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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름다운 추억여행으로 원문보기 글쓴이: 다 음
[오늘의 운세] 4월 29일 월요일(음력 3월 20일 乙丑) 24년생 지나간 추억이 생각난다. 36년생 즐거운 마음 가지면 건강해진다. 48년생 직원 문제로 걱정 생긴다. 60년생 현실에 만족하는 마음 가질 것. 72년생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 84년생 작은 것이 모여 큰 것 되는 법.
오늘의 탄생화와 꽃말 4/29일
4월 29일 오늘의 역사 694 (신라 효소왕 3) 김인문(629-694) 세상 떠남 1950 국립극장 (서울특별시의회 의사당) 에 창설 1961 충주 비료공장 준공 1969 나시루딘 말레이시아 국왕 내한 1980 동양 최대의 대웅전 설법보전 충북 단양 구인사에서 세워저 낙성 1985 서울서 태평양 경제협력회의 개막 1986 고리원자력 발전 4호기 최초 발전 1992 社勞盟(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1993 제1회 '골프 없는 날(No Golf Day)' 1999 여성산악인 지현옥 안나푸르나봉 등정후 하산중 실종 2002 한국, 북극 다산기지 개설 2003 제2건국위원회 4년 6개월 만에 해체 2003 근무중 얼굴흉터 남녀보상 똑같도록 국무회의 시행령 개정 2004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 2호 본체 핵심부품 국산화 작업에 성공 세계 최고 수준의 고정밀 관측 가능 2004 애국지사 장봉숙 선생 별세 2004 윤봉길 의사 의거 72주년 맞아 자작 한시(漢試) 번역서 출간 2004 박 태영 전남 지사 투신자살 2007 대한성공회, 수녀 출신 첫 사제 탄생 2008 친일인명사전 수록 대상자 4776명의 명단 공개 2009 보행원칙 ‘우측통행’으로 2009 '황우석'식 줄기세포연구 3년만에 `해금' 2009 “일, 북 핵 재처리 시작 확인” 2009 4·29 재보선 선거 2009 박종관 전 의원 별세 2009 유재방 전 대법관 별세 2010 박대선 전 연세대 총장 별세 2010 11번째 전주국제영화제 개막 팡파르 해 외 1770 제임스 쿡 선장, 호주 해안(Botany Bay) 상륙 1854 푸앵카레 (Jules-)Henri Poincaré 출생 1879 영국의 지휘자 비첨 출생 1956 프랑스군 인도차이나서 완전 철수 1968 미국, 흑인들의 ‘빈자(貧者)의 행진’ 시작 1982 폴란드 구속자 1천명 석방 2009 미국서 멕시코 유아 SI로 사망 2009 ‘주몽’ 이란서 시청률 60% 인기 4월 29일: 골프 없는 날 (No Golf Day) 1992년 11월 태국 푸켓에서 열린 21세기를 위한 민중의 행동, 제3세계 관광 포럼에서 제안되어 1993년부터 많은 나라가 이 날을 "노골프데이"로 지정하고 기념식을 가져왔다.
2010 - 11번째 전주국제영화제 개막 팡파르 7일까지 220여편 은막축제 중남미 신예 감독 대거 진출 제11회 전주국제영화제(JIFF)가 29일 저녁 7시 전북 전주시 덕진동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개막식을 열고 5월7일까지 9일간 은막축제에 들어갔다. 탤런트 유준상·홍은희 부부가 사회를 맡은 개막식엔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로 새로운 모험에 나선 임권택 감독, 개막작 <키스할 것을>의 박진오 감독, 영화배우 안성기·강수연, 영화제 홍보대사 박신혜·송중기씨 등이 참석했다. ‘자유, 독립, 소통’을 주제로 한 이번 영화제는 폐막작인 멕시코 페드로 곤잘레스 루비오 감독의 영화 <알라마르>를 비롯해 세계 49개국, 장·단편 영화 208편을 경쟁부문(국제경쟁 11편, 한국장편 8편, 한국단편 12편), JIFF 프로젝트, 시네마스케이프, 영화보다 낯선, 시네마 페스트, 포커스, JIFF 클래스 등 7개 부문으로 나눠 상영한다. 올해 전주영화제엔 남미 출신의 신예 감독들이 참여해 관심을 끈다. 국제 경쟁부문 11편 중에서 4편이 남미 영화일 정도로 비중이 높다. 또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대부인 김동원 감독의 회고전도 영화제 최초로 기획했다. 배우를 꿈꾸는 두 남녀의 사랑을 다룬 개막작 <키스할 것을>은 온라인 티켓예매가 2분 만에 매진했을 만큼 관심을 모았다. 개막식에 들어가지 못한 관객들을 위해 식장 밖에 생중계용 대형 스크린을 운영했다. 영화제는 전주 영화의거리, 전북대 삼성문화회관 등지에서 펼쳐진다. 민병록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천안함 사고로 사회적 분위기가 가라앉고, 유럽에서 항공대란이 일면서 필름 수급이 늦어져 걱정이 많았다”며 “올해는 관객들이 편안하게 쉬는 공간, 외부문화와 소통하는 자리를 많이 마련했다”고 말했다. 4회째부터 영화제를 맡아온 민 위원장은 “전주영화제가 지난 10년 동안 잘 성장해 왔지만, 한계점에 왔다고 볼 수도 있다”며 “앞으로 10년을 내다보고 현재 체계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한겨레 2010-04-29 오후 11:38:48 2010 - 박대선 전 연세대 총장 별세 박대선 전 연세대 총장이 29일 오후 7시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 고인은 1916년 경북 의성의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나 40년 일본 간사이학원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64년 9월부터 75년 4월까지 11년 동안 연세대 4~6대 총장을 지냈다. 그는 박정희 정권 때 시국사건 관련 학생에게 징계를 내리지 않고, 교수·학생의 복직·복학을 막는 정부와 맞섰다. 퇴임 뒤에도 거처할 집이 없을 정도로 청빈하게 살아, 고 원일한 연세대 재단이사가 살 집을 구해주기도 했다. 박 전 총장은 연세대 의대에 주검을 기증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영기(연세대 명예교수)·태기(모퉁이돌교회 목사)·성기씨, 딸 애나씨가 있다. 장례는 3일 학교장으로 치러지며, 영결예배는 오전 10시에 열린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02)2227-7550.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한겨레 2010-04-30 오전 08:45:02 2009 - 유재방 전 대법관 별세 전 대법관 유재방(사진)씨가 29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살. 고인은 1920년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경성법학전문학교 마친 뒤 43년 고등시험 사법과에 합격했다. 해방 후 광주지법 판사와 부장판사, 대구고법 부장판사, 전주·대구·부산지법원장, 대구고법원장 등을 거쳐 68년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유족으로는 아들 동호(신우출판 대표이사), 인호(안양프라자 대표)씨, 사위 황인행(변호사), 오현주(오소아과 원장)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다음달 1일 오전 6시30분이다. (02)3010-2230. /한겨레 2009-04-29 오후 06:53:03 2009 - 박종관 전 의원 별세 11대 국회의원을 지낸 박종관(사진)씨가 29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0. 고인은 충북과 서울시 경찰국장과 치안본부 부장, 경찰대 학장 등을 거쳐 제11대 민정당 소속 전국구 의원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현수씨, 딸 정수·임수·옥수·은수·현수씨와 사위 이연복(사업)·김영일(미국 거주)·김성철(대진인베스트 부사장)·이수철(한양대 교수)·윤영석(코트라 일본지사)씨가 있다. 