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오랜 역사와 정신문화 그리고 예술이 담긴 그야말로 종합예술인 굿판은 종교를 떠나 한국인의 정체성과 원형을 파악하는데 꼭 필요하다고 본다. 국문학을 전공한 필자는 그동안 적지 않은 굿판에 참여해 당대의 내로라하는 무당이나 만신도 여러 명 만나봤다. 경기도당굿의 故 오수복 선생, 남이장군 도당굿의 이명옥 만신, 만수대탁굿의 김금화 만신, 남해안별신굿의 정영만 선생, 진도씻김굿의 박병천 선생 집안 등은 한시대의 굿판을 호령하던 무당이자 다재다능한 예술가였다.
화랭이들과 함께 굿을 시작하는 김동언 선생
그러나 유달리 동해안별신굿과는 인연이 없어 아쉽게도 김석출 선생의 굿은 보질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김 선생 사후 드렁갱이 장단의 명인이자 동해안별신굿 전수교육조교 인 김정희 선생의 신들린 장구소리에 매료 되었고 최근에는 동해안 굿의 다음세대를 짊어질 젊은 연주자들인 박범태 (청배 예술감독), 조종훈 (한국학중앙연구원 재학 중), 김기창(전 부평연희단 단무장) 등과 교분을 나눌 수 있던 차에 동해안 별신굿이 서울에서 열린다는 소식이 있어 남산국악당을 찾았다.
구성진 소리를 들려주는 김동언 선생
일요일 오후임에도 남산국악당에는 국악인은 물론이고, 민속학과 구비문학을 전공하는 학자와 전공학생 그리고 굿판을 보려는 사람들로 줄이 이어졌다. 이날 굿판에서 선보일 굿거리는 판소리 <심청가>와 같은 내용을 담은 <심청굿>으로 무당은 故 김석출 선생의 셋째 따님으로 어려서부터 굿판에서 자란 전수교육조교 김동언 선생이셨다. 세습무 집안이 그렇듯 남편은 장구를 치는 화랭이(악사, 고수)였고 아들 또한 징을 두드리며 어머님의 굿판을 든든히 지켜주고 있었다.
객석에서도 무대에 올라와 함께 굿에 참여하고 있다.
판소리 심청가와는 다르게 심청의 출생 배경과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가게 된 배경을 상세하게 설명한 전반부가 비중 있게 다뤄졌다. 또한 판소리와 다르게 사물이 반주를 함에 따라 장단 또한 다양했고 무당의 사설 또한 훨씬 입체적이었다. 약 100분간의 1부 공연을 마치고 주최 측이 준비한 떡과 음료를 나누며 2부 공연에 대한 기대감과 반가운 얼굴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 또한 굿판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 굿판을 좌지우지한 공력이 엿보인 무대
휴식을 마치고 시작한 2부에서는 서럽고 구슬픈 대목이 많아서인지 굿을 진행하는 김동언 선생도 눈시울을 훔치며 굿을 했고 객석에서는 여기저기서 손수건을 꺼내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필자 또한 코끝이 찡한 마음에 눈가의 눈물을 훔쳐야했다. 세 시간이 넘는 굿판이 꿈같이 지나가고 굿판에서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 앵콜 소리 속에 아쉬움을 남기고 굿판을 마쳤다.
소리와 재담은 물론 춤또한 일품이었던 심청굿
계속해서 내년에는 성주굿을 그리고 2014년에는 오구굿과 바리데기굿 (발원굿)까지 차근차근 완창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니 자못 기대가 크다. 여러 가지 편견과 종교적 기능의 상실로 우리 곁을 떠났던 굿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는데서 이번 무대는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종합예술로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굿판이 방방곡곡에서 펼쳐지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