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11월 21일 흐림
날씨가 꾸물 댄다.
지금 오는 비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비인데....
아침부터 서둘렀다.
‘병원에 얼른 가서 내시경 빨리 끝내고, 일하러 가야지.’
이놈의 내시경 때문에 이틀을 흰죽만 먹고, 뭔 약인가를 탄 물을 500ml씩 8병이나 마셔야 했다. 그것도 20분마다 넘기려니 죽을 맛이었다.
화장실을 몇 번 들락거렸더니 맥이 다 빠진다.
‘에이, 빨리 끝내 버려야지’
그러면서도 건강진단을 받을 때마다 언제나 그랬듯이 긴장은 된다.
‘혹시나....’
16년 전인가 ? 충희가 두 살 때 쯤이었다.
공무원 건강진단의 결과가 폐에 이상이 있는 것 같으니 정밀검사를 받으라고 나왔다. ‘어라, 이거, 혹시 ?’ 마음이 덜컥했다.
그런 소리를 들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왼쪽 가슴이 이상한 것 같았다.
담배는 오랫동안 피웠지, 선생 하느라 분필 가루도 많이 먹었지.
‘건강진단이 잘못 나왔을 리는 없을 것 아닌가’ 생각이 자꾸 커진다.
‘만약 폐에 이상이라도 있다면 어떻게 되는 건가 ? 폐암은 약도 없다는데....
100% 볼 것도 없다는데’ 탕정에서 같이 근무한 성섭이 형이 폐암으로 고생하다 돌아가시는 모습이 자꾸 생각나더라. 그 형의 임종을 직접 했었다
아무도 모르게 나 혼자 고민을 했다.
자다가 깨서는 옆에서 곤히 자는 신혼의 마누라와 충희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었다. ‘내가 잘못된다면, 마누라와 아이들은.....’
그 순간 마누라와 충희의 얼굴이 어찌나 안돼 보였는지.........
그런데도 병원에는 가지지 않는다. 참 미련했는지, 미리 자포포기 했는지...
어느날 신문에서 30년 이상 담배를 피운 사람들에게 무료로 폐암 검사를 해줄테니 신청하라는 기사를 보았다.
미적대다가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신청했더니 그 게 당첨이 된 거 아닌가.
전문 검사기관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았다.
그 후 결과를 기다리는 1주일의 시간은 정말 길었다.
그 때가 교감 승진을 위한 연수기간이었는데 그것도 별개의 일이었다.
1주일 후 검사결과표가 내 손에 쥐어졌는데 쉽게 열어지지가 않았다.
‘에이, 까짓 거. 죽기 아니면 살기다’ 쫙 열어 보았다.
‘정상’ 이게 사실인가 ? 정말인가 ? 틀림이 없는가? 몇 번을 확인했다.
‘이런 나쁜놈들, 멀쩡한 사람 죽일 일 있나 ?’
욕이 절로 나왔다.
어쨌든 한 차례 죽었다 살아난 것이다.
그 직후는 건강의 중요성, 처자식에게 잘해야 겠다, 담배를 끊어야 겠다 등등 여러 생각을 했지만 잠깐뿐이더라.
엊그제 장모님께 “어머니, 저 내시경 받으러 가요”했더니 반색을 하신다.
“응 얼릉 갔다 와. 요새 암이 하도 흔해서 젊은 사람도 퍽퍽 쓸어져. 저 밑에 보경이 애비도 취장암 이라잖아. 버섯은 내가 따놓을게 걱정 말고...”
퇴직 전에 안 사람이 종합검진을 해 보라고 등을 떠밀었다.
68만원, 적지 않은 돈이라 망설였지만 퇴직 후를 생각해서 못이기는 척 응했다. 하루 날을 잡아 한나절 내내 이리저리를 끌려다녀야 했다.
결과를 볼 때는 언제나 약간은 께름직 하다.
다행히 나이 먹으면 다 나오는 것 두어 가지 조심하라는 얘기고 나머지는 정상이란다.
그 때 대장내시경은 뒤로 밀려졌었기 때문에 오늘 또 고생을 하였다.
아무리 병원이라도 내놓기 쉽지 않은 부위가 있다,
더구나 간호원들 앞에서 내 치부를.... 기분 좋은 일은 결코 아니다.
그래도 의사 앞에서 내 병 감출 수 없는 법. 내 몸을 맡길 수밖에...
즉석에서 결과가 나온다. “정상” 용종, 선종도 없었다.
기분 좋게 나와서 순대국 한 그릇으로 고픈 배를 채우고, 그답 정산행이다.
내일 모레부터 추위가 닥친다니 그 전에 치울 것이 있다.
장모님이 버섯은 따놓으셨고, 은행을 마무리해야 한다.
서당골에 가서 은행을 줍는데 내 바로 앞에서 고라니가 혼비백산 뛰어 도망 간다. “에이구 미운놈, 이놈 게 섯거라” 고함을 쳤다.
그런데 새끼가 보이지 않는다.
벌써 다 키워 살림을 냈나 ?
“이놈들, 내 고구마 물어내”
바로 앞산에서는 고라니 수놈이 꺼욱꺼욱 울어대며 암놈을 부른다.
고라니의 번식기가 온 모양이다.
새끼가 늘어나는 만큼 걱정도 커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