빈소는 한양대병원, 발인은 5월1일 오전 8시다. (02) 2290-9442. /한겨레 2009-04-29 오후 11:25:40 2009 - 4·29 재보선 선거 2009 - 대한민국에서 4월 29일 재보궐선거가 국회의원 5곳(인천 부평구을, 울산 북구, 전북 전주 완산구 갑, 전북 전주 덕진구,경북 경주), 기초단체장 1곳(경기 시흥), 광역의원 3곳, 기초의원 5곳, 교육감 2곳(충남,경북)에서 치러졌다. /위키백과 2009 - 전국 5개 지역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한나라 ‘참패’…‘MB독주’ 경고 국회의원 재선거 5곳 모두 져…시흥시장 선거도 민주에 패배 29일 전국 다섯 곳에서 치러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한 곳도 이기지 못하고 모두 패했다. 이날 밤 11시 20분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개표 집계 결과, 인천 부평을 선거구에선 민주당 홍영표 후보가 49.54%를 얻어 한나라당 이재훈 후보(39.09%)를 누르고 당선됐다. 경북 경주 선거구에선 친박 성향 무소속인 정수성 후보가 48%를 얻어 한나라당 정종복 후보(35.45%)보다 앞섰다. 울산 북구에선 진보신당 조승수 후보가 49.2%를 득표해 한나라당 박대동 후보(41.37%)를 누르고 당선됐다. 야권이 이명박 정부 ‘실정’ 평가와 견제 필요성을 내걸었던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전패함에 따라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여권에선 선거 결과를 두고 지도부 문책 및 친이·친박 그룹간 책임 논란 등 내부 갈등이 예상된다. 민주당 지도부와 공천 갈등을 빚다 전주 덕진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정동영 후보는 72.27%의 득표로, 12.93%에 그친 민주당 김근식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전주 완산갑 선거구에선 정동영 후보와 무소속 연대를 이룬 신건 후보가 50.38%를 득표해 민주당 이광철 후보(32.25%)를 누르고 당선됐다. 진보신당은 이번 선거를 통해, 민주노동당에서 탈당해 창당한 뒤 처음으로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 또한 민주노동당과의 후보 단일화를 통해 판세가 역전됨으로써 진보정당 및 범야권의 연대 논의를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 선거에 버금가는 정치적 의미가 담겼던 경기도 시흥시장 선거에서도 민주당 김윤식 후보(46.08%)가 한나라당 노용수 후보(44.05%)를 눌렀다. 이날 함께 치러진 충남도교육감 선거에서는 김종성 후보가 31.35%를 얻어 19.87%를 얻은 강복환 후보를 앞섰으며, 경북도교육감 선거에서는 이영우 후보가 41.99%를 얻어 34.08%를 얻은 김철 후보를 앞섰다. 광역 3곳과 기초 4곳에서 치러진 지방의원 선거에서는 전남 장흥 제2선거구와 광주 서구 다 선거구 등 호남지역 2곳에서 정우태·류정수 후보 등 민주노동당 인사가 민주당 후보를 꺾었다. 윤상현 한나라당 대변인은 이날 밤 논평에서 “국민의 뜻을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며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했는지 되돌아보겠다”고 밝혔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국민들이) 이명박 정권의 무능과 실정을 단호하게 심판해 주셨다”며 “수도권에서 승리를 안겨 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조승수 진보신당 후보는 “진보진영 단일화를 함께 이뤘던 민주노동당과 김창현 후보 공동의 승리, 더 나아가 노동자·서민의 진보정치를 바라는 북구 주민 모두의 승리”라고 말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전국 16개 지역 재보궐선거에서 교육감 선거를 제외한 유권자 131만9614명 중 45만4714명이 투표해 34.5%의 투표율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국회의원 재선거가 치러진 5개 지역의 투표율은 40.8%였다. 박창식 선임기자, 이유주현 기자 cspcsp@hani.co.kr /한겨레 2009-04-29 오후 10:38:08 [사설] 이명박 정부의 독주에 강력한 경고 보낸 4·29 재보선 어제 실시된 4·29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이 참패했다. 한나라당은 인천 부평을, 울산 북, 경주, 전주 덕진, 전주 완산갑 5곳에서 모두 패해 0 대 5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이번 재보궐선거는 243개 국회의원 지역구 중 불과 5곳에서 실시됐지만, 243분의 5라는 산술적 의미를 뛰어넘는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 우선 이번 선거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지 1년여 만에 처음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라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띤다. 또 시기적으로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민생이 큰 어려움에 처해 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을 바로 눈앞에 둔 시점이라는 점에서도 어느 때보다 민심의 향배가 관심을 모았다. 이 때문에 여야 지도부도 ‘경제 살리기’와 ‘정권 심판’을 내세우며 총력전을 펼쳤고, 유권자들의 관심도 2001년 10·25 재보선의 41.9% 이후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할 정도로 뜨거웠다. 한마디로 이번 선거 결과는 민심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보내는 강력한 경고장으로 보인다. 경제 살리기를 내걸고 지난번 대선과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이를 멋대로 해석해, 부자와 재벌을 중시하고 서민대중의 아픔을 외면하는 경제정책으로 일관했다. 또 정치, 사회, 문화, 노동, 언론, 교육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 힘을 앞세운 억압정책을 펴며 민주화 20년의 성과를 뒤로 돌리는 퇴행적인 모습을 보였다. 정부 여당의 이런 독선과 독주에 대한 민심의 반응은 차가웠다. 특히, 전국 여론의 잣대라고 할 수 있는 수도권인 인천 부평을에서 한나라당이 전력투구를 하고도 진 것은 일반 민심이 이명박 정권에 등을 돌리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한나라당은 부평을 못지않은 중요성을 지닌 시흥시장 선거에서도 패배했다. 지난 8일 실시된 경기도교육감 선거에서 이명박식 경쟁교육에 반대하는 김상곤 후보가 당선된 것까지 치면 수도권에서 벌써 세 번의 경고를 받은 셈이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이번 선거 참패를 엄중하게 받아들여 민심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지금의 국정운영 기조와 정책을 전면 수정해야 할 것이다. 