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관찰관 1명이 소년범 130명 관리… 재범 막을 교화 시늉뿐
권기범기자 , 김단비기자 , 김예윤기자 입력 2017-09-07 03:00수정 2017-09-07 03:35
잔혹해지는 10代 범죄… 겉도는 대책
“보호관찰요? 아이들은 무죄 받은 걸로 생각합니다.”
중부권의 한 보호관찰소에서 10년 넘게 보호관찰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A 씨. 그는 최근 부산과 강원 강릉 등지에서 또래 소녀를 집단폭행한 10대 소녀들 가운데 보호관찰 대상자가 여러 명 있었다는 사실에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A 씨가 현재 보호관찰을 맡고 있는 청소년은 90여 명에 달한다. 몇 달 전까진 130명이 넘었다고 했다. 한 명 한 명 신경을 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매주 한두 명은 연락 끊고 잠수를 타요. 부모님이건 선생님이건 전혀 두려워하질 않는 아이들이어서 규정 안 지키면 벌준다고 겁을 줘도 아무 소용이 없죠.” 그의 목소리에는 고단함과 무력감이 묻어났다.
○ 보호관찰 결정 후 7일은 ‘증발의 시간’
최근 친구에게 잔인하게 폭력을 휘두른 10대 소녀들이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소년법을 개정해서라도 청소년 범죄자를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의 피해자 가족도 채널A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가해 학생은 다른 사건에 연루된 적이 있다고 한다”며 “그렇게 (심한 폭행을) 해도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엄한 처벌을 촉구했다.
영남 지역의 보호관찰소에서 근무하는 B 씨는 비행 청소년을 처벌하기보다 교화가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 앞에 좌절하기 일쑤다. 법원이 소년 범죄자에게 보호관찰을 선고한 뒤 일주일간은 보호관찰관들에겐 공포의 시간이다. 보호관찰은 해당 청소년이 선고 후 7일 내에 항소 포기 의사를 밝혀야 확정되는데 이 기간에 관찰 대상자가 잠적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보호관찰관들로선 처분이 확정되기 전까진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다. B 씨는 이 기간을 “관찰 대상자가 증발해 버리는 ‘끊어진 다리’ 같은 시간”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6월 경기 의정부시에서는 보호관찰 처분을 받자마자 가출해 모텔 등을 전전하며 필로폰을 투약하고 성매매를 한 16세 소녀가 두 달 만에 다시 붙잡히는 일도 있었다. 청소년 보호관찰 대상자의 재범률은 12.3%(2016년)로 성인(5.6%)의 두 배가 넘는다.
○ 학교 울타리 밖의 청소년 교화는 속수무책
“선도교육 대기 학생이 넘쳐서 2, 3주씩 징계가 미뤄지는 일도 있고요. 기다리다 지쳐 학교에서 자체 처리하기도 하고요….”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일하는 교사 C 씨는 “‘특별교육이수 처분’에는 사각지대가 너무 많다”며 아쉬워했다. 특별교육이수 처분은 학생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열리는 선도위원회가 정할 수 있는 징계 중 하나로 외부기관에서 이뤄지는 교육을 받는 징계다.
C 씨는 “교육기관을 정할 때 학생의 비행 종류와는 상관없이 연령대로 가르는 등 주먹구구식이 많다”며 “비슷한 문제를 일으킨 아이들이 학교 밖에서 만나 어울리면서 오히려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학교와 각종 센터, 교육기관은 청소년들이 경찰서와 법원을 드나들기 전 미리 이들을 챙길 수 있는 대표적 기관이다. 그러나 학교와 기관들이 청소년들의 비행을 막을 수 있을지를 두고는 현장 교사들마저 의문을 표하고 있다.
충남 지역의 한 고등학교 교사 D 씨는 “교내봉사, 사회봉사 처분으로 아이들을 단시간에 바로잡을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처벌을 받는 과정에서 수업을 빼먹고, 학급 친구들과도 점차 멀어지게 된다는 것. D 씨는 “‘교실 밖 교육’이 늘면서 오히려 자연스럽게 학교 밖으로 밀어내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 울타리 안에서 교화가 어려운 비행 청소년들은 법무부가 운영하는 ‘청소년꿈키움센터(청소년비행예방센터)’로 보내져 특별 교육을 받는다.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거나 법원이 교육 명령을 내린 청소년들도 이곳에 온다. 2011년부터 운영된 꿈키움센터에서 교육을 받은 비행 청소년은 매년 증가해 지난해 7만5000여 명에 달했지만 전국 센터 수는 여전히 16곳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실효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승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선도 프로그램이 길어야 4, 5일 정도에 불과해 교화 효과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부모가 반대하면 교육을 받지 않아도 되고 내용도 심리상담 수준에 그쳐 범죄 예방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공정식 한국심리과학센터 소장(경기대 교수)은 “독일은 가해 청소년들이 스스로 후회와 반성의 과정을 거치도록 ‘피해자 고통 공감 훈련’을 집중 실시해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권기범 kaki@donga.com·김단비·김예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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