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8일 (Losar is Good Year, 그리고 음식들)
아침 9시 20분, 컁진곰파를 떠나 왔던 길을 되돌아 랑탕 마을로 향했다.
컁진곰파에 영업을 위해 같이 올라왔던 양진은 우리와 함께 하산을 위해 서두른다. 롯지의 문을 걸어 잠그고, 샤워장과 화장실, 그리고 물탱크까지 자물쇠로 단속을 끝낸 양진이 우리와 같이 출발했다.(컁진곰파는 물이 귀하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샤워를 할 수 없을까 하고 몇 번이나 양진에게 물었던 것이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우리는 본의 아니게 당분간 전속 요리사를 데리고 다니는 호사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랑탕리룽의 봉우리여 안녕, 컁진리의 룽다와 타루초여, 컁첸포여 안녕! 우리는 하산을 시작했다.
그런데 오늘은 이 골짜기 모든 부디스트들의 잔칫날이다.
'Losar is Good Year' 우리네의 명절인 것이다. 뜻밖에 맞은 이곳 티베탄들의 신년에 우리가 특별히 감동할 것은 없지만 저만치 다가오는 마을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룽다와 타루초가 일제히 새것으로 걸려 나부끼고 있다. 일년 동안 바람에 나부껴 갈가리 찢어진 것도 있고 탈색되어 희뿌옇게 변했던 것들이 짙은 천연색의 깃발로 나부끼는 광경은 참 기분 좋다. 마을이 갑자기 정갈해 진듯하다.
아침에 계산을 끝내자(이틀의 숙박비, 식비 합해서 3,425루삐, 우리는 3,500루삐를 지불했다) 양진은 점심을 '서비스'로 하겠단다. 그런데 이것이 발단이 됐다. 하산 길 첫 번째 방문은 양진의 시집이었다. 문두(Mundu, 3,410m)마을. 문두에는 양진의 시부모가 있었는데 미리 인편으로 통보가 된 듯 시어머니가 화톳불에 차를 끓이고 있었다. 폭 15센티, 길이 1미터 정도의 커다란 대나무 원통에 버터와 소금을 넣어 버터 차(Tea)를 만들어 주는데 이게 일품이다.
여기서 우리는 창 넉 잔을 마셨다. 야크고기와 감자, 콩을 섞은 요리가 맛있다. 최근 먹어 보지 못한 특별식(特別食)이다.
창은 한 모금 마시면 즉시 마신 만큼 잔을 채워주고, 또 마시면 채워주고...... 이런 식으로 넉 잔을 마시고 나니 알딸딸하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신년이라 우리네 관습처럼 인근의 친척집을 몇 군데 방문하는데, 이번엔 양진의 여동생 집이다. 이곳 부엌에서 창 두어 잔을 또 마셨다.
그런데 집 입구에서 양진의 여동생 시아버지가 자신의 발목에 난 상처를 보여 주며 우리에게 '헬프 미!'한다. 배낭을 풀어 소독약, 연고, 일회용 반창고로 상처를 치료했다. 그는 몰고 오던 야크가 갑자기 목을 젖히는 바람에 손에 쥐었던 줄이 당겨져 바위틈에 발목이 끼는 통에 상처가 생겼다고 하며, 내 손을 쥐고 연신 고맙다고 머리를 조아린다. '젊은이 최고야, 고마워!' 나는 졸지에 유능한 의사가 됐다. 알딸딸한 기운에 나도 기분이 좋아져 그의 마른 손을 잡고 흔들었다. 술기운이 몸에
쫙 퍼져 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양진의 남동생네 집에 끌려(!)갔다. 여기서 또 창 두잔. 거의 그로기 상태에서 네 번째로 양진의 친정을 방문. 또 창 두잔. 말하자면 우리네 설날의 풍속도와 비슷하다. 이제 비틀비틀 수준. 겨우 오늘 묵을 문라이트 롯지에 도착, 짐을 풀었다.
이들의 진심이 담긴 신년 환대에 우리는 감격했다. 양진은 행운의 상징이라며 우리들의 목에 미색의 머플러를 둘러 줬다. (나중에 네팔을 출국하며 공항에서 보니 많은 트래커들이 머플러를 한채 있었다. 하긴 같은 시기의 트래커들 이었으니......)
오늘 하루는 이들과 더불어 행복한 날이다. 울컥 눈물이 솟는다.