또 민심이 정부 여당에 ‘아니오’를 분명하게 밝힌 이상, 정부 여당 지도부에 대한 인적 쇄신도 불가피할 것이다. [사설] /한겨레 2009-04-30 오전 02:03:36 2009 - ‘주몽’ 이란서 시청률 60% 인기 MBC TV 드라마 '주몽'이 최근 이란에서 시청률 60%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29일 MBC에 따르면 '주몽'은 지난해 12월9일부터 이란 국영방송 IRIB 채널3에서 매주 화요일 '전설의 왕자'라는 이름으로 방송되고 있으며, IRIB가 공식적으로 추정한 이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60%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2006~2007년 '대장금'이 이란에서 기록한 최고 시청률 90%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시청률 60%는 이란에서 방송되는 외국 드라마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높은 수치라 '주몽'은 '대장금'에서 이어 중동에서 '한류 열풍'을 잇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주몽'의 이주환 PD는 28일 내한한 IRIB 다큐멘터리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이야기를 간결하고 쉽게 풀어 전 연령층을 끌어들이려고 노력했다"며 "이런 점 때문에 이 드라마가 세계 각 나라의 시청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 PD는 또 스태프 100여 명이 서울과 나주의 세트장을 오가며 촬영한 일화와 시나리오 작업에만 2년이 걸린 이야기 등을 소개했다. 김영현 기자 cool@yna.co.kr (서울=연합뉴스) /한겨레 2009-04-29 오후 05:50:32
2009 - 미국서 멕시코 유아 SI로 사망 휴스턴 입원중 숨져…국내 의심환자 16명 늘어 WHO “사람→사람 감염 사례도 뉴욕서 확인돼” 미국에서 29일 돼지인플루엔자(SI·Swine Influenza)에 감염된 유아 1명이 숨지고, 사람 사이에 감염되는 사례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국내에서도 감염이 의심되는 환자 16명이 추가로 발생하는 등 돼지인플루엔자 확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 질병관리본부는 돼지인플루엔자 추정환자와 접촉 가능성이 높은 57명에게 인플루엔자 치료약인 타미플루를 투여하는 등 ‘2차 감염’ 방어에 나섰다. 미국 텍사스 휴스턴의 보건국은 이날 23개월 된 유아가 돼지인플루엔자로 숨졌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유아는 미국 시민이 아니며, 치료를 받으려고 멕시코에서 휴스턴으로 와서 입원중에 숨졌다고 캐시 바턴 시 보건국 대변인이 <시엔엔>(CNN)에 밝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돼지인플루엔자 확산 방지를 위해 미국 내 학교들의 휴교를 촉구했다. 또 28일엔 돼지인플루엔자가 멕시코 이외 지역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감염된 첫 사례가 미국 뉴욕에서 확인됐다. 후쿠다 게이지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차장은 이날 “뉴욕에서 멕시코에 간 적이 없는 일부 학생들이 감염됐다”며 “이는 바이러스가 인간에서 인간으로 전염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전했다. 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29일, 멕시코·미국을 방문한 뒤 열이 나고 기침을 하는 등 급성 호흡기질환 증상이 있다고 신고한 20명 가운데 16명을 상대로 검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16명 가운데는 전날 추정환자로 판정된 여성(51·경기)과 같은 여객기를 탄 3명도 포함됐다. 나머지 4명은 ‘음성’ 판정이 나와 돼지인플루엔자와 무관한 것으로 확인됐다. 추정환자인 여성은 양호한 상태라고 전병율 질병관리본부 전염병대응센터장은 밝혔다. 질병관리본부는 사람간 ‘2차 감염’을 막기 위해 귀국 비행기에서 추정환자인 여성과 2m 이내 거리에 앉았던 27명 가운데 17명, 그리고 이 여성과 함께 지내는 40명에게 타미플루를 투여했다고 밝혔다. 한편, 사태의 진원지인 멕시코는 차츰 안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호세 코르도바 멕시코 보건장관은 28일 “돼지인플루엔자로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159명이며, 추정환자는 2498명”이라고 밝혔다. 하루 사이에 사망자가 7명 늘어났지만, 이전보다 증가 속도는 줄었다. 독일에서도 이날 처음으로 돼지인플루엔자 환자가 확인됐다. 김소연 조기원 기자 dandy@hani.co.kr /한겨레 2009-04-29 오후 07:26:54
2009 - “일, 북 핵 재처리 시작 확인” “이르면 7월께 핵실험 단행 관측” 북한이 2차 핵실험을 위한 활동을 시작한 것을 일본 정부가 확인했다고 산케이(産經)신문이 29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북한 영변의 핵 시설에 대한 정보를 분석한 결과 북한이 사용 후 핵연료봉의 재처리 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판명했다. 일본 정부는 북한이 이르면 3개월 이내에 핵실험을 실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군도 대기 중의 먼지 등을 수집, 핵실험 여부를 파악하는 기상관측기 'WC135C'를 일본 오키나와(沖繩) 가데나(嘉手納) 기지에 배치, 빈번히 감시 비행을 벌이는 등 북한의 핵실험 동향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북한은 2006년 10월 9일 첫 핵실험을 실시했다. 당시 실험 장소는 길주군 풍계리 부근의 지하 핵실험장으로 각국 정보 당국은 보고 있다. 북한은 지난 5일 로켓 발사 이후 유엔 안보리가 이를 비난하는 의장성명을 발표하자 이에 반발, 핵개발 재개를 선언한 바 있다. 북한은 2006년 7월 5일 대포동 2호를 포함한 탄도 미사일을 발사한 이후 10월에 핵실험을 강행한 적이 있는 만큼 일본 정부는 이번에도 이르면 로켓 발사 3개월 뒤인 7월께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정보 수집을 강화하고 있다. 최이락 특파원 choinal@yna.co.kr (도쿄=연합뉴스) /한겨레 2009-04-29 오전 09:03:03 2009 - '황우석'식 줄기세포연구 3년만에 `해금' 생명윤리위, `체세포 복제' 사실상 승인 인간 난자 사용량 최소화 등 4가지 조건 국내에서 3년간 금지됐던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사실상 승인됐다.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29일 시내 모처에서 비공개 전체회의를 열고 차병원이 제출한 체세포 복제를 통한 배아줄기세포 연구 계획을 4가지 조건을 걸어 사실상 승인키로 했다. 4가지 조건은 ▲연구의 내용에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한 부분을 완전히 삭제하면서 연구 명칭을 '줄기세포주 확립연구'로 변경할 것 ▲기관윤리위원회(IRB) 구성의 공정성을 제고할 것 ▲과거에 받았던 난자기증 동의를 모두 다시 받을 것 ▲동물실험 위주로 해서 인간 난자 사용량을 최소화할 것 등이다. 생명윤리위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오늘의 결론은 차병원의 연구를 일단 승인하되, 조건을 모두 충족한 후 연구를 시작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생명윤리위는 이 같은 의견을 보건복지가족부에 전달할 예정이며, 차병원이 이 같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고 복지부가 연구 계획을 최종 승인하면 차병원은 과거 황우석 박사에 이어 국내 두 번째로 체세포 복제를 통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할 수 있게 된다. 