국 魏(위)나라 王 文侯(문후)가 전설적인 名醫 扁鵲(편작)에게 물었다. “그대형제들은 모두 의술에정통하다 들었는데 누구의 의술이가장 뛰어난가?” 편작이 솔직하게 답했다.
“맏형이 으뜸이고, 둘째형이 그 다음이며, 제가 가장 부족합니다." 그러자 문왕이 의아해하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자네의 명성이 가장 높은 것인가?"
편작이 말했다. "맏형은 모든 병을 미리 예방하며 발병의 근원을 제거해 버립니다. 환자가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표정과 음색으로 이미 그 환자에게 닥쳐올 큰 병을 알고 미리 치료합니다.
그러므로 환자는 맏형이 자신의큰 병을 치료해 주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됩니다. 그래서 최고의 진단과 처방으로 고통도 없이 가장 수월하게 환자의 목숨을 구해주지만 명의로 세상에 이름을 내지 못했습니다. 이에 비해 둘째 형은 병이 나타나는 초기에 치료합니다.
아직 병이 깊지 않은 단계에서 치료하므로 그대로 두었으면 목숨을 앗아갈 큰병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다들 눈치 채지 못합니다. 그래서 환자들은 둘째 형이 대수롭지 않은 병을 다스렸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래서 둘째 형도 세상에 이름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이에 비해 저는 병세가 아주 위중해진 다음에야 비로소 병을 치료합니다. 병세가 심각하므로 맥을 짚어 보고 침을 놓고 독한 약을 쓰고 피를 뽑아내며 큰 수술을 하는 것을 다들 지켜보게 됩니다. 환자들은 치료 행위를 직접 보았으므로 제가 자신들의 큰 병을 고쳐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심각한 병을 자주 고치다 보니 저의 의술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잘못 알려지게된 것입니다."
요즈음은 자기 PR시대라고 할 정도로 모두 다 시끄럽게 큰 소리 내기를 좋아하는 세상이지만 진실로 속이 꽉 찬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지 못해 안달하지 않는다. 짖는 개는 물지 않고 물려는 개는 짖지 않듯 大人은 虛勢를 부리지 않고 是非를 걸어 이기거나 다투어 싸우고자 하지 않는다. 시끄럽게 떠들고 이기고자 함은 속이 좁은 탓에 빗어지는 허세일 뿐이다. 마음이 넓고 깊은 사람은 알아도 모른 척하며, 재주를 과시해 자기를 돋보이려 하지 않는다.
어떤 아이가 시끄러운 공장에서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회중시계를 잃어버렸다. 아이는 사방을 뒤졌으나 찾을길이 없어 아버지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직원들과 함께 찾아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자 아버지는 모든 하던 일들을 멈추고 전원을 끈 채 조용히 있어 보자고 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얼마 되지 않아 째깍째깍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시계는 주위 환경이 조용해지자 구석진 바닥에서 자신의 위치를 주인에게 알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했다. “얘야. 세상이 시끄러울 때도 조용히 있어 보거라. 잃어버렸던 소중한 것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침묵 속에 오히려 참된 가치와 위대함이 있다. 고요한 물은 깊이 흐르고, 깊은 물은 소리가 나지 않듯(정수유심, 심수무성-靜水流深, 深水無聲) 고요함 속에 참 진리가 있는 것이다.
침묵은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린 후에 새싹이 돋아나기를 기다리는 농부의기다림과 같다. 긴 인내와 희망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사람이 태어나서 말을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기 위해서는 60년이 걸린다고도 한다.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은 누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도 상처 받지 않고 또 자신을 알리지 못해 안달하지도 않는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침묵의 위대함을 깨우쳐 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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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엉준아! 우리 일본협회 모임에 다시 참석하는게 어떠냐?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