창에 취해 정신없이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저녁나절, 우리는 식당 난로 가에 둘러앉았다.
이곳 문라이트 롯지는 양진의 큰 오빠가 운영하는 곳이다. 양진은 여전히 큰오빠네 부엌에서 익숙하게 차와 음식을 만들어 낸다. 말하자면 시누이와 올케 사이의 부엌으로 우리네에게선 좀 껄끄러운 시추에이션이다. 양진의 올케는 곁에서 가만히 앉아있다. 식당에는 예의 그 작은 사당이 차려져 있는데, 역시 달라이 라마와 부처님 사진, 여래보살 등의 그림이 있고, 그 앞에는 밀가루 반죽에 물감을 들여 튀겨내어 모양을 낸 촛불형상의 과자, 귤 등 과일, 환타 음료수 한 병, 그리고 조화(造花)들로 장식을 하고 양초에 불을 켜 두었다.
이 나라에선 힌두가 됐건, 불교도가 됐건 그들의 일상 속에 종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종교는 곧 일상이며 생활인 것이다.
졸지에 이들 일가의 궁색하기 이를 데 없는 살림집 네 곳을 방문했는데, 그들의 얼굴에서는 우리에게 보여주기 민망한 '찌든 삶'의 표정은 당연히 없었다. 나는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기준에 의해 그들을 '찌들었다'고 여기고 있었다는걸 깨달았다.
삶의 질이란, 어느 누구도 그 가치를 함부로 규정치 못 할 것임을 이번 여행에서 절감하고 있다. 이들의 삶이 허접하고 구차한 것이라고 누가 규정할 것이며, 100평 펜트하우스의 삶이 쾌적하고 안락한 삶이라고 누가 규정할 것인가? 양진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는 부엌에서 술이 마저 깨지
않은 채 나는 행복했다.
문득 부엌에 펼쳐진 메뉴를 들여다보다가 이 트래킹 루트 산속의 음식에 대해서 한번 짚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체로 히말라야 롯지의 음식은 트래킹족을 위주로 한 음식으로 사실 국적이 없다. 메뉴에는 네팔 지방 관청의 승인 도장이 페이지 마다 찍혀 있고, 고도(高度)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예를 들어, 고도 3,330m의 랑탕마을 롯지의 밀크 티 한 잔이 40루삐면 고도 3,730m 컁진곰파의 롯지 가격은 50루삐다. 메뉴는 고도가 낮은 마을이건, 높은 마을이건 90%는 똑 같은데, 1인당 가격 기준으로,
(당시 환율은 1루삐에 15원 정도였다)
hot Drinks (주로 차 종류) 30-70루삐
Porridge (주로 Porridge, Pudding 종류) 100-160루삐
Egg (삶은 계란, 튀긴 계란, 오믈렛 종류) 60-150루삐
Bread & Chapati (빵) 60-160루삐
Fresh Soup (스프 종류, 결코 Fresh하진 않다!) 120-160루삐
Cream of Packet Soup (분말가루를 끓인 스프) 110-150루삐
Potatoes (삶은 감자, 튀긴 감자 등) 110-170루삐
Momo (감자, 채소, 치즈를 넣은 한 덩어리 만두) 130-170루삐
Chowmein/Spaghetti (뽁음면, 스파게티 종류) 130-180루삐
Pasta (채소, 감자, 계란 파스타 종류) 120-160루삐
Rice (네팔식 달밧, 볶음밥 등) 110-180루삐
Pizza & Sandwiches (피자, 샌드위치/ 보통의 피자나 샌드위치를 상상하면 안된다!)130-190루삐
Salad (야채 샐러드, 사실 귀해서 거의 먹기 힘든다!) 80-160루삐
Pancake (치즈, 계란, 사과 팬 케잌) 110-170루삐
Cakes & Pies (사과, 커피, 초콜릿 케잌과 파이 등) 100루삐
Cold Drinks (콜라, 환타, 미네랄 워터) 100루삐
Beer (맥주) 200-250루삐
이중에 특히 눈에 띄게 비싼 것이 음료수와 생수, 맥주인데 그 무거운 것 들이 카트만두와 샤브로벤시를 거쳐(그 험악한 길을!) 여기까지 누군가의 등을 타고 왔다고 생각하면 결코 비싸지도 않거니와 또 쉽게 병마개를 따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아무튼 대개 위와 같은 메뉴인데, 작은 주방 안에서 이 모든 것이 주문하는 대로 나온다. 마법의 상자 속 같다. 그런데 음식의 재료들은 거의 인스턴트라 물론 싱싱한 맛을 즐길 수 있다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음식의 명칭들은 그럴 듯 하나 그것은 이들이 조리방식에 물문하고 서양의 음식 이름과 근접시킨 명칭일 뿐이다.