이승우 하채림 기자 leslie@yna.co.kr (서울=연합뉴스) /한겨레 2009-04-29 오후 03:07:05 2009 - 보행원칙 ‘우측통행’으로 새 교통체계 하반기 시행 비보호 좌회전 확대하고 우회전 신호등 도입 추진 100년 가까이 익숙했던 보행자의 좌측통행 방식이 우측통행으로 바뀐다. 또 교차로에서 비보호 좌회전이 수월해지는 반면, 전방이 적색신호일 때 우회전은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경찰청은 29일 이런 내용을 뼈대로 한 ‘교통운영 체계 선진화 방안’을 국가경쟁력위원회에 보고하고, 올해 하반기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방안은 우리나라의 교통사고율이 높고 교통신호 체계가 국제표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새 교통운영 체계의 주요 내용을 보면, 보행자의 좌측통행 원칙을 차량통행 방향과 일치시키기 위해 우측통행 원칙으로 바꾼다. 우리나라는 1920년대 이후 일본 교통체계의 영향으로 좌측통행이 원칙이었다. 또 ‘직진 우선신호 원칙’을 확립하기 위해 2011년까지 원칙적으로 모든 교차로의 신호 순서를 직진 후 좌회전(또는 동시신호)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현행 ‘비보호 좌회전’을 확대해, 3차로 이하의 교차로에서는 전방 녹색신호 때 이를 원칙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좌회전 차량과 반대편 직진 차량의 충돌 위험을 줄이기 위해 도심 제한속도를 시속 50㎞로 낮출 계획이다. 현재 주요 선진국은 녹색신호에 좌회전을 허용해 ‘남북 직진→동서 직진’의 2단계 방식을 사용하고 있어 신호 주기가 짧다. 반면 우리나라는 별도의 좌회전 신호를 두는 ‘남북 직진→동서 좌회전→동서 직진→남북 좌회전’의 4단계 방식이어서 신호 주기가 길다는 단점이 있다. 또 우회전을 선별적으로 제한하기 위해 ‘우회전 전용 신호등’의 도입도 추진된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한겨레 2009-04-29 오후 07:23:1 보행자 좌측통행→우측통행으로 바뀐다 비보호 좌회전 확대, 우회전 신호등 도입 경찰, 교통운영체계 선진화 방안 발표 일제 강점기인 지난 1921년 이후 시행되고 있는 좌측 보행이 88년만에 우측 보행으로 바뀐다.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는 29일 전체회의를 열고, 좌측 보행을 우측 보행으로 바꾸는 내용의 보행문화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관습화된 통행 방법 변경에 따른 국민 불편과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청회·정책토론회 등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 국민적 공감대를 충분히 형성한 뒤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통행 방식이 좌측 통행으로 굳어진 것은 지난 1921년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규정인 1905년 대한제국 규정에서는 우측 통행을 명시했으나 1921년 조선총독부가 도로취체규칙을 개정하면서 일본과 마찬가지로 좌측 통행으로 변경됐다. 이후 미군정은 1946년 자동차의 통행 방법은 오른쪽으로 변경했지만 사람의 통행방식은 그대로 뒀고, 우리 정부는 1961년 도로교통법을 제정하면서 '보행자는 보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는 도로에 있어서는 도로의 좌측을 통행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도로교통법은 도로의 보행 방식을 규정한 것이지만 보도 내 보행방식이나 지하철 보행 통로 등까지 확대돼 관습적으로 좌측통행 원칙이 굳어졌다. 그러나 좌측 통행은 신체특성이나 교통안전, 국제관례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좌측 통행은 교통사고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고 보행자의 심리적 부담이 증가하며 보행자간 충돌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보도와 차도가 분리되지 않은 도로에서는 사람은 차량과 마주보고 통행하며, 차도와 보도가 분리된 도로의 인도에서는 차도에 가까운 보행자가 차량과 마주보고 통행할 수 있도록 우측 통행으로 바뀐다. 국토부는 보행문화가 우측통행으로 전환되면 교통사고가 20% 가량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사망자와 부상자는 연간 70명과 1700명 감소하고 인적 피해 비용 711억원, 심리적 피해 비용 734억원이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가경쟁위는 또 2010년까지 비보호 좌회전을 단계적으로 확대한 뒤 2011년 3색 신호등 전면도입에 맞춰 '녹색 신호 시 좌회전 허용'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국가경쟁위는 이 같은 직진 우선의 신호 원칙 확립을 통해 교차로 평균 속도는 시속 13km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우회전을 제한하는 우회전 전용 신호등도 도입된다. 김기홍 기자 /조선닷컴 2009.04.29 11:47
2008 - 친일인사 4776명 공개…안익태·최승희 포함 민족문제연구소, 1차 3천명 이어 ‘친일 진상규명’ 결실 민족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이하 편찬위)는 29일 박정희 전 대통령, 김성수 동아일보 창업자, 방응모 조선일보 사주, 김활란 이화여대 초대 총장, 서정주 시인 등이 포함된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을 공개했다. 연구소와 편찬위는 이날 서울 태평로 언론회관 19층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8월 발간되는 <친일인명사전>에 포함되는 매국·일제 관료·경찰·군·사법 등 16개 분야 ‘친일파’ 4776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윤경로 편찬위원장(한성대 총장)은 “을사조약부터 해방까지 일제의 국권 침탈, 식민 통치, 침략 전쟁에 협력해 우리 민족에 신체적·물리적·정신적인 피해를 준 것으로 파악된 사람 가운데 엄밀한 사료 확인을 거쳐 대상자를 선정했다”고 말했다. 이번 명단에는 2005년 8월 발표된 ‘1차 명단’ 3009명에 포함돼 논란을 낳았던 박정희, 김성수, 방응모, 김활란씨 등이 그대로 포함됐고,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 무용가 최승희, 가곡 <선구자>의 작사가 윤해영, 아동문학가 김영일, 동요 <고향의 봄>의 이원수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새로 포함됐다. 또 <조선독립신문> 윤익선 사장, 현상윤 전 고려대 총장, 고승제 전 서울 상대 교수, 서범석 전 의원, 고재필 전 보건사회부 장관, 진의종·신현확 전 국무총리 등도 교육·학술 분야와 해외 친일인사 분야에 수록됐다. 박한용 연구소 연구실장은 “국내 유명 인사들이 중심이 된 1차 명단에 그동안 연구 성과가 축적된 지방과 해외 친일파들을 대거 보강했다”고 말했다. 연구소의 사전편찬 작업은 1990년대 초부터 한국 사회의 뜨거운 화두가 돼 왔던 ‘친일 진상규명’을 완결짓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국내 친일 연구는 66년 친일연구가 고 임종국씨의 <친일문학론> 이후 20여년 동안 빛을 보지 못하다, 91년 임씨의 후학들이 모여 만든 민족문제연구소 출범 이후 본격화됐다. 