이런 3,000m가 넘는 고지대의 식재료 운반은, 100% 인력으로 힘들여 나르는 것이므로 가벼운 인스턴트 재료를 선호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스프 종류는 우리네 수퍼마켓에서 파는 오뚜기 스프 (플라스틱 봉지에 든 분말)형태이고, 이 지역에서 자체 조달되는 재료는 감자, 마늘, 양파, 양배추 등 약간의 채소와 야크고기 정도뿐이다.
우리네 입맛에 맞는 음식은 (한국식을 특히 그리워하는 사람의 경우) 계란, 감자, 스프, 쌀밥 등인데 계란과 감자는 우리네와 다를 것이 없고, 감자는 몹씨 작아 껍질을 벗기는데 다소 번거로운 정도이며, 스프는 우리네 수퍼마켓에서 파는 스프와 같으므로 그나마 거부감이 없지만, 쌀밥은 우리네 쌀과 판이하게 달라서 쌀 한 톨들이 제각기 톡톡 튀는 개성(!)을 가지고 있어서 서로 절대 붙지 않으므로 숟가락으로 그것을 떠먹으려면 조심성이 필요하며, 조심하지 않으면 식탁에 3분의 1은 쏟게 된다. 또한 찰기가 없으므로 입안에서 따로 따로 놀며, 생김새 또한 길쭉하다. 특히 이들이 밥을 짓는 방식은 우리네 아줌마들이 기겁을 하는 방식인데, 밥이 끓는 중에 수시로 뚜껑을 열어 김을 빼는 통에 더욱 찰기가 없어진다. 그들은 우리와 달리 찰기 있는 밥을 좋아하지 않으므로 다른 외국인도 자기네와 같을 거라고 믿고 있는 듯 하다.
특히 네팔리 가이드나 포터, 현지인들은 거의 이 쌀로 만든 '달밧(Dalbhat)'을 주식으로 하는데, 달밧은 큰 쟁반에 쌀밥과 볶은 채소, 삶은 감자 약간, 검은 녹두(혹은 콩) 삶은 국물, 이렇게 한 세트로 된 것을 먹는데 여기에 약간의 호화식(豪華食)이면 닭고기, 돼지고기 튀긴 것이 추가된다.
이들의 음식에는 60-70% 정도가 '마살라'라는 양념이 가미 되고 이것이 우리네 입맛을 심히 곤혹스럽게 하나 그것을 즐기는 이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한국인이 랑탕 지역을 여행할 때는 고추장, 마른 멸치, 절인 깻잎, 조미된 김, 데워서 먹는 우리식 카레 등 나름대로 입맛을 감안해서 휴대와 운반이 용이한 것들을 가져 가면 좋을 듯싶다.
대개 음식을 주문할 때는 1인당 두 가지 정도를 시키게 되는데 음식에 따라서는 한가지면 충분한 것도 있고, 너무 적은 양도 있어서 며칠을 먹다 보면 대강 감이 잡힌다.
확실한 것은 이 트래킹 루트에서는 '완벽한 식생활의 평등'이 이뤄 진다는 것이다. 돈이 아무리 있다해도 위에 열거한 음식 이외는 없고, 누구나 똑 같은 식탁에서, 누구나 똑 같은 재료로, 누구나 똑 같은 사람이 만든 음식을 먹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잠자리 역시 마찬가지지만......
음식에 대해 기술하느라 식탁에 앉았으니 부엌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리고 여자의 흐느끼는 소리가 작게 들린다. 치린에게 물어보니 남녀가 싸운다고 하는데, 목소리의 톤이 일정하고 낮아 우리네 다툼의 소리와는 많이 다르다. 비행기 안에서 네팔리 들의 잡담이 거슬리지 않듯 이들의 다툼은 우리가 약간 높은 톤으로 토론 하듯 들린다.
《야크 Yak》 고산에 사는 소과(科) 포유동물. 네팔에서 가축으로 키우며, 치즈, 고기, 내장, 가죽을 얻고, 배설물은 연료와 퇴비로 이용된다. 야크는 티베트어(語) 네팔어로는 '쩌우리'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