이후 2005년 5월에는 대통령 직속기구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했고, 이듬해 7월에는 친일의 대가로 형성된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을 환수하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출범했다. 편찬위는 60일 동안 유족 등의 반대 의견을 들은 뒤, 친일인명사전 수록자를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총 세 권으로 구성된 <친일인명사전>은 8월께 일반에 선보인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한겨레 2008-04-29 오후 09:19:06 -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친일인명사전 수록 대상자 4776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친일인명사전 (親日人名辭典)은 민간 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일제 강점기에 친일 행위를 한 한국인(친일파)의 목록을 정리해 2009년 11월 8일에 발간한 인명 사전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의 기준에 따라 선정된 인물들에 대해 “구체적인 반민족행위와 해방 이후 주요 행적 등”을 수록하였다고 밝혔다. 이력 2008년 4월 2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사전편찬위원회는 친일 인사들을 매국, 중추원, 관료, 경찰, 군, 사법, 종교, 문화 예술, 언론 출판 등 16개 분야에 걸쳐 선정했다. 분야별로 매국 인사 24명, 수작(受爵) 및 습작(襲爵) 138명, 중추원 335명, 일본 제국 의회 11명, 관료 1207명, 경찰 880명, 군 387명, 사법 228명, 친일 단체 484명, 종교 202명, 문화 예술 174명, 교육 학술 62명, 언론 출판 44명, 경제 55명, 지역 유력자 69명, 해외 910명 등 5207명(중복자 포함)이며 중복 인사를 제외하면 〈친일인명사전〉수록 인물은 4776명이다. /위키백과 2008 -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2차 명단 발표 [친일인명사전 발간 일지] 1991.02.27 - 반민족문제연구소 설립(1995년 민족문제연구소로 개칭) 1999.08.11 - '친일인명사전 편찬 지지 전국 대학교수 1만인 선언' 기자회견 2001.03.01 -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준비위원회 발족 2003.12.00 - 국회, 2004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용역 예산 전액 삭감 2004.00.00 - 친일인명사전 편찬 국민성금운동 시작 2005.08.29 -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1차 명단 발표 2008.04.29 -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2차 명단 발표 2009.11.06 - 법원, 박정희·장지연 유족의 게재 및 배포금지 가처분신청 기각 2009.11.08 - 친일인명사전 발간 : 친일인명사전 수록 대상자 4776명의 명단 공개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2008년 4월 29일 '친일인명사전 수록인물' 4776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228 명, 친일단체 484명, 종교 202명, 문화예술 174명, 교육학술 62명, 언론출판 44명, 경제 55명, 지역 유력자 69명, 해외 910명 등 총 16개 분야에서 5207명(일부 인사는 2개 이상 분야에 중복 선정)을 선정했다. 2007 - 대한성공회, 수녀 출신 첫 사제 탄생 김성수 주교, 오 카타리나 사제, 박경조 서울교구장 /크리스천투데이
29일 성직서품식 가져...수녀 출신, 세계에서도 10여명 수준 대한성공회 사상 처음으로 수녀가 사제가 됐다. 성가수도회 소속 오 카타리나(67, 오인숙) 수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김대원 기자 dwkim@chtoday.co.kr /크리스천투데이 [2007-05-01 05:57] - 오인숙 카타리나 수녀 사제된다 29일 수녀 출신 국내 첫 서품 대한성공회 성가수녀원 오인숙 카타리나(67) 수녀가 사제 서품을 받는다. 29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정동 성공회 주교좌성당에서다. 지금까지 대한성공회에서 신학을 전공한 여성 9명이 사제가 되었지만 수녀로서 사제가 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계적으로도 수녀로서 사제가 된 여성은 10여명 안팎에 불과하다. 로마가톨릭에서는 여성 사제를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성공회는 여성이 사제가 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카타리나 수녀는 지난해 5월 부제(사제의 전단계) 서품을 받고 사제직을 준비해왔다.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수녀가 돼 1984년부터 지금까지 성공회대 영문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87년부터 95년까지 성가수녀원 원장을 지내기도 한 카타리나 수녀는 불교 비구니 스님, 가톨릭 수녀, 원불교 여자교무 들과 함께한 삼소회 활동을 하고 있다.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한겨레 2007-04-27 오후 06:33:43:
2004년] 윤봉길 의사 의거 72주년 맞아 미공개 사진 대거 공개
윤봉길의사 도시락폭탄 사진 72년만에 첫 공개
2004년] 애국지사 장봉숙 선생 별세
2004 - 박태영 전남지사 투신자살 `한강투신' 박태영 전남지사 29일 한강에 투신한 뒤 병원에서 숨진 박태영(63) 전남지사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인사.납품 비리로 검찰의 조사를 받아왔다.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송해은 부장검사)는 27일부터 박 지사를 소환, 건보공단초대 이사장 재직 시절 벌어진 부하 직원들의 비리 연루 혐의에 대해 집중 조사, 혐의가 드러나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할 계획이었다. 박 지사는 검찰 조사에서 부하 직원들의 비리 연루 혐의에 대해 모두 부인한 것으로 전해져 검찰은 필요에 따라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된 전 직원들과 대질 심문도 벌일 방침이었다. 박 지사 투신자살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최근 검찰 조사에 따른 심리적 압박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투신자살한 사회지도층 인사로는 지난해 8월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 지난 2월 안상영 전 부산시장, 3월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4월 광주대 김인곤(76)이사장 등이 있다. (서울/연합뉴스) /한겨레 2004.04.29(목) 13:57 2002 - 한국, 북극 다산기지 개설 다산과학기지(茶山科學基地)는 2002년 4월 29일 설립된 대한민국의 과학기지이다. 북극의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제도 스핏스베르겐 섬의 뉘올레순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기지 건립에 따라 대한민국은 북극에 기지를 설치한 세계 12번째 국가가 되었으며 또한 세계 8번째로 남극과 북극에 모두 기지를 보유한 국가가 되었다. 현재 기지 건물은 프랑스와 공동으로 사용한다. 상주하는 사람은 없으며 최대 6명 정도의 연구원들이 일정 기간 동안 체류하면서 연구한다. 38평의 규모에 4개의 연구실을 갖추고 있다. 다산과학기지에서는 북극의 기후변화와 빙하, 생물종, 해류, 자원 등에 대한 연구를 한다. /위키백과 1999년] 여성산악인 지현옥, 안나푸르나봉 등정후 하산중 실종
1996년] 해운항만청, 독도 접안시설 건설공사 본격 착수 - 해운항만청, 독도 접안시설 건설공사 본격 착수 독도 접안시설 공사 /독도사랑 (참고) 독도 접안공사 비난 / 일 외무성대변인 일본 외무성은 29일 시작된 독도 접안시설 공사를 강력히 비난하는 한편 한국정부의 독도 부두시설 공사를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30일 밝혔다. 하시모토 히로시 일 외무성 대변인은 이날 한국의 독도 접안시설 공사와 관련된 논평에서 『일본 정부는지금까지 일관되게 다케시마(죽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해 왔다』고말하고 『우리는 절대로 한국의 접안시설공사를 승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시모토 대변인은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 문제로 양국 관계가악화되는 것은 원치않는다고 덧붙였다. 【동경 공동 AFP 연합 /동아일보 1996.5.1. (참고) 독도 접안시설 울릉도서 준공식 독도 방위와 물자수송을 위한 독도 접안시설 공사가 착공 1년11개월 만에 끝나 6일 준공됐다. 그러나 준공식은 장소와 규모를 둘러싼 외무부와 해양부 사이의 의견대립으로, 독도가 아닌 울릉도 독도박물관 앞에서 열려 아쉬움을 남겼다. 이날 조정제 해양수산부 장관은 외무부의 반대에도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포항까지 내려왔다가 청와대의 긴급 불참 지시로 발길을 돌리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열린 준공식은 조 장관 대신 장승우 해양부 차관과, 김태식 국회 농림 해양수산위원장, 시공업체 대표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히 치러졌다. 독도 접안시설은 지난 95년 12월 독도를 방위하고 물자수송의 불편을 덜기 위한 목적으로 착공됐으며, 500t급 배를 댈 수 있도록 길이 80m의 물량장과 진입통로 100m, 간이 접안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이날 준공식과 관련해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 관계자들은 준공식을 독도에서 치르지 못한데다 준공식 참석을 위해 포항까지 내려갔던 장관이 귀경하자 “독도가 우리땅 맞느냐”면서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외무부 쪽은 “독도 접안시설 준공식이 대대적으로 보도될 경우 독도가 우리 땅임을 대외적으로 시위하는 효과가 있으나, 국제사회에는 오히려 독도가 영토분쟁지역이라는 사실만 재확인시켜주는 꼴이 된다”고 . (한겨레 1997년 11월7일)
1993 - 제1회 '골프 없는 날(No Golf Day)' 4월 29일: 골프 없는 날 (No Golf Day) 1992년 11월 태국 푸켓에서 열린 21세기를 위한 민중의 행동, 제3세계 관광 포럼에서 제안되어 1993년부터 많은 나라가 이 날을 "노골프데이"로 지정하고 기념식을 가져왔다.
1992 社勞盟(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1992년 4월29일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중앙상임위원장 백태웅이구속됨으로써 사노맹 사건이 일단락됐다. 사건 관련자 가운데 가장 널리알려진 인물이라 할 시인 박노해(본명 박기평)는 그 전해 3월 이미 구속된상태였다. 시인이 사노맹 안에서 맡은 직책은 중앙상임위원이었던 것으로알려졌다. 시집 ‘노동의 새벽’(1984)으로 한국 노동시의 새로운 경지를 열어 젖힌박노해와 서울대 학도호국단 총학생장 출신의 백태웅(필명 이정로)은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 민족민주변혁론(ND)에 기초한 급진적 사회촵정치 평론을 문예지 ‘노동해방문학’에 잇달아 발표하며 탈-자본주의 사회를 모색한 바 있다. 사노맹은 1980년대 좌파 사회운동권에서 가장 급진적 분파 가운데 하나였던 제헌의회파(CA)의 정치적 침전물이었다. 이 조직의 구성원들은 남한의사회경제구성체를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체제로 파악하고, 노동자 계급이 중심에 선 통일전선 세력의 무장 봉기를 통해 근본적 혁명을 이룰 수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문학평론가 조정환이 주도한 이들의 문예론은 노동해방문학론으로 불렸다.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가 가뭇없이 무너져 내려가던 시기에 난데없이 제출된 이 모험주의 노선은 유치했다고 밖에 평가할 수 없겠지만, 기층 민중의 삶에 존엄을 부여하고자 했던 이들의 열정까지 허투루 볼 일은 아니겠다. 6.25 전쟁 이후 남한에서 만들어진 최대의 자생적 사회주의 혁명 조직이라고 국가안전기획부가 평가한 사노맹은 박노해와 백태웅의 구속으로 와해됐지만, 그 뒤에도 민중정치연합 소속원 수십 명이 사노맹 관련 혐의로 구속되는 등 사건의 파장은 1994년 말까지 이어졌다. 사노맹 사건 관련자들은 최고 무기 징역까지 선고 받았다가, 1998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박노해촵백태웅을 마지막으로 모두 석방되었다. (한국일보 [오늘속으로<1095>]2004-04-29 고종석논설위원 hk.co.kr )
1992 - LA 흑인폭동으로 58명 사망, 2천383명 부상 로스앤젤레스 흑인 폭동(1992)
[어제의 오늘]1992년 LA 흑인 폭동ㆍ공권력의 폭력성에 대한 반발 도로변에서 백인 경찰 두 명이 덩치 큰 흑인을 쓰러뜨린 뒤 곤봉으로 때리기 시작한다. 넘어진 흑인이 몸을 일으키려는 듯 허우적댄다. 그러자 옆에 있던 경찰 한 명이 가세한다. 세 명이 돌아가며 흑인을 곤봉으로 때리고 발로 밟는다. 흑인은 쓰러진 채 꿈쩍도 못한다. 그래도 매질은 계속된다. 주변에 팔짱 낀 경찰관 예닐곱 명과 주차된 경찰차 세 대가 서있다. 그 앞을 일반 차량 한 대가 천천히 지나간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1991년 3월3일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에 익명의 시민이 촬영한 89초짜리 이 비디오는 TV 방송을 타고 미 전역에 전해졌다. 로드니 킹이란 이름의 이 흑인은 경찰의 음주 측정 요구를 거부하고 달아나다 잡혀 ‘짐승처럼’ 맞았다. 이 사건은 미국 내에서 인종차별과 공권력의 폭력성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로드니 킹은 무혐의로 풀려났고 폭력에 가담한 경찰관 세 명과 이를 지시한 경찰관 한 명이 기소됐다. 10명의 백인, 한 명의 히스패닉, 한 명의 필리핀인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그러나 92년 4월29일 이 경찰관들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다. 경찰관들의 폭력은 정당방위였다는 경찰 측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손제민 기자 jeje17@kyunghyang.com /경향신문 2010-04-28 17:33:33
1987 - 시화지구 개발사업 기공식 거행 시화공업단지의 건설 시화지구개발사업은 서해안간척사업의 시범적 개발계획으로 대단위의 해면 매립을 통하여 국토를 확장하고 이를 공업단지 및 도시로 개발하여 수도권 내의 비도시형 공장을 이전·이주시키고, 대단위의 농지조성과 담수호를 이용하여 주변 농경지의 관계 개선을 기하기 위해 추진된 복합 용도의 국토개발사업이다.
1981 언론중재위원회[ 言論仲裁委員會 ] 업무 개시, *정정보도요구에 의한 분쟁을 중재하고 정기간행물의 게재내용에 의한 침해사항을 심의하는기관. 40명 이상 80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위원 중에서 호선(互選)하여 임기 3년의 위원장 1명과 부위원장 2명을 둔다(정기간행물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17② ③ ④). 피해자 또는 언론사는 언론보도로 인한 반론보도청구권 또는 정정보도 등을 구하는 권리에 관한 분쟁에 대하여 그 사실보도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1월(반론보도청구절차를 거친 경우에는 피해자와 언론사간 협의, 불성립된 날부터 14일) 이내에 서면으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중재를 신청할 수 있다(18 ①). 중재는 중재신청이 접수된 날로부터 14일 이내에 하며(18 ④), 중재가 성립된 경우는 재판상의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있다(18 ⑦). 한편 중재위원회는 필요한 경우 당해 발행인에게 시정을 권고할 수 있다(18 ⑧). (출처:엠파스백과 100.empas.com)
1980년] 영국 출생의 미국 영화감독 히치콕(Hitchcock, Alfred, 1899~1980) 사망 1979 - 서울서 제8회 세계여자농구대회 개막 "세계 여자농구 선수권대회는 1953년 제1회가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열린 이후 매 4년마다 윤번제로 세계 각국에서 열려 오고 있다. 1974년 7월에 열린 세계농구연맹 이사회에서 제8회 대회는 대한민국에서 개최할 것을 만장 일치로 가결한 결과 서울에서 이 대회가 1979년 4월 29일부터 5월 13일까지 개최될 것이 확정되었다.
세계여자농구 선수권대회가 아시아 지역에서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한국으로서는 세계적 규모의 공식적 선수권대회를 주최하는 것은 한국농구 사상 초유의 일이다. 세계 여자농구 선수권대회는 세계 각 지역을 대표하는 13개국 농구 강국이 참가하는바, 농구계에 있어서는 가장 권위있는 대회중의 하나이다. 이 대회는 세계 각국의 여성스포츠 발전에 크게 공헌할 뿐 아니라 발전하는 한국의 모습을 내외에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이에 체신부에서는 이번 세계 여자농구 선수권 대회를 통하여 한국 농구의 기술을 연마하는 한편 국내 스포츠의 발전이 있기 바라면서 기념우표를 발행한다." (우표발행안내) /k-stamp 1978년] 고리원자력발전 1호기 상업운전 시작 원자로에 쓰일 핵연료의 준비 및 처리의 기본단계 1978년 4월 29일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고리에 한국 최초 최대 규모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원자력발전소가 준공되었다. 가압경수형 원자로(PWR) 4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총시설용량은 313만 7,000kW이다. 두 차례의 석유파동 이후 에너지원의 다원화 정책의 성과로 1호기(58만 7,000kW)가 1971년 3월에 착공해 1978년 4월 29일에 준공했으며, 2호기(65만kW)는 1977년 3월에 착공해 1983년 7월에, 3·4호기(각 95만kW)는 1979년 4월부터 본공사에 착공해 3호기가 1985년 9월에, 4호기가 1986년 4월에 각각 준공함으로써 이 발전소는 국내 최대의 원자력발전단지가 되었다. [고리 1호기 연혁] 1971.03.19 한국전력-웨스팅하우스(WH) 고리 1호기 건설계약 체결 1971.11.00 착공 1977.06.19 초임계(원자로 점화, 핵분열 시작) 1978.04.29 상업가동 시작 1978.07.20 고리원전 1호기 준공(식) [국내 원자력 발전 현황(원자로 상업운전 일자)] 고리 원자력 1호기(가압경수로) 1978.04.29 고리 원자력 2호기(가압경수로) 1983.07.25 고리 원자력 3호기(가압경수로) 1985.09.30 고리 원자력 4호기(가압경수로) 1986.04.29 월성 원자력 1호기(가압중수로) 1984.04.22 월성 원자력 2호기(가압중수로) 1997.07.01 월성 원자력 3호기(가압중수로) 1998.07.01 월성 원자력 4호기(가압중수로) 1999.10.01 영광 원자력 1호기(가압경수로) 1986.08.25 영광 원자력 2호기(가압경수로) 1987.06.10 영광 원자력 3호기(가압경수로) 1995.03.31 영광 원자력 4호기(가압경수로) 1996.01.01 울진 원자력 1호기(가압경수로) 1988.09.10 울진 원자력 2호기(가압경수로) 1989.09.30 울진 원자력 3호기(가압경수로) 1998.08.12 울진 원자력 4호기(가압경수로) 2000.01.01 /한국전력공사 (www.kepco.co.kr) 1975년] 주월(駐越) 한국대사관 사이공 철수 ← 베트남 난민들이 미 대사관 옥상에서 헬기에 오르고 있다. 4월26일, 한국에서 파견한 2척의 LST함에 교민들을 실려보내 1차 고비는 넘겼지만 상황이 급박해지자 4월28일, 한국 대사관은 전원철수를 결정한다. 국기를 내리고 통신기기와 비밀서류를 소각했다. 100여명이 탄손누트 공항을 통해 빠져나갔다는 소식이 전해져 희망을 주었으나 곧 공항도 파괴돼 의지할 것이라곤 미군 헬기 뿐이었다. 29일 날이 밝았다. 집결지는 미 대사관 후문 헬기장. 이미 3000여명의 각국 난민들로 통제불능상태로 빠져들고 있었다. 다행히 오후 4시부터 미군 헬기가 난민들을 부지런히 실어 나르는 것이 목격됐다. 교민탈출을 위해 미국측과 만반의 준비를 다 갖췄다고 판단한 김영관 대사 일행은 오후 6시경, 헬기를 타고 미 대사관을 떠났다. 월남 패망일인 4월30일 새벽 4시15분, 밤샘한 일부 교민이 헬기로 미 대사관을 벗어나고 마지막 남은 9명의 공관원과 165명의 교민들이 마음을 조아리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4시30분, 이륙하는 헬기만 보일 뿐 착륙하는 헬기는 보이지 않았다. 유일한 생명선이 끊긴 것이다. 사이공에 내버려진 교민들은 1년 안에 모두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이들의 철수를 도왔던 이대용 공사와 서병호ㆍ안희완 영사 세 사람은 현지 감옥에서 5년간을 더 보내야 했다. 1980년 4월12일, 마침내 그리던 조국 땅을 밟았다./조선 1969 - 나시루딘 말레이시아 국왕 방한 말레이시아 국왕 내한 * 제작연도 : 1969-05-03 * 상영시간 : 03분 24초 * 출처 : 대한뉴스 제 724호 /e-영상역사관-대한뉴스 1968년] 미국, 흑인들의 ‘빈자(貧者)의 행진’ 시작 1961년] 충주비료공장 준공 이는 계약 당시보다 외자 56%, 내자 54%가 늘어난 것이다. 이밖에도 30개월을 기한으로 한 기술용역 계약체결로 인건비 2백만달러를 포함한 계약상의 경비 5백13만5천달러가 더 들었다. 이 때문에 요소비료 t당 생산비가 시가 7만9천환을 훨씬웃돈 13만2천환으로 올랐다. 이같이 추가자금이 많이 들어간 것은 고정보수와 실비청산제 계약을 적용, 맥크로회사 측이 계약당시보다 자재와 포장비, 운임이 크게 올랐다는 이유로 외자 91만4천달러와 내자 8억8백50만환의 추가자금을 요구한데다 그후 자금추가조치가 8개월이나 지연됐다는 이유를 내세워 다시 경비조로 2백78만달러 등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국제계약 체결에 미숙해서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조선
1950년 : 현 서울시의회 의사당에 국립극장 개관 1948 북한 인민회의, 헌법초안 만장일치 채택 1945년의 정세 해방(1945년 8월15일)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미국 영국 소련의 대표들이 한국의 독립문제를 의논하는데 여기서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독립시킨다라는 선언을 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1945년 8월6일과 9일에 일본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8월15일 일본이 항복을 하면서 우리나라는 광복이 되지만 일본군의 무장해제 때문에 북한지역에는 소련군이(당시 만주에서 일본군을 격파하고 승승장구하면서 북한으로 진격했답니다) 남한지역에는 미군이 들어오면서 그 유명한 38선이 생기게 되고 분단이 되었습니다. 모스크바 3상회의와 신탁통치(1945년 12월16~25) 이로 인해 좌익(북한지지세력)과 우익(남한지지세력)의 대립이 점점 고조되는 가운데 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미국.영국.소련 3국의 외상이사회가 열리는데 이를 모스크바 3상회의라고 합니다. 이 회의에서 한국에대한 신탁통치(독립할능력이 없는 나라를 강대국이 일시적으로 통치하는것)안이 체결되면서 좌익까지 우익과 연합해 반탁운동을 벌였으나 곧 소련의 지시를 받은 좌익이 찬탁운동을 벌이면서 정국은 점점 혼란해 지게 됩니다. 미소공동위원회(1946년 1월16~1947년 5월21일) 미소공동위원회란
1932년] 윤봉길 의사, 상해 홍구공원서 일왕 생일 경축식에 투탄 윤봉길, 거사에 앞서 태극기 앞에서 맹세하는 모습
1901년] 일본 왕 히로히토(裕仁, 1901~1989) 출생
1854년] 푸앵카레 (Jules-)Henri Poincaré 출생 1854년 4월 29일 태어남 / 1912년 7월 17일 죽음 1770 - 제임스 쿡 선장, 호주 해안(Botany Bay) 상륙 4월 20일, James Cook 선장이 호주 대륙 첫 발견. 1766년 영국 왕립 협회는 쿠크를 고용해 태평양을 항해하며 금성(Venus)의 궤도를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하였다. 쿠크는 소위로 승진하였으며 탐험의 지휘를 맡게 되었다. 탐험은 1768년 영국에서 출발, 케이프 혼(Cape Horn)을 돌아 태평양 방면으로 항해하여 1769년 4월 13일 타히티(Tahiti)에 도달함으로써 종결되었지만 결과는 예상보다 만족스럽지 못했다. 쿠크는 훗날 거의 정확한 뉴질랜드 해안선 지도를 만들고 서쪽으로 항해, 1770년 4월 19일 호주 대륙 남동부 해안에 도달하였다. 이는 유럽인으로서는 최초였다. 1770년 4월 23일 쿠크는 발리 포인트(Bawley Point) 근처 브러쉬 아일랜드(Brush Island)에서 호주 원주민들에 대한 최초의 기록을 남겼다. 그는 멀리 해안가에서 원주민들을 보고 그들의 모습이 검은데, 피부 때문인지 옷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기록하였다. 4월 29일 오늘날의 커넬 페닌술라(Kurnell Peninsula)에 상륙한 쿠크는 식물학자(botanist) 조셉 뱅크스(Joseph Banks)와 다니엘 솔랜더(Daniel Solander)가 몇가지 식물들을 채취해온 후 이곳을 보타니 베이(Botany Bay)라고 명명하였으며, 그웨아갈(Gweagal)이라고 하는 호주 원주민 부족과 처음으로 접촉하였다. 보타니 베이를 떠난 쿠크는 북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6월 11일 엔데이버 호는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에서 암초에 걸려 손상을 입었다. 오늘날의 엔데이버 강(Endeavour River) 초입 쿠크타운(Cooktown) 부근에 상륙하여 7주간 배를 수리한 쿠크는 토레스 해협(Torres Strait)을 거쳐 8월 22일 포제션 아일랜드(Possession Island)에 도착, 이곳을 영국령으로 선포하였다. 쿠크는 오늘날의 인도네시아 자카르타(Jakarta)인 바타비아(Batavia)와 희망봉(Cape of Good Hope)을 돌아 1771년 7월 12일 영국에 도착하였다.
694 (신라 효소왕 3) 김인문(629-694) 세상 떠남 . 출생연도 1.629년 2. 사망연도.694년 3. 직업. 신라 삼국통일기의 장군 및 외교관 4. 자. 인수 5. 가족관계. - 아버지 : 무열왕 - 어머니 : 김유신의 동생 문희 - 형 : 문무왕 6. 백제 정벌 651년 김문왕과 교대하여 당나라에 숙위로 파견되어 좌령군위장군이 되었고, 5년간 머물면서 신라와 당나라 간의 현안문제, 특히 백제정벌에 관한 중개임무를 맡았다. 656년 잠시 귀국하였을 때, 압독주의 군주가 되어 장산성을 축조했다. 658년 다시 당나라에 갔다. 660년 나·당연합군을 조직하여 당나라군 부사령관인 신구도부대총관이 되어 백제정벌에 나섰다. 군대를 이끌고 덕물도에 도착하여 기벌포에서 백제군을 격파했고, 7월에는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과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켰다. 7. 고구려 정벌 661년 6월 다시 귀국하였다. 661년 7월에 고구려 공격군을 편성하고 대당장군이 되었다. 661년 8월 고구려 공격에 나섰으나, 고구려군의 저항으로 퇴각하고 다시 당나라로 갔다. 664년 당나라에 포로로 잡혀 있던 백제 태자 융과 함께 귀국했다. 664년 7월 고구려의 돌사성을 함락시켰다. 665년 다시 당나라에 가서 우요위대장군이 되었다. 668년 흠순, 천존 등과 함께 대당총관이 되어 북진을 시작했다. 668년 9월 당나라군과 더불어 평양성을 함락시킴으로써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8. 만년 그뒤 계속 당나라 수도에 머물렀고 679년 진군대장군 행우무위위대장군이 되었다. 690년 보국대장군 상주국 임해군 개국공 좌우림군장군이 되었다. 694년 4월 당나라 수도에서 죽었으며, 영구는 신라에 호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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